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는 프랑스 보몽 드로마뉴란 곳에서 태어났으며 디오판토스가 저술한 [정수론]이라는 수학책을 아예 끼고 살다시피 했다. 페르마는 명성보다도 수학의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가져 연구를 발표하는 대신 그저 조용히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하지만 페르마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중에도 몇몇의 수학자와 편지를 왕래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새롭게 발견한 수학 정리를 보내주곤 했다.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당신도 한 번 이 정리를 증명해 보시죠, 저는 증명을 했는데..."라고 적곤 했다.
페르마는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많은 중요한 업적들을 남겼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 이유는 그가 아마추어 수학자로 남아 있었다는 것과 자기가 발견했다는 정리 등을 완전히 증명하고 이론 전개를 하기보다는 그냥 던져 놓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가 던져 놓은 과제들을 후대의 수학자들이 해결하려 몰두한 결과 수학 사상의 많은 중요한 발전들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이것은 "x의 n승 + y의 n승 = z의 n승 의 관계식에서 n이 3 이상 일 경우에는 이 식을 만족하는 x, y, z의 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밝힌후, "나는 이 놀라운 정리를 발견하여 완전히 증명했으나, 지면의 에백이 부족하므로 증명은 생략하겠다." 라고 써있다. 몇 년 전까지도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던 의문의 이 정리는 1994년 미국의 어느 수학자가 완전하게 증명하여 "1994년을 빛낸 각계의 인물" 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데카르트, 파스칼 등과도 교류하면서 해석기하학, 확률론의 창시에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정수론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소수의 연구에도 힘썼으며, 부정방정식인 이른바 디오판토스의 방정식의 해법에도 큰 공헌을 하여, 정수론의 진보에 중오한 기여를 하였다.
수학자5-페르마
페르마는 프랑스 보몽 드로마뉴란 곳에서 태어났으며 디오판토스가 저술한 [정수론]이라는 수학책을 아예 끼고 살다시피 했다. 페르마는 명성보다도 수학의 연구 자체에 관심을 가져 연구를 발표하는 대신 그저 조용히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하지만 페르마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중에도 몇몇의 수학자와 편지를 왕래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새롭게 발견한 수학 정리를 보내주곤 했다.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당신도 한 번 이 정리를 증명해 보시죠, 저는 증명을 했는데..."라고 적곤 했다.
페르마는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많은 중요한 업적들을 남겼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 이유는 그가 아마추어 수학자로 남아 있었다는 것과 자기가 발견했다는 정리 등을 완전히 증명하고 이론 전개를 하기보다는 그냥 던져 놓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가 던져 놓은 과제들을 후대의 수학자들이 해결하려 몰두한 결과 수학 사상의 많은 중요한 발전들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이것은 "x의 n승 + y의 n승 = z의 n승 의 관계식에서 n이 3 이상 일 경우에는 이 식을 만족하는 x, y, z의 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밝힌후, "나는 이 놀라운 정리를 발견하여 완전히 증명했으나, 지면의 에백이 부족하므로 증명은 생략하겠다." 라고 써있다. 몇 년 전까지도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던 의문의 이 정리는 1994년 미국의 어느 수학자가 완전하게 증명하여 "1994년을 빛낸 각계의 인물" 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데카르트, 파스칼 등과도 교류하면서 해석기하학, 확률론의 창시에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정수론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소수의 연구에도 힘썼으며, 부정방정식인 이른바 디오판토스의 방정식의 해법에도 큰 공헌을 하여, 정수론의 진보에 중오한 기여를 하였다.
< 관 련 공 식 >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