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곧 행복이라고 믿는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가 되느니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는게 낫다.
여자고 남자고 간에 서로에게 결혼으로 빼앗긴 ‘자율’을 요구하는것. 그것을 입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것이 ‘불륜’이다. 의도하진 안아도 이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것은 자명하지만… 상처를 주고 또 받게 되는 것이 인생이란 고난의 조건이 아닌가…
따라서 “어떻게 자율을 잃지 안는가” 가 결혼한후에 더욱 중요한 것임또한 더욱 자명하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수 없고, 그 무엇하나 조정할수 없는 마당에 결혼서약이란 무의미하다. 살면서 혼자가 될수 있는 경우(사고, 사망, 이혼 등등…) 엔 이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아무리 깊은 교감을 공유한다 한들 어자피 세상엔 홀로 존재할수 밖에 없지 안은가? “당신이 없다면 죽어버릴꺼야…” 같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말인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진정 죽을 용기가 있나? 현실에선 ‘자유와 독립’ 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이것이 사랑의 이면이다. 이것을 잘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 피상적으로 감정적으로 이기적으로만 보는 사랑은 불완전할수 밖에 없다…
부부의 원활한 관계가 좋은것일까? 원할한 관계… 자연스러워 보이는(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관계는 사실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해야 하는 경우라 볼수 있는데, 이것이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될려면 한쪽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이지 않는가… 누가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가? 남편은 남편의 역활… 아내는 아내의 역활…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고… 사회적 성공과 돈벌기에 매진하고, 자식을 키우며 행복감에 젖고…
“결혼은 환상이 아니다” 가 아니라 “결혼은 환상이 아니여야 한다” 가 맞는 말이다. 왜냐면 현실세계에 발을 딛이고 있어야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것이 아니라 결혼할 시기가 왔을때 옆에 있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기는 아무도 알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일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어떤 나이때, 또 어떤이에게는 돈벌기 시작했을때… 또 어떤이에게는 백마탄 왕자가 왔을때일수도 있고…
너무 일찍 만나서 또는 너무 늦게 만나서… 모든일이 이렇게 꼬이기 시작하는거… 이게 인생이지.
……
사랑의 열정을 경험해 보았는가? 육체의 쾌락속에 빠질만한 열정적인 성에 갇혀보았는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라면 가능하겠는가?
무미건조함… 어떤것으로 이 권태를 이겨나갈수 있으랴… 사랑이 없다면 사람은 죽은것이다.
자기자신안에 있는 자유분방함, 열정을 모르거나 아님 가두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해할순 있어도 그렇게 사는게 ‘나’ 이고 싶진 않다. 내 스스로 내 자유로움의 정체를 안다면 그리고 그 열정의 큰 힘을 느낄수 있다면 그에 따르는 고통도 그리 나쁜건 아니리라. 죽을때까지 크고 작은 고통속에서 생을 마감해야하는 우리가 이런 열정적인 사랑을, 그리고 그로인해 생길수 있는 비애와 고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할수 있다면 그로 인한 난 영원이 메마르지 않을수 있지 않는가? 언제나 꺼내보고 느낄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와 외딴 곳 어딘가의 모텔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은적이 없는가? 누군가로 인해 삶이 살아있다는걸 느낀적이 없는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남자보다 자신이 더 사랑하거나 애를 먹이는 여자/남자를 좋아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어떤가? 단지 안고만 있어도 아무생각이 나지 않고 이렇게가 아니면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적은 있는가?
우린 대부분 결혼한 후에 모든 욕망이 꺽이거나 잠기우고, 한평생 뭔가를 계속 꿈꾸지만 그게 뭔지 알지 못하고, 또 안다해도 이루기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고… 그래서 불륜이 물꼬를 터주는게 될수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쓴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그 글을쓴 후, 1992년이었지 않나 싶다… 35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텍사스의 외딴곳으로 ‘그의 인생’을 살기위해 떠났다… 그의 정원사이며 가정집사였던 여자와… (이건 내 기억이 맞기를 바라지만). 물론 그는 그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다… 아마 친구라는 표현을 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린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100년의 삶속에서 기대하고 찾고싶은게 없다면 지금 우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에로틱’ 한건 뭘까… 뭔가 일상적인것에 반대되는것… 들어나진 않지만 알고싶고 기대해 왔던것이 아닐까? 기분좋은 자극이란 무엇일까… 분명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그냥 알수 있지 안나? 분명 좋을것이다. ‘밀회’의 기회를 버릴 자신이 있나? 무엇을 위해서… 그냥 잠이나 자거나 TV를 보거나… 아님 꿈속에서 그런 밀회를 갖던가… 꿈이라면 다 괜찬다고 사람들은 얘기하지 안나? 무엇이 다른가?
