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때였다. 뉴욕에서 좀 떨어진 테리타운이란 곳을 가게 되었는데 돌아오는길에는 택시를 타고 와야했다. 거리가 좀 멀 경우 정액제로 요금을 정하기 때문에 약간의 흥정을 해야한다. 첫인상이 좋았던 아줌마 택시드라이버를 골라서 값을 매긴뒤 우린 그렇게 출발했고 인상과 같이 참 선한 사람이였다. 난 한국에서 택시탈때도 운전수분들이랑 얘기하는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여기서도 예외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줌마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온 27년된 미국분이셨다. 자식들도 다섯이나 있었고 남편도 있다고 하셨다. 뉴욕에서 다들 그렇지만 투잡을 뛰시는 악착같이 사시는 분같았다. 본업은 버스 드라이버고 부업으로 택시를 운전하신다고.. 근데 남편분이 딱히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아서 자기가 경제적인 책임을 진다고 하시면서 막 나무래시며 투잡도 버거운데 집에 가면 빨래 음식 청소 다 해야된다고 그런데도 자식들은 그 맘도 몰라주고 돈만 달라그러고 집에 여자친구 댈꼬와서 저지래를 한다면서 인생이 너무 피곤하시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하면서 원래의 사오십분이면 도착할 길이 2시간이 넘어섰던 것이다. 뉴욕 택시드라이버가 길을 모르는건 첨 봤고 택시 운전도 7년째란 말도 들었던 차라 혹시 길을 모를 거란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줌마는 예상을 뒤엎고 길을 헤매셨던 것이다. 우리에겐 네비게이터도 없고 그 흔한 지도도 없었다. 슈퍼에 들려 길을 물어봤지만 설명이 불충분했는지.. 우린 덕분에 뉴욕 구경을 다 하게 되따. 그러던 와중에 3시간이 지나서야 파킹하고 있는 한 차이니즈 시내버스 드라이버를 만나게 되었고 명확하지 않은 영어였지만 참 마음씨 좋으신 분이였다. 충분한 설명이였지만 지도가 없다는 말에 버스에 붙어져 있는 지도 (두손으로 들고 있기 힘들만한 크기)를 흥쾌히도 떼어 주시며 잘 찾아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린 우리의 현위치와 우리의 목적지를 알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즐거이 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줌마 택시운전사의 러브스토리는 시작되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첫사랑을 만나서 지내다 25년전 17살의 나이로 혼자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정말 꿈많은 나이였고 미국으로 오니 주변에 잘 생긴 미국 남자들의 천국이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 풋풋한 첫사랑도 잊은채 어느 한 미국남자와 결혼했단다. 한마디로 바람난거지. ㅉㅉ 난 혀를 찼다. 내가 한 짓도 모르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렀단다. 가정을 이루고 첫사랑을 잊은 채 살아갔단다. 역시 첫사랑 남자도 그 소식을 듣고는 얼마 후 자기나라에서 어느 한 여자와 결혼해 살아가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흘러 결혼생활 15년만에 그녀는 이혼을 했고 (여기서 이혼 한두번은 기본이죠,ㅋㅋ) 쉽지 않은 시간들이 찾아오며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그녀의 보금자리 도미니카공화국을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혼한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여지없이 가족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친동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단다. "그 첫사랑 남자는 언니를 잊지 못하고 있어"라고 했다. 그녀는 너무 놀랬단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였는데, 그는 아직도 그녀늘 잊지못해 이웃집을 빌미사마 가끔씩 놀러와서는 그녀의 안무를 물어가곤 했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 첫사랑 남을 싫어하셨다고한다.) 그렇기에 동생은 언니의 이혼소식도 전해주지 못한채 항상 첫사랑 남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니한테 어렵게 말했고 그녀도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다음번에 갔던 자기 집에서 드디어 첫사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은 즉슨 동생이 꾀를 내어 안부방문을 온 그 첫사랑 남에게 언니의 근황과 언니가 내일 온다는 쪽지를 적어서 그 사람 몰래 그의 성경책에 끼워 넣었던 것이다. 그 첫사랑 남은 영문도 모른채 집에 돌아와서는 성경책을 펼쳤고 그속에는 가장 아름다운 쪽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20년만에. 그녀의 말로는 여전히 첫사랑 남은 멋있었고 주위에서 빛이 났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보고 싶어서 그 여자 그 남자 집을 세내번정도 왔다갔다 한 뒤에야 만날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 첫사랑 남도 이혼을 했고 지금은 세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이웃집 행세를 하며 그녀를 보고 싶어 가끔씩 그녀의 집에 들리며 그녀의 안부를 무척이나 궁금해 하며 2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아직도 좋아한다고.. 두번째 만날때는 그 첫사랑은 세명의 자녀들도 함께 왔는데 자녀들이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봤단다. 아버지께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서 이미 어머니나 마찬가지라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은근슬쩍 그녀의 첫사랑 남은 프로포즈를 했다. 둘은 결혼했고 5년째란다. 다섯명의 자녀들(원래 2명+ 3명)과 여전히 멋있는 첫사랑 남, 사랑스런 남편을 가진 아줌마 택시드라이버는 투잡과 어려운 가정일 있지만 어느 뉴욕커 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며 사진 한장과 함께..마지막 그녀의 말이 생각난다. 17살 첫사랑을 만나 만들었던 앨범을 20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앨범을 이어가며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사랑은 있다. "When a person really desires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to help that person to realize his dreeam"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진 택시 드라이버
뉴욕 여행때였다.
