“미국 NBA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좋아하는 소년… 예의 바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차남 김정철(26). 그가 10대 시절 5년간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 재학했던 사실은 이미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국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오오노 가즈모토(大野和基)씨는 스위스로 날아가 지난가을부터 올 초까지 김정철의 유학 행적을 취재했다. 특히 김정철에 대한 정보는 국내외를 통틀어 유일무이하기에 이번 르포가 더욱 각별한 의미를 띤다.
현재 북한으로 귀국해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는 김정철. 그의 현지 친구들과 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유학생활의 행적을 공개한다. 다음은 오오노 가즈모토씨가 일본 「세이론(正論)」지에 기고한 글을 본지가 긴급 입수한 내용이다.
김정철이 유학했던 스위스로 가다 “북한 차기 지도자의 유력 후보인 김정철이 유학했던 곳을 알아냈습니다. 현지로 날아가 그의 친한 친구와 재학했던 학교의 교사를 인터뷰해주기 바랍니다.”
TV저널리스트 모임인 ‘JIN NET’에서 내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64) 총서기의 둘째 아들, 후계자 1순위인 김정철의 취재를 의뢰받은 것이다. 지난가을 일로, 유학했던 당시 그의 행적을 조사해 방송으로 제작하고 그간 베일에 싸였던 그의 내력을 조금이나마 밝혀보고 싶다는 것이 취재 의도였다.
김정철의 유학지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e)다. 그는 1993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재학했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대사관 차량 운전수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김정철과 함께 다니며 신변을 보호해주는 같은 또래의 북한 소년과 함께 통학했다는 것.
그곳의 학비는 연간 3천만원 정도로 유럽국가의 왕족이나 선진국 대사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학교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6년 4월 현재 38개국 2백50명 정도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사들의 국적도 12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나는 지체할 시간 없이 홀홀 단신으로 스위스로 날아갔다. 베른은 수도이나 인구 20만 7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취리히, 바젤(프랑스 및 독일과 접경하는 국경도시)에 버금가는 네 번째 도시로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 국제공항에 도착해 철도로 3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9일. 나는 초조함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연고도 지인도 없는 곳으로 떠나기 전 나에게 인터뷰를 의뢰했던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고 말했다.
김정철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에 대한 여타 방송 매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총서기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인 김정남(36)은 여배우인 성혜림(2002년 5월, 65세로 사망)의 아들이다. 오랫동안 후계자로 낙점되어왔지만 2001년 5월 나리타공항에서 밀입국에 실패해 외국으로 강제 추방 조치된 후 오랫동안 북한으로 귀국도 하지 못했다. 후계자 후보에서 탈락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북한에서는 둘째 김정철과 셋째인 김정운(23)의 존재가 급부상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재일조선인으로 무용가 고영희(2004년 6월, 57세로 사망)다. 한국 언론에서도 이 배 다른 형제들, 특히 둘째 김정철을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고영희가 생존해 있던 2002년에는 ‘존경하는 어머니’라 칭하며 그녀의 우상화 작업도 시작했었다. 그것은 김정철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사전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확실히 재학 중이었다 베른 역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의 논문을 집필했던 도시. 이 오래된 도시는 1983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곳이다. 소년 김정철은 머나먼 고향을 떠나 이 낯선 역에 내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남 김정남도 1980년, 아홉 살 때부터 수년간 스위스 쥬네프 국제학교에 다녔다. 그가 당시 재학 중 신분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베른을 고른 것이 아닐까?
다음날 아침 조용한 주택가에서 베른 국제학교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2시간 동안 학교 상황을 관찰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학생들이 스쿨버스로 하나 둘 하교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제공한 교내 인물을 찾으면 좋으련만…. 학교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니 한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의외로 상냥한 느낌이라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여기에 북한 학생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재직했던 교장의 이름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연락을 취해보고 싶은데요.”
