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둠 속의 빛 레스트레이드가 입 밖에 낸 말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기에 우리 세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그슨은 그 바람에 물은 섞은 위스키 잔을 둘러엎을 정도였다. 나는 살며시 홈즈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홈즈는 입술을 깨물면서 신음하듯 말했다. “스탠거슨까지! 더더욱 복잡해지는 걸…….” 그 말에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복잡했는데 말입니다.” 그레그슨은 따지듯 물었다. “자네, 그 얘기 확실한 건가?” “나는 스탠거슨의 방에서 곧장 이리로 오는 길이라네. 내가 시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야.” 홈즈가 두 사람의 입씨름을 막으면서 말했다. “실은, 지금 그레그슨 경감에게서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당신이 보고들은 바를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레스트레이드는 의자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만, 나는 드리버 살해에는 스탠거슨이 관계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스탠거슨이 살해된 이상, 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판명된 셈입니다. 어쨌거나, 그 동안 나는 스탠거슨이 범인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의 행방 수사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3일 저녁 8시 반경 유스턴 역에 갔었다는 것은 하숙집 앞에서 그들을 태운 마부를 찾아내어 규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리버는 다음 날 새벽 2시에 시체로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스탠거슨이 8시반부터 범행시간까지 무엇을 했는지, 또한 범행 뒤에 어디로 갔었는지를 조사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우선 리버풀에 전보를 쳐서 스탠거슨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미국행 기선에 승선하지 못하도록 조취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스턴 역 부근의 호텔이나 하숙집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역에서 헤어졌다면, 그날 밤은 역 부근의 여관에 묵고 이튿날 아침 역 앞에서 만나는 것이 상례이니까요.” 홈즈가 물었다. “그러나 헛일이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스탠거슨은 역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아침부터 수소문하러 돌아다니다가 8시경에 리틀 조지가의 할리데이비스 호텔에 들러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여기에 스탠거슨이라는 사람이 투숙하지 않았소?’ 그러자 호텔 종업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하더군요. ‘아, 오셨군요. 스탠거슨 씨가 기다리던 분인 모양인데, 손님은 이틀 전부터 기다렸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9시에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방으로 안내해 주시오.’ 예고도 없이 나타나면 스탠거슨이 당황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의 방은 3층에 있었습니다. 보이는 방을 알려주고는 되돌아섰지요. 그때 나는 섬뜩한 것을 보았습니다. 경찰 생활 20년을 했지만, 등줄기가 오싹했습니다. 문 밑으로 한 줄기 피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흘러나와, 작은 피의 연못처럼 괴어 있었던 겁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보이는 되돌아왔습니다만, 그것을 보자 넋을 잃고 흐느적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보이와 둘이서 몸으로 부딪쳐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창문이 열려 있고, 창밑에 잠옷 차림의 남자가 몸을 구부리고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지고 손발이 굳어 있었습니다.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상태였지요. 얼굴을 돌려 보이에게 확인시키자, 투숙한 스탠거슨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을 꿰뚫은 깊은 상처가 있고, 그것이 치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체에는 무서운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등을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홈즈가 말했다. “피로 RACHE라고 써놓았겠지.”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네 사람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 범인이 하는 일은 만사가 섬뜩해서, 이 범죄가 유난히 음산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전쟁터에서도 많은 피를 보았지만, 이번 사건은 생각하면 할수록 오싹오싹 소름이 끼쳤다. 레스트레이드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범인을 본 사람이 있답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청년인데, 그는 호텔 뒷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늘 그곳에 가로놓여 있던 사다리가 3층에 걸려있고, 창문이 열려 있더랍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가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사다리를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휘파람을 불며 너무나도 태연해서 집수리라도 맡은 청부업자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키가 크고 얼굴이 불그스레했으나, 이상한 점은 사다리를 오르내리기에는 불편한 갈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범인은 살인을 한 뒤 한동안 현장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인지, 손을 씻은 듯 세면기에 피가 섞인 물이 괴어 있었으며, 칼의 피를 닦은 시트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범인의 인상착의가 홈즈가 예상한 범인의 것과 일치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홈즈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은 없었다. 