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에피소드는 즐겁다. 그리고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은 더욱더 즐겁다. 그 에피소드나 기행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영화관의 영사막처럼 그것이 우리 삶의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어서 즐겁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한번 저질러 보고 싶으나, 사회적 금기에 매여 실행하지 못하는 일들이어서 즐겁다.
그 면에서 그들의 기행이나 에피소드는 우리를 얽매고 있는 사회적 금기를 일시적으로 나마 벗겨내주고 있다는 면에서 정신적인 해방감을 줄 뿐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그 변화를 추구하고 혹은 저지하는 고집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억압사회에서의 자유 같은 것으로 표징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인의 기행이 없는 사회는 마음의 먼지가 잔뜩 낀 사회, 금기에 매인 사회, 자유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정신이 죽은 사회, 위축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사상가가 대낮에 하늘이 어둡다고 불을 밝혀들고 거리를 걸었던 것이나, 비오는 날 문인들이 벌거벗은 채로 소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오는 일들은, 그들의 시대가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에 매여있는가를 보여주는 시대의 그림이 된다.
1960년대 초입에 김수영이 요즘 젊은 시인들이 술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던 것도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자유의 문제와 이어진다. 술을 많이 마시고 주정을 한다는 것은 술의 힘을 빌어서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금기를 그만큼 무너뜨리고 자유를 확보하고 누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김관식 --- 그는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고 관습을 두들겨 부쉈던 시인이다. 193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최남선의 수제자가 되고, 서정주의 동서가 되었던 그는, 어려서는 천재로서 이웃에 이름을 떨쳤고 성년이 되어서는 시와 술과 병고와 기이한 행적으로 천재 못지않은 화제를 뿌렸다. 그가 가는 곳엔 화제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느릿느릿한 강경 사투리로 “ 이놈들아 이놈들아” 하고 소리치면서, 거리를 휘젓고 다니다가, 다방에 들어가 문단 선배들의 얼굴을 대할라치면, 그가 노대가인 박종화든 김동리* 황순원* 조연현이든 박군*김군*황군*조군하고 불렀다. “동리군, 자네 내 술값 좀 대게.” “조군, 자네는 왜 그리 비비꼬였나.”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돌려 못들은 체하든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떠버렸다.
어느 날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축사를 하고 있는 출판기념회에 술이 억수로 취하여 나타났다.
그는 곧장 장기영 곁으로 나아가 “에또 자네는 그만 하고........ 내가 말을 좀 해야겠네”
하고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의 동서이자 존경하는 선배인 서정주가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인들의 모임에서도 김관식은 “의장!”하고 일어서 서 휭설수설 회의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서정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동서 하나 둔 것이 이래서, 여러분 미안하오”하고 민망해 했다.
이같은 김관식의 삶의 행태는 문인사회에서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육당 최남선의 주선으로 육당주의자인 김도태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 상고에 국어선생으로 들어간 그는 자기 의자 뒤에 ‘如 不 手’ 라고 ‘법화경’의 한 구절을 하얀 페인트로 써놓고는 교장도 교감도 선생들도 보이지 않는 듯 유아독존 격으로 지냈다. 그는 일단의 학생들을 이끌고 술을 마시고 개를 잡아먹고 사창가를 들락거렸다.
술 냄새가 진동한 김관식을 어느 날 아침, 김도태 고쟝이 불렀다.
“김 선생?”
“넷네에에”
“나는 술 냄새를 좋아합니다.”
“...... .”
“나는 은단 냄새도 좋아합니다.”
“...... .”
“그러나 술 냄새와 은단 냄새가 섞인 냄새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관식은 그만 환소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교장 선생님! 대김관식의 대실책입니다. 앞으로는 은단 같은 것은 결단코 먹지 않겠습니다”
교장선생의 그같은 은근한 사랑과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 직장을 김관식은 머잖아 그만두게 된다. 스승으로서는 너무나 파천황적인 그의 행적에 동료교사들과 학부형들이 압력을 가한 것이다.
학교를 그만둔 뒤 그는 상한 자존심을 보강이라도 하려는 듯 4.19 직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민주당 신파의 우두머리인 장면과 용산구에서 대결하게 되고, 그 결과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인 과수원을 몽땅 날려버리게 도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된다. 그에게는 술과 시만이 남게 된다.
