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한 3학년 10명과 담임선생님 2분은 학교 체험학습으로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SCI를 통해 네팔이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미국, 캐나다, 몽골 등 점찍어둔 곳들은 많았지만 조건이 충족치 못했기 때문에 다른 대안으로 담임선생님이신 김원호 선생님께서 유라시아 대장정의 경험으로 러시아를 제안하셨다. 이 제안에 대부분 동의했지만 제안에 동의하지 않은 딱 한사람 정땅은 따로 다른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짜기로 했다.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같이 못 가게 된 것 만큼은 정말 아쉽다. 하여튼 우리는 6월 12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 연해주지역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떠나기로 했다.
6월 12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러시아로 가기위해 스쿨버스에 몸을 실고 속초로 향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감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4시간쯤 차를 타고 가자 속초에 도착했고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보다 쉽게 수속절차를 밟고 배에 탑승했다. 탑승하자마자 짐을 풀고 이곳저곳 친구들과 싸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뭐가 그리 신기하고 즐거운지 갑판위에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 첫날인데, 아직 러시아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설레 이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6월 13일
아침에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단지동맹유지비였다. 유지비에 써있는 글을 또렷한 목소리로 읽었다. 묵념도 했고 설명도 들었다. 단지동맹유지비는 우리 아빠가 존경하시는 안중근 의사와도 연관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12명의 독립군은 자국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왼쪽 무명지를 잘랐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왼쪽 무명지를 잘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잘랐는지에 대해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를 제외한 11명의 독립군조차 함께 했다는 것을 몰랐다. 자신의 이익도 아니고 자국 독립과 나아가서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무명지를 자르다니 정말 대단한 각오라고 생각했다. 존경스러웠다.
나즈돌로니에 역으로 이동했다. 이 곳은 스탈린에 의해 우리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중동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할 때 실려지고 출발했던 곳이다. 역의 대합실에 들어갔다. 마냥 이국적이고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에 신기하고 아늑하다고만 생각하고 이야기 했는데, 동북아평화연대에서 같이 왔던 언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이 작은 역에서 실어 보내졌다니 슬프다며 얘기해주었다. 듣고 보니 아늑하기 보다는 처량한 것 같았다. 알아야 보인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이야기 하나 보다. 부끄러웠다. 강제이주를 비롯해 우리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묵념 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종 목적지인 우정마을로 가기위해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넓은 초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지평선과 우거진 숲, 비포장도로, 자유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우정마을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었다. 밥을 맛있게 먹은 뒤에는 오리엔테이션도 가졌다. 러시아에 대해 거의 모르고 왔는데, 그에 반해 오늘 많은 것을 보고 알게 된 것 같다. 이제야 러시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 같다.
6월 14일
오전에 드넓은 곳에서 쑥을 따는 일을 했다. 한 사람당 두 봉지씩 꽉꽉 채워 쑥을 따자 드디어 이 쑥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정마을은 자연농업을 하는데, 이 쑥으로 천혜녹즙을 만든다고 한다. 쑥 녹즙은 천연퇴비로 쓰인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은 쑥과 흑설탕을 섞는데, 흑설탕이 없는 관계로 당밀을 써서 섞었다. 일이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오후에는 이상설 유허비에 갔다. 이상설이란 분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일제시대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연해주에 건너오셨고 국제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힘쓰셨다고 한다. 유언으로 자신은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니 후손들에게 제사를 받을 수는 없고 강에 유골을 뿌려 달라고 하셨단다. 우리가 온 이곳이 아마 유골이 뿌려진 강이라고 추측하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묵념을 하고 주변 청소를 했다. 남자애들 몇 명은 강에서 물을 떠다가 비를 깨끗이 닦았다. 억울하게도 이 주변에는 술병부터 시작해서 온갖 휴지 담배꽁초, 심지어 콘돔까지.. 마구 버려져있었다. 운전사인 러시아 아저씨도 통역하시는 분이 설명해주셨는지 우리와 함께 쓰레기를 주워주셨다. 그리고 그 모습에 우리는 더 열심히 쓰레기를 줍게 되었다.
청소가 끝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발해 외성과 내성을 갔다. 관심도 없고 나와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러시아에서 독립군들의 흔적과 고려인의 강제이주사, 그리고 발해의 흔적을 볼 수 있다니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발해의 흔적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었다.
우정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이번엔 평범해 보이는 공원에 들렸다. 이 공원 안에는 천년 이상 되었다는 거북이 모형의 돌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이 곳이 과거엔 발해와 청나라의 땅이었기 때문인지 이 돌에 대해 관심도 없고 방치해놓는 듯 했다. 심지어 어떤 러시아 중년여성은 담배꽁초를 거북이 콧구멍에 후벼대기도 했다. 공원에서 얼마 가지 않아 과거 독립군들이 살았다는 집과 최초의 망명정부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연해주는 이렇게 우리민족과 관계된 곳들이 많은데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니.. 쑥스럽다.
우정마을의 숙소 솔빈에 돌아와서는 오늘 우리를 안내해주신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 강제 이주 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강의를 계기로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었다. 강제이주가 얼마나 비통한 역사인지도 알 수 있었다.
6월 15일
비가 와서 원래해야 했던 일을 하지 못했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하우스에서 하는 일과 농업센터를 짓는데, 그 곳에서 방풍재를 밀어 넣는 일이었다.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며 즐겁게 일했다.
