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총동창회보 299호 동문칼럼보도 교육자는 졸업이 없다. 올림피아드입시학원(理事長) 金京喆 역사조성에 있어서 과거란 의미가 없다. 창건이후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결실을 보이지 못하는 한 그 과거는 현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집트의 역사가 600년이라 하지만 지금의 이집트가 그런 형편에 있는 한 그런 형편의 이집트로서의 평가 밖에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도 예외여야 할 아무 특권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할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재가 놀라운바 있다할지라도 지금의 우리가 그 보다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한 우리의 문화재 자랑은 못난 자식의 조상자랑 이상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힘찬 유산이 현재에서 현저하게 성숙하고 잇지 못하는 한 현재란 것은 또한 미끄러져 사라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서 더 좋은 역사의 조성을 바랄 수 있다면 그것은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진지한 건설노력에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의의는 과거나 현재보다도 오히려 미래관계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육자의 사회적 위치와 사명을 생각한다. 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일생이 그 가정의 미래관계에서 평가됨과 같은 정도로 사회에서 후배양성에 평생을 바치는 교육자의 위치도 평가되는 것이다. 동양윤리에서 "군사부일체"란 말은 서양에서 흔히 보는 상매관계나 직업의식을 초월한 교육자 의식이어서 음미할 가치가 크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훌륭한 역사를 미래에서 기대하려면 지금의 교육자를 우대해야 한다. 교육자를 우대한다는 것은 무슨 생활비나 넉넉히 주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등의 상식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만은아니다. 우선 교육자에게 자기의 교육 이념을 실현시킬 자유를 충분히 허용함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에 대한 교육자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교육은 기구나 기교나 사명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본질은 인격대 인격이나 정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의 전승과 교류와 그리고 인간 인격의 발생·성장에서 참모습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가치는 자유와 자기결단에 의한 자발적 행위 및 창의의 생성에서만 생명적으로 발견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나라, 자유의 나라라는 것은 자유세계 전체가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인 바 그 나라의 중앙정부에는 소위 교육부란 것이 없다. 다만 교육자들의 연구실시 사항의 보고들을 수집 정리하여 전국 교육기관에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중앙 연구기관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각 『교육구』는 각자의 교육구역의 교육을 위하여 가장 잘 알려진 교육자를 초빙하여 교육구의 교육방침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나은 것으로 실시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미국인으로서는 노예근성적인 인간은 산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사람들 보다 해방 후에 교육받은 사람들이 구김살이 없고 쭉 펴진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만큼 자유로운 교육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육자에게 인재 양성의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한다. 교육기관이나 국가 공무원이라는 규격품 다종 생산공장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특성을 소질대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인재를 육성하는 학원인(學園人)인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는 교육을 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다 받아 교육시키고 싶은 것이 교육자의 심정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은 만큼 사회가 전면적으로 높아지고 밝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직업이 없어 고등교육자 룸펜(room-pen)이 된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먹기에 달린 것이다. 대학 졸업한 농부, 대학 졸업한 직능공, 또는 어부 등등 말하자면 대학졸업을 하나의 재산, 명예,자격증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좀더 창의와 성실성을 가진 노동자 농민 등 직업인으로 봉사할 각오만 더 굳게 가진다면 그들은 어디서나 틀림없이 대학졸업자로서 존경을 받을 것이며, 보람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란 것은 고등학교 졸업한 때에 국어나 수학이나 영어에 몇 점 더 받고 덜 받는 것으로 측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과목 득점에는 평범선 정도라 할지라도 그의 의지라든지 그의 사회 봉사적 정열이라든지 그의 준비의 스케일이라든지 비범한 사람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은 제대로 고등교육을 받는 동안에 거대한 인물로 육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력이 평범선 이상인 사람에게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면 결국 면도칼 따위의 인물이 더 많이 산출되므로 말미암아 장검이나 도끼 같은 대국을 요리할 만한 인물이 결핍되어 탄식할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셋째로 교육자의 위신과 지위를 높이 대접해야 한다. 생활의 보장도 보통 시민에게 허용된 정도의 것은 보장해 줘야 하겠지만 그를 위로하고 존경하며 스승으로 대접하는 마음의 태도가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교육자는 성밖에 서서 후배들로 하여금 자기 어깨를 밟고 그 성을 넘어가게 하고 그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리한 다음에 자기는 성밖에 혼자 우두커니 남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 심정에는 자랑스러움도 있겠지만 외로움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어깨를 밟고 성을 넘어 갈 수 있는 사람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홀로 우두커니 성밖에 남은 인간을 위로하고 높이고 존경해 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후배가 아무리 뛰어나게 높아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자기에게 어깨를 밟게 한 스승을 멸시하거나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육자들 자신들에게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어서 교육자 됨을 졸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후배들을 위한 제사장적(祭司長的) 대도(代禱)의 책임이 있다. 비록 강당에서 강의하거나 교육기관에게 행정을 맡는 일이 없다할지라도 그의 제사장적(祭司長的) 대도(代禱)의 뒷받침 구실만은 단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음세대가 잘 살기를 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바르게 살기를 더욱 간절히 기원한다. 그는 다음세대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그들이 진실하기를 염원한다. 그는 다음세대가 유능하며 임기웅변에 원만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들이 원리원칙에서 사는 사람이기를 더많이 원하고 있다. 그는 다음세대가 국가에 유용한 인물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세계적으로 유용한 인물이기를 더욱 원하고 있다. 교육자가 간혹 실제에 우원(迂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땅의 사람이기보다도 땅이 하늘로 연소점을 노리는 인간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자의 노후의 사명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가 한다.
