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라는 항상 무위행이다. 그저 되어지는대로 따라가면 되었듯이 이번에도 그랬다. 일정도 예약도 없이 다녔어도 2박3일이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건 하나!
봄님들이 소주의 명품 안동소주의 맛을 알았다는 사실.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인가. 화끈하나 순수하고 액체로 마신 순간 바로 기화 되어 버리는 봄님같은 안동소주였다.
주통이 도통이라 누가 말했나?
특이사항은 봄님은 어쩔 수 없이 변덕쟁이로 보여진다.
순례하는 곳마다 최고의 찬사를 표현하고-- 마치 그곳이 마지막인것처럼-- 그자리를 떠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이 없으니.
참으로 조화속이로다.
현존이 이런건가....
* 풍산 -- 원아선생님의 고향
일차로 점심도 먹을겸해서 들른 곳이 원아선생님께서 다니신 풍서 초등학교가 있는 가곡리 가일마을이다.
참한 동네였다. 정겨운 농촌, 고향이란 이름의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선생님의 소박한 고향 친구분도 만나고 풍서초등학교를 잠시 거닐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까까머리 소년하나.
눈빛 초롱초롱한 순박해 보이는 소년시절의 선생님이었다.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가슴이 뛰었다.
위인전 같은 사연을 기대하고 풍산을 떠올리고 했던 내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와 별 다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신 것 같았다.
그에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 부용대 -- 지상 최초, 최고의 결혼식
강물이 태극모양으로 흐르고 하늘도 산도 물따라 흐르는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부용대. 아름다웠다.
참 신기하다고 밖에.. 자연의 조화를 대하면 저절로 순해진다.
명당이었다. 밝은 터는 사사롭게 쓰여지지 않는다고 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회마을도 그저 이루어진 곳이 아니었다.
유씨일문들이 이터에 자리잡기까지 근 삼년을 나그네들 밥해 먹이고 짚신 엮어주고 공덕을 베풀고 나서야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애 유성룡 선생님,겸암 유운용 선생님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진 연원도 이공덕으로 인해서 일 것이다.
물론 원아 유종열 선생님이 봄나라로 새시대를 여시게 되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졌다.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정성을 들인만큼 사심에서 벗어난 만큼
창조가 벌어지는 것이다. 봄나라는 대무심이니 돌아봄하는 순간부터 공덕이 쌓아지는 것이다.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고 숙연해졌다.
그런 이곳에서 원국님과 원타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신부는 흰윗도리와 하얀 맨발, 화관과 꽃다발로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절차도 예정되어 있지 않은지라 잠시 어수선해졌다. 그때 원향님께서 사회를 보시면서 결혼식을 진행시키셨다. 주례는 선생님으로 즉석에서 결정되었다. 축의금도 누구 밝힐것도 없이 한봉투에 모아져 건네졌다.
진심으로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마음이 들면서 결혼식 내내 하나가 되어 참여했다. 새로운 문화 창조였다.
결혼이 이미 하나의 상업분야가 되어버린 이시대에
신랑신부는 결혼식을 치루느라 어떤식으로든 손해보지않는 거래를 하느라 골이빠지지 않는가! 심지어는 결혼이 깨어지기도 한다.
겨우 고개넘어 결혼식날이 되면 신랑신부는 예식장 형식에 끌려다니는 꼭두각시 신세고 주례 따로 하객은 억지춘향으로 참석하고 숙제 다한 아이처럼 예식장을 나오지 않는가?
무극에서 태극으로 흐르는 밝은터 부용대에서
신랑신부는 맨발처럼 순수한 자유의지를 준비하고, 주례와 하객은 그것을 인정해주고, 모두 한마음으로 천지에 합일을 선포하는 창조
적인 결혼식이었다.
새시대 삶의 형식은 창조인 것이다. 봄나라 봄님들이 이렇게 새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하늘의 영광이, 축복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원국님,원타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새롭게 결혼식을 해봐야지하는 마음을 돌아봄하며 옥연정사로
발길을 돌렸다.
*옥연정사 -- 신분을 초월한 아름다운 만남
옥연정사는 부용대 아래에 있는 소박한 한옥이다. 앞에는 물이흐르고 멀리 산이 담담히 보이며 연륜이 배인 소나무 몇그루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즈넉한 곳이다.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었다. 마루에 턱 걸터 앉는 순간 마치 내집에 온듯 그곳에 그대로 내가 놓였다.
간죽문을 나서니 편안한 바위들과 겸암정까지 이어지는 사랑스런 오솔길이 보인다. 아름다운 곳이다. 더 바랄것이 없는 그런곳이었다. 선생님께서 옥연정사의 사연을 들려주신다.
옥연정사는 서애 유성룡선생님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을 보낸곳이다. 탄홍스님이 삼년을 전국을 돌며 탁발을 하여 서애선생님께 이곳을 마련해 드린거라 한다. 알다시피 조선시대는 유교가 국교라 스님은 천한신분에 속한다. 그러나 두분은 서로의 안목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 이곳에서 함께 사셨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서애선생님의 인품이 느껴졌다.
옥연정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는가?
옥연정사 옆 오솔길 앞에 잇는 바위에 걸터 앉아 서애선생님의 시를 듣노라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를 낭독하시는 분이 서애선생님의 13대손인 원아 유종열 선생님이시다. 두분이 하나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시내용을 들어보니 서애선생님도 봄님이셨다.
원아선생님도 봄님이시고.
..... 봄날 강 위에 가랑비는 내리고
앞산은 바야흐로 으스럼 저녁이 되어가네
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매화는 절로 피고 지는구나.
서애 유성룡 선생님 시.......
이곳에 오기전 선생님 미니홈피에서 이글들을 보았을때 현장에서 처럼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저절로 일어나니
참 신기하다.
