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일이 작심삼일이 아니고 끝까지 해서 성공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라는 책에 보니까 여러 가지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아주 잘 전달해 주고 있었다.
히딩크라는 사람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아 500일 동안의 훈련을 통해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신화를 이룩한 데는 히딩크가 생각하는 비전을 분명하게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남다른 원칙과 뚝심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처음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한국 축구의 선진화’라는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선수들간에 공감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하나하나 실천해 갔다. 그런 비전을 실천함에 있어 원정 경기에서 0대5로 져 오대영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수모까지 당했다.
한국의 여론이나 언론들이 그런 식으로 비난해도 그 특유의 원칙과 뚝심으로 하나하나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축구의 여러가지 매너리즘과 관행을 분석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전략을 선택해 모든 축구 선수로부터 존경을 받아 가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지난 일이지만 히딩크의 리더십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히딩크의 500일 작전을 본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의 완성된 모습. 즉 결과물이 어떤 모습인지를 미리 떠올리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계속 노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이 작삼삼일이 될 수밖에 없는 대표적 원인이 아마도 그 완성된 결과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새롭고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시작은 하지만 그 완성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 지속적 노력을 할 수 없으니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마 우리 인간들의 행태는 비슷했나 보다. 북송 때의 문인이자 화가 문동의 그림 경지에 대해 친구인 조보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與可畵竹時 胸中有成竹(여가화죽시 흉중유성죽).” 여가(문동의 자)가 대를 그리고자 할 때 마음속엔 이미 대가 그려져 있다는 말로. 매사에 착수하기 전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와 같이 미리 완성된 대나무 모습을 상상하듯 우리가 작심하고 하려고 하는 일을 가능하면 구체화시켜서 그것을 실체화시키는 데 매진하면 어떨까 싶다.
히딩크의 리더십을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
우리가 하는 일이 작심삼일이 아니고 끝까지 해서 성공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라는 책에 보니까 여러 가지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아주 잘 전달해 주고 있었다.
히딩크라는 사람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아 500일 동안의 훈련을 통해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신화를 이룩한 데는 히딩크가 생각하는 비전을 분명하게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남다른 원칙과 뚝심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처음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한국 축구의 선진화’라는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선수들간에 공감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하나하나 실천해 갔다. 그런 비전을 실천함에 있어 원정 경기에서 0대5로 져 오대영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수모까지 당했다.
한국의 여론이나 언론들이 그런 식으로 비난해도 그 특유의 원칙과 뚝심으로 하나하나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축구의 여러가지 매너리즘과 관행을 분석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전략을 선택해 모든 축구 선수로부터 존경을 받아 가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지난 일이지만 히딩크의 리더십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히딩크의 500일 작전을 본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의 완성된 모습. 즉 결과물이 어떤 모습인지를 미리 떠올리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계속 노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이 작삼삼일이 될 수밖에 없는 대표적 원인이 아마도 그 완성된 결과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새롭고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시작은 하지만 그 완성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 지속적 노력을 할 수 없으니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마 우리 인간들의 행태는 비슷했나 보다. 북송 때의 문인이자 화가 문동의 그림 경지에 대해 친구인 조보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與可畵竹時 胸中有成竹(여가화죽시 흉중유성죽).” 여가(문동의 자)가 대를 그리고자 할 때 마음속엔 이미 대가 그려져 있다는 말로. 매사에 착수하기 전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와 같이 미리 완성된 대나무 모습을 상상하듯 우리가 작심하고 하려고 하는 일을 가능하면 구체화시켜서 그것을 실체화시키는 데 매진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