‘김정철’이란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의 부친이 북한의 김정일이란 것도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경계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교장이 현재 이웃 국가인 독일의 국제학교장으로 전근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3일 후 그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왕자는 대사관 차량 ‘운전수 아들’ 2005년 10일 1일 교장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방송 디렉터, 카메라맨과 함께였다. 교장 데이빗씨는 취재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니 “협조하겠습니다. 극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이라며 취재에 응해주었다. 그가 재임했던 8년간(91~01년) 조선계 학생들은 6명이었다. 4명은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자제들이었고 남은 두 명이 북한대사관의 아이들인 김정철과 그의 호위 소년 광철문이었다.
교장은 김정철의 이름을 박철로 알고 있었다. 그는 가명으로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졸업앨범에서 찾아본 두 사람은 평범하고 소박한 느낌의 소년이었다. 그가 담당했던 학급은 한 반에 학생이 10명 정도인 소규모였기 때문에 이 두 사람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의 문답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좋은 친구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박철(김정철)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학생이었다. 학교 공부도 성실하게 했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나? “박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박철이 통역을 해주면서 그들과 한글, 독일어,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의 영어 실력은? “학교를 그만둘 당시에는 꽤 능숙해졌다. 외국어인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부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과제를 완수하곤 했다.”
영어 이외의 성적은? “평균 이상이었다. 재학 중 전 기간의 성적이 좋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특히 수학에 열중하곤 했다. 수학은 그의 특기였다.”
다른 한국 학생들과는 어땠나? “사실 한국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두 소년들과 교제하는 것을 약간 걱정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가 가능해서인지 금세 친해졌다. 참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부모가 걱정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혹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예의 바른 소년들이었다. 언제나 공손했다.”
박철(김정철)의 아버지가 북한 대사관의 운전수라고 알고 있나? “그렇다. 서류상에도 그렇게 기입돼 있었다. 베른과 쥬네프 사이를 운전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나치게 공손하다는 인상은 없었나? “아버지는 한국어와 독일어 등으로 이야기하고 나는 영어를 쓰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부모의 직업을 실제로 확인해본 적은 없나? “없다. 내 일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라 가정 환경은 조사하지 않았다. 특히 왕족이나 대사 자제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당시 그들이 10학년(우리의 고교 1학년)에 막 올라가 새학기를 시작하는 때였다.
사라지기 전에 무슨 말 없었나? “전혀. 갑자기 학교에 오지 않았다. 대사관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후에 박철(김정철)이 북한에서 전화를 걸었다. 오전 3시경이었다. 그는 농구팀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친구들은 모두 건강한지 물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만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나? “그저 건강하냐고 물었다. 그는 북한에서 건강하게 잘 있다고 말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대답했다. 전화는 모두 세 번 왔다.”
‘이상의 세계는 핵도 마약도 없다’ 교장은 졸업 앨범 안에서 김정철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도 설명해주었다. 그와 친했던 친구는 미국인인 가이, 제이슨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라울이라는 아이들이었다. 그 5명은 학교에서도 함께 잘 어울렸고 매주 금요일에는 스키장에 놀러가곤 했단다.
2005년 11월 2일, 사진 속 그의 친구 중 한 명인 미국인 제이슨(23)씨를 만났다. 부친은 산업기술자로 베른 서부로 전근을 와 가족 모두가 스위스로 이주했으며 96년부터 1년간 여동생과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와의 문답형 인터뷰 전문이다.
박철(김정철)을 기억하나? “매우 친절한 친구였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중 제일 잘해준 친구다.”
함께 자주 놀았나? “박철은 나와 성격이 잘 맞았고 잘 통했다. 조용하고 예의가 바른 친구였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쳤지만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도 했었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했나? “영화와 스포츠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액션 영화를 좋아했고 장 클로드 반담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유니버설 솔져’란 영화를 즐겨 봤고 격투 신이나 강한 액션을 따라 하기도 했다.”
영어 실력은 어땠나? “잘했다. 숙제로 제출하는 작문을 고쳐준 적이 있지만 그의 영어는 매우 능숙했다.”
그가 직접 무술을 하기도 했나? “진짜 무술을 보여준 적은 없다. 단지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을 따라 했다.”
그는 여자같이 얌전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여자 같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을 가렸지만 친해지면 허물없이 마음을 열고 솔직했다.”
장 클로드 반담처럼 강한 남자가 되고 싶어했나?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이에 비해서 근육이 있고 꽤 강했다.”