오후에는 원래 끄레모바 마을을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거주자등록증이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못 가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는 거주자등록증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서 대체 프로그램으로 고려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기로 했다. 너무 피곤했었는지 거의 틀자마자 잠들었지만 국적이나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대략적인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장민석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식생활과 자연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몸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우정마을의 건물 한면에 벽화를 그려달라는 청에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그릴 것인가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여러 의견과 다양한 방향이 나왔지만 김지영선생님의 발언을 토대로 방향을 조금씩 좁혀나갔다. 결국은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한민족 입니다’라는 메시지로 고려인을 포함해 조선족과 재일동포까지 합세해 그리기로 했다.
6월 16일
..... 오늘도 비가 왔다. 러시아의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어제 했던 아이디어회의는 실행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일을 했다. 오이농사에 쓰던 그물과 막대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막막해보였는데 여러명이 붙어서 하니 의외로 금방 끝장을 볼 수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난 김에 러시아 슈퍼마켓인 마가진을 갔다. 길이 질퍽질퍽해서 장화를 신었더니.. 괜히 신은 듯 했다. 쪽팔렸다. 러시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우리도 슬금슬금 눈치나 보고 김지영쌤은 계속 우릴보고 웃으신다. 첫 마가진 원정은 나름대로 무사히 성공했다.
오후에는 우스리스크 문화센터에 한글수업을 하는데 참관하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교실엔 고려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러시아인도 있었다.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참관한 이 교실은 초급반이라고 했다. 그래도 모두들 한국말을 꾀나 잘하시는 것 같았다.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질문도 이것저것 주고받았다. 장래희망에 대한 것과 ‘한국어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한국어를 왜 배우는가’ 질문을 했을 때, ‘재미있다’, ‘한국어는 내 모국어이기 때문에’, ‘모국어를 잘 알지 못해서 잘 알고 싶기 때문에’등의 대답을 해주셨다. 한국어를 모국어여서 배운다는 말이 무척 인상깊었다. 수업중에는 새들이와 규연이의 상큼한 춤도 곁들여 곰세마리 노래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들 재미있어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건물안에 있는 작은 전시관 관람을 했다. 독립군들의 사진이 벽면 한가득을 메우고 있었다. 아직 잘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앞으로 지원이 되고 수리가 되는 대로 이곳도 아주 그럴싸한 전시관이 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그때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관람을 끝나고 건물 앞으로 나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분들과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짧은 시간의 한국어 수업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6월 17일
블라디보스톡 관광을 하는 날이다. 가장 먼저 블라디보스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전망대를 찾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너무 추운 나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머리칼이 정신없이 날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블라디보스톡의 항구는 정말 멋있었다.
이차대전 전사자 기념탑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영원의 불’이 어떤 의미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자리한 잠수함 박물관에 갔다. 잠수함 박물관 말 그대로 잠수함 안에 박물관이 있었다. 러시아말을 모르기 때문에 전시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잠수함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광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다가 ‘유라시아’라는 러시아식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나는 맛있게 먹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함에 고전했다. 우리나라의 구수한 된장찌개와 해장국, 밥, 김치 등이 생각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식사 후 신한초 기념비에 갔다. 새한이가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설명도 듣고 짧게 묵념도 했다. 마음이 들떠서 촐랑거리다가도 이런 곳(단지동맹유지비, 이상설유허비)에만 오면 차분해지고 우리민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장소를 또 이동해서 이번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톡 역을 찾았다. 지금 그냥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이 곳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도 갈 수 있다니 그리고 우리가 배를 타고 돌아온 이 곳을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올 수 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남양주시에 있는 우리집에서 강화도에 있는 학교까지 멀다고만 생각하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다.
쇼핑을 하고 아르세니예프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는 잡다한 볼거리와 전시물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2~3개의 박물관을 한데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동물들, 석기시대 사람들, 전쟁, 미술작품 전시, 정체불명의 피아노들 그 밖에도 꾀나 많았다.
관람을 끝내고 오늘 우리가 묵을 에콰도르 호텔에 갔다. 호텔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평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누비면서 노출이 심하고 몸매가 쭉 빠진 러시아 여자들만 보고 다녔는데, 평양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북한 언니들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식사 후엔 언니들과 기념사진도 찍었을 정도였다. 누가 뭐래도 한국여자들이 가장 이쁜 것 같다.(물론, 나라는 사람의 예외도 존재한다.)
6월 18일
아침 일찍 어제 갔던 블라디보스톡역으로 갔다.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이름 하여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횡단로인 이 곳을 짧은 구간 가는 다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짧은 구간 가는 것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벤치의자였다. 짧다고 해봤자 2시간 가는 길이었지만 기차 안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보따리 상들이 물건을 팔러 다녔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는 길 내내 친구들 대부분이 잠들기도 했다. 또 기차에서 처음만난 러시아 남자와 사귀게 되었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원호쌤과 그 남자는 술이라는 묘한 것에 힘입어 금방 친해졌다. 다른 친구들도 어설프지만 러시아 회화 책을 꺼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색하고 귀찮으셨을 텐데, 우리의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마음을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목적지인 우스리스크까지 가는 길에 나즈돌로니에역을 스쳐지나갔다. 저번에 왔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옛날 우리 고려인들이 이 역에서 강제로 실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도착해서 화장실에 갔다. 5루블을 내고 들어가는 유료화장실이었는데, 친구들 모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러시아 화장실이 그리 좋지 못하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이젠 버스를 타고 한카호수에 가기로 했다. 가던 길에 러시아식당에 갔는데, 여종업원이 무척 이뻤다. 그래서인지 김원호 선생님께서는 보드카를 시켜놓고 몇 명 친구들이 따라드리겠다고 하자 거부하고 여종업원 마리나에게 따라달라고 할 것이라며 고집을 부리셨다. 웃음바다가 넘실댔다.
