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안주지국의 허형 기자가 강우규 의사와 함께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폭살 시도. 실패.
1919년 9월 2일
9월 2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기 위해 남대문역에 도착하여 마차에 오를 무렵 강우규 의사는 당시 6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사를 단행하였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을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던졌으나 사이토는 폭탄 파편에 의해 혁대와 군복을 조금 태웠을 뿐이었다. 강우규 의사 의거로 일본경찰·수행원·신문기자 등 37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강우규 의사는 이듬해인 1920년 4월 20일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해 11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24. 5. 19
1924년 5월 19일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 강변에서 참의부(參議府) 독립군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3대 조선 총독으로 임명된 사이토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국내 치안을 강화했다. 치안 유지에 자신이 붙은 사이토는 마루야마 쓰루기치[丸山鶴吉] 경무국장을 거느리고 조선과 만주 국경을 시찰하러 나섰다. 이 정보를 입수한 참의부 독립군은 사이토를 저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 이의준은 10여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마시탄 강변의 만주 쪽 절벽 바위틈에 매복한 채 사이토 일행을 기다렸다. 60여 명의 경찰이 동승한 총독 순시선이 다가오자 대원들은 절벽 위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순시선이 전속력으로 사정권을 벗어나는 바람에 결국 사이토를 사살하지는 못했다.
1926년 4월
남자현, 박청산, 이청수 암살 계획을 짬.
송학선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암살을 계획, 28일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경성부회 평의원(京城府會評議員) 다카야마[高山孝行]·사토[佐藤虎次郞]·이케다[池田長次郞] 등이 탄 차를 총독이 탄 차로 오인하고 뛰어올라 이들을 살해하고 달아났다. 추격해 오는 한국인 순사 오환필(吳煥弼)을 찌른 후 휘문학교(徽文學校) 교문 앞에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조선 초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
평남 안주지국의 허형 기자가 강우규 의사와 함께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폭살 시도. 실패.
1919년 9월 2일
9월 2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기 위해 남대문역에 도착하여 마차에 오를 무렵 강우규 의사는 당시 6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사를 단행하였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을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던졌으나 사이토는 폭탄 파편에 의해 혁대와 군복을 조금 태웠을 뿐이었다. 강우규 의사 의거로 일본경찰·수행원·신문기자 등 37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강우규 의사는 이듬해인 1920년 4월 20일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해 11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24. 5. 19
1924년 5월 19일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 강변에서 참의부(參議府) 독립군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3대 조선 총독으로 임명된 사이토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국내 치안을 강화했다. 치안 유지에 자신이 붙은 사이토는 마루야마 쓰루기치[丸山鶴吉] 경무국장을 거느리고 조선과 만주 국경을 시찰하러 나섰다. 이 정보를 입수한 참의부 독립군은 사이토를 저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 이의준은 10여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마시탄 강변의 만주 쪽 절벽 바위틈에 매복한 채 사이토 일행을 기다렸다. 60여 명의 경찰이 동승한 총독 순시선이 다가오자 대원들은 절벽 위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순시선이 전속력으로 사정권을 벗어나는 바람에 결국 사이토를 사살하지는 못했다.
1926년 4월
남자현, 박청산, 이청수 암살 계획을 짬.
송학선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암살을 계획, 28일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경성부회 평의원(京城府會評議員) 다카야마[高山孝行]·사토[佐藤虎次郞]·이케다[池田長次郞] 등이 탄 차를 총독이 탄 차로 오인하고 뛰어올라 이들을 살해하고 달아났다. 추격해 오는 한국인 순사 오환필(吳煥弼)을 찌른 후 휘문학교(徽文學校) 교문 앞에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이외 등등.
운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운도 36년 군국주의 장교들의 손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