그의 부친(김정일)이 그는 여자 같고 약하다고 말했는데… “정신적으로 결코 약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탔지만 상황에 따라 다부진 면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에선 강하게 행동했다.”
그가 15세에 ‘나의 이상의 세계’라는 제목의 시를 썼던 것을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내용은 이상에 대해서인데 공산주의 이론이 포함돼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가 말하는 이상은 범죄와 빈곤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공산주의자의 이상의 세계인 ‘유토피아’란 단어가 여기저기에 나왔다. 그것은 그들의 정부 방침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와 친했던 제이슨씨도 김정철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아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그가 방과 후에는 따로 외출을 못한다거나 포장된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방과 후에 그의 집에 가본 적이 있나? “다른 친구들 집에는 종종 놀러가거나 자기도 했지만 박철이나 광철문 집에는 가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 못 간다고 했지만 당일 함께 놀았던 적이 있다.”
누구의 생일이었나? “반 친구였다. 앞마당 풀장에서 수영도 하고 음식도 먹었다. 광철문도 함께 왔었다. 박철이 혼자 다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반드시 둘이 같이 다녔다.”
박철은 생일 음식을 먹었나? “조금 먹었다. 그는 보통 포장이 안 돼 있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져온 요리나 주문한 피자를 먹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직접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다. 모두 도시락을 따로 갖고 다녔기 때문에 화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친구들 사이 소문은 없었나? “당시 박철이 북한 장군의 아들이고 광철문이 그의 호위를 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단순한 소문이었다. 그러나 포장한 음식물밖에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리더로서의 자질에 대해 박철(김정철)은 자국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나? “그렇다. 국제학교에서는 누구든 자국 대표로 왔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자국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누구도 자기 나라를 나쁘게 보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해 뭐라 이야기했나? “좋은 곳이니까 자신이 귀국하면 언제든 만나러 오라고 했다”
그가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되리란 말이 나오고 있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도 달리 변했을 수 있다. 다만 그는 스위스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여러 세계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것이 그에게 축적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북한 사람들과 세계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북한을 좋은 방향으로 지휘할 것이다.”
미국 농구선수를 좋아했다 사이좋게 지냈던 5인조 중 다른 한 명인 가이(23)씨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공무원이었다. 아버지의 미국 정보국 전근으로 그는 94년부터 3년간 베른을 통학했으며, 어머니는 신문기자로 아들에게 ‘취재 거부는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많은 사진을 제공 받았다.
제일 친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박철(김정철)이다.”
생각나는 추억은? “함께 농구와 축구를 했다. 농구는 ‘베른 베어지(bern bears)’라고 학교에서 팀도 만들었다.”
박철은 농구를 잘했나? “잘했다. 그의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였다. 팀워크를 중요시 여기는 편이었고 공격적인 타입은 아니었다.”
김정철은 데니스 로드맨(미 NBA 선수)을 좋아했다고 한다. 언제나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단다. 마침 당시 북한 자국 내에 ‘키 크기 운동’으로 농구 붐이 일어났던 것이 참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김정철이 귀국한 직후에 북한에 ‘유경 농구 경기장’이 새로 건설됐다. 제한구역이 곡선이 아니라 미국 NBA와 같이 4각 레이아웃 코트였다. 그리고 한 조총련계 무역 관계자는 북한에서 NBA 선수의 사진과 나이키 운동화, 스포츠 자료를 요청했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은 ‘장군님을 위한’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졌다. ‘장군님’은 그 물품들을 아들들에게 나눠줬던 것일까?
그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나? “박철이 권해 놀러갔었다. 그의 집은 빌딩의 2층이었다. 함께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았다. 집에는 장 클로드 반담의 비디오가 10개 정도 있었다. 그는 반담의 엄청난 팬이었다.”
박철이 여자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나? “여자친구들과는 별로 놀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었다.”
그가 권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세계를 만들 거라 이야기한 적은 없었나? “자작시에서는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다. 국수주의는 아니었지만 애국심이 강한 아이였다.”