정말 떠나기 싫은 곳이었다. 겨우 아쉬움을 접어 발길을 병산서원으로 돌렸다.
*병산서원 -- 미래 새봄님들을 위한 봄나라 연수원
병산서원은 병풍같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연 그랬다. 수려하게 산들이 펼쳐져 있고 병산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하회로 흘러 내려 간다 하였다.
이곳은 서애선생님 제자들이 스승의 공덕과 가르침을 기리며 공부하던 곳이라 하였다.
현관문이 복례문이다. 선생님께서 한자한자 풀어가시며 설명을 하신다. '극기복례'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자기(에고)를 극복하여 예(자유의지)를 회복한다 라는 설명이시다. 늘봄생활이 극기복례인것이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형시의 예의가 아니라 무심이되어 무위로 흐르면 그것이 참된 예인것이다. 한마디로 주권회복!
유교나 봄나라나 같은 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잘못 전해져 형식만 남게 되었구나 싶었다.
봄나라 할 일이 이거구나. 전통을 되살려 내는 일.
오늘 안동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고리타분한 구시대 유물로 폐기처분 되어 우리에게 밀려나 있는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되찾는 일.
죄다 원래대로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봄나라 밖엔 없다는 걸 보여주시는구나. 야, 이거 어마어마 하구나.
진지하게 마음을 다잡고 만대루에 올랐다.
100명도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누각이었다. 만대루를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시간을 초월하여 대한다라는 뜻이란다. 바라봄인게다.
아닌게 아니라 만대루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 바로 바라봄이 되어버린다. 기가막힌곳이다. 공부터전으론 예술이다. 한 일주일만 이곳에서 지내면 돌아봄이 저절로 몸에 배일것 같았다.
배진희를 잊고 잠시 그시절로 돌아가 유학서생이 되어 보았다.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멋지게 살았구나....
만대루도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옛주인들이 새주인되어 다시찾아 오셨군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듯 했다.
봄나라가 힘이 커지면 이곳을 새봄님들 연수원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만대루를 내려 왔다.
선생님 말씀대로 모든것이 다 구비되어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주인자격만 회복하면 그대로 쓰면 되는것이다라는 말씀이 실감이 났다.
물질이 개벽 되었으니 정신개벽 할 일만 남은 것이다.
병산서원에서 좀 내려오면 학산서당이 있다. 이곳은 원아선생님의 증조부님의 유지에 따라 선생님대에서 서당을 지었다고 한다.
증조부님의 호가 학산이시란다. 선생님께서 고등학시절에 이분의 유지를 읽으셨단다. 도를 이루지 못했다라는 유지였는데 선생님 공부가 바뀔때마다 그 유지도 다르게 해석되셨단다.지금은 이루었든 못이루었든 괘념치 않는다고 하셨다.
그곳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학산할아버님이 그저 건물만 지으라 했을까 싶어서이다.
결국 정신을 이어 갈 터전을 만들라 하신건데 이렇게 죽어있으니 참 가슴아파 하실것 같았다.
하지만 원아선생님께서 지금 그일을 하고 계시니 학산서당 문이 열리고 사람들 공부소리로 분주해질거라 믿습니다.
자손 한사람만 완성이 되면 그 웃대 모든 조상들이 다 구원된다 하더니 바로 이형국을 말하는구나.
조상들의 간절한 소원이 우리들 각자에게 이미 흐르고 있는것이다.
진정 우리는 소원성취,인간완성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띠고 대표로 이땅에 온것이다. 주먹이 쥐어졌다.
사사로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한가문의 대표요,인류의 대표요, 모든것을 아우르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할배요, 좀만 기다리이소. 봄나라가 이제 세상에 신고식했심더."
*그리고 수애당 숙소에서 선생님 말씀
진정으로 그사람 입장에서 이해해 본적이 있는가?
이해란 것은 내 입장을 넘어서 그사람 입장이 될때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어떤 생각에 잡혀 있는지 돌아봄할 때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옳고 그름조차도 넘어서 나와 그가 하나로 합일 될 때 그럴만 했다는 것이 이해되는것이다.
우리가 이거 할려고 수행하는 것 아닌가.
자비고 사랑이고 공경이고 다 이 이야기 아닌가.
표현만 다르지 다 같은 이야기이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옳다는 생각에 잡혀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내모습을 돌아보았다.
그 생각을 지키느라 스스로 상처내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우리 생활에서 다반사인 것이다.
선생님 말씀을 듣노라니 선생님의 넉넉한 품새가 따스하게 전해져 왔다. 참된 인간으로 선생님께서 이렇게 우리앞에 서 계신다.
진정 축복이다. 봄님들이 다시 보여진다.
*국학원 -- 봄나라를 위해 준비된 곳
안동은 곳곳이 산수가 아름답다. 그리고 정기들이 살아있는 느낌이든다. 우리나라 정신문화가 꽃핀 곳 답다.
그래서 국학진흥원도 이곳에 설립되었나 보다.
국학,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연구,계승,발전시키고자 만든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둘러보면서 실망스러웠다.
전시적인,겉햝기식의 인상을 받았다. 학문에서 그칠것이 아니라 진정 사람들에게 정신으로 흘러 갈 수 있게, 아니 국학원을 방문했을때만이라도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체험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앞으로 봄나라의 일꾼들이 이일을 맡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왜 이곳을 꼭 봐야된다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온세계에서 이곳으로 봄나라 공부를 하러 몰려드는 그림도 그려졌다. 왜냐하면 봄나라안에 모든것이 살아있고 모든것이 창조되는 힘의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손에 달렸다. 나라는 사사로움에서 벗어날 때 모든 것을 살려 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완성, 인간완성.
