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전 토티의 퇴장은 히딩크 사전 작전

박보현200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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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전 토티의 퇴장은 히딩크 사전 작전

 

 

 

[히딩크 X파일] 16강전 토티의 퇴장은

히딩크 "사전 작전" 이었다

 

 

 

이탈리아 비에리의 선제골과 설기현의 동점골,그리고 연장전에서 나온 안정환의 역전골.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가장 극적이었던 이탈리아전은 당시 최진한 코치의 비망록에 12쪽에 걸쳐 기록돼 있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 직전 숙소에서 가진 선수단과의 비공개 미팅,이탈리아의 포메이션과 예상 선수명단,하프타임 때 선수들에게 지시한 사항 등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히딩크,토티 퇴장유도 사전에 지시=한국의 역전승에는 이탈리아 공격의 핵인 토티의 연장 전반 퇴장이 결정적이었다. 행운으로 여겨졌던 퇴장 사건,그러나 이는 사전에 준비된 히딩크의 치밀한 전술임이 밝혀졌다. 비망록을 토대로 당시 대표팀 선수들을 추가 취재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했던 최진철은 “히딩크 감독이 경기 전 따로 불러 토티에게 거칠게 의도적으로 파울을 많이 하라고 지시하면서 경고,퇴장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황선홍도 “히딩크가 선수 23명 전원을 상대로 이탈리아팀의 반칙에 대한 대응책을 얘기했는데,최진철 김태영 홍명보 김남일에게는 별도로 토티 퇴장 유도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황은 “토티가 다혈질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친 파울을 하면 자제력을 잃어버린다는 게 히딩크 판단이었다”고 덧붙였다. 박항서 코치 역시 “히딩크는 토티가 시뮬레이션에 능하다는 점을 사전에 강조하면서 토티에게 파울을 당하면 아픈 시늉을 심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기억했다.

 

 

 

히딩크의 토티 퇴장유도 작전은 경기장 밖에서도 진행됐다. 히딩크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토티가 반칙을 하게 되면 관중들이 거센 야유를 퍼부을 수 있도록 붉은 악마 회장단과 사전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탈리아팀과의 경기를 앞두고는 ‘이탈리아팀은 수비라인이 가운데 다 모여있어 가운데 공간이 없다’며 대각선 패스,긴 패스 위주의 공격 전술훈련에 집중했으며,‘이탈리아는 수비하다 공을 빼앗으면 바로 스트라이커에게 패스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기습공격에 따른 수비대응책을 강조했다.

 

 

 

◇비장한 하프타임 작전회의=전반전이 끝나고 1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15분간의 하프타임. 전반 패널티킥을 실축한 안정환은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안정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질책도 없었고 자신감을 잃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실수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 히딩크 특유의 스타일이다. 히딩크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공격이 풀리지 않는 이유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한국팀의 공격이 홍명보의 발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간파한 이탈리아가 홍명보에 대해 적극적인 압박을 펼치자 히딩크는 제2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히딩크는 홍명보에게 “토티가 달려 오면 공을 남일이에게 줘라. 토티가 올라오면 토티 뒤에 있는 남일이는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남일이가 명보의 패스 풀어가는 역할을 대신하라”고 지시했다.

 

 

왼쪽과 오른쪽 공격수인 설기현과 박지성에게는 안쪽으로 들어와 움직이라고 주문했고,이영표와 송종국에게는 좌우 공격수 자리로 빠르게 치고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공과 멀리 떨어진 쪽에서는 체력 소진이 많은 맨투맨 수비 대신 지역방어를 할 것과 이탈리아의 압박이 강하므로 패스도 빨리할 것을 주문했다. 이영표는 히딩크 지시대로 측면 침투에 적극 가담하면서 안정환의 골든골을 센터링했다.

 

 

 

◇황선홍의 프리킥,그리고 패널티킥 순번=연장 전반 11분. 황선홍이 수비벽 아래로 낮게 깔아찬 직접 프리킥은 황이 히딩크에게 자신이 차겠다고 해서 이뤄진 것이다. 황은 “원래는 이천수나 유상철이 프리킥을 찰 상황인데 내가 차겠다고 즉석에서 사인을 보냈고 히딩크가 허락했다”며 “일본 J리그 선수로 뛰면서 깔아찬 경험이 있어 재시도했다”고 했다. 수비수들의 발 밑으로 절묘하게 깔아찬 프리킥은 골키퍼 부폰의 손에 걸렸다. 관중들의 아쉬운 한 숨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잘차고 잘막은 명장면이었다. 히딩크는 부폰이 패널티킥을 잘 막는다는 점을 알고 페널티킥까지 가는 상황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연장전까지 동점이었다면 페널티킥은 어떤 순서로 찼을까.

 

 

 

코칭스태프가 경기 전 숙소에서 작성한 순번은 1번 안정환,2번 박지성,3번 유상철,4번 송종국,5번 홍명보였다. 그러나 홍명보는 후반에 교체돼 무조건 다른 선수가 찼을 것이고,안정환은 전반전에 페널티킥을 실축했으므로 차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중 발생하는 패널티킥의 순번은 3명까지 짜서 선수들에게 미리 알려줬는데 1번은 당연히 실축한 안정환이었고 2번은 박지성 3번은 홍명보였다.

 

 

◇홈경기 잇점을 최대한 이용한 대표팀=히딩크는 핌 베어벡 코치에게 경기 전날인 2002년 6월17일 저녁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이탈리아팀의 비공개 훈련을 몰래 보고오라고 지시했다. 핌 코치는 당시 경기장 상단의 은폐된 곳에서 상대팀의 움직임을 밀탐했다. 경기장소가 한국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최 전 코치는 “히딩크가 이탈리아팀 선발 출장선수가 누구인 지,또 부상중인 수비수 네스타 등 선수들의 컨디션은 어떤 지를 직접 파악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잔디에 물을 뿌리도록 돼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도 교묘히 이용했다. 히딩크는 1시간 늦춰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물을 뿌려달라고 요구했는데,이는 잔디가 물기에 촉촉히 젖어있으면 공 스피드가 빨라지고 이렇게 되면 스피드를 내세우는 한국 선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최 전 코치는 “설기현의 동점골 뒤인 후반 44분 비에리가 왼쪽에서 올라온 센터링을 노마크 찬스에서 오른발로 정확히 맞히는 데 실패한 것도 늦게 물을 뿌려 볼 스피드가 다소 빨라진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대회 주관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하지만 경기장 관리는 우리나라 사람이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탐사기획팀=이광호 이용훈 권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