한카호수에 도착했다. 한카호수는 무려 충청북도크기만한 호수이다. 좁은 땅에 살던 나와 친구들은 마냥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호수가 바다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모래사장도 있고 바람이 불어 물 흐르는 것이 파도치는 것과 비슷하니 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친구들이 물맛을 보았다. 물에서 짠맛은 안난다고 하니 호수는 호수인가보다. 아무쪼록 해수욕을 즐기고 다시 우정마을로 돌아갔다.
6월 19일
두 조로 나누어 일을 시작했다. 한 조는 장승 다듬는 일을 했고 다른 한조인 우리 조는 밭에서 작물 외에 풀을 뽑는 일을 했다. 일을 하던 중에는 김원호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시기도 했다. 일이 반쯤 진행되자 바꿔서 일을 했다.
오늘은 드디어 끄레모바 마을을 방문하는 날이다. 끄레모바 마을은 고려인 가정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새한이와 나는 홈스테이도 하기로 했다. 오전에 나눈 두조가 각자 다른 두 가정으로 나누어 방문했다. 우리조가 간 가정은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 할머니와 부부, 삼남매 이렇게 6명이 살고 있었다. 일을 도우러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대접받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었다.) 삼남매중 둘째인 블라딕은 우리보다 한살 어린데,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집안도 둘러보고 대화도 조금 나눈 후에는 밭으로 나가서 오늘 오전에 했던 일처럼 풀을 뽑는 일을 했다. 오전과 다르게 햇볕이 뜨거워 힘들었다. 친구들과 김원호 선생님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던 나와 새한이는 남아서 일을 더 했다.
일 하던 중에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에 할머니의 형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 새한이와 나는 모르는 척 하려 더 열심히 풀을 뽑았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가족들은 과거 강제이주로 중동에 살다가 소련이 러시아가 되며 중동 여러 국가들이 독립하자 언어와 일자리 등의 어려움으로 다시 연해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말씀대로 할머니의 동생은 저 먼 카자흐스탄지역에 살고 있나보다.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로 샤슬릭을 대접받았다. 샤슬릭은 기름지긴 하지만 무척 맛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마가진에 갔다. 옷을 얇게 입은 우리를 위해 윈드자켓과 양말 등을 챙겨주셨다. 가는 길에 블라딕의 학교도 보고 막내 사샤와 첫째 오빠의 친구들도 만났다. 마가진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 마가진 까지 다녀온 여정은 무려 한시간이나 되었다.
돌아와서 티비도 보고 카드게임도 하다가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더블침대를 내주셔서 죄송스러울 정도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홈스테이를 하며 느꼈던 것은 고려인들이 힘든 환경 속에서도 아주 잘 헤쳐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 집에 들렸을 적에는 이렇게 안 좋은 곳에서 사는 구나라는 생각이 역력했지만 계속 지내다 보니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의사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한국말을 아는 어른들은 한국말을 종종 쓰시고 러시아말도 쓰고 블라딕은 가끔 영어도 쓰고 우리는 우리대로 한국말과 영어도하고.. 아마 동시에 쓰인 언어가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 우즈베키스탄어 (아마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 오셨으니 우즈베키스탄어도 쓰셨을 것이라고 추정) 외에 눈짓과 손짓까지.. 거의 언어로 소통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6월 20일
아침 아저씨께서 직접 차로 우정마을까지 데려다 주셨다. 도우러 가고 단지 체험하러 간 것이었는데, 극진히 대접을 받고 돌아와서 죄송스럽고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인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오자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하우스에서 기른 토마토모종을 뽑는 일을 했다.
오후에는 아리랑가무단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아리랑가무단은 고려인들로 이루어져있지만 안무는 북한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고한다. 저번에 한글 수업 때 갔던 우스리스크 문화센터 건물안에 가무단의 연습실이 있었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가무단의 연습을 구경했다. 대중문화에만 익숙해져있어서 촌스럽고 재미없을거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정말 멋있고 재미있었다. 가무단의 연습을 보고난 후에는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탈춤이야기가 나와서 지웅이가 대표로 탈춤을 추었다. 그에 이어서 규연이도 비보이춤을 추었고 또 겸사겸사 지웅이가 랩공연도 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효상이형의 짧은 P.P강의를 들었다. 이곳 고려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자료나 우리가 도움을 받고 있는 동북아 평화연대의 사업설명도 있었다.
새한이와 나는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기획해오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자녀 또는 친척인데, 우리또래에 한국인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계기로 러시아에 와서 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고려인과 고련인의 생활 러시아에 대한 친구들의 인식 등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새한이가 질문하고 내가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루어져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던 내가 키득키득대는 바람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은 대게 다 우리의 생각과 비슷했고 한국 청소년들이 러시아나 고려인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 인터뷰를 계기로 친해져서 인터뷰가 끝나자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였다.