*도산서원--우리에게 성현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내가 그이다.
도산서원은 퇴계이황선생님이 벼슬도 마다 하시고 도를 닦고 제자를 가르치고 키운 곳이다.역시 이곳도 풍광이 좋았다. 감탄을 하고 하고 어째 이리도 끝이 없는지... 하지만 사람이 더욱 아름답게 보여졌다. 이 름다운강산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이 없다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강산이다.
퇴계선생님의 학문은 학교때 좀 배운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인간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곳에 와서도 겸암선생님의 추도문이 없었다면 퇴계선생님의 인품을 이렇게 생생히 느껴볼 수 없으리라.
과거,현재,미래가 사람에게서는 결국 같다. 그리고 영원하게 하는것도 사람인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소름이 돋도록 느꼈다.추도문을 들으면서 내안에서는 빅뱅과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퇴계선생님도 겸암선생님도 원아선생님도 봄님들도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내 세포세포에서 살아 꿈틀대는 것이었다.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청송으로 넘어가는 내내 눈물이 났다.원아선생님 고향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나의 고향을 다녀온 것이다.봄나라가 나의 고향이었다.
겸암 선생님의 추도문에 나타나는 퇴계선생님은 진정한 봄님이었다. 봄님의 인품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되어질 모습이다
겸암 유운용님의 퇴계 이황 추도문
거룩한 규모는 양양(洋洋)하고, 좌우는 도서라. 우러러 생각하고 굽어보아 글을 읽었다.
칼날을 던지니 허공에 떠 있고, 갈 수록 바르고 확실하니, 평실(平實)한 곳에 넉넉히 들었다. 차례를 쫓아 나아가니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었다.
함양하는 공부는 잠시라도 쉼이 없었고, 급할 때도 쉼이 없었다. 엄숙히 천지신명에게 대답하니, 언제나 눈을 떠서 어둠이 없었다. 향불 사르고 단정히 앉아 생각을 맑게 하고 정신을 모으면 언제나 마음은 깨어있어 날마다 새롭고 새롭도다.
동과 정을 살피고, 겉과 속을 꿰뚫으며, 지와 행을 병진시켰으니, 마치 새에게 날개가 돋힌듯 하였다.
미세하다고 하여 궁리하지 않음이 없었고, 드러났다고 하여 연구하지 않음이 없어서 두루 알게 하고 자세히 설명하니, 촛불 처럼 환하고 점처럼 맞았다.
몸을 낮추어 사물에 응대하고, 검소하고 간략하게 살았고, 겸허하게 의에 복종하였으며, 강하게 욕심을 제어하여, 악을 나쁜 냄새맡듯 하였고, 착한 것을 듣고는 낯빛을 환하게 하였다
인륜의 아름다움과 일상생활의 떳떳함은 잘지도 않았거니와 긁지도 아니하여 두루 그 이치에 마땅하였다.
힘쓰고 또 힘쓰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였으나 언제나 못미칠까봐 두려워하였다.
한눈금을 쌓고, 한치를 길러 세월을 더 하노라면 마침내 마음이 깊고 넓게 길러져서 크게 이루었다. 그것을 온몸에 베푸니 얼굴빛과 목소리에 드러났다.
겸손하고 공경하고 돈독하고 충담하고 간결하며 화락하고 평범하며 자상하고 인자하였다.
봄빛처럼 밝게 비추고 가을볕 처럼 밝게 쬐었다.
손길 마주 잡고 천천히 걸으면, 학이 춤추듯 새가 날듯하였고, 나는 것을 의젓하게 그치고 한가롭게 쉴때면, 그곳은 산언덕이요 매화향기 감도는 곳일러라.
다가가면 따사하고 바라보니 엄숙하다. 있어도 없는듯 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본받을 수 있고, 높아도 낮은듯하여 보는 사람이 그가 높은 벼슬아치인지 잊었다.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구별이 없어서 물으면 곧 알려주어 그 양단을 드러내보여주었다
미친 사람이나 교만한 선비가 거칠게 제멋대로 날뛰다가도 한번 그 집을 바라보기만하여도 스스로 겸손하게 억제되어 제 마음에 가득한 더러움이 얼음이 풀리듯 녹고 말았다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고 악한 사람은 저절로 신칙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었으니 착한자가 본받았도다.
* 주왕산 -- 주왕굴의 전설을 밝히다
청송은 정말 첩첩산중 오지였다. 아마도 옛날엔 유배지였을 확률이 높다. 주왕산이 좋다는 소린 많이 듣고 사진도 보았다.주왕산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위용에 숨이 막혔다.대단한 절경이다. 신통묘통한 기암들 덕분이다.
잠시 그 기세에 눌려 큰마음넉고 산행을 시작했다.산에 들어서니 웬걸 속살 보드랍게 길이 좋았다. 잘 관리된 도심의 공원속에 들어 온것 같았다.
주왕산의 꽃, 물가에 핀 수달래를 보면서 즐겁게 주왕굴로 전진. 멋진 산이이다. 숲과 계곡과 물빛이 모두 푸른 빛이다. 하늘은 또 얼마나 맑은지...그런데 주왕사 가는 길목에서 부터는 좀 험해지기 시작한다.
주왕산에 온 목적 주왕굴의 전설을 밝히기 위해서다. 주왕사앞에 주왕굴에 대한 전설이 표기되어 있었다.
주왕이 중국에서 이곳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도망을 와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런데 신라에서 중국의 부탁을 받아 주왕굴 앞에있는 촛대봉에서 마일성 장군이 화살을 쏘아 주왕이 죽어 그피가 흘러 수달래가 되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였다.
이대로라면 별 관심도 일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대단한 산에 그이이야기로 그치겠는가?