홈즈가 물었다. “방안에는 범인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가요?” “별로, 스탠거슨의 주머니에는 드리버의 지갑이 들어있었습니다. 스탠거슨은 늘 드리버를 대신해서 돈을 지불했기에 이상할건 없습니다. 지갑 속에는 80파운드의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만, 도둑맞은 흔적은 없습니다. 이로써 두 번에 걸친 살인사건의 동기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돈이 목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스탠거슨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것으로는 한 달 전에 미국 동부의 클 리블랜드시에서 발신한 전보가 한 통 있었을 뿐입니다. 전문의 내용은 ‘J. H.는 유럽에 있음.’ 입니다. 발신인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이렇다 할 점은 없습니다. 스탠거슨이 잠들기 전에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소설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의자위에는 파이프 하나, 그리고 타자기 위에는 물이 반쯤 남은 컵, 창틀위에는 환약이 둘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홈즈가 탄성을 지르며 의장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이제 최후의 단서가 잡혔다. 이제 사건은 해결됐다!” 두 경감은 갑작스러운 홈즈의 외침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홈즈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무척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으나, 마침내 그 실마리가 풀렸나 봅니다. 물론, 자세한 점은 이제부터의 조사로 보완해 나가야겠지만, 드리버가 역에서 비서 스탠거슨과 헤어져 스탠거슨이 시체가 되어 발견되기까지의 대체적인 사실이 눈앞 에서 보듯 선명합니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 그 증거를 한 번 보여 드릴까요? 그러면 레스트레이드 경감, 그 환약을 갖고 왔습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작은 상자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갖고 왔습니다. 지갑과 전보 등을 본서에 보관시킬 때에 묻어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건 별로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그걸 이리 주시오.” 홈즈가 환약을 받아들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 와트슨, 이거 보통 환약 같은가?” 진주 빛을 띤 작은 환약으로, 창문에 비쳐 보니 투명했다. “가볍고 투명한 것으로 보아 물에 녹겠는걸.” “그럴걸세. 그런데 주인집 테리어종 개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지 못 하겠으니 어떻게든 평안히 숨을 거두게 할 수 없겠냐고 아주머니가 자네에게 상의하는 걸 들었네만, 그 개를 데리고 와 주겠나?” 나는 곧 아래층에 내려가 개를 안고 올라왔다. 숨소리가 거칠고, 눈빛이 흐린 것으로 보아 죽을 때가 임박한 것 같았다. 홈즈는 주머니칼을 꺼내면 말했다. “그럼 이 환약 한 알을 반으로 쪼개겠습니다. 반쪽은 다음을 위해 보관하기로 하 고, 자 이 알약 반쪽을 컵 속의 물에 타 봅시다. 보십시오. 와트슨 박사의 예상대로 곧 녹았습니다.” 홈즈의 약장사 같은 넋두리에 레스트레이드는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것이 스탠거슨이 칼에 찔려 죽은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아,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지 마십시오. 관계가 깊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자, 테리어 개가 먹기 좋게 우유를 약간 타서, 이것을 접시에 담아 개에게 주면 잘 먹을 겁니다.” 홈즈는 이렇게 말하며 접시를 개의 코끝에 놓았다. 테리어는 그것을 깨끗이 핥아서 먹었다. 우리는 홈즈의 진지한 태도에 이끌려, 무엇인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 뚫어지게 개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개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빛을 잃은 눈으로 우리를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환약을 먹은 결과가 개의 병에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이 분명했다. 홈즈는 시계를 꺼내 들고 지켜보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소리 내어 두드리는 모습이 자못 초조한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그러한 심정에 동정이 갔으나, 두 경감은 홈즈가 난처한 입장에 빠진 것이 고소했던 모양인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침내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절대로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드리버가 살해되었을 때 나는 그 주변에 독약이 있을 것으로 단정했는데 바로 그것이 스탠거슨의 시체 옆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약에는 독이 없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내 추리가 엉뚱했던 가? 그 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개는 멀쩡하다? 아, 알았다! 이제 알았다!” 홈즈는 탄성을 지르며 다른 하나의 환약을 집어 들더니 먼젓번처럼 반으로 잘라, 그 한쪽을 몰에 녹이고 우유를 타서 테리어 코끝에 놓았다. 그것이 테리어의 최후였다. 