6월 21일
중국재래시장 관광을 했다. 조선족도 간혹 만나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나기에 새들이가 큰 맘 먹고 100루블짜리 우산을 50루블로 깎아서 샀단다. 하지만 우산을 산지 1분여쯤이 지나자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점심 먹으려 시장 통에 모여 샤슬릭을 먹고 마켓으로 갔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열심히 다녔는데, 잠깐 버스를 탄 사이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이다. 오후가 되자 반은 다시 쇼핑을 하러 나가고 남은 몇 명은 우스리스크 문화센터에 남아서 휴식을 취했는데, 일정이 끝나고 우정마을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새들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 아까 그 버스 다시 가면 안되요?”라는 것이었다. 다음이 이야기 안해도 될 것 같다.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퍼졌다.
나는 오후에 문화센터에 남아 휴식을 취해서 잘 모르겠지만 다시 쇼핑을 나간 친구들은 볼거리도 많고 무척 재밌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버스에서 차장이 있었는데, 난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나라의 80년대가 생각났다.
6월 22일
모두들 지쳐버리고 일지도 밀려버려서 오전에 있는 기증식에만 참가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강원도에서 우정마을에 컴퓨터를 기증해주셨는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해주지역과 강제이주,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오후에는 끄레모바마을 이집 저집을 둘러보고 우리가 분양받은 희망농장도 가보았다. 인상깊었던 것은 저번 홈스테이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밝고 희망차다는 것이었다. 생김새는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지만 사는 곳은 러시아이다보니 러시아인인 것 같기는 한데.. 외국인 같지 않고 편안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모여 자체평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을 돌이켜보고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한명씩 돌아가며 느낀점을 이야기 했다. 대체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던 러시아와 강제이주사, 고려인에 대해 잘 알게되어서 좋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전 조사나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필드워크(자신의 꿈과 관련해 각기 다른 활동을 함)에 중점을 많이 두고 왔는데, 현지에 와보니 언어나 장비, 시설 등 여건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생각보다 잘 못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는 필드워크를 생각하며 왔는데, 막상 와보니 프로그램은 봉사활동위주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사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에 있으면서 여러 공감대를 이루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화장실시설, 러시아의 아름다운 여자들, 지평선 등)
자체평가가 끝난 후에는 김현동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궁금했던 것도 질문하고 이러저러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고 기억에 많이 남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다국가민족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던 것과 우리나라가 나라가 빼앗긴 아픈 역사로 민족들이 대표적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연해주 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졌지만 이 아픈 역사가 현재에는 유리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우정마을로 봉사활동을 오는 것은 처음이라고 얘기하셨다. 살포시 우리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러시아연해주 지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러시아연해주 지역은 독립군, 발해, 고려인(강제이주)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심지어는 러시아어 공부를 열심히해서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일하는 이곳 분들처럼 러시아를 무대삼아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6월 23일
내일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날씨도 좋은 김에 수포로 돌아갔던 벽화그리기를 오늘 하기로 했다. 우선 여자아이들이 머리를 모아 30분 정도 머리를 짜자 대략적인 스케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 초등학생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 그리긴 했지만 크레파스를 잡고 벽면에 밑그림을 그렸다. 작년에 망쳤던(?) 전산실을 생각하며 모두 어려워하고 막막하게만 생각했는데,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남자애들도 나와 조금씩 페인트칠하기 시작하니 점점 그럴싸해졌다. 처음엔 남자애들과 서로 신경질 적이었지만 조금씩 회색벽이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칠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팀웍이 살아났다. 노란색 벽에 조선족, 고려인, 통일한국인, 재일동포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한민족 입니다’라고 아영이의 이쁜 글씨로 새겨 넣었다. 파란색 붓으로 한반도와 일본 땅을 그렸는데, 일본 땅이 훨씬 작고 한반도가 훨씬 큰 것이 감상포인트이다.(스스로 우리가 평가하기에도 제국주의적이라는 평이다.) 게다가 아주 조그맣게 독도와 울릉도도 그려져있다. 벽화가 생각보다 잘 그려져서 아이들 모두 즐거워했다.
오후에는 새한이 아이디어로 준비했던 고려인 친구들과 민속놀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또래 아이들은 지금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고 어린 아이들과 연날리기도 하고 제기차기도하고 윷놀이와 공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재미있게 놀았다.
저녁엔 샤슬릭파티를 했다. 기름져서 잘 못 먹는 여자아이들도 있었지만 얼핏들은 이야기로는 규연이와 지웅이는 8꼬치쯤 먹었다고 한다.
6월 24일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다시 자루비노 항으로 돌아간다. 버스안에서 그간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가 되어 지나갔다. 자루비노 항에 도착해서도 네 다섯 시간쯤 기다려서 배에 올랐다. 처음 속초항에서 자루비노항으로 올 때 이곳 저곳 싸돌아 다녔던 것과는 다르게 얌전히 일지를 쓰며 이번 여행을 정리했다.
6월 25일
속초항에 도착했다. 자루비노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자루비노항은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반해 속초항에는 저 멀리 아파트부터 횟집, 모텔, 여러 상가들이 보인다. 개발이 덜 되서 비포장도로와 푸세식 화장실, 작은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는 러시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장실이 푸세식인 것은 오랜 습관 때문인지 불편해서 불평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러시아의 많은 지역도 아니고 연해주라는 약간 한정된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지만 러시아의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다. 더불어 발해, 독립군, 고려인, 강제이주사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고려인과 강제이주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설프게나마 설명을 못하겠지만 많이 알고 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고려인과 강제이주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리학교 슬비의 연해주 여행기(마리학교에서)
러시아여행기
나를 포함한 3학년 10명과 담임선생님 2분은 학교 체험학습으로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SCI를 통해 네팔이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미국, 캐나다, 몽골 등 점찍어둔 곳들은 많았지만 조건이 충족치 못했기 때문에 다른 대안으로 담임선생님이신 김원호 선생님께서 유라시아 대장정의 경험으로 러시아를 제안하셨다. 이 제안에 대부분 동의했지만 제안에 동의하지 않은 딱 한사람 정땅은 따로 다른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짜기로 했다.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같이 못 가게 된 것 만큼은 정말 아쉽다. 하여튼 우리는 6월 12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 연해주지역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떠나기로 했다.