원아선생님의 관광이 시작된다. "여기서 주왕은 에고를 의미한다. 주왕굴은 천혜의 요새로 누구도 쳐들어 올 수 없는 철옹성이다. 에고가 살아남기의해 어둠속으로 깊이 숨는다 하나 촛대봉(빛)에서 쏘는 화살에 최후를 맞게 된다. 빛앞에서는 그 어떤것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봄과 생각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대충 이런 해석을 해주셨다.
주왕굴 주변에 있는 촛대봉을 찾느라 잠시 분분했다. 이때까지도 선생님의 해설이 가슴에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주왕굴로 발길을 돌린 순간, 한눈에 여긴 잡으러 오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란것을 단박 알 수 있었다. 그냥 두는게 외려 더 남는 장사다 싶었다. 뭐 군사를 키워서 어찌할 그런곳이 아니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할 수 밖에 없는 아주 불리한 환경이었다. 좁은 협곡사이에 철제계단을 놓았지만 아주 가파르고 험했다.
계단이 없다면 암벽전문가나 올라갈 수 있겠다 싶었다.헉헉거리며 주왕굴에 도착한 순간 주왕굴은 말이 굴이지 굴이랄것도 없이 약간 후미진 곳이었다. 뭐야싶어 촛대봉을 찾으려 뒤돌아 선 순간 내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화살들!
바로 그순간 주왕굴의 전설이 아우성속에 되살아났다. 다시 굴을 돌아다 보니 빛이 들어 굴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굴옆에 폭포에는 무지개까지 떠 있었다.
"야! 이거구나.화살이 정말 진짜 빛이었구나!" 모두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가막힌 것은 우리가 도착한 바로 오후 4시40분경이라야만 그광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 좁은 협곡이라 해가 그시간대에 그 위치에 오는 것이다.
이걸 설명할 길이 있는가? 없다. 그저 그대의 뜻이라고 밖에..... 봄나라 국토순례 때마다 받는 선물이라고 밖에.....봄나라가 그뜻을 살려 내고자 하니 저쪽에서도 응답을 한다고 밖에.. 이런걸 기적같은 순간이라 하지 않겠는가. 기꺼이 빛화살을 맞고 환희로 나는 수달래가 되었다.
에고가 아무리 교활하고 끈질기다 하여도 봄빛 한줄기면 그림자만 남고 완성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희망이 불같이 일어났다.이후부터는 주왕산을 누리며 다녔다.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봄님들 모두 여유있는 표정에 봄빛으로 빛났다.우리의 원지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다 설레었다. 만삭의 배로 순하디 순한 얼굴로 순딩이처럼 걸어 오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수달래보다 더 예뻤다. 확실히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더라~봄님들이여, 우리 모두 빛화살이 되어 저 세상 어두운 곳에 기꺼이 날아가 봄나라 꽃 한번 피워 보이시더. ㅎㅎㅎ
갈수록 점입가경이라고 그자리에서 정한 숙소와 식당은 값도 싸고 맛있었다. 저녁식사때 선생님 주변으로 청년 봄님들이 죽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보기좋은지 안먹어도 배부르고 안동소주탓도 있었지만 얼마나 기분좋게 취하는지... 넘 좋았습니다. 봄나라의 보물단지들, 새시대의 주역들. 훌륭합니다. 그대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대들이 희망입니다.
* 주산지 -- 명상이 시작 되는 곳
언젠가 잡지 사진으로 보고 홀딱 반해서 언젠가는 꼭 찾아가리라 손가락 걸고 다짐했던 곳. 주산지. 물에 비친 산그림자나 실제 산 모습이 하나로 통해 있어 구별이 일어나지 않는 그곳. 물빛이나 하늘빛이나 같은 곳. 애인 보러 가는 그 설레임과 흥분으로 주산지에 도착했다.
저수지에 도착해서 상류쪽으로 막 접어드는 순간 어떤 에너지 파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일렁임과 멈춤이 동시에 일어났다. 신비한 곳이었다. 원시적인 순수함같은. 선생님께서 좋은 명상장소라고 일러 주신다. 모두들 잠시 앉아서 호흡돌아봄을 하고...
"불같이 생각이 번져 나올때,허전하고 에너지가 떨어질때, 너무좋아서 격해질 때 심장돌아봄 한번이면 잠잠해집니다. 폭풍도 멈춰집니다." 선생님 말씀이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명심하자. 아니 실천하자. 아무리 좋은 장관도 내가 보러가야 보여준다. 항상 그자리에 있지만 보러 가는 자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이치이다. 자발성의 문제이다.
주산지의 꽃은 물에서도 썩지않는 나무 왕버들이다. 나무는 물에서 썩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왕버들이다. 영원한 진리의 상징이다. 고요한 곳에 영원히 썪지않는 .... 주산지의 힘이다. 내가 없어진 그자리에 진리의 꽃은 핀다. 물결마저 잔잔한 주산지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없어진다. 그저 흐른다. 그렇게 흐르다 버드나무 한자락 휘날림에 눈을 뜬다. 300살이라나.... 불가사의하다.봄나라를 닯은 나무다. 원아 선생님도 외로운 버들인데...ㅎㅎ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부족함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내가슴에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5월의 봄빛속에 봄바람을 앞세우고 마일성 달리는 봄나라를 타고 그대와 눈맟추며 세상을 누볐다. 감사합니다.
<4회 봄나라 국토순례>모든 것이 봄나라 안에 있소이다.
이번 국토순례는 전날 저녁에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임이 컸다.
달리는 봄나라센타! 드디어 봄나라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봄나라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출발이다.
봄님들 힘으로 마련한 차를 타고 원아선생님의 탄생지를 찾아감이
내겐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안동과 청송을 지나 동해를 돌아 오면서 내내
4회 봄나라 수련회에서 본 봄나라 비젼이 실제 현장에서 생생하게 이루어졌다.