그 무렵 김관식은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지게꾼의 지게를 타고 “이놈들아 ! 이놈들아 ” 소리치면서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날도 지게 위에서 “이놈들아 ! 이놈들아” 외치면서 가고 있는데. 문득 꿈결처럼 무한한 어둠속에 펼쳐진 대지가 보였다. 그가 살고 있는 홍은동 일대의 국유지 였다. 그는 그곳에 집을 지을 꿈을 꾸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었다. 열 채, 스무 채, 백 채, 이백 체...... 집을 지어서 김관식 마을을 건설할 생각이었다. 다음날도 그는 토수와 목수를 불렀다. 경찰관이 달려와 부수면 다시 짓고 부스면 다시짖고 하여, 드디어 그는 지친 경찰관들을 무 찌르고 무허가 판잣집이기는 하지만 십여채의 그의 마을을 건설하였다. 이규헌*황명걸*백시걸 등이 그 주의에 모여들었다.
장독대도 만들고 담장도 세웠다. 바깥 사람들 눈에는 보잘 것 없고 누추한 것이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이 김관식의 비상식적인 행위속에서 홍은동 언덕배기에 세워진 것이다. 김관식의 나라, 시인의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김관식과 더불어 많은 일화를 남긴 시인으로는 천상병이 있다. 천상병은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재학시에 시*평론으로 ‘문예’잡지에 추전을 완료, 문단의 촉망을 한몸에 받았으나 천성적이라 할 그의 기행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하더니, 1960 년대에 와서는 누구에게나 손을 벌리고 술값을 요구했다. 그는 문인들에게 요즘 화폐가치로 치면 천 원, 이천 원을 받아가지고는 술집으로 달려가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그 횟수가 잦아지고 천의무봉하게 손 내미는 행위가 번번해졌으므로 그는 그 방면으로 문단의 유명한 존재가 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상대 동기동창에게 손을 벌렸던 것이 화근이 되어서 국사범(간첩단 사건 연루)으로까지 출세하였다. 그때 그 간첩단 사건은 주범보다도 천상병이 훨씬 더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간첩으로 포섭되어 공작금으로 받은 것은 문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받은 액수와 같은 소액이 모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병 하면 무어니 무어니 해도 시나리오 작가 S 씨 집에 기숙 하면서 그의 딸에게 술을 따라달라던 사건이었다. 오갈 데 없는 천의 신세가 딱하여 보스 기질이 있는 S 는 천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매일 매일 술값으로 얼마씩 주었다. 천은 그돈으로 술을 사다가 마셨는데 혼자마시자니 술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S 의 딸을 불러, 술 한 잔씩 따라주면 얼마를 주기로 하고 술을 따르게 했다. 그런 일이 여러날 계속되었고 천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나날을 해롱해롱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S 는 딸이 주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것이 천의 짓임을 알아내었고, 그길로 천상병은 길거리로 내 쫒겨났다. 천은 다시 길거리를 헤매게 되었고, 마침내 이 천의무봉한 시인을 맡아서 돌보아주겠다는 천사가 나타나 그는 결혼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천사와 더불어, 그리고 그보다 20 여 세가 많은 장모님으로부터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다가 어쩔려고 그러느냐는 걱정을 받으면서 해롱해롱 산다. 시인 나름의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같은 삻은 외화 되어 있는냐 숨겨져 있는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모든 창작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요소이다. 창조한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을 넘어서는 요소를 가지징 않으면 안 된다. 비보통의 요소가 없이는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갈 수 없기 떄문이다. 그리하여 이 보통과 비보통의 사이에서 견디어낼 수 없는 상처를 예술가들이 받게 될 때“이놈들아 이놈들아 ” 하고 김관식 같은 소리를 예술가들은 내면으로 지르는 것이고 천상병같이 손을 내밀며 해롱해롱 웃는 것이다. 박인환이 그 명민하고 잘생긴 얼굴로 시대의 배우 노릇을 하려든다든가 그런 포즈가 못마땅해서 김수영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비판하는 것도 실제로는 비보통스런 삶을 사는 예술가의 아픈 몸짓이다.
이같은 삶은 外貨 되어 있느냐 숨겨져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모든 창작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요소이다.
창조한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을 넘어서는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비보통의 요소가 없이는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보통과 비보통의 사이에서 견디어낼 수 없는 상처를 예술가들이 받게 될 때
(이놈들아 이놈들아) 하고김관식 같은 소리를 예술가들은 안으로 지르는 것이고 천상병 같이 손을 내밀며 해롱해롱 웃는 것이다. 박인환이 그 명민하고 잘생긴 얼굴로 시대의 배우 노릇을 하려든다든가 그런 포즈가 못마땅해서 김수영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비판하는 것도 실체로는 비보통스런 삶을 사는 예술가들의 아픈 몸짓이다.