6월 12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러시아로 가기위해 스쿨버스에 몸을 실고 속초로 향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감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4시간쯤 차를 타고 가자 속초에 도착했고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보다 쉽게 수속절차를 밟고 배에 탑승했다. 탑승하자마자 짐을 풀고 이곳저곳 친구들과 싸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뭐가 그리 신기하고 즐거운지 갑판위에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 첫날인데, 아직 러시아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설레 이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6월 13일
아침에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단지동맹유지비였다. 유지비에 써있는 글을 또렷한 목소리로 읽었다. 묵념도 했고 설명도 들었다. 단지동맹유지비는 우리 아빠가 존경하시는 안중근 의사와도 연관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12명의 독립군은 자국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왼쪽 무명지를 잘랐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왼쪽 무명지를 잘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잘랐는지에 대해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를 제외한 11명의 독립군조차 함께 했다는 것을 몰랐다. 자신의 이익도 아니고 자국 독립과 나아가서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무명지를 자르다니 정말 대단한 각오라고 생각했다. 존경스러웠다.
나즈돌로니에 역으로 이동했다. 이 곳은 스탈린에 의해 우리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중동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할 때 실려지고 출발했던 곳이다. 역의 대합실에 들어갔다. 마냥 이국적이고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에 신기하고 아늑하다고만 생각하고 이야기 했는데, 동북아평화연대에서 같이 왔던 언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이 작은 역에서 실어 보내졌다니 슬프다며 얘기해주었다. 듣고 보니 아늑하기 보다는 처량한 것 같았다. 알아야 보인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이야기 하나 보다. 부끄러웠다. 강제이주를 비롯해 우리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묵념 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종 목적지인 우정마을로 가기위해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넓은 초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지평선과 우거진 숲, 비포장도로, 자유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우정마을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었다. 밥을 맛있게 먹은 뒤에는 오리엔테이션도 가졌다. 러시아에 대해 거의 모르고 왔는데, 그에 반해 오늘 많은 것을 보고 알게 된 것 같다. 이제야 러시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 같다.
6월 14일
오전에 드넓은 곳에서 쑥을 따는 일을 했다. 한 사람당 두 봉지씩 꽉꽉 채워 쑥을 따자 드디어 이 쑥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정마을은 자연농업을 하는데, 이 쑥으로 천혜녹즙을 만든다고 한다. 쑥 녹즙은 천연퇴비로 쓰인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은 쑥과 흑설탕을 섞는데, 흑설탕이 없는 관계로 당밀을 써서 섞었다. 일이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오후에는 이상설 유허비에 갔다. 이상설이란 분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일제시대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연해주에 건너오셨고 국제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힘쓰셨다고 한다. 유언으로 자신은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니 후손들에게 제사를 받을 수는 없고 강에 유골을 뿌려 달라고 하셨단다. 우리가 온 이곳이 아마 유골이 뿌려진 강이라고 추측하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묵념을 하고 주변 청소를 했다. 남자애들 몇 명은 강에서 물을 떠다가 비를 깨끗이 닦았다. 억울하게도 이 주변에는 술병부터 시작해서 온갖 휴지 담배꽁초, 심지어 콘돔까지.. 마구 버려져있었다. 운전사인 러시아 아저씨도 통역하시는 분이 설명해주셨는지 우리와 함께 쓰레기를 주워주셨다. 그리고 그 모습에 우리는 더 열심히 쓰레기를 줍게 되었다.
청소가 끝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발해 외성과 내성을 갔다. 관심도 없고 나와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러시아에서 독립군들의 흔적과 고려인의 강제이주사, 그리고 발해의 흔적을 볼 수 있다니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발해의 흔적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었다.
우정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이번엔 평범해 보이는 공원에 들렸다. 이 공원 안에는 천년 이상 되었다는 거북이 모형의 돌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이 곳이 과거엔 발해와 청나라의 땅이었기 때문인지 이 돌에 대해 관심도 없고 방치해놓는 듯 했다. 심지어 어떤 러시아 중년여성은 담배꽁초를 거북이 콧구멍에 후벼대기도 했다. 공원에서 얼마 가지 않아 과거 독립군들이 살았다는 집과 최초의 망명정부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연해주는 이렇게 우리민족과 관계된 곳들이 많은데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니.. 쑥스럽다.
우정마을의 숙소 솔빈에 돌아와서는 오늘 우리를 안내해주신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 강제 이주 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강의를 계기로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었다. 강제이주가 얼마나 비통한 역사인지도 알 수 있었다.
6월 15일
비가 와서 원래해야 했던 일을 하지 못했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하우스에서 하는 일과 농업센터를 짓는데, 그 곳에서 방풍재를 밀어 넣는 일이었다.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며 즐겁게 일했다.