불륜이 과연 사회가 유지하려드는 ‘결혼’이란것의 최대 위협인지, 아님 최고의 협조자인지 우린 모른다… 과연 진실은 어떤것일까? 인간이 과연 ‘배신’이란걸 모른다면 그렇게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것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 불륜이 줄수있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한번도 원하지 않았고 절대 원치 않고 죽을때까지 한사람만 바라보고 살고 싶고 정말 그런가? 그런게 당연한 것인가? 좋은건가? 그렇게 되어야만 인간적이고 행복한건가?
불륜을 통해 무엇을 얻나? 인간삶의 영혼에 충격과 영향을 줄수 있는 큰 힘이 아닐까? 영혼을 단련시킨다? 무언가를 동경하고… 또 상실하고, 욕망을 갖고, 자유를 말하고, 슬픔을 안게 된다…
어린시절 ‘결혼을 동경’하는 이는 많다… 부모님을 보고,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그렇게 길들여져 온것이지… 나쁜게 아니다. 또 그렇게 해야 공식적이고 사회를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2세를 얻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긴 요즘은 입양도 많고 동성애자들로 인해 관념도 많이 바뀐상태이지만) 사회가 주위의 눈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게 ‘정상’ 이라고… 안그러면 불편할 만큼... 주위친구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른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별종이라고 여기지 않게… 또 살다보면 결혼을 하고싶고 또 그렇게 열망하고 있다는 ‘착각’ 과 자기암시를 스스로가 계속하게 될때도 많다… ‘후회는 나중’이라는 생각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사실 자기 스스로 살아보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자기 삶을 대신 결정해 줄수 있겠는가?
‘혼외정사’… 결혼한 배우자 외의 다른 상대와 갖는 관계… 불륜이라는 지속적인 관계를 딱 집어얘기할 필요는 없다. 섹스상대의 다변화는 인간의 본성임이 확실하지만, 사회에선 허용할수 없는 일이된다. 이해하는건 쉽다. 제약이 필요하다는건 어느 구성체에서나 있는거니까… 그러나 이것이 또한 인간이 왜 결혼생활에 충실할수 없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될수도 있다… 이것도 이해가 쉽다. 불륜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효과로서 섹스파트너의 다변화를 꾀하는 이에게 ‘성의 다양성’을 주고 동시에 사회에 대한 존재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사회에 대한 복수’의 한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심리적 만족’을 준다…
‘섹스’는 무서운것이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또한 인간과 인간사이에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진솔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또한 그렇지 않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이 사람과 한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혹은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착각하고) 결혼을 한다. 정말 자신이 있어서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럼 당신은 약속을 저버린 거짓말장이인가? 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못하겠다고? 연습경기도 없었는데 어떻게 확신하냐고? 인생자체가 연습이 없는 경기다 (매일매일이 내일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된다면 다행이고). 인간의 본성중에 ‘배반과 배신’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사회자체를 이루고 있는 필요불가결의 요소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섹스에 대한 약속도 포함한다는 것인데 머리속에 잡다하게 있는 우리의 ‘상상력’까지 이 약속에 묶어버리는건 불가능하다… 그대는 깨끗한가? 우린 항상 너무 큰 결단과 약속을 남이 하니까 그냥 다 따라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집단최면술’… ‘나’를 찾은 다음에야만이 시도해볼만한 것이 결혼인데…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도 전에 다른이를 책임지고 몸과 마음의 절대적 종속과 복종을 약속하는 운명의 콘트랙을 싸인해버리는 우리는 진정 바보들인가?
