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이미리내200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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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

 

                  銀

 

  열 평에다가 몇 평을 빼어야 나올 그 방에서

  나는 반 백년을 헐떡이며 살아오신 아버지와

  조그마한 꿈을 꾸었다.

 

  송이 송이 눈꽃송이 노래를 부르던 때

  우리는 그 눈꽃송이를 두려워했다.

  검거나 혹은 희거나 한 새벽 세네시쯔음

  끙끙대는 몸뚱아리를 어루고 달래며 일으켜세워

  이따금 이마를 부딪혀가며

  붉은 눈으로 연탄 한 장을 갈아치워야했던.

 

  그러나 따뜻한 것은 다 어디로 내뺐는지

  우리들의 겸손한 방은 언제나

  열을 내며 자신을 뽐내는 것을 비천한 것이라 생각했다.

 

  냉증이 옮겨 붙은 배와

  새빨갛게 얼어버린 코를 어루만지는 것이

  냉장고가 필요없는 방에서

  김치와 고추와 고추장과 약간의 쉰내나는 밥알과 얼음물을 번갈아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이

  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 

  이제는 그런 자랑스러운 방에는

  비쩍 마른 중년의 사내만이 살고 있다.

  또는

  여러개의 발이 달린 친구들 수 백명과 살고 있다.

  쾌쾌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 방에선

  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도망쳐 버린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쓸데없는 핑계거리를 안고

  하숙집이라는 사치스런 곳으로

 

  나는 도망쳐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