봄나라는 항상 무위행이다. 그저 되어지는대로 따라가면 되었듯이 이번에도 그랬다. 일정도 예약도 없이 다녔어도 2박3일이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건 하나!
봄님들이 소주의 명품 안동소주의 맛을 알았다는 사실.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인가. 화끈하나 순수하고 액체로 마신 순간 바로 기화 되어 버리는 봄님같은 안동소주였다.
주통이 도통이라 누가 말했나?
특이사항은 봄님은 어쩔 수 없이 변덕쟁이로 보여진다.
순례하는 곳마다 최고의 찬사를 표현하고-- 마치 그곳이 마지막인것처럼-- 그자리를 떠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이 없으니.
참으로 조화속이로다.
현존이 이런건가....
* 풍산 -- 원아선생님의 고향
일차로 점심도 먹을겸해서 들른 곳이 원아선생님께서 다니신 풍서 초등학교가 있는 가곡리 가일마을이다.
참한 동네였다. 정겨운 농촌, 고향이란 이름의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선생님의 소박한 고향 친구분도 만나고 풍서초등학교를 잠시 거닐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까까머리 소년하나.
눈빛 초롱초롱한 순박해 보이는 소년시절의 선생님이었다.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가슴이 뛰었다.
위인전 같은 사연을 기대하고 풍산을 떠올리고 했던 내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와 별 다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신 것 같았다.
그에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 부용대 -- 지상 최초, 최고의 결혼식
강물이 태극모양으로 흐르고 하늘도 산도 물따라 흐르는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부용대. 아름다웠다.
참 신기하다고 밖에.. 자연의 조화를 대하면 저절로 순해진다.
명당이었다. 밝은 터는 사사롭게 쓰여지지 않는다고 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회마을도 그저 이루어진 곳이 아니었다.
유씨일문들이 이터에 자리잡기까지 근 삼년을 나그네들 밥해 먹이고 짚신 엮어주고 공덕을 베풀고 나서야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애 유성룡 선생님,겸암 유운용 선생님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진 연원도 이공덕으로 인해서 일 것이다.
물론 원아 유종열 선생님이 봄나라로 새시대를 여시게 되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졌다.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정성을 들인만큼 사심에서 벗어난 만큼
창조가 벌어지는 것이다. 봄나라는 대무심이니 돌아봄하는 순간부터 공덕이 쌓아지는 것이다.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고 숙연해졌다.
그런 이곳에서 원국님과 원타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신부는 흰윗도리와 하얀 맨발, 화관과 꽃다발로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절차도 예정되어 있지 않은지라 잠시 어수선해졌다. 그때 원향님께서 사회를 보시면서 결혼식을 진행시키셨다. 주례는 선생님으로 즉석에서 결정되었다. 축의금도 누구 밝힐것도 없이 한봉투에 모아져 건네졌다.
사회가 시키는대로 빨간등산 조끼를 입으신 선생님께서 주례사를 하셨다. "허락합니까?" "예!" "자유의지를 부여합니다."
5분도 채 안되는 주례사였다.
그런데 예하고 대답하는 순간 그결혼식은 나의 결혼식이 되었다.
진심으로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마음이 들면서 결혼식 내내 하나가 되어 참여했다. 새로운 문화 창조였다.
결혼이 이미 하나의 상업분야가 되어버린 이시대에
신랑신부는 결혼식을 치루느라 어떤식으로든 손해보지않는 거래를 하느라 골이빠지지 않는가! 심지어는 결혼이 깨어지기도 한다.
겨우 고개넘어 결혼식날이 되면 신랑신부는 예식장 형식에 끌려다니는 꼭두각시 신세고 주례 따로 하객은 억지춘향으로 참석하고 숙제 다한 아이처럼 예식장을 나오지 않는가?
무극에서 태극으로 흐르는 밝은터 부용대에서
신랑신부는 맨발처럼 순수한 자유의지를 준비하고, 주례와 하객은 그것을 인정해주고, 모두 한마음으로 천지에 합일을 선포하는 창조
적인 결혼식이었다.
새시대 삶의 형식은 창조인 것이다. 봄나라 봄님들이 이렇게 새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하늘의 영광이, 축복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원국님,원타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새롭게 결혼식을 해봐야지하는 마음을 돌아봄하며 옥연정사로
발길을 돌렸다.
*옥연정사 -- 신분을 초월한 아름다운 만남
옥연정사는 부용대 아래에 있는 소박한 한옥이다. 앞에는 물이흐르고 멀리 산이 담담히 보이며 연륜이 배인 소나무 몇그루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즈넉한 곳이다.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었다. 마루에 턱 걸터 앉는 순간 마치 내집에 온듯 그곳에 그대로 내가 놓였다.
간죽문을 나서니 편안한 바위들과 겸암정까지 이어지는 사랑스런 오솔길이 보인다. 아름다운 곳이다. 더 바랄것이 없는 그런곳이었다. 선생님께서 옥연정사의 사연을 들려주신다.
옥연정사는 서애 유성룡선생님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을 보낸곳이다. 탄홍스님이 삼년을 전국을 돌며 탁발을 하여 서애선생님께 이곳을 마련해 드린거라 한다. 알다시피 조선시대는 유교가 국교라 스님은 천한신분에 속한다. 그러나 두분은 서로의 안목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 이곳에서 함께 사셨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서애선생님의 인품이 느껴졌다.
옥연정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는가?
옥연정사 옆 오솔길 앞에 잇는 바위에 걸터 앉아 서애선생님의 시를 듣노라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를 낭독하시는 분이 서애선생님의 13대손인 원아 유종열 선생님이시다. 두분이 하나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시내용을 들어보니 서애선생님도 봄님이셨다.