그러나 그런 몸짓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무해(無害)한 ‘남의 이야기’가 즐거워서 그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 이야기가 그들 시대의 자유의 공기였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우리들의 공기가 되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출처
내가 좋아하는 하늬누나 홈페이지에서 퍼왔슴돠.(시인 정한희)
글쓴이: 백성민
문인들의 뒷 이야기 (김관식과 천상병)
에피소드는 즐겁다 _ 김관식과 천상병
문인들의 에피소드는 즐겁다. 그리고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은 더욱더 즐겁다. 그 에피소드나 기행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영화관의 영사막처럼 그것이 우리 삶의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어서 즐겁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한번 저질러 보고 싶으나, 사회적 금기에 매여 실행하지 못하는 일들이어서 즐겁다. 그 면에서 그들의 기행이나 에피소드는 우리를 얽매고 있는 사회적 금기를 일시적으로 나마 벗겨내주고 있다는 면에서 정신적인 해방감을 줄 뿐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그 변화를 추구하고 혹은 저지하는 고집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억압사회에서의 자유 같은 것으로 표징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인의 기행이 없는 사회는 마음의 먼지가 잔뜩 낀 사회, 금기에 매인 사회, 자유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정신이 죽은 사회, 위축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사상가가 대낮에 하늘이 어둡다고 불을 밝혀들고 거리를 걸었던 것이나, 비오는 날 문인들이 벌거벗은 채로 소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오는 일들은, 그들의 시대가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에 매여있는가를 보여주는 시대의 그림이 된다. 1960년대 초입에 김수영이 요즘 젊은 시인들이 술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던 것도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자유의 문제와 이어진다. 술을 많이 마시고 주정을 한다는 것은 술의 힘을 빌어서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금기를 그만큼 무너뜨리고 자유를 확보하고 누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김관식 --- 그는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고 관습을 두들겨 부쉈던 시인이다. 193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최남선의 수제자가 되고, 서정주의 동서가 되었던 그는, 어려서는 천재로서 이웃에 이름을 떨쳤고 성년이 되어서는 시와 술과 병고와 기이한 행적으로 천재 못지않은 화제를 뿌렸다. 그가 가는 곳엔 화제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느릿느릿한 강경 사투리로 “ 이놈들아 이놈들아” 하고 소리치면서, 거리를 휘젓고 다니다가, 다방에 들어가 문단 선배들의 얼굴을 대할라치면, 그가 노대가인 박종화든 김동리* 황순원* 조연현이든 박군*김군*황군*조군하고 불렀다. “동리군, 자네 내 술값 좀 대게.” “조군, 자네는 왜 그리 비비꼬였나.”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돌려 못들은 체하든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떠버렸다. 어느 날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축사를 하고 있는 출판기념회에 술이 억수로 취하여 나타났다. 그는 곧장 장기영 곁으로 나아가 “에또 자네는 그만 하고........ 내가 말을 좀 해야겠네” 하고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의 동서이자 존경하는 선배인 서정주가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인들의 모임에서도 김관식은 “의장!”하고 일어서 서 휭설수설 회의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서정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동서 하나 둔 것이 이래서, 여러분 미안하오”하고 민망해 했다. 이같은 김관식의 삶의 행태는 문인사회에서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육당 최남선의 주선으로 육당주의자인 김도태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 상고에 국어선생으로 들어간 그는 자기 의자 뒤에 ‘如 不 手’ 라고 ‘법화경’의 한 구절을 하얀 페인트로 써놓고는 교장도 교감도 선생들도 보이지 않는 듯 유아독존 격으로 지냈다. 그는 일단의 학생들을 이끌고 술을 마시고 개를 잡아먹고 사창가를 들락거렸다. 술 냄새가 진동한 김관식을 어느 날 아침, 김도태 고쟝이 불렀다. “김 선생?” “넷네에에” “나는 술 냄새를 좋아합니다.” “...... .” “나는 은단 냄새도 좋아합니다.” “...... .” “그러나 술 냄새와 은단 냄새가 섞인 냄새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관식은 그만 환소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교장 선생님! 대김관식의 대실책입니다. 앞으로는 은단 같은 것은 결단코 먹지 않겠습니다” 교장선생의 그같은 은근한 사랑과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 직장을 김관식은 머잖아 그만두게 된다. 스승으로서는 너무나 파천황적인 그의 행적에 동료교사들과 학부형들이 압력을 가한 것이다. 학교를 그만둔 뒤 그는 상한 자존심을 보강이라도 하려는 듯 4.19 직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민주당 신파의 우두머리인 장면과 용산구에서 대결하게 되고, 그 결과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인 과수원을 몽땅 날려버리게 도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된다. 그에게는 술과 시만이 남게 된다. 그 무렵 김관식은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지게꾼의 지게를 타고 “이놈들아 ! 