누군가와의 불륜은 반드시 현재의 배우자를 떠나야만 되는 결론을 얻게 되는가? 불륜의 상대방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성숙한 어른이 할수 있는 선택이 이런것 밖에 없다는게 현실인가? 불륜을 고백한다면 무엇을 기대하는가? 자기자신을 속이지 못하는것인지 상대방을 속이지 못하는것인지… 불륜을 하면 항상 상대방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배우자와의 결별과 불륜의 상대와의 결별이 어떻게 다른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것은 ‘오직 그대에게만 충성’ 이라는 것인데… 그럴수 있는 상대방을 만났다는걸 확신할수 없다는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확신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아닐수 있고, 확신은 없었지만 그게 확신이 될수도 있고… 그러나 이런 강요가 쉽게 받아들여지는게 현실인므로… 이런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는게 쉽지않다. 이것도 이해가 된다. 젊은날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귀중한지는 그때는 모를수 밖에 없지 않는가? 결혼을 하고 나서 느낄수 있는 안정감, 안락감, 그리고 안전감… 이런게 귀중하다고 또 그런게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아닌 목표가 되버린 사람들이 많다. 의사와 변호사가 왜 인기가 있겠는가? ‘안’ 자로 시작하는 이런 말들때문이 아닌가? 난 ‘변화무쌍’ 이 좋다. ‘안’ 자로 시작되는 말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자유가 없다. 내 입맛에 따라 바뀔수 있는 확신이 없다… 그런 결혼후의 느낌을 위해서 포기하는 수 많은 당신의 ‘내적자아’는 과연 얼마나 행복할수 있겠는가? 사실 이런 말들조차 사치스러운 면이 많을수 있다… ‘먹고살기 바쁜데 뭔소리냐고…’ 지금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자식들, 부유함, 평화, 아님 섹스? 이런 행복이 곁에 있다는 확신이 있나? 만약 그런 확신이 없어진더면 또 다른 확신을 찾아 떠나 겠는가?
버지니아 울프가 정의한 결혼은 ‘혼자는 아니나 고독’... 이 말에 동의하는가?
인간은 본디 알수없는 존재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면 마치 아내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다 안다는 듯한 태도나 말로 일관하지 않는가? 아님 아예 알기를 포기하던가… 그런 사람들이 될거면 왜 충성서약이 필요한건가? 몸과 영혼도 모자라 자유와 생각까지도 서로에게 저당잡히고 잡고 잡혀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계약이 무슨 의미가 있나? 만약 그럴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 모든걸 던질수 있다면 모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만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이 당신의 배우자 이여야만 하는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가? 그걸 위해서 뭘 할수 있는가? 사랑이 중요하다면 모든걸 버릴수 있는가? 그럴수 없다면 2번째로 중요한, 아님 3번째로 중요한 사랑을 인정하고 평생을 그와 보낸다는 서약을 원하는가? 우리 모두는 그런 ‘거짓’에 이미 많은 싫증을 내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정치랑 무엇이 다른가?
자유는 결혼보다 중요하다… 이걸 깨닫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새장속에 사는 새가 되어 안락하고 평온하게 사는것과 새장밖의 세상으로 나가 훨훨 날아다니는 것중 어느것이 좀더 새다운건지는 자명하다… 단지 새장밖은 ‘변화무쌍’할수 있다는 것인데, 두렵고도 기대되는 느낌… 불륜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여기서 자명하게 알수 있다… 이런 드라마틱한 불륜이 간혹 새로운 새장으로의 진입을 뜻하기도 있는데, 이건 처음의 새장과는 다르다. 이미 새장속에 살아본 새가, 그것도 자유를 향해 몸을 던진 새가 다시 또다른 새장을 찾아가는건 2가지 이유중에 하나뿐… 하나는 새장밖의 세상이 기대했던 세상이 아니거나… 또 하나는 새 새장이 세상밖보다 더 좋거나… 우리는 새장속에 웅크리고는 그것이 최고의 새장이라고 생각하도록 키워져 왔고 이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가장 많은 새장을 만들수 있는 사회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을 보며 쑤군덕대는 많은 사람들… 비 도덕적이고 못된 상종못할 잡것들… 어디서 감이 저런 사람이 대통령을… 불륜. 누구도 왜 빌이 그런일을 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스캔들’이란 언제나 흥미 진진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자신들의 나약하고 ‘용기없음’을 대신 표출해주는 대리만족으로써… 동시에 그들에게 욕을 해대며 자신들의 양심을 끌어올리려는 얇팍한 수작들… 그러나 인생의 최고 목표를 도달하고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을 결국 가진후에 빌 클린턴 그가 한 말은 ‘삶은 공허하다…’ 라는 것을 아는지… 모니카라는 여자는 분명 어떤식으로든 그의 ‘공허함’을 어루만져 주었음이 분명하다… 빌은 그것을 떨치기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하지만 빌은 끝내 자신을 던지진 못했다. 세상의 최고 높은 위치가 모니카보단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님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그냥 그렇게 이별을 한것이거나… 사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까웠을지도… 본인들외엔 그누가 알수 있으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기대를 결혼상대에게 건다… 기대는 할수 있으나 이건 옳지 않다. 