원아선생님도 봄님이시고.
..... 봄날 강 위에 가랑비는 내리고
앞산은 바야흐로 으스럼 저녁이 되어가네
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매화는 절로 피고 지는구나.
서애 유성룡 선생님 시.......
이곳에 오기전 선생님 미니홈피에서 이글들을 보았을때 현장에서 처럼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저절로 일어나니
참 신기하다.
정말 떠나기 싫은 곳이었다. 겨우 아쉬움을 접어 발길을 병산서원으로 돌렸다.
*병산서원 -- 미래 새봄님들을 위한 봄나라 연수원
병산서원은 병풍같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연 그랬다. 수려하게 산들이 펼쳐져 있고 병산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하회로 흘러 내려 간다 하였다.
이곳은 서애선생님 제자들이 스승의 공덕과 가르침을 기리며 공부하던 곳이라 하였다.
현관문이 복례문이다. 선생님께서 한자한자 풀어가시며 설명을 하신다. '극기복례'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자기(에고)를 극복하여 예(자유의지)를 회복한다 라는 설명이시다. 늘봄생활이 극기복례인것이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형시의 예의가 아니라 무심이되어 무위로 흐르면 그것이 참된 예인것이다. 한마디로 주권회복!
유교나 봄나라나 같은 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잘못 전해져 형식만 남게 되었구나 싶었다.
봄나라 할 일이 이거구나. 전통을 되살려 내는 일.
오늘 안동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고리타분한 구시대 유물로 폐기처분 되어 우리에게 밀려나 있는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되찾는 일.
죄다 원래대로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봄나라 밖엔 없다는 걸 보여주시는구나. 야, 이거 어마어마 하구나.
진지하게 마음을 다잡고 만대루에 올랐다.
100명도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누각이었다. 만대루를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시간을 초월하여 대한다라는 뜻이란다. 바라봄인게다.
아닌게 아니라 만대루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 바로 바라봄이 되어버린다. 기가막힌곳이다. 공부터전으론 예술이다. 한 일주일만 이곳에서 지내면 돌아봄이 저절로 몸에 배일것 같았다.
배진희를 잊고 잠시 그시절로 돌아가 유학서생이 되어 보았다.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멋지게 살았구나....
만대루도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옛주인들이 새주인되어 다시찾아 오셨군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듯 했다.
봄나라가 힘이 커지면 이곳을 새봄님들 연수원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만대루를 내려 왔다.
선생님 말씀대로 모든것이 다 구비되어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주인자격만 회복하면 그대로 쓰면 되는것이다라는 말씀이 실감이 났다.
물질이 개벽 되었으니 정신개벽 할 일만 남은 것이다.
병산서원에서 좀 내려오면 학산서당이 있다. 이곳은 원아선생님의 증조부님의 유지에 따라 선생님대에서 서당을 지었다고 한다.
증조부님의 호가 학산이시란다. 선생님께서 고등학시절에 이분의 유지를 읽으셨단다. 도를 이루지 못했다라는 유지였는데 선생님 공부가 바뀔때마다 그 유지도 다르게 해석되셨단다.지금은 이루었든 못이루었든 괘념치 않는다고 하셨다.
그곳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학산할아버님이 그저 건물만 지으라 했을까 싶어서이다.
결국 정신을 이어 갈 터전을 만들라 하신건데 이렇게 죽어있으니 참 가슴아파 하실것 같았다.
하지만 원아선생님께서 지금 그일을 하고 계시니 학산서당 문이 열리고 사람들 공부소리로 분주해질거라 믿습니다.
자손 한사람만 완성이 되면 그 웃대 모든 조상들이 다 구원된다 하더니 바로 이형국을 말하는구나.
조상들의 간절한 소원이 우리들 각자에게 이미 흐르고 있는것이다.
진정 우리는 소원성취,인간완성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띠고 대표로 이땅에 온것이다. 주먹이 쥐어졌다.
사사로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한가문의 대표요,인류의 대표요, 모든것을 아우르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할배요, 좀만 기다리이소. 봄나라가 이제 세상에 신고식했심더."
*그리고 수애당 숙소에서 선생님 말씀
진정으로 그사람 입장에서 이해해 본적이 있는가?
이해란 것은 내 입장을 넘어서 그사람 입장이 될때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어떤 생각에 잡혀 있는지 돌아봄할 때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옳고 그름조차도 넘어서 나와 그가 하나로 합일 될 때 그럴만 했다는 것이 이해되는것이다.
우리가 이거 할려고 수행하는 것 아닌가.
자비고 사랑이고 공경이고 다 이 이야기 아닌가.
표현만 다르지 다 같은 이야기이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옳다는 생각에 잡혀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내모습을 돌아보았다.
그 생각을 지키느라 스스로 상처내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우리 생활에서 다반사인 것이다.
선생님 말씀을 듣노라니 선생님의 넉넉한 품새가 따스하게 전해져 왔다. 참된 인간으로 선생님께서 이렇게 우리앞에 서 계신다.
진정 축복이다. 봄님들이 다시 보여진다.
*국학원 -- 봄나라를 위해 준비된 곳
안동은 곳곳이 산수가 아름답다. 그리고 정기들이 살아있는 느낌이든다. 우리나라 정신문화가 꽃핀 곳 답다.
그래서 국학진흥원도 이곳에 설립되었나 보다.
국학,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연구,계승,발전시키고자 만든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둘러보면서 실망스러웠다.