그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아들인 걸 알았을 때 어땠나?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차기 지도자가 되면 좋은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하는가? “박철(김정철)이라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가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의 인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는 나라를 만들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절대 ‘악(惡)한’이 될 수 없는 ‘나이스 가이’이기 때문이다.”
北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의 스위스 유학 시절’ 국내언론 최초공개
北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의 스위스 유학 시절’ 국내언론 최초공개
“미국 NBA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좋아하는 소년… 예의 바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김정일의 후계자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차남 김정철(26). 그가 10대 시절 5년간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 재학했던 사실은 이미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국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오오노 가즈모토(大野和基)씨는 스위스로 날아가 지난가을부터 올 초까지 김정철의 유학 행적을 취재했다. 특히 김정철에 대한 정보는 국내외를 통틀어 유일무이하기에 이번 르포가 더욱 각별한 의미를 띤다.
김정철이 유학했던 스위스로 가다
“북한 차기 지도자의 유력 후보인 김정철이 유학했던 곳을 알아냈습니다. 현지로 날아가 그의 친한 친구와 재학했던 학교의 교사를 인터뷰해주기 바랍니다.”
TV저널리스트 모임인 ‘JIN NET’에서 내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64) 총서기의 둘째 아들, 후계자 1순위인 김정철의 취재를 의뢰받은 것이다. 지난가을 일로, 유학했던 당시 그의 행적을 조사해 방송으로 제작하고 그간 베일에 싸였던 그의 내력을 조금이나마 밝혀보고 싶다는 것이 취재 의도였다.
김정철의 유학지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e)다. 그는 1993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재학했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대사관 차량 운전수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김정철과 함께 다니며 신변을 보호해주는 같은 또래의 북한 소년과 함께 통학했다는 것.
그곳의 학비는 연간 3천만원 정도로 유럽국가의 왕족이나 선진국 대사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학교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6년 4월 현재 38개국 2백50명 정도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사들의 국적도 12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나는 지체할 시간 없이 홀홀 단신으로 스위스로 날아갔다. 베른은 수도이나 인구 20만 7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취리히, 바젤(프랑스 및 독일과 접경하는 국경도시)에 버금가는 네 번째 도시로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 국제공항에 도착해 철도로 3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9일. 나는 초조함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연고도 지인도 없는 곳으로 떠나기 전 나에게 인터뷰를 의뢰했던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고 말했다.
김정철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에 대한 여타 방송 매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총서기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인 김정남(36)은 여배우인 성혜림(2002년 5월, 65세로 사망)의 아들이다. 오랫동안 후계자로 낙점되어왔지만 2001년 5월 나리타공항에서 밀입국에 실패해 외국으로 강제 추방 조치된 후 오랫동안 북한으로 귀국도 하지 못했다. 후계자 후보에서 탈락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북한에서는 둘째 김정철과 셋째인 김정운(23)의 존재가 급부상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재일조선인으로 무용가 고영희(2004년 6월, 57세로 사망)다. 한국 언론에서도 이 배 다른 형제들, 특히 둘째 김정철을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고영희가 생존해 있던 2002년에는 ‘존경하는 어머니’라 칭하며 그녀의 우상화 작업도 시작했었다. 그것은 김정철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사전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확실히 재학 중이었다
베른 역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의 논문을 집필했던 도시. 이 오래된 도시는 1983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곳이다. 소년 김정철은 머나먼 고향을 떠나 이 낯선 역에 내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남 김정남도 1980년, 아홉 살 때부터 수년간 스위스 쥬네프 국제학교에 다녔다. 그가 당시 재학 중 신분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베른을 고른 것이 아닐까?
다음날 아침 조용한 주택가에서 베른 국제학교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2시간 동안 학교 상황을 관찰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학생들이 스쿨버스로 하나 둘 하교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제공한 교내 인물을 찾으면 좋으련만…. 학교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니 한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의외로 상냥한 느낌이라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여기에 북한 학생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재직했던 교장의 이름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연락을 취해보고 싶은데요.”