오후에는 원래 끄레모바 마을을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거주자등록증이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못 가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는 거주자등록증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서 대체 프로그램으로 고려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기로 했다. 너무 피곤했었는지 거의 틀자마자 잠들었지만 국적이나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대략적인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장민석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식생활과 자연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몸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우정마을의 건물 한면에 벽화를 그려달라는 청에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그릴 것인가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여러 의견과 다양한 방향이 나왔지만 김지영선생님의 발언을 토대로 방향을 조금씩 좁혀나갔다. 결국은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한민족 입니다’라는 메시지로 고려인을 포함해 조선족과 재일동포까지 합세해 그리기로 했다.
6월 16일
..... 오늘도 비가 왔다. 러시아의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어제 했던 아이디어회의는 실행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일을 했다. 오이농사에 쓰던 그물과 막대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막막해보였는데 여러명이 붙어서 하니 의외로 금방 끝장을 볼 수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난 김에 러시아 슈퍼마켓인 마가진을 갔다. 길이 질퍽질퍽해서 장화를 신었더니.. 괜히 신은 듯 했다. 쪽팔렸다. 러시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우리도 슬금슬금 눈치나 보고 김지영쌤은 계속 우릴보고 웃으신다. 첫 마가진 원정은 나름대로 무사히 성공했다.
오후에는 우스리스크 문화센터에 한글수업을 하는데 참관하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교실엔 고려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러시아인도 있었다.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참관한 이 교실은 초급반이라고 했다. 그래도 모두들 한국말을 꾀나 잘하시는 것 같았다.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질문도 이것저것 주고받았다. 장래희망에 대한 것과 ‘한국어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한국어를 왜 배우는가’ 질문을 했을 때, ‘재미있다’, ‘한국어는 내 모국어이기 때문에’, ‘모국어를 잘 알지 못해서 잘 알고 싶기 때문에’등의 대답을 해주셨다. 한국어를 모국어여서 배운다는 말이 무척 인상깊었다. 수업중에는 새들이와 규연이의 상큼한 춤도 곁들여 곰세마리 노래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들 재미있어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건물안에 있는 작은 전시관 관람을 했다. 독립군들의 사진이 벽면 한가득을 메우고 있었다. 아직 잘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앞으로 지원이 되고 수리가 되는 대로 이곳도 아주 그럴싸한 전시관이 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그때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관람을 끝나고 건물 앞으로 나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분들과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짧은 시간의 한국어 수업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6월 17일
블라디보스톡 관광을 하는 날이다. 가장 먼저 블라디보스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전망대를 찾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너무 추운 나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머리칼이 정신없이 날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블라디보스톡의 항구는 정말 멋있었다.
이차대전 전사자 기념탑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영원의 불’이 어떤 의미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자리한 잠수함 박물관에 갔다. 잠수함 박물관 말 그대로 잠수함 안에 박물관이 있었다. 러시아말을 모르기 때문에 전시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잠수함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광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다가 ‘유라시아’라는 러시아식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나는 맛있게 먹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끼함에 고전했다. 우리나라의 구수한 된장찌개와 해장국, 밥, 김치 등이 생각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식사 후 신한초 기념비에 갔다. 새한이가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설명도 듣고 짧게 묵념도 했다. 마음이 들떠서 촐랑거리다가도 이런 곳(단지동맹유지비, 이상설유허비)에만 오면 차분해지고 우리민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장소를 또 이동해서 이번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톡 역을 찾았다. 지금 그냥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이 곳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도 갈 수 있다니 그리고 우리가 배를 타고 돌아온 이 곳을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올 수 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남양주시에 있는 우리집에서 강화도에 있는 학교까지 멀다고만 생각하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같다.
쇼핑을 하고 아르세니예프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는 잡다한 볼거리와 전시물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2~3개의 박물관을 한데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동물들, 석기시대 사람들, 전쟁, 미술작품 전시, 정체불명의 피아노들 그 밖에도 꾀나 많았다.
관람을 끝내고 오늘 우리가 묵을 에콰도르 호텔에 갔다. 호텔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평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누비면서 노출이 심하고 몸매가 쭉 빠진 러시아 여자들만 보고 다녔는데, 평양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북한 언니들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식사 후엔 언니들과 기념사진도 찍었을 정도였다. 누가 뭐래도 한국여자들이 가장 이쁜 것 같다.(물론, 나라는 사람의 예외도 존재한다.)
6월 18일
아침 일찍 어제 갔던 블라디보스톡역으로 갔다.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이름 하여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것은 아니고 시베리아횡단로인 이 곳을 짧은 구간 가는 다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짧은 구간 가는 것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벤치의자였다. 짧다고 해봤자 2시간 가는 길이었지만 기차 안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보따리 상들이 물건을 팔러 다녔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는 길 내내 친구들 대부분이 잠들기도 했다. 또 기차에서 처음만난 러시아 남자와 사귀게 되었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원호쌤과 그 남자는 술이라는 묘한 것에 힘입어 금방 친해졌다. 다른 친구들도 어설프지만 러시아 회화 책을 꺼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색하고 귀찮으셨을 텐데, 우리의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마음을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목적지인 우스리스크까지 가는 길에 나즈돌로니에역을 스쳐지나갔다. 저번에 왔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옛날 우리 고려인들이 이 역에서 강제로 실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도착해서 화장실에 갔다. 5루블을 내고 들어가는 유료화장실이었는데, 친구들 모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러시아 화장실이 그리 좋지 못하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이젠 버스를 타고 한카호수에 가기로 했다. 가던 길에 러시아식당에 갔는데, 여종업원이 무척 이뻤다. 그래서인지 김원호 선생님께서는 보드카를 시켜놓고 몇 명 친구들이 따라드리겠다고 하자 거부하고 여종업원 마리나에게 따라달라고 할 것이라며 고집을 부리셨다. 웃음바다가 넘실댔다.