이로 인해 비판이 끊이질 않게 된다. 필요한게 무언지, 바라는게 뭔지… 상대방의 것이 아니므로 순전이 ‘자신의 망상’에 불과한것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다 할수 없는것을 어찌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아주 현실적이 되고 매일매일을 왜 우리는 오늘 같이 살아야되나… 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계를 재정립해가는게 필요하다. 협상하고 재발전시키고… 이것이 결혼일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혼은 프로페셔널한 파트너쉽이여야 한다… 사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지 안다면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없이 형태를 유지한다는건 자기의 삶을 포기하는것과 다를봐 없다… 우리의 옛조상들을 보면 자명하지 않나?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없다면 자신의 자유를 버리고 덫에 걸릴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있지 않는가…
‘애들을 봐서 참고 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아비로서의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직장에서의 책임, 친구로서의 책임, 양심의 책임, 국가에 대한 책임… 어떤이들은 조국을 위해서 가족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사랑을 위해서 조국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애들을 위해서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직장(성공)을 위해서 사랑을 버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책임이 절대적일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떤 책임을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책임이 다른 어떤 책임에 비해 더 그럴수 밖에 없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발각되지만 안는다면 불륜을 꿈꾼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불륜을 하는 당사자들은 불륜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잠재우는데 봉사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사회는 불륜남녀에게 비극으로 끝나는 삶을 강요한다… 공포와 교육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육되어진다… 의미없는 결혼과 불륜이 그렇게 동거하는 사회… 그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울수 있건만 사육되어진 새는 새장을 나갈수 없고 그 두려움은 시간을 이길수 없다… 어찌 세상은 이렇게 되어있단 말인가…
‘오직 한사람하고만 잔다’ 라는게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이 어려운 일임에 틀리없다. 결혼생활에서 ‘같이 잠을 잠다’라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것에 대한 파트너쉽을 가질수 있다면 어떨까… 훨씬 쉬운일이 아니겠는가? 섹스를 하는것에 대한 물리적인 책임(에이즈 같은 병)을 제외한 성취향을 스스로가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조건 비하만 하고말게 아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결혼이후 많은 여자들이 현모양처가 되려는 것… 그게 나쁜게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로운 영혼을 눌러없애는게 나쁜것이다…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로운 것일터… 남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연구하는것도 좋으나 스스로의 자아를 더욱 발전시킬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하는것이 결혼관계를 위해 더 좋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연구 자체도 안한다면 뭐 할말이 없지만… 당장 결혼생활이 파탄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거요? 라고 내 자신에게도 묻고 싶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뭐 결혼이 재미있을려구 하는건가?’ 그럼 왜 하는거지 당신이 한번 말해보라…
진정한 결혼생활이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가 있다면 잘 기르고 (없어도 상관없고), 하지만 나 스스로의 자유와 사색 그리고 고독과 자율을 내 스스로 유지할수 있는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목표와 삶에 전력할수 있도록 지지와 헌신을 해 줄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모든걸 다 해줄수 없다는걸 알고있다… ‘누구와 잤어?’ 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확신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살지마라... 아님 모든걸 다 던져라...
결혼, 사랑, 그리고 불륜
루이스 디살보의 ‘Adultery’를 읽고서…
하루만에 휙 읽어버린 글이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았다…
진지한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서술한 부분도 좋았고…
2006년 7월5일.