‘김정철’이란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의 부친이 북한의 김정일이란 것도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경계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교장이 현재 이웃 국가인 독일의 국제학교장으로 전근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3일 후 그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왕자는 대사관 차량 ‘운전수 아들’
2005년 10일 1일 교장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방송 디렉터, 카메라맨과 함께였다. 교장 데이빗씨는 취재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니 “협조하겠습니다. 극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이라며 취재에 응해주었다. 그가 재임했던 8년간(91~01년) 조선계 학생들은 6명이었다. 4명은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자제들이었고 남은 두 명이 북한대사관의 아이들인 김정철과 그의 호위 소년 광철문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좋은 친구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박철(김정철)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학생이었다. 학교 공부도 성실하게 했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나?
“박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박철이 통역을 해주면서 그들과 한글, 독일어,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의 영어 실력은?
“학교를 그만둘 당시에는 꽤 능숙해졌다. 외국어인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부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과제를 완수하곤 했다.”
영어 이외의 성적은?
“평균 이상이었다. 재학 중 전 기간의 성적이 좋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특히 수학에 열중하곤 했다. 수학은 그의 특기였다.”
다른 한국 학생들과는 어땠나?
“사실 한국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두 소년들과 교제하는 것을 약간 걱정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가 가능해서인지 금세 친해졌다. 참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부모가 걱정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혹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예의 바른 소년들이었다. 언제나 공손했다.”
박철(김정철)의 아버지가 북한 대사관의 운전수라고 알고 있나?
“그렇다. 서류상에도 그렇게 기입돼 있었다. 베른과 쥬네프 사이를 운전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나치게 공손하다는 인상은 없었나?
“아버지는 한국어와 독일어 등으로 이야기하고 나는 영어를 쓰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부모의 직업을 실제로 확인해본 적은 없나?
“없다. 내 일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라 가정 환경은 조사하지 않았다. 특히 왕족이나 대사 자제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당시 그들이 10학년(우리의 고교 1학년)에 막 올라가 새학기를 시작하는 때였다.
사라지기 전에 무슨 말 없었나?
“전혀. 갑자기 학교에 오지 않았다. 대사관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후에 박철(김정철)이 북한에서 전화를 걸었다. 오전 3시경이었다. 그는 농구팀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친구들은 모두 건강한지 물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만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나?
“그저 건강하냐고 물었다. 그는 북한에서 건강하게 잘 있다고 말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대답했다. 전화는 모두 세 번 왔다.”
‘이상의 세계는 핵도 마약도 없다’
교장은 졸업 앨범 안에서 김정철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도 설명해주었다. 그와 친했던 친구는 미국인인 가이, 제이슨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라울이라는 아이들이었다. 그 5명은 학교에서도 함께 잘 어울렸고 매주 금요일에는 스키장에 놀러가곤 했단다.
2005년 11월 2일, 사진 속 그의 친구 중 한 명인 미국인 제이슨(23)씨를 만났다. 부친은 산업기술자로 베른 서부로 전근을 와 가족 모두가 스위스로 이주했으며 96년부터 1년간 여동생과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와의 문답형 인터뷰 전문이다.
박철(김정철)을 기억하나?
“매우 친절한 친구였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중 제일 잘해준 친구다.”
함께 자주 놀았나?
“박철은 나와 성격이 잘 맞았고 잘 통했다. 조용하고 예의가 바른 친구였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쳤지만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도 했었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했나?
“영화와 스포츠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특히 액션 영화를 좋아했고 장 클로드 반담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유니버설 솔져’란 영화를 즐겨 봤고 격투 신이나 강한 액션을 따라 하기도 했다.”
“잘했다. 숙제로 제출하는 작문을 고쳐준 적이 있지만 그의 영어는 매우 능숙했다.”
그가 직접 무술을 하기도 했나?
“진짜 무술을 보여준 적은 없다. 단지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을 따라 했다.”
그는 여자같이 얌전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여자 같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을 가렸지만 친해지면 허물없이 마음을 열고 솔직했다.”
장 클로드 반담처럼 강한 남자가 되고 싶어했나?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이에 비해서 근육이 있고 꽤 강했다.”
그의 부친(김정일)이 그는 여자 같고 약하다고 말했는데…
“정신적으로 결코 약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탔지만 상황에 따라 다부진 면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에선 강하게 행동했다.”