전시적인,겉햝기식의 인상을 받았다. 학문에서 그칠것이 아니라 진정 사람들에게 정신으로 흘러 갈 수 있게, 아니 국학원을 방문했을때만이라도 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체험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앞으로 봄나라의 일꾼들이 이일을 맡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왜 이곳을 꼭 봐야된다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온세계에서 이곳으로 봄나라 공부를 하러 몰려드는 그림도 그려졌다. 왜냐하면 봄나라안에 모든것이 살아있고 모든것이 창조되는 힘의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손에 달렸다. 나라는 사사로움에서 벗어날 때 모든 것을 살려 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완성, 인간완성.
*도산서원--우리에게 성현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내가 그이다.
도산서원은 퇴계이황선생님이 벼슬도 마다 하시고 도를 닦고 제자를 가르치고 키운 곳이다.역시 이곳도 풍광이 좋았다. 감탄을 하고 하고 어째 이리도 끝이 없는지... 하지만 사람이 더욱 아름답게 보여졌다. 이 름다운강산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이 없다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강산이다.
퇴계선생님의 학문은 학교때 좀 배운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인간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곳에 와서도 겸암선생님의 추도문이 없었다면 퇴계선생님의 인품을 이렇게 생생히 느껴볼 수 없으리라.
과거,현재,미래가 사람에게서는 결국 같다. 그리고 영원하게 하는것도 사람인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소름이 돋도록 느꼈다.추도문을 들으면서 내안에서는 빅뱅과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퇴계선생님도 겸암선생님도 원아선생님도 봄님들도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내 세포세포에서 살아 꿈틀대는 것이었다.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청송으로 넘어가는 내내 눈물이 났다.원아선생님 고향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나의 고향을 다녀온 것이다.봄나라가 나의 고향이었다.
겸암 선생님의 추도문에 나타나는 퇴계선생님은 진정한 봄님이었다. 봄님의 인품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되어질 모습이다
겸암 유운용님의 퇴계 이황 추도문
거룩한 규모는 양양(洋洋)하고, 좌우는 도서라. 우러러 생각하고 굽어보아 글을 읽었다.
칼날을 던지니 허공에 떠 있고, 갈 수록 바르고 확실하니, 평실(平實)한 곳에 넉넉히 들었다. 차례를 쫓아 나아가니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었다.
함양하는 공부는 잠시라도 쉼이 없었고, 급할 때도 쉼이 없었다. 엄숙히 천지신명에게 대답하니, 언제나 눈을 떠서 어둠이 없었다. 향불 사르고 단정히 앉아 생각을 맑게 하고 정신을 모으면 언제나 마음은 깨어있어 날마다 새롭고 새롭도다.
동과 정을 살피고, 겉과 속을 꿰뚫으며, 지와 행을 병진시켰으니, 마치 새에게 날개가 돋힌듯 하였다.
미세하다고 하여 궁리하지 않음이 없었고, 드러났다고 하여 연구하지 않음이 없어서 두루 알게 하고 자세히 설명하니, 촛불 처럼 환하고 점처럼 맞았다.
몸을 낮추어 사물에 응대하고, 검소하고 간략하게 살았고, 겸허하게 의에 복종하였으며, 강하게 욕심을 제어하여, 악을 나쁜 냄새맡듯 하였고, 착한 것을 듣고는 낯빛을 환하게 하였다
인륜의 아름다움과 일상생활의 떳떳함은 잘지도 않았거니와 긁지도 아니하여 두루 그 이치에 마땅하였다.
힘쓰고 또 힘쓰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였으나 언제나 못미칠까봐 두려워하였다.
한눈금을 쌓고, 한치를 길러 세월을 더 하노라면 마침내 마음이 깊고 넓게 길러져서 크게 이루었다. 그것을 온몸에 베푸니 얼굴빛과 목소리에 드러났다.
겸손하고 공경하고 돈독하고 충담하고 간결하며 화락하고 평범하며 자상하고 인자하였다.
봄빛처럼 밝게 비추고 가을볕 처럼 밝게 쬐었다.
손길 마주 잡고 천천히 걸으면, 학이 춤추듯 새가 날듯하였고, 나는 것을 의젓하게 그치고 한가롭게 쉴때면, 그곳은 산언덕이요 매화향기 감도는 곳일러라.
다가가면 따사하고 바라보니 엄숙하다. 있어도 없는듯 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본받을 수 있고, 높아도 낮은듯하여 보는 사람이 그가 높은 벼슬아치인지 잊었다.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구별이 없어서 물으면 곧 알려주어 그 양단을 드러내보여주었다
미친 사람이나 교만한 선비가 거칠게 제멋대로 날뛰다가도 한번 그 집을 바라보기만하여도 스스로 겸손하게 억제되어 제 마음에 가득한 더러움이 얼음이 풀리듯 녹고 말았다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고 악한 사람은 저절로 신칙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었으니 착한자가 본받았도다.
* 주왕산 -- 주왕굴의 전설을 밝히다
청송은 정말 첩첩산중 오지였다. 아마도 옛날엔 유배지였을 확률이 높다. 주왕산이 좋다는 소린 많이 듣고 사진도 보았다.주왕산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위용에 숨이 막혔다.대단한 절경이다. 신통묘통한 기암들 덕분이다.
잠시 그 기세에 눌려 큰마음넉고 산행을 시작했다.산에 들어서니 웬걸 속살 보드랍게 길이 좋았다. 잘 관리된 도심의 공원속에 들어 온것 같았다.
주왕산의 꽃, 물가에 핀 수달래를 보면서 즐겁게 주왕굴로 전진. 멋진 산이이다. 숲과 계곡과 물빛이 모두 푸른 빛이다. 하늘은 또 얼마나 맑은지...그런데 주왕사 가는 길목에서 부터는 좀 험해지기 시작한다.
주왕산에 온 목적 주왕굴의 전설을 밝히기 위해서다. 주왕사앞에 주왕굴에 대한 전설이 표기되어 있었다.