한카호수에 도착했다. 한카호수는 무려 충청북도크기만한 호수이다. 좁은 땅에 살던 나와 친구들은 마냥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호수가 바다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모래사장도 있고 바람이 불어 물 흐르는 것이 파도치는 것과 비슷하니 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친구들이 물맛을 보았다. 물에서 짠맛은 안난다고 하니 호수는 호수인가보다. 아무쪼록 해수욕을 즐기고 다시 우정마을로 돌아갔다.
6월 19일
두 조로 나누어 일을 시작했다. 한 조는 장승 다듬는 일을 했고 다른 한조인 우리 조는 밭에서 작물 외에 풀을 뽑는 일을 했다. 일을 하던 중에는 김원호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시기도 했다. 일이 반쯤 진행되자 바꿔서 일을 했다.
오늘은 드디어 끄레모바 마을을 방문하는 날이다. 끄레모바 마을은 고려인 가정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새한이와 나는 홈스테이도 하기로 했다. 오전에 나눈 두조가 각자 다른 두 가정으로 나누어 방문했다. 우리조가 간 가정은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 할머니와 부부, 삼남매 이렇게 6명이 살고 있었다. 일을 도우러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대접받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었다.) 삼남매중 둘째인 블라딕은 우리보다 한살 어린데,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집안도 둘러보고 대화도 조금 나눈 후에는 밭으로 나가서 오늘 오전에 했던 일처럼 풀을 뽑는 일을 했다. 오전과 다르게 햇볕이 뜨거워 힘들었다. 친구들과 김원호 선생님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던 나와 새한이는 남아서 일을 더 했다.
일 하던 중에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에 할머니의 형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 새한이와 나는 모르는 척 하려 더 열심히 풀을 뽑았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가족들은 과거 강제이주로 중동에 살다가 소련이 러시아가 되며 중동 여러 국가들이 독립하자 언어와 일자리 등의 어려움으로 다시 연해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말씀대로 할머니의 동생은 저 먼 카자흐스탄지역에 살고 있나보다.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로 샤슬릭을 대접받았다. 샤슬릭은 기름지긴 하지만 무척 맛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마가진에 갔다. 옷을 얇게 입은 우리를 위해 윈드자켓과 양말 등을 챙겨주셨다. 가는 길에 블라딕의 학교도 보고 막내 사샤와 첫째 오빠의 친구들도 만났다. 마가진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 마가진 까지 다녀온 여정은 무려 한시간이나 되었다.
돌아와서 티비도 보고 카드게임도 하다가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더블침대를 내주셔서 죄송스러울 정도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홈스테이를 하며 느꼈던 것은 고려인들이 힘든 환경 속에서도 아주 잘 헤쳐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 집에 들렸을 적에는 이렇게 안 좋은 곳에서 사는 구나라는 생각이 역력했지만 계속 지내다 보니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의사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한국말을 아는 어른들은 한국말을 종종 쓰시고 러시아말도 쓰고 블라딕은 가끔 영어도 쓰고 우리는 우리대로 한국말과 영어도하고.. 아마 동시에 쓰인 언어가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 우즈베키스탄어 (아마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 오셨으니 우즈베키스탄어도 쓰셨을 것이라고 추정) 외에 눈짓과 손짓까지.. 거의 언어로 소통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6월 20일
아침 아저씨께서 직접 차로 우정마을까지 데려다 주셨다. 도우러 가고 단지 체험하러 간 것이었는데, 극진히 대접을 받고 돌아와서 죄송스럽고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인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오자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하우스에서 기른 토마토모종을 뽑는 일을 했다.
오후에는 아리랑가무단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아리랑가무단은 고려인들로 이루어져있지만 안무는 북한선생님이 가르쳐주었다고한다. 저번에 한글 수업 때 갔던 우스리스크 문화센터 건물안에 가무단의 연습실이 있었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가무단의 연습을 구경했다. 대중문화에만 익숙해져있어서 촌스럽고 재미없을거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정말 멋있고 재미있었다. 가무단의 연습을 보고난 후에는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탈춤이야기가 나와서 지웅이가 대표로 탈춤을 추었다. 그에 이어서 규연이도 비보이춤을 추었고 또 겸사겸사 지웅이가 랩공연도 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효상이형의 짧은 P.P강의를 들었다. 이곳 고려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자료나 우리가 도움을 받고 있는 동북아 평화연대의 사업설명도 있었다.
새한이와 나는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기획해오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자녀 또는 친척인데, 우리또래에 한국인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계기로 러시아에 와서 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고려인과 고련인의 생활 러시아에 대한 친구들의 인식 등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새한이가 질문하고 내가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루어져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던 내가 키득키득대는 바람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은 대게 다 우리의 생각과 비슷했고 한국 청소년들이 러시아나 고려인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 인터뷰를 계기로 친해져서 인터뷰가 끝나자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였다.