불쌍한 개는 액체를 한 번 혀로 핥는 순간, 네 발을 격렬하게 버둥거리면서 마치 감전이나 된 듯이 몸을 죽 뻗고 죽어 버렸다. 홈즈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나는 내 추리에 좀더 자신을 가져야 했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실이 추리한 바에 어긋나 보일 때는, 반드시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상자 속에 환약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독이 없지만, 다른 하나에는 맹독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두 개의 환약을 보았을 때에 그 정도는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건 내 큰 실수입니다.” 나는 홈즈의 그런 추리가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발밑에 놓인 테리어의 시체를 보고는 홈즈의 추리가 정확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꽉 찬 안개가 한 가닥씩 걷히며, 희미하게나마 사건의 진상을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홈즈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아직 짐작이 가지 않는 모양이나 처음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확한 단서 가 꼭 하나 있었는데 당신들은 그 중요성을 지나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다행히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그 뒤에 일어난 새로운 사태에서 나는 최초의 추리 가 옳았다는 것을 안 겁니다. 극히 평범한 범죄가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겁니다. 까닭인즉, 그런 범죄에는 추리의 실마리가 될 만한 특이하고 유별난 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 번의 살인에서도 이만큼 유별나고 눈에 두드러진 요소가 없었더라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색다른 점 이 있었기에 해결이 어려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쉬워 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은 홈즈의 강의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마침내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압니다. 알아요. 홈즈 씨의 머리가 비상하고 독특한 수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론이나 설교가 아닙니다. 범인을 붙잡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판단해 봤지만, 그건 아무래도 틀린 일 같습니다. 이론만 갖고는 범인을 체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서 슬쩍, 저기에서 조금, 의미가 있음직한 말을 비치는 것으로 보아 우리보다 조금은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몸 달게 했으니 이제 다 털어놓으실 만하잖습니까? 그래, 홈즈 씨는 도대체 이사건 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까? 범인의 이름이라도 댈 수 있습니까?” 레스트레이드도 거들었다. “그레그슨 경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기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아까부터 듣고 있자니, 당신은 필요한 증거를 모두 손에 넣은 투로 이야기했습니다만, 감질나게 하지 마시고 속 시원히 밝혀 주시지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범인 체포가 지연되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홈즈는 모두에게 공박을 받다시피 하면서도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의 버릇대로, 고개를 떨구고 양미간을 찌푸린 채 방안을 오락가락 하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레그슨 경감 범인의 이름을 댈 수 있느냐고 질문하셨는데 나는 그 이름을 알 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을 체포하는 수고에 비하면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쉬 운 일이지요. 하기야, 체포하는 일도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나는 이미 그럴 수 있도록 손을 써두었고, 예정대로 잘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범인은 대단히 교활하고 위험한 자이며, 또한 민첩하기 짝이 없는 일당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체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불안을 느끼면 이름을 바꾸고, 그 즉시 이 대도시의 400만 시민 속으로 섞여 들고 맙니다. 당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의 범인은 경찰의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당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의 하나 실패하면, 그 책임 은 내가 져야 하겠지만,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취한 작전 을 당시들에게 털어놓아도 무방할 단계가 되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두 경감은 경찰이 무시당한데 대해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레그슨은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고 레스트레이드는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이 폭발하기에 앞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의 부랑아들의 대표인 위긴스 소년이 그 꾀죄죄한 모습을 나타냈다. “선생님, 마차를 밖에 데리고 왔습니다.” 홈즈의 눈이 빛났다. “수고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왜 이런 신식 수갑을 쓰지 않지요? 이 용수철이 얼마나 예민하지 보십시오. 이렇게 순간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랍에서 꺼낸 강철제 수갑을 움직여 보였다. 