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유창한 발음으로 자신을 ‘아티스트 낸시 랭’이라고 소개하면서. 평면미술, 영상예술, 사진, 행위예술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패션브랜드의 아트 디렉터, 방송진행자, 광고모델 등 하는 일이 많은 낸시 랭을 어떻게 수식해야 고민했지만 첫 인사에서 그 고민은 사라졌다.
아티스트. 그녀가 굳이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현대미술이 대중과 친숙해지길 원하는 마음에서다. 음악에서는 유진 박, 이루마가 클래식 음악을 대중과 아주 가깝고 친숙하게 만들었지만 미술은 아직 대중과 멀기만 하다. 낸시 랭의 이런 활발한 ‘대외활동’은 이들과 같은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트렌드 리포트 必’ 진행도 맡았고, 패션 브랜드 쌈지에 아트 디렉터로 ‘취직’도 했다.
“모든 분야를 하나의 신(scene)으로 보고 있어요. 패션분야에서는 옷이 캔버스가 되고 있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어필합니다. 클래식 음악에는 돈도 많이 돌고, 대중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미술은 아직 멀었어요.”
낸시 랭은 작품과 개인 생활이 일치해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라는 별칭이 있다. 작품이나 생활방식에서 색깔이 분명하지만 솔직대담한 발언과 행동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낸시 랭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낸시 랭은 오히려 “나는 경주마처럼 목표를 향해 뛸 뿐이다. 나는 목표가 뚜렷하다. 나에게 비난과 열광이 공존하지만 내가 취사선택할 뿐이다. 모두 내가 표현하는 방식이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국적을 가진 낸시 랭은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낸시 랭(Nancy Lang)이란 이름은 국제적인 이름을 갖기 위해 변호사를 통해 ‘호적’을 바꾼 것. 성으로 삼은 ‘랭’은 미국성이지만 프랑스와 중국, 유태인에게도 사용되는 등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된다. 특히 타이포그래픽 등 비주얼도 좋아 몇 가지 후보 중에 최종 선택했다.
낸시 랭은 시련을 통해 삶과 생활을 보는 주관이 뚜렷해졌다.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제로 태어났지만 사춘기 시절, 집 안의 사업실패로 어려움을 겪게 됐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상에 펼칠 기회도 줄어들게 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어렵던 시절, 초청받지 못했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짙은 화장과 속옷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를 벌여 스스로 기회를 잡았다.
낸시 랭 작품의 키워드는 ‘금기’다. 그녀는 왜 금기를 좋아할까.
“일부 권력층이 자기들만 좋은 것을 향유하기 위해 이를 금기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금기를 건드리면 책임이 커지지만 그러나 예술은 어떤 잘못을 비판하며 보여줄 수 있고 진실을 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티스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아티스트가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 말이에요.”
낸시 랭은 요즘 방송진행자와 ‘회사원’으로 바쁜 활동이 더욱 바빠졌다.
‘트렌드 리포트 必’은 연예정보프로그램이 아닌 미술을 패션에 접목할 수 있는 프로여서 진행을 수락했다. 이는 처음으로 아티스트가 전체 방송진행을 맡게 됐으며, 기존 대본에 따르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가 자신의 생각과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낸시 랭이 맡은 이 프로그램은 케이블 전체 시청률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낸시 랭 대국민지지 프로젝트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는 낸시 랭에게 연예계의 유혹도 많을 듯 하다. 낸시 랭은 “연예인들이 받을 수 있는 제안은 다 들어온다”고 했다.
“연예활동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가수나 연기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쇼 비즈니스를 아트에 결합하는 것이면 할 겁니다. 예를 들면 음악부분이라면 뮤직비디오를 통해 나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려는 기자에게 낸시 랭은 자신의 궁극적인 꿈을 들려줬다.
“내 힘으로 서울을 영국이나 뉴욕처럼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어서 국가에 기부하고 싶어요. 또 그것으로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는 앞으로 35년간을 활동기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 꿈을 꼭 이루고 싶어요.”
예술의 ‘대국민 홍보’를 위한 일에 몸을 던진 낸시 랭은 “내 삶이 DVD라면 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DVD가 되고 싶다”며 다시 악수를 청했다.