교육자에 대한 사회적 우대와 사명감
교육자는 졸업이 없다.
올림피아드입시학원(理事長) 金京喆
역사조성에 있어서 과거란 의미가 없다. 창건이후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서 살아 움직이는 결실을 보이지 못하는 한 그 과거는 현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집트의 역사가 600년이라 하지만 지금의 이집트가 그런 형편에 있는 한 그런 형편의 이집트로서의 평가 밖에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도 예외여야 할 아무 특권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할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재가 놀라운바 있다할지라도 지금의 우리가 그 보다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한 우리의 문화재 자랑은 못난 자식의 조상자랑 이상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힘찬 유산이 현재에서 현저하게 성숙하고 잇지 못하는 한 현재란 것은 또한 미끄러져 사라지는 시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서 더 좋은 역사의 조성을 바랄 수 있다면 그것은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진지한 건설노력에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의의는 과거나 현재보다도 오히려 미래관계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육자의 사회적 위치와 사명을 생각한다.
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일생이 그 가정의 미래관계에서 평가됨과 같은 정도로 사회에서 후배양성에 평생을 바치는 교육자의 위치도 평가되는 것이다.
동양윤리에서 "군사부일체"란 말은 서양에서 흔히 보는 상매관계나 직업의식을 초월한 교육자 의식이어서 음미할 가치가 크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훌륭한 역사를 미래에서 기대하려면 지금의 교육자를 우대해야 한다. 교육자를 우대한다는 것은 무슨 생활비나 넉넉히 주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등의 상식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만은아니다.
우선 교육자에게 자기의 교육 이념을 실현시킬 자유를 충분히 허용함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에 대한 교육자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교육은 기구나 기교나 사명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본질은 인격대 인격이나 정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의 전승과 교류와 그리고 인간 인격의 발생·성장에서 참모습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가치는 자유와 자기결단에 의한 자발적 행위 및 창의의 생성에서만 생명적으로 발견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나라, 자유의 나라라는 것은 자유세계 전체가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인 바 그 나라의 중앙정부에는 소위 교육부란 것이 없다.
다만 교육자들의 연구실시 사항의 보고들을 수집 정리하여 전국 교육기관에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중앙 연구기관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각 『교육구』는 각자의 교육구역의 교육을 위하여 가장 잘 알려진 교육자를 초빙하여 교육구의 교육방침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나은 것으로 실시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미국인으로서는 노예근성적인 인간은 산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사람들 보다 해방 후에 교육받은 사람들이 구김살이 없고 쭉 펴진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만큼 자유로운 교육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육자에게 인재 양성의 기회를 보장해 줘야 한다. 교육기관이나 국가 공무원이라는 규격품 다종 생산공장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특성을 소질대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인재를 육성하는 학원인(學園人)인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는 교육을 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다 받아 교육시키고 싶은 것이 교육자의 심정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은 만큼 사회가 전면적으로 높아지고 밝아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직업이 없어 고등교육자 룸펜(room-pen)이 된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다시 먹기에 달린 것이다. 대학 졸업한 농부, 대학 졸업한 직능공, 또는 어부 등등 말하자면 대학졸업을 하나의 재산, 명예,자격증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좀더 창의와 성실성을 가진 노동자 농민 등 직업인으로 봉사할 각오만 더 굳게 가진다면 그들은 어디서나 틀림없이 대학졸업자로서 존경을 받을 것이며, 보람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이란 것은 고등학교 졸업한 때에 국어나 수학이나 영어에 몇 점 더 받고 덜 받는 것으로 측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과목 득점에는 평범선 정도라 할지라도 그의 의지라든지 그의 사회 봉사적 정열이라든지 그의 준비의 스케일이라든지 비범한 사람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은 제대로 고등교육을 받는 동안에 거대한 인물로 육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력이 평범선 이상인 사람에게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면 결국 면도칼 따위의 인물이 더 많이 산출되므로 말미암아 장검이나 도끼 같은 대국을 요리할 만한 인물이 결핍되어 탄식할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셋째로 교육자의 위신과 지위를 높이 대접해야 한다. 생활의 보장도 보통 시민에게 허용된 정도의 것은 보장해 줘야 하겠지만 그를 위로하고 존경하며 스승으로 대접하는 마음의 태도가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교육자는 성밖에 서서 후배들로 하여금 자기 어깨를 밟고 그 성을 넘어가게 하고 그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리한 다음에 자기는 성밖에 혼자 우두커니 남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 심정에는 자랑스러움도 있겠지만 외로움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어깨를 밟고 성을 넘어 갈 수 있는 사람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홀로 우두커니 성밖에 남은 인간을 위로하고 높이고 존경해 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후배가 아무리 뛰어나게 높아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자기에게 어깨를 밟게 한 스승을 멸시하거나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육자들 자신들에게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어서 교육자 됨을 졸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후배들을 위한 제사장적(祭司長的) 대도(代禱)의 책임이 있다.
비록 강당에서 강의하거나 교육기관에게 행정을 맡는 일이 없다할지라도 그의 제사장적(祭司長的) 대도(代禱)의 뒷받침 구실만은 단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음세대가 잘 살기를 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바르게 살기를 더욱 간절히 기원한다.
그는 다음세대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그들이 진실하기를 염원한다. 그는 다음세대가 유능하며 임기웅변에 원만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들이 원리원칙에서 사는 사람이기를 더많이 원하고 있다.
그는 다음세대가 국가에 유용한 인물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세계적으로 유용한 인물이기를 더욱 원하고 있다. 교육자가 간혹 실제에 우원(迂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땅의 사람이기보다도 땅이 하늘로 연소점을 노리는 인간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자의 노후의 사명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