뉴욕에서 좀 떨어진 테리타운이란 곳을 가게 되었는데
돌아오는길에는 택시를 타고 와야했다. 거리가 좀
멀 경우 정액제로 요금을 정하기 때문에 약간의
흥정을 해야한다. 첫인상이 좋았던 아줌마 택시드라이버를
골라서 값을 매긴뒤 우린 그렇게 출발했고 인상과
같이 참 선한 사람이였다. 난 한국에서 택시탈때도
운전수분들이랑 얘기하는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여기서도 예외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줌마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온 27년된 미국분이셨다.
자식들도 다섯이나 있었고 남편도 있다고 하셨다.
뉴욕에서 다들 그렇지만 투잡을 뛰시는 악착같이
사시는 분같았다. 본업은 버스 드라이버고 부업으로 택시를
운전하신다고.. 근데 남편분이 딱히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아서
자기가 경제적인 책임을 진다고 하시면서 막 나무래시며
투잡도 버거운데 집에 가면 빨래 음식 청소 다 해야된다고
그런데도 자식들은 그 맘도 몰라주고 돈만 달라그러고
집에 여자친구 댈꼬와서 저지래를 한다면서
인생이 너무 피곤하시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하면서 원래의 사오십분이면 도착할 길이
2시간이 넘어섰던 것이다. 뉴욕 택시드라이버가
길을 모르는건 첨 봤고 택시 운전도 7년째란 말도 들었던
차라 혹시 길을 모를 거란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줌마는 예상을 뒤엎고 길을 헤매셨던 것이다.
우리에겐 네비게이터도 없고 그 흔한 지도도 없었다.
슈퍼에 들려 길을 물어봤지만 설명이 불충분했는지..
우린 덕분에 뉴욕 구경을 다 하게 되따.
그러던 와중에 3시간이 지나서야 파킹하고 있는
한 차이니즈 시내버스 드라이버를 만나게 되었고
명확하지 않은 영어였지만 참 마음씨 좋으신
분이였다. 충분한 설명이였지만 지도가 없다는 말에
버스에 붙어져 있는 지도 (두손으로 들고 있기 힘들만한 크기)를
흥쾌히도 떼어 주시며 잘 찾아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린 우리의 현위치와 우리의 목적지를 알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즐거이 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줌마 택시운전사의 러브스토리는 시작되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첫사랑을 만나서 지내다
25년전 17살의 나이로 혼자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정말 꿈많은 나이였고 미국으로 오니 주변에 잘 생긴
미국 남자들의 천국이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 풋풋한 첫사랑도 잊은채
어느 한 미국남자와 결혼했단다. 한마디로 바람난거지. ㅉㅉ
난 혀를 찼다. 내가 한 짓도 모르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렀단다. 가정을 이루고 첫사랑을 잊은 채
살아갔단다. 역시 첫사랑 남자도 그 소식을 듣고는
얼마 후 자기나라에서 어느 한 여자와 결혼해 살아가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흘러 결혼생활 15년만에 그녀는 이혼을 했고
(여기서 이혼 한두번은 기본이죠,ㅋㅋ) 쉽지 않은 시간들이
찾아오며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그녀의 보금자리
도미니카공화국을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혼한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여지없이 가족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친동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단다.
"그 첫사랑 남자는 언니를 잊지 못하고 있어"라고 했다.
그녀는 너무 놀랬단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였는데,
그는 아직도 그녀늘 잊지못해 이웃집을 빌미사마 가끔씩
놀러와서는 그녀의 안무를 물어가곤 했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 첫사랑 남을 싫어하셨다고한다.)
그렇기에 동생은 언니의 이혼소식도 전해주지 못한채
항상 첫사랑 남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니한테 어렵게 말했고 그녀도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다음번에 갔던 자기 집에서
드디어 첫사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은 즉슨 동생이 꾀를 내어
안부방문을 온 그 첫사랑 남에게 언니의 근황과 언니가 내일
온다는 쪽지를 적어서 그 사람 몰래 그의 성경책에 끼워
넣었던 것이다. 그 첫사랑 남은 영문도 모른채 집에 돌아와서는
성경책을 펼쳤고 그속에는 가장 아름다운 쪽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20년만에. 그녀의 말로는 여전히
첫사랑 남은 멋있었고 주위에서 빛이 났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보고 싶어서 그 여자 그 남자 집을 세내번정도
왔다갔다 한 뒤에야 만날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 첫사랑 남도 이혼을 했고 지금은 세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이웃집 행세를 하며 그녀를 보고 싶어 가끔씩
그녀의 집에 들리며 그녀의 안부를 무척이나 궁금해 하며
2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아직도 좋아한다고..
두번째 만날때는 그 첫사랑은 세명의 자녀들도 함께 왔는데
자녀들이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봤단다.
아버지께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서 이미 어머니나
마찬가지라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은근슬쩍
그녀의 첫사랑 남은 프로포즈를 했다.
둘은 결혼했고 5년째란다.
다섯명의 자녀들(원래 2명+ 3명)과
여전히 멋있는 첫사랑 남, 사랑스런 남편을 가진
아줌마 택시드라이버는 투잡과 어려운 가정일 있지만
어느 뉴욕커 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며 사진 한장과 함께..마지막
그녀의 말이 생각난다. 17살 첫사랑을 만나
만들었던 앨범을 20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앨범을
이어가며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사랑은 있다.
"When a person really desires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to help that
person to realize his dre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