결혼, 사랑, 그리고 불륜
결혼은 곧 행복이라고 믿는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가 되느니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는게 낫다.
여자고 남자고 간에 서로에게 결혼으로 빼앗긴 ‘자율’을 요구하는것. 그것을 입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것이 ‘불륜’이다. 의도하진 안아도 이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것은 자명하지만… 상처를 주고 또 받게 되는 것이 인생이란 고난의 조건이 아닌가…
따라서 “어떻게 자율을 잃지 안는가” 가 결혼한후에 더욱 중요한 것임또한 더욱 자명하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수 없고, 그 무엇하나 조정할수 없는 마당에 결혼서약이란 무의미하다. 살면서 혼자가 될수 있는 경우(사고, 사망, 이혼 등등…) 엔 이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아무리 깊은 교감을 공유한다 한들 어자피 세상엔 홀로 존재할수 밖에 없지 안은가? “당신이 없다면 죽어버릴꺼야…” 같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말인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진정 죽을 용기가 있나? 현실에선 ‘자유와 독립’ 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이것이 사랑의 이면이다. 이것을 잘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 피상적으로 감정적으로 이기적으로만 보는 사랑은 불완전할수 밖에 없다…
부부의 원활한 관계가 좋은것일까? 원할한 관계… 자연스러워 보이는(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관계는 사실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해야 하는 경우라 볼수 있는데, 이것이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될려면 한쪽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이지 않는가… 누가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가? 남편은 남편의 역활… 아내는 아내의 역활…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고… 사회적 성공과 돈벌기에 매진하고, 자식을 키우며 행복감에 젖고…
“결혼은 환상이 아니다” 가 아니라 “결혼은 환상이 아니여야 한다” 가 맞는 말이다. 왜냐면 현실세계에 발을 딛이고 있어야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것이 아니라 결혼할 시기가 왔을때 옆에 있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기는 아무도 알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일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어떤 나이때, 또 어떤이에게는 돈벌기 시작했을때… 또 어떤이에게는 백마탄 왕자가 왔을때일수도 있고…
너무 일찍 만나서 또는 너무 늦게 만나서… 모든일이 이렇게 꼬이기 시작하는거… 이게 인생이지.
……
사랑의 열정을 경험해 보았는가? 육체의 쾌락속에 빠질만한 열정적인 성에 갇혀보았는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라면 가능하겠는가?
무미건조함… 어떤것으로 이 권태를 이겨나갈수 있으랴… 사랑이 없다면 사람은 죽은것이다.
자기자신안에 있는 자유분방함, 열정을 모르거나 아님 가두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해할순 있어도 그렇게 사는게 ‘나’ 이고 싶진 않다. 내 스스로 내 자유로움의 정체를 안다면 그리고 그 열정의 큰 힘을 느낄수 있다면 그에 따르는 고통도 그리 나쁜건 아니리라. 죽을때까지 크고 작은 고통속에서 생을 마감해야하는 우리가 이런 열정적인 사랑을, 그리고 그로인해 생길수 있는 비애와 고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할수 있다면 그로 인한 난 영원이 메마르지 않을수 있지 않는가? 언제나 꺼내보고 느낄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와 외딴 곳 어딘가의 모텔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은적이 없는가? 누군가로 인해 삶이 살아있다는걸 느낀적이 없는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남자보다 자신이 더 사랑하거나 애를 먹이는 여자/남자를 좋아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어떤가? 단지 안고만 있어도 아무생각이 나지 않고 이렇게가 아니면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적은 있는가?
