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도일]주홍색 연구-5. 광고를 보고 온 손님

이남희200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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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광고를 보고 온 손님

 

나는 몸이 허약한 데다 오전 내내 돌아다니 탓으로,

오후가 되어서는 피로를 느꼈다.

그래서 홈즈가 연주회에 가고 나서 소파에 몸을 눕히고는 두어 시간 가량 잠을 자기로 했지만, 여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로 신경이 곤두섰거니와,

요상한 공상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살해된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남자가 독살되었다는 홈즈의 추리는 의당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홈즈가 시체의 입 언저리의 냄새를 맡은 것도 무엇인가 짚이는 것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더구나 시체엔 상처도 목이 졸린 흔적도 없으므로,

독살이 아니고는 달리 죽은 원인을 생각해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독살이라면 바닥에 흘러 있던 그 많은 피는 누구의 것인가?

현장에는 싸움을 한 흔적도 없었고,

죽은 자가 상대방을 해쳤다고 생각되는 흉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나는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홈즈의 자신만만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홈즈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실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홈즈는 늦게야 돌아왔다.

그렇게 늦은 것으로 보아, 그냥 연주회에만 다녀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홈즈는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말했다.

 

“연주회는 굉장했다네. 그런데 자네 무엇 때문에 그러나?

안색이 나쁜걸. 그 살인 사건으로 충격이 커서 그러는가?”

 

“사실은 그렇다네.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험한 꼴을 많이 보아 온 터라,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동하는 일이 없는데 말야.

저 마이완드의 전투에서는 전우가 갈기갈기 찢겨져 죽는 것을 보고도 대범했는데.”

 

“이해가 가네. 이 사건에는 생각할수록 섬뜩한 점이 있지. 그런데 석간신문은 보았나?”

 

“아니. 왜?”

 

“사건에 관해서 상당히 자세한 기사가 나와 있더군.

단, 시체를 들어올렸을 적에 여자의 결혼반지가 굴러 떨어진 이야기는 빠져 있더군. 천만다행이야.”

 

“그건 또 왜 그런가?”

 

“광고를 보게나. 내가 연주회에 가면서 부탁한 광고라네.”

 

홈즈가 신문을 건네주며 지적한 ‘분실물’란을 보니 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나 있었다.

 

오늘 아침 브릭스턴로 화이트 하트 주점과 홀랜드 그로브 사이의 길 위에서 금으로 된 결혼반지를 주웠음. 오늘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베이커가 221번지 B호 와트슨에게 연락바람.

 

“자네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 걸 용서하게.

하지만 내 이름을 썼다가는 경찰이 냄새를 맡고 쓸데없는 개입을 할지도 몰라서…….”

 

“아니, 상관없네. 하지만 누가 금반지를 찾으러 오면 어쩐다?”

 

홈즈가 금반지를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걱정할 것 없네. 이걸로 대용하면 되니까. 모양이 같은 것을 고르느라고 애먹었다네.”

 

“그래, 자네는 어떤 사람이 광고를 보고 올 것이라고 예상하나?”

 

 “물론, 갈색의 코트를 입고 불그스레한 얼굴에, 앞이 네모진 구두를 신은 그 남자가 오겠지.

 만일 본인이 오지 않으면 공범자를 보낼 걸세.”

 

“그쪽에서는 이 일이 혹시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럴 걱정은 없네. 내 추리가 정확하다면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틀림없네만 그 남자는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반드시 반지를 찾으러 올 걸세.

 아마도 드리버의 시체 위에 몸을 굽혔을 적에 반지를 떨어뜨리고도 그때는 그것을 몰랐을 걸세.

현장을 떠나서 한참 가다가 반지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급히 현장으로 되돌아 왔지만,

촛불을 끄지 않은 실수로 이미 경관이 와 있었고, 호루라기 소리에 경관들과 맞부딪치게 되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술주정뱅이로 가장했던 걸세.

여기에서 한 번 그 남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게.

그로서는, 혹시 그 반지를 급히 현장에서 나와 도망치다가 길가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게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문광고의 분실물란도 살펴볼지도 모를 일일세.

그렇게 되면 반드시 이 광고가 눈에 띄겠지. 크게 기뻐할 걸세. 덫이라고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겠나?

