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홈즈의 추리 우리가 로리스턴 가든 3번지의 사건 현장을 떠난 것은 오후 1시경이었다. 홈즈는 나와 함께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상당히 긴 전보를 쳤다. 그리고 나서 마차를 잡아타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가르쳐준 오들리 코트로 가라고 행선지를 말해주었다. 마차 속에서 홈즈가 입을 열었다. “직접 증언을 들어보는 것이 제일일세. 사실, 나로서는 대체적인 윤곽은 잡았지만 알아둘 일은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홈즈,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인걸. 조금 전에 자넨 두 경감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설명해 주었지만 설마 그렇게 훤히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 “생각나는 대로 떠든 것은 아닐세. 내가 알아낸 것은 보도에 인접해서 두 줄기 마차 바퀴가 나 있다는 것이었네. 지난 1주일동안 계속 날이 좋았다가 어제 저녁에야 비가 뿌리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선명한 바퀴 자국은 어젯밤의 것이 틀림없지. 말발굽의 징 자국도 남아 있었는데, 네 개 중 하나만이 유달리 뚜렷한 것으로 보아, 그쪽 발의 징만이 새 것이라는 걸 알았네. 그 마차가 비가 오기 시작한 뒤에 왔다는 것은 확실하네. 그리고 아침이 되고 나서는 한 대도 그 곳에 온 마차가 없었다는 그레그슨 경감의 말로 미루어 마차는 밤사이에 왔고, 그 마차에 두 사람이 타고 왔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그렇게 설명을 하니 알아듣겠군. 그런데 보지도 않은 범인의 키는 어떻게 알았나?” “사람의 키라는 것은 십중팔구 그 남자의 걸음 폭으로 산출해 낼 수가 있다네. 계산 방법은 극히 단순하지. 이 남자의 걸음 폭은 정원의 흙길과 집안에 쌓인 먼지 위에 찍힌 발자국으로 알아냈네. 또한 그 계산이 정확한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 사람은 벽에 글씨를 쓸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높이 가량에 글씨를 쓰지. 그런데 그 글씨는 바닥에서 180cm가량 되는 곳에 쓰여 있었네.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추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이는?” “아, 그건 1m 반이나 쉽게 건너뛸 수 있는 남자라면 우선 노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 1m 반이라는 것은 흙길에 괸 물웅덩이의 폭으로서, 그 남자가 그걸 뛰어 넘은 것은 발자국으로 알 수가 있었네. 에나멜가죽 구두 쪽은 물웅덩이를 돌아갔으나, 앞이 네모진 구두는 그것을 뛰어넘었더군. 이건 뭐 이상하거나 신기할 것도 없는 사실 그대로 일세. 나는 그 논문에서 관찰과 추리를 충분히 하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그것을 실제에서 응용한 것뿐일세. 자네는 아직도 미심쩍은 것이 있나?” “손톱이 길다는 것과 트리치노폴리 담배는?” “벽의 글씨는 둘째 손가락에 피를 묻혀 쓴 것이었네. 돋보기로 확대해 보니, 그것을 쓸 때 흙벽을 약간 긁은 자국이 있더군. 만일 손톱을 짧게 깎은 손가락이라면, 그런 흔적은 남을 수가 없지. 그리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담뱃재를 조사해 보았네. 그 재는 검고 비늘 같은 형상의 것이었네. 그런 재가 남는 것은 트리치노폴리 잎담배를 피웠을 때만 한정되지. 나는 담뱃재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논문을 쓴 적도 있네. 나로서는 영국에서 나도는 어떤 담배라도 그 재만 보고도 무슨 담배를 피웠는지 알아맞출 수가 있어. 이렇게 사소한 점이, 다른 뛰어난 탐정들이나 그레그슨, 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등과 다른 점이라네.” “그렇다면 얼굴이 붉은 편이라는 것은?” “아, 그건 좀 대담한 추리지만, 틀림없을 걸세.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줄 수 없겠나?” 나는 이마에 손을 댔다. “나는 현기증이 다 나는군.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 투성이인 걸. 두 남자는 무엇 때문에 그 빈집에 갔을까? 그리고 두 사람을 태우고 간 마부는 어찌 되었을까? 또한 어떤 방법으로 한 사나이가 상대에게 독을 마시게 했으며, 피는 누구의 것일까? 도난당한 흔적이 없다면, 살인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여자의 반지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고, 범인은 도망가기 전에 왜 일부러 RACHE라는 말 을 벽에 썼을까? 그것도 독일어로 말일세.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연관지어 해결할 것인지 막막하구먼.” 홈즈가 내 말에 손뼉이라도 칠 듯이 말했다. “자네는 사건을 간추려 요령 있게 말해 주었네. 나로서는 대충 전망이 섰다고 했지만, 아직 분명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야. 레스트레이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발견한 핏자국 글씨는 이 살인을 폭력 혁명 단원이나 비밀 단체의 소행으로 생각하게 하여, 경찰의 눈을 속이려는 수단일세. 그건 독일인이 쓴 글씨가 아니야. 자네도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그 A자는 독일식 활자체로 쓰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진짜 독일인이라면 반드시 라틴 활자체를 쓸 걸세. 따라서 그것은 독일인이 쓴 것처럼 위장한 거지. 즉,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책략일세. 어쨌거나 설명은 이 정도로 끝내세. 와트슨, 알다시피 마술사는 자기의 트릭을 전부 공개했다가는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되거든. 내 수사 방법도 지나치게 알려 주었다가는, ‘그저 그런 사람에 불과하군.’ 하고 신비로움이 없어질 게 아닌가!” “아니, 나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자네의 탐정 수사는 극히 과학적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 홈즈는 이 말을 듣고 기쁜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알아줘서 고맙네. 한 가지만 더 알려주지.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와 끝이 네모진 구두를 신은 남자는 같은 마차를 타고 와서, 사이좋게 마당을 걸어 들어갔네. 아마 팔짱이라도 낄 정도였을 걸세. 그러나 집 안에 들어가자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네. 정확히 말하면, 에나멜 구두를 신은 피살자는 끝이 네모진 구두를 신은 범인이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한 곳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지. 