6월 21일
중국재래시장 관광을 했다. 조선족도 간혹 만나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나기에 새들이가 큰 맘 먹고 100루블짜리 우산을 50루블로 깎아서 샀단다. 하지만 우산을 산지 1분여쯤이 지나자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점심 먹으려 시장 통에 모여 샤슬릭을 먹고 마켓으로 갔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열심히 다녔는데, 잠깐 버스를 탄 사이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이다. 오후가 되자 반은 다시 쇼핑을 하러 나가고 남은 몇 명은 우스리스크 문화센터에 남아서 휴식을 취했는데, 일정이 끝나고 우정마을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새들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 아까 그 버스 다시 가면 안되요?”라는 것이었다. 다음이 이야기 안해도 될 것 같다.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퍼졌다.
나는 오후에 문화센터에 남아 휴식을 취해서 잘 모르겠지만 다시 쇼핑을 나간 친구들은 볼거리도 많고 무척 재밌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버스에서 차장이 있었는데, 난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나라의 80년대가 생각났다.
6월 22일
모두들 지쳐버리고 일지도 밀려버려서 오전에 있는 기증식에만 참가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강원도에서 우정마을에 컴퓨터를 기증해주셨는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해주지역과 강제이주,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오후에는 끄레모바마을 이집 저집을 둘러보고 우리가 분양받은 희망농장도 가보았다. 인상깊었던 것은 저번 홈스테이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밝고 희망차다는 것이었다. 생김새는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지만 사는 곳은 러시아이다보니 러시아인인 것 같기는 한데.. 외국인 같지 않고 편안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모여 자체평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을 돌이켜보고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한명씩 돌아가며 느낀점을 이야기 했다. 대체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던 러시아와 강제이주사, 고려인에 대해 잘 알게되어서 좋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전 조사나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필드워크(자신의 꿈과 관련해 각기 다른 활동을 함)에 중점을 많이 두고 왔는데, 현지에 와보니 언어나 장비, 시설 등 여건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생각보다 잘 못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는 필드워크를 생각하며 왔는데, 막상 와보니 프로그램은 봉사활동위주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사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에 있으면서 여러 공감대를 이루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화장실시설, 러시아의 아름다운 여자들, 지평선 등)
자체평가가 끝난 후에는 김현동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다. 궁금했던 것도 질문하고 이러저러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고 기억에 많이 남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다국가민족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던 것과 우리나라가 나라가 빼앗긴 아픈 역사로 민족들이 대표적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연해주 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졌지만 이 아픈 역사가 현재에는 유리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우정마을로 봉사활동을 오는 것은 처음이라고 얘기하셨다. 살포시 우리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러시아연해주 지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러시아연해주 지역은 독립군, 발해, 고려인(강제이주)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심지어는 러시아어 공부를 열심히해서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일하는 이곳 분들처럼 러시아를 무대삼아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6월 23일
내일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날씨도 좋은 김에 수포로 돌아갔던 벽화그리기를 오늘 하기로 했다. 우선 여자아이들이 머리를 모아 30분 정도 머리를 짜자 대략적인 스케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 초등학생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 그리긴 했지만 크레파스를 잡고 벽면에 밑그림을 그렸다. 작년에 망쳤던(?) 전산실을 생각하며 모두 어려워하고 막막하게만 생각했는데,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남자애들도 나와 조금씩 페인트칠하기 시작하니 점점 그럴싸해졌다. 처음엔 남자애들과 서로 신경질 적이었지만 조금씩 회색벽이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칠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팀웍이 살아났다. 노란색 벽에 조선족, 고려인, 통일한국인, 재일동포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한민족 입니다’라고 아영이의 이쁜 글씨로 새겨 넣었다. 파란색 붓으로 한반도와 일본 땅을 그렸는데, 일본 땅이 훨씬 작고 한반도가 훨씬 큰 것이 감상포인트이다.(스스로 우리가 평가하기에도 제국주의적이라는 평이다.) 게다가 아주 조그맣게 독도와 울릉도도 그려져있다. 벽화가 생각보다 잘 그려져서 아이들 모두 즐거워했다.
오후에는 새한이 아이디어로 준비했던 고려인 친구들과 민속놀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또래 아이들은 지금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고 어린 아이들과 연날리기도 하고 제기차기도하고 윷놀이와 공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재미있게 놀았다.
저녁엔 샤슬릭파티를 했다. 기름져서 잘 못 먹는 여자아이들도 있었지만 얼핏들은 이야기로는 규연이와 지웅이는 8꼬치쯤 먹었다고 한다.
6월 24일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다시 자루비노 항으로 돌아간다. 버스안에서 그간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가 되어 지나갔다. 자루비노 항에 도착해서도 네 다섯 시간쯤 기다려서 배에 올랐다. 처음 속초항에서 자루비노항으로 올 때 이곳 저곳 싸돌아 다녔던 것과는 다르게 얌전히 일지를 쓰며 이번 여행을 정리했다.
6월 25일
속초항에 도착했다. 자루비노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자루비노항은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반해 속초항에는 저 멀리 아파트부터 횟집, 모텔, 여러 상가들이 보인다. 개발이 덜 되서 비포장도로와 푸세식 화장실, 작은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는 러시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장실이 푸세식인 것은 오랜 습관 때문인지 불편해서 불평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러시아의 많은 지역도 아니고 연해주라는 약간 한정된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지만 러시아의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다. 더불어 발해, 독립군, 고려인, 강제이주사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고려인과 강제이주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설프게나마 설명을 못하겠지만 많이 알고 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고려인과 강제이주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