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조에는 대표적인 유파 천연이심류와 북진일도류 외에 각기 다른 유파들의 검술이 많았으므로 실제 사이토가 구사한 검술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본명은 야마구치 이치, 별명은 야마구치 지로, 이치노헤 센하치, 후지타 고로(유신후 경시청 경보부에서 일할당시 사용)
안세이 5년(1858), 15세가 될 무렵에 사이토는 아이즈번(도쿠가와 막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번)의 에도야시키에 있는 도장에서 일도류(一刀流)검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어 있다.
19세 때에 과실로 사람을 베어 죽이게 되어, 에도에서 현상수배가 되자 교토로 도망쳤다고 알려져있다.
교토로 간 이후, 태자류의 검객 요시다(쇼토쿠태자류의 요시다 카츠미로 추정)의 도장에 몸을 의탁하여 대리 사버을 하고 있었지만
덴보 3년, 낭사대(번을 잃은 무사대)를 출입하던중 구면이 있는 곤도 이사미와 접촉하여 신센구미에 들어가게 된다.
신선조의 결성 당시부터 조장, 부장 대리, 검술 사범이라는 중요한 요직에 배치되었고 곤도에게 반감을 품고 독자적 세력을 결성하려 했던 참모 이토 가시타로에 대한 정탐을 하거나 적을 위해서도 일한 행적이 있는 등, 여러 면에서 수수께끼가 많은 인물이다.
사이토 하지메의 주 특기는 암살이다 그는 같은 조장인 다케다 간류사이, 타니 산쥬로의 암살도 감행하였다.
부대 내에서 불세출의 천재검객 오키타 소오시와 필적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 할 정도의 예리한 검술을 가졌다고 한다. 초대국장 세리자와 카모의 암살당시에도 사이토도 가담해 있었다. 신선조 붕괴 후 아이즈번에 체류한 사실로 봐서, 아이즈번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설이 있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경시청의 경부로 근무하면서 아이즈인 후지타 고로 로서 일생을 마쳤다. 무진전쟁 기간동안의 활동과 유신 후에 적군이었던 유신정부의 경찰이 된 경위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지만, 확실한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서남 전쟁에 참가하여 그 전공이 인정되어 경부로 승진한다.
71세에 임종을 맞이한 사이토는 "도대체 몇 번 이름을 바꿔 온 지 알 수 없다. 죽어도 가짜 이름으로 남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임종은 손님방에서 정좌한 채로였다고 한다. 메이지를 살았던 미부로 이면서도 나카쿠라 신파치와는 반대로 검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71년이었다....
메이지 검객 사이토 하지메에 대하여...
신센구미 3번대 대장
분큐 15년(1844) 1/1 ~ 다이쇼 4년(1915) 9/28 71세로 사망
무주번 에도(현재 도쿄도)출신
검술유파는 오노파 일도류 혹은 미조구치 일도류로 알려져 있으나
신선조에는 대표적인 유파 천연이심류와 북진일도류 외에 각기 다른 유파들의 검술이 많았으므로 실제 사이토가 구사한 검술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본명은 야마구치 이치, 별명은 야마구치 지로, 이치노헤 센하치, 후지타 고로(유신후 경시청 경보부에서 일할당시 사용)
안세이 5년(1858), 15세가 될 무렵에 사이토는 아이즈번(도쿠가와 막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번)의 에도야시키에 있는 도장에서 일도류(一刀流)검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어 있다.
19세 때에 과실로 사람을 베어 죽이게 되어, 에도에서 현상수배가 되자 교토로 도망쳤다고 알려져있다.
교토로 간 이후, 태자류의 검객 요시다(쇼토쿠태자류의 요시다 카츠미로 추정)의 도장에 몸을 의탁하여 대리 사버을 하고 있었지만
덴보 3년, 낭사대(번을 잃은 무사대)를 출입하던중 구면이 있는 곤도 이사미와 접촉하여 신센구미에 들어가게 된다.
신선조의 결성 당시부터 조장, 부장 대리, 검술 사범이라는 중요한 요직에 배치되었고 곤도에게 반감을 품고 독자적 세력을 결성하려 했던 참모 이토 가시타로에 대한 정탐을 하거나 적을 위해서도 일한 행적이 있는 등, 여러 면에서 수수께끼가 많은 인물이다.
사이토 하지메의 주 특기는 암살이다 그는 같은 조장인 다케다 간류사이, 타니 산쥬로의 암살도 감행하였다.
부대 내에서 불세출의 천재검객 오키타 소오시와 필적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 할 정도의 예리한 검술을 가졌다고 한다. 초대국장 세리자와 카모의 암살당시에도 사이토도 가담해 있었다. 신선조 붕괴 후 아이즈번에 체류한 사실로 봐서, 아이즈번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설이 있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경시청의 경부로 근무하면서 아이즈인 후지타 고로 로서 일생을 마쳤다. 무진전쟁 기간동안의 활동과 유신 후에 적군이었던 유신정부의 경찰이 된 경위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지만, 확실한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서남 전쟁에 참가하여 그 전공이 인정되어 경부로 승진한다.
71세에 임종을 맞이한 사이토는 "도대체 몇 번 이름을 바꿔 온 지 알 수 없다. 죽어도 가짜 이름으로 남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임종은 손님방에서 정좌한 채로였다고 한다. 메이지를 살았던 미부로 이면서도 나카쿠라 신파치와는 반대로 검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7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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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하지메... 오키타 소오시 ,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와 함께 바람의 검심 신선조 관련 만화나 다른 만화에서 모티브로도 많이 쓰이는 인물이다. 사이토의 구체적인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이토는 주로 암살, 정탐, 감시 등의 직책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을 자주 바꾼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후지타 고로로 개명한 것도 신센구미에서 활동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년의 사이토는 한 일화가 있다. 유신 후 어느 젊은 무사가 나무에 빈깡통을 매달아 놓고 찌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사는 빈 깡통을 향해 계속 찌르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느 노인이 나타나더니 젊은 무사에게 물었다..
"젊은이.. 나에게 그 죽도좀 빌려줄 수 있겠나...?"
젊은 무사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 노인에게 죽도를 주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자세를 바로잡고 중단세를 취하더니 순식간에 찌르기로 깡통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그리고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유유히 사라졌다. 후에.. 그 무사가 마을사람들에게 노인에 대해 물었더니..
전 신선조 3번대 대장이었던 사이토 하지메라고 하였다....
이렇듯 사이토는 찌르기의 달인으로 암살자로 유명한 이유도 이런 무시무시 한 찌르기로 급소를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첨부파일 : 하지메의 분노!(7395)_0400x0318.sw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