이놈들아 ” 소리치면서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날도 지게 위에서 “이놈들아 ! 이놈들아” 외치면서 가고 있는데. 문득 꿈결처럼 무한한 어둠속에 펼쳐진 대지가 보였다. 그가 살고 있는 홍은동 일대의 국유지 였다. 그는 그곳에 집을 지을 꿈을 꾸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었다. 열 채, 스무 채, 백 채, 이백 체...... 집을 지어서 김관식 마을을 건설할 생각이었다. 다음날도 그는 토수와 목수를 불렀다. 경찰관이 달려와 부수면 다시 짓고 부스면 다시짖고 하여, 드디어 그는 지친 경찰관들을 무 찌르고 무허가 판잣집이기는 하지만 십여채의 그의 마을을 건설하였다. 이규헌*황명걸*백시걸 등이 그 주의에 모여들었다. 장독대도 만들고 담장도 세웠다. 바깥 사람들 눈에는 보잘 것 없고 누추한 것이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마을이 김관식의 비상식적인 행위속에서 홍은동 언덕배기에 세워진 것이다. 김관식의 나라, 시인의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김관식과 더불어 많은 일화를 남긴 시인으로는 천상병이 있다. 천상병은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재학시에 시*평론으로 ‘문예’잡지에 추전을 완료, 문단의 촉망을 한몸에 받았으나 천성적이라 할 그의 기행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하더니, 1960 년대에 와서는 누구에게나 손을 벌리고 술값을 요구했다. 그는 문인들에게 요즘 화폐가치로 치면 천 원, 이천 원을 받아가지고는 술집으로 달려가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그 횟수가 잦아지고 천의무봉하게 손 내미는 행위가 번번해졌으므로 그는 그 방면으로 문단의 유명한 존재가 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상대 동기동창에게 손을 벌렸던 것이 화근이 되어서 국사범(간첩단 사건 연루)으로까지 출세하였다. 그때 그 간첩단 사건은 주범보다도 천상병이 훨씬 더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간첩으로 포섭되어 공작금으로 받은 것은 문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받은 액수와 같은 소액이 모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병 하면 무어니 무어니 해도 시나리오 작가 S 씨 집에 기숙 하면서 그의 딸에게 술을 따라달라던 사건이었다. 오갈 데 없는 천의 신세가 딱하여 보스 기질이 있는 S 는 천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매일 매일 술값으로 얼마씩 주었다. 천은 그돈으로 술을 사다가 마셨는데 혼자마시자니 술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S 의 딸을 불러, 술 한 잔씩 따라주면 얼마를 주기로 하고 술을 따르게 했다. 그런 일이 여러날 계속되었고 천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나날을 해롱해롱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S 는 딸이 주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것이 천의 짓임을 알아내었고, 그길로 천상병은 길거리로 내 쫒겨났다. 천은 다시 길거리를 헤매게 되었고, 마침내 이 천의무봉한 시인을 맡아서 돌보아주겠다는 천사가 나타나 그는 결혼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천사와 더불어, 그리고 그보다 20 여 세가 많은 장모님으로부터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다가 어쩔려고 그러느냐는 걱정을 받으면서 해롱해롱 산다. 시인 나름의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같은 삻은 외화 되어 있는냐 숨겨져 있는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모든 창작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요소이다. 창조한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을 넘어서는 요소를 가지징 않으면 안 된다. 비보통의 요소가 없이는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갈 수 없기 떄문이다. 그리하여 이 보통과 비보통의 사이에서 견디어낼 수 없는 상처를 예술가들이 받게 될 때“이놈들아 이놈들아 ” 하고 김관식 같은 소리를 예술가들은 내면으로 지르는 것이고 천상병같이 손을 내밀며 해롱해롱 웃는 것이다. 박인환이 그 명민하고 잘생긴 얼굴로 시대의 배우 노릇을 하려든다든가 그런 포즈가 못마땅해서 김수영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비판하는 것도 실제로는 비보통스런 삶을 사는 예술가의 아픈 몸짓이다. 이같은 삶은 外貨 되어 있느냐 숨겨져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모든 창작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요소이다. 창조한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을 넘어서는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비보통의 요소가 없이는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보통과 비보통의 사이에서 견디어낼 수 없는 상처를 예술가들이 받게 될 때 (이놈들아 이놈들아) 하고김관식 같은 소리를 예술가들은 안으로 지르는 것이고 천상병 같이 손을 내밀며 해롱해롱 웃는 것이다. 박인환이 그 명민하고 잘생긴 얼굴로 시대의 배우 노릇을 하려든다든가 그런 포즈가 못마땅해서 김수영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비판하는 것도 실체로는 비보통스런 삶을 사는 예술가들의 아픈 몸짓이다. 그러나 그런 몸짓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무해(無害)한 ‘남의 이야기’가 즐거워서 그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 이야기가 그들 시대의 자유의 공기였으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우리들의 공기가 되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출처 내가 좋아하는 하늬누나 홈페이지에서 퍼왔슴돠.(시인 정한희) 글쓴이: 백성민 문인들의 뒷 이야기 (김관식과 천상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