레스트레이드가 씹어 뱉듯 말했다. “수갑을 채울 놈만 있다면, 우리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홈즈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요. 짐을 싸는 일을 마부에게 거들어 달라고 해야겠는데……. 위긴스 너 가서 마부를 이리로 데리고 오도록 해라.” 나는 홈즈가 이사를 가거나 여행을 간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는 큼직한 여행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홈즈는 그것을 끌어내더니 혁대를 걸기 시작했다. 때마침 마부가 들어왔다. 홈즈는 무릎으로 가방을 누르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부, 수고스럽겠지만 혁대의 장식을 채워 주시려오?” 마부는 무뚝뚝한 얼굴로 가까이 가서 일을 도우려고 양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나고, 홈즈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태연히 말했다. “여러분, 드리버와 스탠거슨을 살해한 범인. 제퍼슨 호퍼 씨를 소개합니다.” 모든 일은 순각적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분간할 수도 없었다. 마부는 마치 마법에 의해 손목에 걸린 것과도 같은 수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그 때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 - 2 초 동안 우리는 조각된 군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수염이 무성하고 거친 마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자신의 어깨를 움켜잡고 있는 홈즈의 손을 뿌리치더니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유리창이 박살이 나 흩어졌다. 그러나 마부가 창틀에 발을 올려놓기도 전에 그레그슨, 레스트레이드 그리고 홈즈가 마부를 덮쳤다. 마부는 방 안쪽으로 끌려오면 몸부림을 쳤다. 그의 황소 같은 힘에 그들 네 사람은 몇 번이고 나뒹굴었다. 마부의 얼굴과 손에서는 유리 파편에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나 무술에 능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등 뒤에서 손을 걸어 목을 죄었다. 그는 이제 단념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팔다리를 묶어 꼼짝도 못하게 할 때까진 안심할 수 없었다. 포박이 끝나고 우리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홈즈가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자, 여러분 이걸로 이 사건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야기하라면 기꺼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남자가 끌고 온 마차가 있으니까 그걸로 경시청까지 호송해 갈 수 있을 겁니다. " 다음 편부터는 잠시 화제를 바꾸어 이 불가사의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옛날의 일을 기술하기로 하겠다.
[코난도일]주홍색 연구-7. 어둠 속의 빛
7. 어둠 속의 빛
레스트레이드가 입 밖에 낸 말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기에 우리 세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그슨은 그 바람에 물은 섞은 위스키 잔을 둘러엎을 정도였다.
나는 살며시 홈즈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홈즈는 입술을 깨물면서 신음하듯 말했다.
“스탠거슨까지! 더더욱 복잡해지는 걸…….”
그 말에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복잡했는데 말입니다.”
그레그슨은 따지듯 물었다.
“자네, 그 얘기 확실한 건가?”
“나는 스탠거슨의 방에서 곧장 이리로 오는 길이라네.
내가 시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야.”
홈즈가 두 사람의 입씨름을 막으면서 말했다.
“실은, 지금 그레그슨 경감에게서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당신이 보고들은 바를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레스트레이드는 의자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만, 나는 드리버 살해에는 스탠거슨이 관계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스탠거슨이 살해된 이상, 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판명된 셈입니다.
어쨌거나, 그 동안 나는 스탠거슨이 범인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의 행방 수사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3일 저녁 8시 반경 유스턴 역에 갔었다는 것은 하숙집 앞에서 그들을 태운 마부를 찾아내어 규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리버는 다음 날 새벽 2시에 시체로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스탠거슨이 8시반부터 범행시간까지 무엇을 했는지, 또한 범행 뒤에 어디로 갔었는지를 조사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우선 리버풀에 전보를 쳐서 스탠거슨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미국행 기선에 승선하지 못하도록 조취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스턴 역 부근의 호텔이나 하숙집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역에서 헤어졌다면,
그날 밤은 역 부근의 여관에 묵고 이튿날 아침 역 앞에서 만나는 것이 상례이니까요.”
홈즈가 물었다.
“그러나 헛일이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스탠거슨은 역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아침부터 수소문하러 돌아다니다가 8시경에 리틀 조지가의 할리데이비스 호텔에 들러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여기에 스탠거슨이라는 사람이 투숙하지 않았소?’
그러자 호텔 종업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하더군요.