그가 15세에 ‘나의 이상의 세계’라는 제목의 시를 썼던 것을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내용은 이상에 대해서인데 공산주의 이론이 포함돼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가 말하는 이상은 범죄와 빈곤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공산주의자의 이상의 세계인 ‘유토피아’란 단어가 여기저기에 나왔다. 그것은 그들의 정부 방침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와 친했던 제이슨씨도 김정철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아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그가 방과 후에는 따로 외출을 못한다거나 포장된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방과 후에 그의 집에 가본 적이 있나?
“다른 친구들 집에는 종종 놀러가거나 자기도 했지만 박철이나 광철문 집에는 가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 못 간다고 했지만 당일 함께 놀았던 적이 있다.”
누구의 생일이었나?
“반 친구였다. 앞마당 풀장에서 수영도 하고 음식도 먹었다. 광철문도 함께 왔었다. 박철이 혼자 다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반드시 둘이 같이 다녔다.”
박철은 생일 음식을 먹었나?
“조금 먹었다. 그는 보통 포장이 안 돼 있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져온 요리나 주문한 피자를 먹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직접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다. 모두 도시락을 따로 갖고 다녔기 때문에 화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친구들 사이 소문은 없었나?
“당시 박철이 북한 장군의 아들이고 광철문이 그의 호위를 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단순한 소문이었다. 그러나 포장한 음식물밖에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리더로서의 자질에 대해
박철(김정철)은 자국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나?
“그렇다. 국제학교에서는 누구든 자국 대표로 왔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자국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누구도 자기 나라를 나쁘게 보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해 뭐라 이야기했나?
“좋은 곳이니까 자신이 귀국하면 언제든 만나러 오라고 했다”
그가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되리란 말이 나오고 있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도 달리 변했을 수 있다. 다만 그는 스위스에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여러 세계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것이 그에게 축적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북한 사람들과 세계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북한을 좋은 방향으로 지휘할 것이다.”
미국 농구선수를 좋아했다
사이좋게 지냈던 5인조 중 다른 한 명인 가이(23)씨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공무원이었다. 아버지의 미국 정보국 전근으로 그는 94년부터 3년간 베른을 통학했으며, 어머니는 신문기자로 아들에게 ‘취재 거부는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많은 사진을 제공 받았다.
제일 친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박철(김정철)이다.”
생각나는 추억은?
“함께 농구와 축구를 했다. 농구는 ‘베른 베어지(bern bears)’라고 학교에서 팀도 만들었다.”
박철은 농구를 잘했나?
“잘했다. 그의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였다. 팀워크를 중요시 여기는 편이었고 공격적인 타입은 아니었다.”
김정철은 데니스 로드맨(미 NBA 선수)을 좋아했다고 한다. 언제나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단다. 마침 당시 북한 자국 내에 ‘키 크기 운동’으로 농구 붐이 일어났던 것이 참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김정철이 귀국한 직후에 북한에 ‘유경 농구 경기장’이 새로 건설됐다. 제한구역이 곡선이 아니라 미국 NBA와 같이 4각 레이아웃 코트였다. 그리고 한 조총련계 무역 관계자는 북한에서 NBA 선수의 사진과 나이키 운동화, 스포츠 자료를 요청했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은 ‘장군님을 위한’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졌다. ‘장군님’은 그 물품들을 아들들에게 나눠줬던 것일까?
그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나?
“박철이 권해 놀러갔었다. 그의 집은 빌딩의 2층이었다. 함께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았다. 집에는 장 클로드 반담의 비디오가 10개 정도 있었다. 그는 반담의 엄청난 팬이었다.”
박철이 여자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나?
“여자친구들과는 별로 놀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었다.”
그가 권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세계를 만들 거라 이야기한 적은 없었나?
“자작시에서는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다. 국수주의는 아니었지만 애국심이 강한 아이였다.”
그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아들인 걸 알았을 때 어땠나?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차기 지도자가 되면 좋은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하는가?
“박철(김정철)이라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가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의 인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는 나라를 만들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절대 ‘악(惡)한’이 될 수 없는 ‘나이스 가이’이기 때문이다.”
글 / 오오노 가즈모토 사진제공 / JIN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