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Pride & Prejudice

이주석2006.06.27
조회127

 

- 사랑, 아니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는 오만과 편견이 있다.

 

 

오랜만에 쓰는 감상문-.

 

오만과 편견은 영화를 보고 싶어지다가, 다시 책이 읽고 싶어진 후 다시 영화를 보게 된(?) 특이한 케이스다.

 

영화의 경우 키라 (혹은 카이라, 키이라. 직접 그 사람에게 듣지 않는 이상은, 읽는 사람 마음이다. 여긴 한국이니까. 사족이지만, 데스노트의 Kira와는 스펠이 다르다. Keira.)

 

소설의 줄거리와 영화의 줄거리는 정말 똑같았다.

 

사실 소설을 먼저 봐서 그런지, 영화에서 소설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면, 조금 화냈을 것도 같다.

그래도 너무 똑같아서 힘은 좀 빠지지만.

 

영화는 누구의 표현대로 단숨에 몰아친다.

단 하나, '오만과 편견'이라는 주제 하나만 가지고서.

 

그러나 책은 호흡이 조금 길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큰 맥락을 기초로해서,

여러 가지 사회상에 대한 풍자가 이어진다.

 (이 점이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점 이라면 아쉬운 점이랄까.

그렇지만 2시간동안에 그 정도 몰아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

 

계속 말하게 되는 '오만과 편견'은 주인공 두 사람이 겪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오만 Pride을 심어주었고,

여자에게는 편견 Prejudice을 심어주어,

서로 간의 다툼과 오해가 계속 이어진다.

 

간단히 말해서 남녀간의 사랑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뭐, 실은 이는 사랑 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와 가지게 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오만과 편견을 가지는 것은,

서로간에 공유하는 하나의 관계에 대해 잘못된- 너무나 다른 두 가지의 생각을 각각 하나씩 나눠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소설(그리고 영화)에서는 남자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여자가 편견에 빠지기 쉽다고 하지만, 현실상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이 두가지를 모두 갖기 쉬울 것이다.

전체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에도 불구하고, 끝나고 난 뒤 마냥 허무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

살아 생전에 자신이 쓴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600파운드를 벌지 못하고 죽었던 명작가.

(소설에서 다아시의 연봉이 1만파운드가 넘었으니, 할말을 다한거다. 그에 비해 신분이 낮고 가난한 베넷씨도 일년에 2천파운드는 넘게 벌었다고 했다.)

그런 비운 뿐만이 아니라,

실은 사랑에 실패하고 마는 노처녀였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우면서도, (실례같지만) 흥미롭다.

자신의 삶이 지독하게 소설에 투영된 것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그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곁다리로 잘려 나갔지만, 소설 내내 작가는 결혼만이 인생의 성공이라 생각하는 여자를 매우 어리석고 푼수댁이고 오히려 약간 풍기문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 반해 결혼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주인공과 그의 언니 제인은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둘만 진정으로 축복받는 결혼을 이루게 된다.

 

이 점이 그녀가 자신의 현실과 소망을 지독하게 투영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결혼을 못한 노처녀인 자신을 떠올리면서, 결혼은 다른 그 어떠한 조건보다도 사랑이 중요하며 결혼이 실패한 이유는 그러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엔 부잣집 도련님들과 그에 비해 가난한 여인들 (물론 이 여인네들은 아름다워야 한다)이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결국엔 자기 소망을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녀가 결혼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집안의 배경차이 였다고도 한다. 그녀의 결혼 상대는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집안이었는데, 그녀보다도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를 가진 집안이 나타나자 그녀와의 결혼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 조금 재밌다.

이번 영화 뿐만 아니라 실은 예전에 케이블 TV에서 '오만과 편견'이란 드라마를 했던것을 몇 분 정도 볼 수 있었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브리짓이 중간 중간에 언급했었다.

 

 

위 그림이 원래 드라마로 만들어 질 때의 포스터이다.

원래는 콜린 퍼스가 주인공 다아시 역을 맡았었다.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아시 였다.