‘아, 오셨군요. 스탠거슨 씨가 기다리던 분인 모양인데, 손님은 이틀 전부터 기다렸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9시에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방으로 안내해 주시오.’
예고도 없이 나타나면 스탠거슨이 당황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의 방은 3층에 있었습니다.
보이는 방을 알려주고는 되돌아섰지요. 그때 나는 섬뜩한 것을 보았습니다.
경찰 생활 20년을 했지만, 등줄기가 오싹했습니다.
문 밑으로 한 줄기 피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흘러나와,
작은 피의 연못처럼 괴어 있었던 겁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보이는 되돌아왔습니다만, 그것을 보자 넋을 잃고 흐느적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보이와 둘이서 몸으로 부딪쳐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창문이 열려 있고, 창밑에 잠옷 차림의 남자가 몸을 구부리고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지고 손발이 굳어 있었습니다.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상태였지요.
얼굴을 돌려 보이에게 확인시키자, 투숙한 스탠거슨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을 꿰뚫은 깊은 상처가 있고,
그것이 치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체에는 무서운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등을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홈즈가 말했다.
“피로 RACHE라고 써놓았겠지.”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네 사람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 범인이 하는 일은 만사가 섬뜩해서, 이 범죄가 유난히 음산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전쟁터에서도 많은 피를 보았지만, 이번 사건은 생각하면 할수록 오싹오싹 소름이 끼쳤다. 레스트레이드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범인을 본 사람이 있답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청년인데, 그는 호텔 뒷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늘 그곳에 가로놓여 있던 사다리가 3층에 걸려있고, 창문이 열려 있더랍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가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사다리를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휘파람을 불며 너무나도 태연해서 집수리라도 맡은 청부업자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키가 크고 얼굴이 불그스레했으나,
이상한 점은 사다리를 오르내리기에는 불편한 갈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범인은 살인을 한 뒤 한동안 현장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인지, 손을 씻은 듯 세면기에 피가 섞인 물이 괴어 있었으며,
칼의 피를 닦은 시트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범인의 인상착의가 홈즈가 예상한 범인의 것과 일치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홈즈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은 없었다.
홈즈가 물었다.
“방안에는 범인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가요?”
“별로, 스탠거슨의 주머니에는 드리버의 지갑이 들어있었습니다. 스탠거슨은 늘 드리버를 대신해서 돈을 지불했기에 이상할건 없습니다.
지갑 속에는 80파운드의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만, 도둑맞은 흔적은 없습니다.
이로써 두 번에 걸친 살인사건의 동기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돈이 목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스탠거슨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것으로는 한 달 전에 미국 동부의 클 리블랜드시에서 발신한 전보가 한 통 있었을 뿐입니다.
전문의 내용은
‘J. H.는 유럽에 있음.’
입니다. 발신인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이렇다 할 점은 없습니다.
스탠거슨이 잠들기 전에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소설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의자위에는 파이프 하나, 그리고 타자기 위에는 물이 반쯤 남은 컵, 창틀위에는 환약이 둘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홈즈가 탄성을 지르며 의장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이제 최후의 단서가 잡혔다. 이제 사건은 해결됐다!”
두 경감은 갑작스러운 홈즈의 외침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홈즈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무척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으나,
마침내 그 실마리가 풀렸나 봅니다. 물론, 자세한 점은 이제부터의 조사로 보완해 나가야겠지만,
드리버가 역에서 비서 스탠거슨과 헤어져 스탠거슨이 시체가 되어 발견되기까지의 대체적인 사실이 눈앞 에서 보듯 선명합니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 그 증거를 한 번 보여 드릴까요?
그러면 레스트레이드 경감, 그 환약을 갖고 왔습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작은 상자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갖고 왔습니다. 지갑과 전보 등을 본서에 보관시킬 때에 묻어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건 별로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그걸 이리 주시오.”
홈즈가 환약을 받아들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 와트슨, 이거 보통 환약 같은가?”
진주 빛을 띤 작은 환약으로, 창문에 비쳐 보니 투명했다.
“가볍고 투명한 것으로 보아 물에 녹겠는걸.”
“그럴걸세.