방송진행 맡은 낸시 랭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원겸 기자] “안녕하세요, 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유창한 발음으로 자신을 ‘아티스트 낸시 랭’이라고 소개하면서. 평면미술, 영상예술, 사진, 행위예술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패션브랜드의 아트 디렉터, 방송진행자, 광고모델 등 하는 일이 많은 낸시 랭을 어떻게 수식해야 고민했지만 첫 인사에서 그 고민은 사라졌다.
아티스트. 그녀가 굳이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현대미술이 대중과 친숙해지길 원하는 마음에서다. 음악에서는 유진 박, 이루마가 클래식 음악을 대중과 아주 가깝고 친숙하게 만들었지만 미술은 아직 대중과 멀기만 하다. 낸시 랭의 이런 활발한 ‘대외활동’은 이들과 같은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트렌드 리포트 必’ 진행도 맡았고, 패션 브랜드 쌈지에 아트 디렉터로 ‘취직’도 했다.
“모든 분야를 하나의 신(scene)으로 보고 있어요. 패션분야에서는 옷이 캔버스가 되고 있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어필합니다. 클래식 음악에는 돈도 많이 돌고, 대중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미술은 아직 멀었어요.”
낸시 랭은 작품과 개인 생활이 일치해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라는 별칭이 있다. 작품이나 생활방식에서 색깔이 분명하지만 솔직대담한 발언과 행동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낸시 랭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낸시 랭은 오히려 “나는 경주마처럼 목표를 향해 뛸 뿐이다. 나는 목표가 뚜렷하다. 나에게 비난과 열광이 공존하지만 내가 취사선택할 뿐이다. 모두 내가 표현하는 방식이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국적을 가진 낸시 랭은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낸시 랭(Nancy Lang)이란 이름은 국제적인 이름을 갖기 위해 변호사를 통해 ‘호적’을 바꾼 것. 성으로 삼은 ‘랭’은 미국성이지만 프랑스와 중국, 유태인에게도 사용되는 등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된다. 특히 타이포그래픽 등 비주얼도 좋아 몇 가지 후보 중에 최종 선택했다.
낸시 랭은 시련을 통해 삶과 생활을 보는 주관이 뚜렷해졌다.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제로 태어났지만 사춘기 시절, 집 안의 사업실패로 어려움을 겪게 됐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상에 펼칠 기회도 줄어들게 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어렵던 시절, 초청받지 못했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짙은 화장과 속옷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를 벌여 스스로 기회를 잡았다.
낸시 랭 작품의 키워드는 ‘금기’다. 그녀는 왜 금기를 좋아할까.
“일부 권력층이 자기들만 좋은 것을 향유하기 위해 이를 금기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금기를 건드리면 책임이 커지지만 그러나 예술은 어떤 잘못을 비판하며 보여줄 수 있고 진실을 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티스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아티스트가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 말이에요.”
낸시 랭은 요즘 방송진행자와 ‘회사원’으로 바쁜 활동이 더욱 바빠졌다.
‘트렌드 리포트 必’은 연예정보프로그램이 아닌 미술을 패션에 접목할 수 있는 프로여서 진행을 수락했다. 이는 처음으로 아티스트가 전체 방송진행을 맡게 됐으며, 기존 대본에 따르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가 자신의 생각과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낸시 랭이 맡은 이 프로그램은 케이블 전체 시청률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낸시 랭 대국민지지 프로젝트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는 낸시 랭에게 연예계의 유혹도 많을 듯 하다. 낸시 랭은 “연예인들이 받을 수 있는 제안은 다 들어온다”고 했다.
“연예활동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가수나 연기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쇼 비즈니스를 아트에 결합하는 것이면 할 겁니다. 예를 들면 음악부분이라면 뮤직비디오를 통해 나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려는 기자에게 낸시 랭은 자신의 궁극적인 꿈을 들려줬다.
“내 힘으로 서울을 영국이나 뉴욕처럼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어서 국가에 기부하고 싶어요. 또 그것으로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는 앞으로 35년간을 활동기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 꿈을 꼭 이루고 싶어요.”
예술의 ‘대국민 홍보’를 위한 일에 몸을 던진 낸시 랭은 “내 삶이 DVD라면 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DVD가 되고 싶다”며 다시 악수를 청했다.
gyummy@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