우린 대부분 결혼한 후에 모든 욕망이 꺽이거나 잠기우고, 한평생 뭔가를 계속 꿈꾸지만 그게 뭔지 알지 못하고, 또 안다해도 이루기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고… 그래서 불륜이 물꼬를 터주는게 될수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쓴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그 글을쓴 후, 1992년이었지 않나 싶다… 35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텍사스의 외딴곳으로 ‘그의 인생’을 살기위해 떠났다… 그의 정원사이며 가정집사였던 여자와… (이건 내 기억이 맞기를 바라지만). 물론 그는 그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다… 아마 친구라는 표현을 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린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100년의 삶속에서 기대하고 찾고싶은게 없다면 지금 우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에로틱’ 한건 뭘까… 뭔가 일상적인것에 반대되는것… 들어나진 않지만 알고싶고 기대해 왔던것이 아닐까? 기분좋은 자극이란 무엇일까… 분명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그냥 알수 있지 안나? 분명 좋을것이다. ‘밀회’의 기회를 버릴 자신이 있나? 무엇을 위해서… 그냥 잠이나 자거나 TV를 보거나… 아님 꿈속에서 그런 밀회를 갖던가… 꿈이라면 다 괜찬다고 사람들은 얘기하지 안나? 무엇이 다른가?
불륜이 과연 사회가 유지하려드는 ‘결혼’이란것의 최대 위협인지, 아님 최고의 협조자인지 우린 모른다… 과연 진실은 어떤것일까? 인간이 과연 ‘배신’이란걸 모른다면 그렇게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것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 불륜이 줄수있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한번도 원하지 않았고 절대 원치 않고 죽을때까지 한사람만 바라보고 살고 싶고 정말 그런가? 그런게 당연한 것인가? 좋은건가? 그렇게 되어야만 인간적이고 행복한건가?
불륜을 통해 무엇을 얻나? 인간삶의 영혼에 충격과 영향을 줄수 있는 큰 힘이 아닐까? 영혼을 단련시킨다? 무언가를 동경하고… 또 상실하고, 욕망을 갖고, 자유를 말하고, 슬픔을 안게 된다…
어린시절 ‘결혼을 동경’하는 이는 많다… 부모님을 보고,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그렇게 길들여져 온것이지… 나쁜게 아니다. 또 그렇게 해야 공식적이고 사회를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2세를 얻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긴 요즘은 입양도 많고 동성애자들로 인해 관념도 많이 바뀐상태이지만) 사회가 주위의 눈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게 ‘정상’ 이라고… 안그러면 불편할 만큼... 주위친구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른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별종이라고 여기지 않게… 또 살다보면 결혼을 하고싶고 또 그렇게 열망하고 있다는 ‘착각’ 과 자기암시를 스스로가 계속하게 될때도 많다… ‘후회는 나중’이라는 생각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사실 자기 스스로 살아보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자기 삶을 대신 결정해 줄수 있겠는가?
‘혼외정사’… 결혼한 배우자 외의 다른 상대와 갖는 관계… 불륜이라는 지속적인 관계를 딱 집어얘기할 필요는 없다. 섹스상대의 다변화는 인간의 본성임이 확실하지만, 사회에선 허용할수 없는 일이된다. 이해하는건 쉽다. 제약이 필요하다는건 어느 구성체에서나 있는거니까… 그러나 이것이 또한 인간이 왜 결혼생활에 충실할수 없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될수도 있다… 이것도 이해가 쉽다. 불륜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효과로서 섹스파트너의 다변화를 꾀하는 이에게 ‘성의 다양성’을 주고 동시에 사회에 대한 존재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사회에 대한 복수’의 한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심리적 만족’을 준다…
‘섹스’는 무서운것이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또한 인간과 인간사이에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진솔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또한 그렇지 않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이 사람과 한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혹은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착각하고) 결혼을 한다. 정말 자신이 있어서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럼 당신은 약속을 저버린 거짓말장이인가? 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못하겠다고? 연습경기도 없었는데 어떻게 확신하냐고? 인생자체가 연습이 없는 경기다 (매일매일이 내일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된다면 다행이고). 인간의 본성중에 ‘배반과 배신’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사회자체를 이루고 있는 필요불가결의 요소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섹스에 대한 약속도 포함한다는 것인데 머리속에 잡다하게 있는 우리의 ‘상상력’까지 이 약속에 묶어버리는건 불가능하다… 그대는 깨끗한가? 우린 항상 너무 큰 결단과 약속을 남이 하니까 그냥 다 따라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집단최면술’… ‘나’를 찾은 다음에야만이 시도해볼만한 것이 결혼인데…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도 전에 다른이를 책임지고 몸과 마음의 절대적 종속과 복종을 약속하는 운명의 콘트랙을 싸인해버리는 우리는 진정 바보들인가?