그런데 주인집 테리어종 개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지 못 하겠으니 어떻게든 평안히 숨을 거두게 할 수 없겠냐고 아주머니가 자네에게 상의하는 걸 들었네만,
그 개를 데리고 와 주겠나?”
나는 곧 아래층에 내려가 개를 안고 올라왔다.
숨소리가 거칠고, 눈빛이 흐린 것으로 보아 죽을 때가 임박한 것 같았다. 홈즈는 주머니칼을 꺼내면 말했다.
“그럼 이 환약 한 알을 반으로 쪼개겠습니다.
반쪽은 다음을 위해 보관하기로 하 고, 자 이 알약 반쪽을 컵 속의 물에 타 봅시다. 보십시오. 와트슨 박사의 예상대로 곧 녹았습니다.”
홈즈의 약장사 같은 넋두리에 레스트레이드는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것이 스탠거슨이 칼에 찔려 죽은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아,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지 마십시오.
관계가 깊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자, 테리어 개가 먹기 좋게 우유를 약간 타서, 이것을 접시에 담아 개에게 주면 잘 먹을 겁니다.”
홈즈는 이렇게 말하며 접시를 개의 코끝에 놓았다.
테리어는 그것을 깨끗이 핥아서 먹었다.
우리는 홈즈의 진지한 태도에 이끌려, 무엇인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 뚫어지게 개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개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빛을 잃은 눈으로 우리를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환약을 먹은 결과가 개의 병에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이 분명했다.
홈즈는 시계를 꺼내 들고 지켜보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소리 내어 두드리는 모습이 자못 초조한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그러한 심정에 동정이 갔으나, 두 경감은 홈즈가 난처한 입장에 빠진 것이 고소했던 모양인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침내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절대로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드리버가 살해되었을 때 나는 그 주변에 독약이 있을 것으로 단정했는데 바로 그것이 스탠거슨의 시체 옆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약에는 독이 없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내 추리가 엉뚱했던 가? 그
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개는 멀쩡하다? 아, 알았다! 이제 알았다!”
홈즈는 탄성을 지르며 다른 하나의 환약을 집어 들더니 먼젓번처럼 반으로 잘라,
그 한쪽을 몰에 녹이고 우유를 타서 테리어 코끝에 놓았다.
그것이 테리어의 최후였다.
불쌍한 개는 액체를 한 번 혀로 핥는 순간, 네 발을 격렬하게 버둥거리면서 마치 감전이나 된 듯이 몸을 죽 뻗고 죽어 버렸다.
홈즈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나는 내 추리에 좀더 자신을 가져야 했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실이 추리한 바에 어긋나 보일 때는, 반드시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상자 속에 환약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독이 없지만,
다른 하나에는 맹독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두 개의 환약을 보았을 때에 그 정도는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건 내 큰 실수입니다.”
나는 홈즈의 그런 추리가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발밑에 놓인 테리어의 시체를 보고는 홈즈의 추리가 정확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꽉 찬 안개가 한 가닥씩 걷히며, 희미하게나마 사건의 진상을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홈즈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아직 짐작이 가지 않는 모양이나 처음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확한 단서 가 꼭 하나 있었는데 당신들은 그 중요성을 지나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다행히 그것을 놓치지 않았고,
그 뒤에 일어난 새로운 사태에서 나는 최초의 추리 가 옳았다는 것을 안 겁니다.
극히 평범한 범죄가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겁니다.
까닭인즉, 그런 범죄에는 추리의 실마리가 될 만한 특이하고 유별난 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 번의 살인에서도 이만큼 유별나고 눈에 두드러진 요소가 없었더라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색다른 점 이 있었기에 해결이 어려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쉬워 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은 홈즈의 강의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마침내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압니다. 알아요.
홈즈 씨의 머리가 비상하고 독특한 수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론이나 설교가 아닙니다.
범인을 붙잡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판단해 봤지만, 그건 아무래도 틀린 일 같습니다.
이론만 갖고는 범인을 체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서 슬쩍, 저기에서 조금, 의미가 있음직한 말을 비치는 것으로 보아 우리보다 조금은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몸 달게 했으니 이제 다 털어놓으실 만하잖습니까?