주왕이 중국에서 이곳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도망을 와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런데 신라에서 중국의 부탁을 받아 주왕굴 앞에있는 촛대봉에서 마일성 장군이 화살을 쏘아 주왕이 죽어 그피가 흘러 수달래가 되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였다.
이대로라면 별 관심도 일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대단한 산에 그이이야기로 그치겠는가?
원아선생님의 관광이 시작된다. "여기서 주왕은 에고를 의미한다. 주왕굴은 천혜의 요새로 누구도 쳐들어 올 수 없는 철옹성이다. 에고가 살아남기의해 어둠속으로 깊이 숨는다 하나 촛대봉(빛)에서 쏘는 화살에 최후를 맞게 된다. 빛앞에서는 그 어떤것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봄과 생각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대충 이런 해석을 해주셨다.
주왕굴 주변에 있는 촛대봉을 찾느라 잠시 분분했다. 이때까지도 선생님의 해설이 가슴에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주왕굴로 발길을 돌린 순간, 한눈에 여긴 잡으러 오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란것을 단박 알 수 있었다. 그냥 두는게 외려 더 남는 장사다 싶었다. 뭐 군사를 키워서 어찌할 그런곳이 아니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할 수 밖에 없는 아주 불리한 환경이었다. 좁은 협곡사이에 철제계단을 놓았지만 아주 가파르고 험했다.
계단이 없다면 암벽전문가나 올라갈 수 있겠다 싶었다.헉헉거리며 주왕굴에 도착한 순간 주왕굴은 말이 굴이지 굴이랄것도 없이 약간 후미진 곳이었다. 뭐야싶어 촛대봉을 찾으려 뒤돌아 선 순간 내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화살들!
바로 그순간 주왕굴의 전설이 아우성속에 되살아났다. 다시 굴을 돌아다 보니 빛이 들어 굴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굴옆에 폭포에는 무지개까지 떠 있었다.
"야! 이거구나.화살이 정말 진짜 빛이었구나!" 모두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가막힌 것은 우리가 도착한 바로 오후 4시40분경이라야만 그광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 좁은 협곡이라 해가 그시간대에 그 위치에 오는 것이다.
이걸 설명할 길이 있는가? 없다. 그저 그대의 뜻이라고 밖에..... 봄나라 국토순례 때마다 받는 선물이라고 밖에.....봄나라가 그뜻을 살려 내고자 하니 저쪽에서도 응답을 한다고 밖에.. 이런걸 기적같은 순간이라 하지 않겠는가. 기꺼이 빛화살을 맞고 환희로 나는 수달래가 되었다.
에고가 아무리 교활하고 끈질기다 하여도 봄빛 한줄기면 그림자만 남고 완성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희망이 불같이 일어났다.이후부터는 주왕산을 누리며 다녔다.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봄님들 모두 여유있는 표정에 봄빛으로 빛났다.우리의 원지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다 설레었다. 만삭의 배로 순하디 순한 얼굴로 순딩이처럼 걸어 오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수달래보다 더 예뻤다. 확실히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더라~봄님들이여, 우리 모두 빛화살이 되어 저 세상 어두운 곳에 기꺼이 날아가 봄나라 꽃 한번 피워 보이시더. ㅎㅎㅎ
갈수록 점입가경이라고 그자리에서 정한 숙소와 식당은 값도 싸고 맛있었다. 저녁식사때 선생님 주변으로 청년 봄님들이 죽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보기좋은지 안먹어도 배부르고 안동소주탓도 있었지만 얼마나 기분좋게 취하는지... 넘 좋았습니다. 봄나라의 보물단지들, 새시대의 주역들. 훌륭합니다. 그대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대들이 희망입니다.
* 주산지 -- 명상이 시작 되는 곳
언젠가 잡지 사진으로 보고 홀딱 반해서 언젠가는 꼭 찾아가리라 손가락 걸고 다짐했던 곳. 주산지. 물에 비친 산그림자나 실제 산 모습이 하나로 통해 있어 구별이 일어나지 않는 그곳. 물빛이나 하늘빛이나 같은 곳. 애인 보러 가는 그 설레임과 흥분으로 주산지에 도착했다.
저수지에 도착해서 상류쪽으로 막 접어드는 순간 어떤 에너지 파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일렁임과 멈춤이 동시에 일어났다. 신비한 곳이었다. 원시적인 순수함같은.
선생님께서 좋은 명상장소라고 일러 주신다. 모두들 잠시 앉아서 호흡돌아봄을 하고...
"불같이 생각이 번져 나올때,허전하고 에너지가 떨어질때, 너무좋아서 격해질 때 심장돌아봄 한번이면 잠잠해집니다. 폭풍도 멈춰집니다." 선생님 말씀이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명심하자. 아니 실천하자. 아무리 좋은 장관도 내가 보러가야 보여준다. 항상 그자리에 있지만 보러 가는 자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이치이다. 자발성의 문제이다.
주산지의 꽃은 물에서도 썩지않는 나무 왕버들이다. 나무는 물에서 썩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왕버들이다. 영원한 진리의 상징이다. 고요한 곳에 영원히 썪지않는 .... 주산지의 힘이다. 내가 없어진 그자리에 진리의 꽃은 핀다. 물결마저 잔잔한 주산지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없어진다. 그저 흐른다. 그렇게 흐르다 버드나무 한자락 휘날림에 눈을 뜬다. 300살이라나.... 불가사의하다.봄나라를 닯은 나무다. 원아 선생님도 외로운 버들인데...ㅎㅎ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부족함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내가슴에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5월의 봄빛속에 봄바람을 앞세우고 마일성 달리는 봄나라를 타고 그대와 눈맟추며 세상을 누볐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