너무나도 잘생겼지만, 어딘가가 얼빵해 보이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무언가 굉장히 고상한 '도련님'같은 이미지인 콜린 퍼스는,

아무리봐도 천성적인 다아시 역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는 콜린 퍼스였다.

 

그에 반해 영화에서는 매튜 맥파어든이 담당했다.

 

처음엔 왜 저렇게 꺼벙한 사람일까 생각했는데,

보면 볼 수록 나아지는 케이스다.

영국 왕립 연극학교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사에서의 악센트나 행동에서 다아시라고 하면 당연히 갖추어야할 그 당시의 고풍스러운 예절법도가 잘 묻어난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또 매우 허스키 하신데, 어떻게 보면 그냥 '걸걸'한 느낌도 들어서 약간 졸린 듯한 꺼벙한 이미지가 새록 떠오른다.

그래도 위에서 말했듯이 계속 보면 볼 수록, 묻혔던 그의 잘생긴 얼굴과 왠지 모를 따뜻함까지 묻어나니 매우 정감있다.

물론 '오만한 다아시'가 가져야 할 '오만'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는 못하였지만, 너무나도 정감있고 멋있는 다아시라서 영화를 다 보고 날 때즘엔 만만치 않게 좋았다.

 

뭐 어쨌든 그의 원래 이미지는 이렇다.

 

그렇다. 꺼벙-하다. 다른 사진도 있었으나, 그건 머리 관리를 안 해주신 사진들 뿐이라 올리기가 영 안 좋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제인 오스틴이 말했듯이,

엘리자베스는 (소설 묘사에 의하면) 누구 못지않게 예쁘고 당차면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언제나 발랄하고 활기차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또 어찌나 깊으신지. 작가가 부여한 임무인 '편견'에 관한 것만 빼고는 구구절절 옳은 말을 늘여놓는 최고의 여자다.

 

키라 나이틀리는 그에 잘 맞는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녀 보다는 '오페라의 유령'과 '포세이돈'에 등장한 에미 로섬이 더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두 영화에서는 매우 조신한 여인네였지만, 그녀의 얼굴과 미소를 가지고 엘리자베스처럼 방방거린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영화를 보니 키라 나이틀리를 도저히 엘리자베스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 비해서 '좀 많이' 성숙해져버린 느낌이 들어서 처음엔 싫었지만,

싱글싱글 웃는 모습과 방방 뛰는 모습들이 영락없이 엘리자베스 답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그 누구보다도 예쁜 모습이라니 하하.

 

아까 말한 콜린퍼스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나온 제니퍼 에일도 엘리자베스에서 잘 어울린다. 아까 말한 에미 로섬과 비슷한 이미지.

 

 

몇 가지 인물상 아쉬운건 역시 빙리와 제인이다.

빙리는 특히나...캐스팅이 아쉽다.

배우의 얼굴이 결코 못생긴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얗게 반질반질 허약해 보이는 청년보다는,

애덤 샌들러 같이 약간 장난기 많은 곱상한 청년이 훨씬 나았을 듯.

또한 제인은, 엘리자베스의 언니이긴 하지만,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났다.

제인 역할의 배우도 물론 소설에서 묘사한대로, 너무나도 예쁜 사람이지만, 둘째에 비해서, 아니 빙리씨에 비해서도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건... 좀 아니다.

 

나머지는 꽤 재미있는 캐스팅이었다.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역의 주디 덴치도 재밌었고,

베넷 부인을 열연하신, ('꼬마돼지 베이브'에서도 나왔던 낯익은) 그 분도 잘 어울렸다. 아니 정말 재밌었다.

 

 

'오만과 편견'은 거듭 얘기하지만 로맨틱한 신데렐라성 '판타지'에 불과하다.

 

하나하나 창문에서 역광을 받아, '자연적인 포샵'을 2시간 내내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렇게 아침해가 강하게 내리쬐면서 더 심한 '포샵질'을 하는 것은 결국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 주인공(캐릭터와 실제 배우 포함)은 너무 멋있다는 것...은 몇 백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람들을 이 '판타지'의 추종자로  만드는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