누군가와의 불륜은 반드시 현재의 배우자를 떠나야만 되는 결론을 얻게 되는가? 불륜의 상대방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성숙한 어른이 할수 있는 선택이 이런것 밖에 없다는게 현실인가? 불륜을 고백한다면 무엇을 기대하는가? 자기자신을 속이지 못하는것인지 상대방을 속이지 못하는것인지… 불륜을 하면 항상 상대방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배우자와의 결별과 불륜의 상대와의 결별이 어떻게 다른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것은 ‘오직 그대에게만 충성’ 이라는 것인데… 그럴수 있는 상대방을 만났다는걸 확신할수 없다는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확신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아닐수 있고, 확신은 없었지만 그게 확신이 될수도 있고… 그러나 이런 강요가 쉽게 받아들여지는게 현실인므로… 이런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는게 쉽지않다. 이것도 이해가 된다. 젊은날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귀중한지는 그때는 모를수 밖에 없지 않는가? 결혼을 하고 나서 느낄수 있는 안정감, 안락감, 그리고 안전감… 이런게 귀중하다고 또 그런게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아닌 목표가 되버린 사람들이 많다. 의사와 변호사가 왜 인기가 있겠는가? ‘안’ 자로 시작하는 이런 말들때문이 아닌가? 난 ‘변화무쌍’ 이 좋다. ‘안’ 자로 시작되는 말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자유가 없다. 내 입맛에 따라 바뀔수 있는 확신이 없다… 그런 결혼후의 느낌을 위해서 포기하는 수 많은 당신의 ‘내적자아’는 과연 얼마나 행복할수 있겠는가? 사실 이런 말들조차 사치스러운 면이 많을수 있다… ‘먹고살기 바쁜데 뭔소리냐고…’ 지금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자식들, 부유함, 평화, 아님 섹스? 이런 행복이 곁에 있다는 확신이 있나? 만약 그런 확신이 없어진더면 또 다른 확신을 찾아 떠나 겠는가?
버지니아 울프가 정의한 결혼은 ‘혼자는 아니나 고독’... 이 말에 동의하는가?
인간은 본디 알수없는 존재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면 마치 아내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다 안다는 듯한 태도나 말로 일관하지 않는가? 아님 아예 알기를 포기하던가… 그런 사람들이 될거면 왜 충성서약이 필요한건가? 몸과 영혼도 모자라 자유와 생각까지도 서로에게 저당잡히고 잡고 잡혀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계약이 무슨 의미가 있나? 만약 그럴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 모든걸 던질수 있다면 모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만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이 당신의 배우자 이여야만 하는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가? 그걸 위해서 뭘 할수 있는가? 사랑이 중요하다면 모든걸 버릴수 있는가? 그럴수 없다면 2번째로 중요한, 아님 3번째로 중요한 사랑을 인정하고 평생을 그와 보낸다는 서약을 원하는가? 우리 모두는 그런 ‘거짓’에 이미 많은 싫증을 내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정치랑 무엇이 다른가?