길에서 반지를 주운 거라면, 살인과 연관지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반지를 찾으러 올 걸세. 한 시간 안으로 찾아올 거라고.” “오면 어쩔 셈인가?”

 

 “아아, 그 조치라면 나에게 맡기게. 그런데 자네는 무기를 갖고 있던가?”

 

 “군의관 시절에 지녔던 군대의 연발 권총과 탄환이 약간.”

 

“그럼 그걸 손질해서 탄환을 채워 두게.

상대는 흉폭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기습을 해서 붙잡을 셈이지만, 만반의 준비는 해 둬야지.”

 

내가 침실로 가서 권총을 가지고 돌아와 보니까 테이블 위는 말끔히 정돈되고, 홈즈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긴장된 투로 말했다.

 

“사건은 중대한 고비로 접어들었네. 지금 막 미국에서 전보의 회신이 왔네. 내 판단은 틀림없었어.”

 

“그렇다면?”

 

“차차 알게 될 걸세. 그 권총은 보이지 않게 간수하게. 그자가 나타나더라도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게나, 뒷일은 나에게 맡기고.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거나 해서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주었다가는 눈치를 챌지도 모르니까.”

 

내가 시계를 보고 말했다.

 

“8시가 넘었네.”

 

“이제 곧 나타날 걸세. 문을 조금 열고, 열쇠는 열쇠 구멍에 꽂아 놓아 주게. 고맙네. 어라? 벌써 온 모양인 걸…….”

 

 현관 쪽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홈즈가 조용히 일어나, 자기 의자를 문 쪽으로 옮겼다.

가정부가 현관 쪽으로 나가 문을 여는 기척이 들렸다.

 웅얼웅얼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와트슨 씨의 하숙집이 맞습니까?”

 

가정부가 그렇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곧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디고 끄는 듯한 발소리였다.

홈즈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고개를 꺄우뚱했다.

발소리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십시오.”

 

그런데 예상한 우락부락한 남자가 아니라 주름살투성이의 노파가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왔다.

 밝은 불빛에 눈이 부신지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고는 눈을 끔벅거리며 약간 떨리는 손으로 옷을 추슬렀다.

흘끔 홈즈의 얼굴을 살피니 실망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노파는 석간신문을 꺼내더니, 우리에게 광고란을 가리켜 보였다.

 

“저, 신사분들. 나는 이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오.

브릭스턴로에서 주웠다는 금반지 말이우.

내 딸인 샐리의 것이라우. 그 애는 작년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유니온 기선에서 일하고 있지요.

돌아와서 그 반지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면 무슨 난리를 칠지도 모르니까요.

사위란 녀석은 성질이 거친데다가 술이라도 마시면 망나니라오.

 실은 어젯밤 딸아이가 서커스 구경을 간다고 나갔다가 그만…….”

 

나는 반지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 반지가 따님 것이 틀림없습니까?”

 

노파는 소리쳤다.

 

“맞아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샐리는 살았습니다.”

 

나는 연필을 손에 들고서 물었다.

 

“주소라도 알려 주시지요.”

 

“하운즈디치의 던컨로 13번지요. 이 곳에서는 꽤 멀다오.”

 

홈즈가 날카롭게 입을 열었습니다.

 

“하운즈디치에서 서커스단이 진을 치고 있는 템스 강변으로 가자면 브릭스턴로를 거칠 필요가 없을 텐데요.”

 

노파는 흠칫 홈즈를 노려보더니, 곧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이쪽 선생님은 내 주소를 물어보신 게 아닌가요?

내 딸이야. 페컴의 메이필드 플레이스 3번지에 세들어 살고 있지요.”

 

“그럼 할머니 성함은?”

 

“소여라고 해요. 딸은 샐리 데니스.

사위의 이름은 톰 데니스라오. 배를 타면 똑똑하게 굴어 신용도 괜찮은 모양이지만, 육지에 올라오면 술만 퍼마신다오. 글쎄.”

 

 나는 홈즈의 눈짓에 따라 이야기를 끝냈다.

 

“그럼, 소여 할머니. 이 반지는 따님에게 전해 주십시오.