그래, 홈즈 씨는 도대체 이사건 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까?
범인의 이름이라도 댈 수 있습니까?”
레스트레이드도 거들었다.
“그레그슨 경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기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아까부터 듣고 있자니,
당신은 필요한 증거를 모두 손에 넣은 투로 이야기했습니다만,
감질나게 하지 마시고 속 시원히 밝혀 주시지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범인 체포가 지연되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홈즈는 모두에게 공박을 받다시피 하면서도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의 버릇대로, 고개를 떨구고 양미간을 찌푸린 채 방안을 오락가락 하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레그슨 경감 범인의 이름을 댈 수 있느냐고 질문하셨는데 나는 그 이름을 알 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을 체포하는 수고에 비하면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쉬 운 일이지요. 하기야, 체포하는 일도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나는 이미 그럴 수 있도록 손을 써두었고, 예정대로 잘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범인은 대단히 교활하고 위험한 자이며, 또한 민첩하기 짝이 없는 일당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체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불안을 느끼면 이름을 바꾸고, 그 즉시 이 대도시의 400만 시민 속으로 섞여 들고 맙니다.
당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의 범인은 경찰의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당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의 하나 실패하면, 그 책임 은 내가 져야 하겠지만,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취한 작전 을 당시들에게 털어놓아도 무방할 단계가 되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두 경감은 경찰이 무시당한데 대해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레그슨은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고 레스트레이드는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이 폭발하기에 앞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의 부랑아들의 대표인 위긴스 소년이 그 꾀죄죄한 모습을 나타냈다.
“선생님, 마차를 밖에 데리고 왔습니다.”
홈즈의 눈이 빛났다.
“수고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왜 이런 신식 수갑을 쓰지 않지요? 이 용수철이 얼마나 예민하지 보십시오. 이렇게 순간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랍에서 꺼낸 강철제 수갑을 움직여 보였다.
레스트레이드가 씹어 뱉듯 말했다.
“수갑을 채울 놈만 있다면, 우리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홈즈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요.
짐을 싸는 일을 마부에게 거들어 달라고 해야겠는데…….
위긴스 너 가서 마부를 이리로 데리고 오도록 해라.”
나는 홈즈가 이사를 가거나 여행을 간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는 큼직한 여행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홈즈는 그것을 끌어내더니 혁대를 걸기 시작했다.
때마침 마부가 들어왔다.
홈즈는 무릎으로 가방을 누르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부, 수고스럽겠지만 혁대의 장식을 채워 주시려오?”
마부는 무뚝뚝한 얼굴로 가까이 가서 일을 도우려고 양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나고, 홈즈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태연히 말했다.
“여러분, 드리버와 스탠거슨을 살해한 범인. 제퍼슨 호퍼 씨를 소개합니다.”
모든 일은 순각적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분간할 수도 없었다.
마부는 마치 마법에 의해 손목에 걸린 것과도 같은 수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그 때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 - 2 초 동안 우리는 조각된 군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수염이 무성하고 거친 마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자신의 어깨를 움켜잡고 있는 홈즈의 손을 뿌리치더니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유리창이 박살이 나 흩어졌다.
그러나 마부가 창틀에 발을 올려놓기도 전에 그레그슨, 레스트레이드 그리고 홈즈가 마부를 덮쳤다.
마부는 방 안쪽으로 끌려오면 몸부림을 쳤다. 그의 황소 같은 힘에 그들 네 사람은 몇 번이고 나뒹굴었다.
마부의 얼굴과 손에서는 유리 파편에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나 무술에 능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등 뒤에서 손을 걸어 목을 죄었다. 그는 이제 단념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팔다리를 묶어 꼼짝도 못하게 할 때까진 안심할 수 없었다.
포박이 끝나고 우리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홈즈가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자, 여러분 이걸로 이 사건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야기하라면 기꺼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남자가 끌고 온 마차가 있으니까 그걸로 경시청까지 호송해 갈 수 있을 겁니다. "
다음 편부터는 잠시 화제를 바꾸어 이 불가사의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옛날의 일을 기술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