자유는 결혼보다 중요하다… 이걸 깨닫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새장속에 사는 새가 되어 안락하고 평온하게 사는것과 새장밖의 세상으로 나가 훨훨 날아다니는 것중 어느것이 좀더 새다운건지는 자명하다… 단지 새장밖은 ‘변화무쌍’할수 있다는 것인데, 두렵고도 기대되는 느낌… 불륜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여기서 자명하게 알수 있다… 이런 드라마틱한 불륜이 간혹 새로운 새장으로의 진입을 뜻하기도 있는데, 이건 처음의 새장과는 다르다. 이미 새장속에 살아본 새가, 그것도 자유를 향해 몸을 던진 새가 다시 또다른 새장을 찾아가는건 2가지 이유중에 하나뿐… 하나는 새장밖의 세상이 기대했던 세상이 아니거나… 또 하나는 새 새장이 세상밖보다 더 좋거나… 우리는 새장속에 웅크리고는 그것이 최고의 새장이라고 생각하도록 키워져 왔고 이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가장 많은 새장을 만들수 있는 사회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을 보며 쑤군덕대는 많은 사람들… 비 도덕적이고 못된 상종못할 잡것들… 어디서 감이 저런 사람이 대통령을… 불륜. 누구도 왜 빌이 그런일을 했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스캔들’이란 언제나 흥미 진진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자신들의 나약하고 ‘용기없음’을 대신 표출해주는 대리만족으로써… 동시에 그들에게 욕을 해대며 자신들의 양심을 끌어올리려는 얇팍한 수작들… 그러나 인생의 최고 목표를 도달하고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을 결국 가진후에 빌 클린턴 그가 한 말은 ‘삶은 공허하다…’ 라는 것을 아는지… 모니카라는 여자는 분명 어떤식으로든 그의 ‘공허함’을 어루만져 주었음이 분명하다… 빌은 그것을 떨치기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하지만 빌은 끝내 자신을 던지진 못했다. 세상의 최고 높은 위치가 모니카보단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님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그냥 그렇게 이별을 한것이거나… 사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까웠을지도… 본인들외엔 그누가 알수 있으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기대를 결혼상대에게 건다… 기대는 할수 있으나 이건 옳지 않다. 이로 인해 비판이 끊이질 않게 된다. 필요한게 무언지, 바라는게 뭔지… 상대방의 것이 아니므로 순전이 ‘자신의 망상’에 불과한것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다 할수 없는것을 어찌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아주 현실적이 되고 매일매일을 왜 우리는 오늘 같이 살아야되나… 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계를 재정립해가는게 필요하다. 협상하고 재발전시키고… 이것이 결혼일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혼은 프로페셔널한 파트너쉽이여야 한다… 사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지 안다면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없이 형태를 유지한다는건 자기의 삶을 포기하는것과 다를봐 없다… 우리의 옛조상들을 보면 자명하지 않나?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없다면 자신의 자유를 버리고 덫에 걸릴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있지 않는가…
‘애들을 봐서 참고 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아비로서의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직장에서의 책임, 친구로서의 책임, 양심의 책임, 국가에 대한 책임… 어떤이들은 조국을 위해서 가족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사랑을 위해서 조국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애들을 위해서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직장(성공)을 위해서 사랑을 버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책임이 절대적일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떤 책임을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책임이 다른 어떤 책임에 비해 더 그럴수 밖에 없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발각되지만 안는다면 불륜을 꿈꾼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불륜을 하는 당사자들은 불륜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잠재우는데 봉사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사회는 불륜남녀에게 비극으로 끝나는 삶을 강요한다… 공포와 교육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육되어진다… 의미없는 결혼과 불륜이 그렇게 동거하는 사회… 그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울수 있건만 사육되어진 새는 새장을 나갈수 없고 그 두려움은 시간을 이길수 없다… 어찌 세상은 이렇게 되어있단 말인가…
‘오직 한사람하고만 잔다’ 라는게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이 어려운 일임에 틀리없다. 결혼생활에서 ‘같이 잠을 잠다’라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것에 대한 파트너쉽을 가질수 있다면 어떨까… 훨씬 쉬운일이 아니겠는가? 섹스를 하는것에 대한 물리적인 책임(에이즈 같은 병)을 제외한 성취향을 스스로가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조건 비하만 하고말게 아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결혼이후 많은 여자들이 현모양처가 되려는 것… 그게 나쁜게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로운 영혼을 눌러없애는게 나쁜것이다…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유로운 것일터… 남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연구하는것도 좋으나 스스로의 자아를 더욱 발전시킬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하는것이 결혼관계를 위해 더 좋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연구 자체도 안한다면 뭐 할말이 없지만… 당장 결혼생활이 파탄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거요? 라고 내 자신에게도 묻고 싶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뭐 결혼이 재미있을려구 하는건가?’ 그럼 왜 하는거지 당신이 한번 말해보라…
진정한 결혼생활이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아이가 있다면 잘 기르고 (없어도 상관없고), 하지만 나 스스로의 자유와 사색 그리고 고독과 자율을 내 스스로 유지할수 있는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목표와 삶에 전력할수 있도록 지지와 헌신을 해 줄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모든걸 다 해줄수 없다는걸 알고있다… ‘누구와 잤어?’ 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확신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살지마라... 아님 모든걸 다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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