주인을 찾게 되어 천만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감사의 말을 입속에서 우물우물하더니 반지를 챙겨 넣고는, 한쪽 발을 절면서 방문을 나섰다.

홈즈는 방문이 닫히자 곧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어느새 콧수염을 달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저 노파의 뒤를 밟겠네. 틀림없는 공범자일 테니까.

은신처를 알아내면 범인도 찾을 수가 있겠지. 자지 말고 기다려 주게.”

 

노파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홈즈가 뒤따라 나갔다.

내가 창틈으로 내다보니 노파가 길 건너 쪽으로 절룩절룩 걸어가는 것이 보이고 간격을 두고서 홈즈가 뒤를 밟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홈즈의 추리가 틀림없다면 홈즈는 지금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된다.’

 

홈즈는 나더러 자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행 결과를 알기까지는 궁금해서 자려야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홈즈가 나간 것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얼마 뒤에야 돌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담배 파이프의 연기를 내뿜으며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뒤적거리며 기다렸다.

마침내 10시가 지나고,

가정부가 자기 방으로 가는 문소리가 들렸다. 곧 11시가 되고, 이번에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침실로 가는 듯, 차분한 발소리가 방 앞을 스치고 지나간 지도 오래 되었다.

마침내 홈즈가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려나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홈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미행이 실패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홈즈는 마음속에서 쓴웃음과 분함이 한동안 뒤범벅이 되는 듯하더니. 쓴웃음 쪽으로 마음을 돌린 듯 낄낄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 실수만은 경시청 나리들에게 숨기고 싶구먼,

그들은 노상 나에게 놀림을 받고 있는 터라,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씨구나 좋아할 테니 말일세.

하지만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결국 언젠가는 범인들의 기를 꺾게 된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만은 알아주기 바라네.”

 

 “어떻게 된 일인데 그러나?”

 

“뭐, 실패담이라고 못할 건 없지.

그 노파는 한 발을 절면서 자못 숨이 찬다는 듯이 어기적거리더군.

그러더니 때마침 지나가는 빈 마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나는 노파가 갈 곳을 뭐라고 대는지 들어보기 위해,

 눈치 채이지 않게 조심을 하면서 바짝 가까이 갔었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쓸 필요도 없었어.

노파는 길 건너에서도 들릴 만큼 큰소리로

‘하운즈디치의 던컨로 13번지로 가요.’

라고 외치더군. 나는

 ‘그렇다면 그 주소는 진짜였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노파가 마차 속으로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차의 뒤꽁무니에 달라붙었네.

마차 뒤꽁무니에 달라붙는 건 탐정이라면 누구나 익혀 두어야 할 기술이지.

마차는 곧 움직여 목적지인 던컨로까지 쉬지 않고 달렸네. 나는 13번지에 도착하기 전에 마차에서 뛰어내려,

행인으로 가장하고 뒤쫓아 갔지.

곧 마차가 멈추고 마부가 내리더니 출입구 앞에 다가가 손님이 내리기를 기다리더군.

그러나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 거였네.

내가 급히 가보니 마부가 어두운 마차 안을 들여다보며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게 아닌가.

마차 안에는 노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거였네.

나는 마부와 함께 13번지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소여라는 노파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게 아닌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다면 그 절룩거리는 노파가 마차가 달리고 있는 동안, 마부나 자네에게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다는 건가?”

 

 “노파라고?

천만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우리가 노망한 늙은이 꼴이지 뭔가.

그 노파는 젊은 남자가 변장한 것임에 틀림없어.

 더구나 운동신경이 발달한 남자라서 연기도 배우를 뺨치는 자일세.

 정말 그 변장하며 노파 행세는 일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

그 자는 미행을 당하는 것을 알고는 마차를 이용하여 나를 따돌린 걸세.

내가 마차 뒤에 달라붙는 순간, 마차에서 내려버렸겠지.

아마도 내가 노리는 상대는 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일당이 몇 명은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와트슨 자네는 이미 피로가 겹치고 겹쳤을 것 같군. 자, 잊어버리고 잠이나 자세.”

 

사실 나는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침실로 물러가며 뒤돌아보니 홈즈는 벽난로 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낮게 바이올린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홈즈는 저렇게 밤을 새우며 이 불가사의한 사건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