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구도, 색채의 대가! David alan harvey 를 만나다.

이치열200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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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쯤, '사진'이란 세계를 알아버린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나의 대학생시절.

다큐멘터리 사진에 입문하려면 의례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아 뒤적이던
노란 테두리가 그려진 표지의 잡지. National Geographic!

정기구독은 엄두못내고, 과월호를 2천원에 파는 헌책방을 전전하며
갖고 있지 않는 것들을 찾아낼 때면 그보다 더 기쁠 순 없었던 그 때.

이젠 3백여 권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거기에서 만난 세계와 사람들... 그 중에 유난히 내 시선을 끌던...
그 이미지들 위에 적혀 있던 공통된 이름.
David alan harvey...

도대체 어떻게 이런 순간을, 이리도 완벽하게, 아름답게 잡아낼 수 있었을까?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또 보게 하던,
그 35mm 광각렌즈 속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구도의 사진들.
그가 서울에 왔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했던
그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의 원형이 David 이란걸 알았으면서도

그렇게 감성적이고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사진의 maker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거구의 그가 보여준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girl friend가 보조 조명을 들어주곤 한다는 그는 강연의 시종일관 열정적이었다.

매그넘 멤버가 되기 전 7년 동안의 슬럼프를 극복했던 이야기는
워크샵에 참가한 한국 유수의 유명현역사진가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듯 했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후 입성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그는 전도유망한 staff photographer였고,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지만 무난했던 결혼생활이었고,
게다가 테니스 플레이 마저 괜챦았던 그 때^^;
창의력, 예술성의 슬럼프는 그렇게 찾아들었다고 했다.

그 7년의 늪속에서 그는 이혼했고, 직장을 그만뒀으며, 집은 아내에게 주고 빈털털이가 됐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되었을 무렵...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노라고 했다.

그리고 7년 째가 되던 해, 정식 매그넘 멤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험난했던 그의 슬럼프 극복과정을 우리에게 답습하라고 절대!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사용하는 디카라며, 누구나 메고 다니는 베이지색 빌링햄 가방에서 꺼낸 카메라는...
20mm 정도로 보이는 짧은 단렌즈를 끼운 (그의 발음대로) 나이콘  D 70 였다. --;

"당신 사진의 그 강렬한 색채와 빛의 대비에는 어떤 비밀이 있나요?"라  물어오는 여학생을 향한 그의 대답.

"해뜨고 나서 5분 후와, 해 지기 5분 전에 많은 사진들을 찍으십시오.
나는 그 나머지의 시간에는 구상하고,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하루에 두 번 있는 그 때의 5분 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사진통신사 사진기자와 내가 가진
커다란 카메라가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

 

 

짧게 밀어내버린 머리,
서글서글하고 정 많아 보이는 쳐진 꼬리의 눈매,
큰 키와 청바지, 셔츠 차림의 심플해 보이는 그는...

그렇게도 책과 인터넷을 통해 만나왔던 David, 그였다.

그가 책에서 읽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행객과 같은 모습으로 billingham 에서 Nikon D70을 천연덕스럽게 꺼내들고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꿈만 같았다.
나도 그를 향해 같이 셔터를 눌러댔다.

그의 cf card에는 내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지웠을 수도 있지만...--;

준비해 간, 내셔널지오그래픽 필드가이드, David 편에다 사인을 받았다.
'For Lee's Best Works, David alan ha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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