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여희수2006.06.29
조회45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디선가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풍겨온다.

 

집으로 들어서는 첫 이미지는 불합격이다.

 

3층 짜리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계절에,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창문을 열고 빨래며 청소를 하면 어느새

땀범벅이 된다.

 

그러나 열린 문으로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고

방안의 창으로 빠져나가는 통에 집의 환기는 최적이다.

그리고 어느새 특유의 쾌쾌한 냄새는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생활이 된다.

 

생활의 발견


 

어제 집에 갔다 하루를 자고 친구 차로 남은 짐을 들고 올라왔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느냐는 엄마가 한마디의 핀잔 뒤에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런 짐에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를 포함시켜주신다.

 

귀찮은 듯 바라보는 아들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엄마는 반찬이며 찌개며 고기며 야채며 과일이며

각각의 특성과 요리법, 관리법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글쎄,

아들 녀석은 집중이 안된다.

오히려 오늘 친구와 떠날 작은 여행에 기대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확실히 그렇다. 그는 친구의 차에서 연신 사진만 찍어댔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친구에게 한바탕 길 설명을 해서 집을 찾아온 후 짐 정리에 정신이 없다.

아이스박스를 친구 편으로 엄마에게 보내 드려야하기에 가장 먼저 정리를 한다. 냉동실과 냉장실이 가득찼다. 뿌듯한 마음으로 잠깐 냉장고를 쳐다본다.

 

반찬통과 국통, 하물며 랩으로 씌워진 국과 고기 겉에

'우거지국', '미역국', '돼지불', '김치찌개', 등 각각 이름이 쓰여져있다. 근데 분명 이것들은 모두 아침에 엄마가 설명한 것들이다.

 


 

생활의 발견

 

 

 

귀담아 듣지 않은 탓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장 밑칸에 있는 수박은 자른지 꽤 되었지만 먹는데는 아직 진척이 나가지 않는다.

그 위에 있는 우거지국도 끓인지 시간이 좀 되었다.

반찬도 두부나 야채처럼 유통기한에 민감한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장조림 통에 들은 계란은 내일 아침에 먹어 치워야겠다.

오이김치는 너무 물컹해져서 새로 퍼놔야겠다.

콩나물 국은 아마 버려야될 것 같다.

 

싱크대 위에 잠깐 담아둔 음식물 쓰레기 봉지 안에 수많은 날파리들이 끼었다.

 

젠장.

 

잠깐 집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은 내 자유의지로부터 시작되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 적막한 공간은 나에게 말한다.

"자유의 대가는 조금은 궁색해지는 것"이라고.

 

아무렴 좋다.

냉장고 안의 세계 앞에서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엄마가 자식 걱정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양보하시지 않아서 좋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요즘 초등학생들도 이 말의 참 뜻은 알거다.

자식걱정, 사랑 때문에 당신의 많은 걸 양보하시는,

그래서 가끔은 주기만 하는 것과 옆에서 근심 섞인 표정과 말투를 던지는 것에 익숙하신,

진정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걸 나눠주는 건데.

 

엄마 이젠 그만 걱정하세요.

엄마가 양보하신 만큼 이제 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양보하신 것도 내가 요구한거고 선택한 것이지만,

 

이젠 끼니 때마다 뭐 먹었니 하는 전화는 그만하세요.

 

오늘,

친구 차편으로 돌아가는 아이스박스 안에 쪽지를 쓴다.

 

엄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