이런 일은 모두 바닥의 먼지에 찍힌 발자국이 말해주고 있지. 한편, 발자국으로 보아 네모진 구두의 사나이가 차차 흥분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네. 걸음 폭이 점점 넓어졌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 그는 서성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대다가, 마침내는 언성이 높아지고 울컥 흥분이 극도에 달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네. 이상으로, 지금까지 안 사실은 모두 자네에게 이야기한 셈이고, 나머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네. 조사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단서는 그런대로 갖추어진 걸세. 그런데 나는 오늘 명 바이올리니스트 넬다 여사의 독주를 들으러 갈 생각이니까. 서둘러 일을 끝내야겠어.” 우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도 마차는 계속 지저분한 거리를 달리고 있었는데, 유별나게 더러운 골목이 보이는 곳에서 마부가 마차를 세우고는, 벽돌집 사이로 뚫린 골목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이 오들리 코트입니다. 마차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돌을 깐 네모진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에 허름한 집들이 추녀를 맞대고 늘어서 있었다. 그 중의 한 집에 46번지라는 숫자와 랜스라는 구리 문패가 걸려 있었다. 문간에 나와 있던 랜스의 부인으로 짐작되는 여자에게 “랜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자, “남편은 자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셔야 되겠어요.” 잠시 뒤, 단잠을 설치게 해서 그런지 부루퉁한 표정의 남자가 나타났다. 랜스일 것이다. “그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서에 보고했는데요.” 홈즈는 주머니에서 10실링짜리 금화를 하나 꺼내더니 무심한 척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보고서보다는 직접 현장을 목격한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그만둘까요?” “아니, 알고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말씀드리지요.” 랜스 경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선 당신이 본 대로만 이야기하십시오.” 랜스는 금화에 구미가 당긴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지요. 내 근무 시간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였습니다. 밤 11시경 화이트 하트 술집에서 한바탕 싸움질이 있었을 뿐 순찰 구역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밤 1시경에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아마도 2시가 지났을 겁니다만, 다시 한 바퀴 돌고 브릭스턴로 쪽에는 이상이 없을까 해서 그리로 갔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꽤나 으스스한 밤이었지요. 도중에서 마차를 두 대 만났을 뿐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우리들끼리의 이야기입니다만, 그런 밤에는 뜨겁게 데운 진을 서너 잔 마시면, 몸이 풀리겠다고 생각하며 걸어가니, 바로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글너데 로리스턴 로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장티푸스로 죽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지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관까지 갔는데…….” 홈즈가 끼어들었다. “현관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지요. 왜 그랬나요, 그때?” 랜스는 움찔 놀라면서 홈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되돌아 나왔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실은, 현관까지 가보니 쥐죽은듯 집 안이 조용해서 기분이 나빴던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함께 들어가 볼 사람을 찾으러 길가로 다시 나왔던 거지요.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어떤 자든 겁날게 없지만,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의 유령이라면 상대가 곤란하거든요.” “그래, 길에는 아무도 없습디까?” “사람은커녕 강아지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나는 다시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인기척은 없더군요. 그래서 불빛이 보이는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습니다. 벽난로 모서리 위에 놓인 촛불이 흔들리고 바닥에…….” “그만, 당신이 본 것은 우리도 보았습니다. 당신은 방 안으로 급히 걸어 들어가 시체 옆에 가서 살펴보고는, 방에서 나와 부엌 쪽의 문이 열리는지 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은 어디에 숨어 모두 지켜보고 이러는군! 그렇지 않으면…….” 홈즈는 웃으면서 랜스에게 명함을 던져 주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나는 사냥개이지 늑대가 아닙니다. 그 점은 레스트레이드나 그레그슨 경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래, 그 다음엔 어떻게 했지요?” 랜스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곧 두 명의 동료가 달려왔지요.” “그때에도 길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까?” “예, 아무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랜스 경관이 싱긋 웃었다. “나도 지금껏 몇 번이고 술에 취해 보았습니다만, 그렇게 곯아떨어진 주정뱅이는 처음 봤습니다. 내가 호루라기를 불고 나갔을 때, 그자는 나무 울타리에 기대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흐느적거리는 품이, 도저히 도움을 청할만할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던가요?” 랜스는 별 쓸데없는 것도 다 물어본다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여간 형편없는 주정뱅이였다니까요. 그때 그런 일만 없었다면 유치장에 처박았을 겁니다.” 홈즈가 갑갑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얼굴이나 복장은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그야 안 볼 수 없었지요. 달려온 동료와 함께 안아 일으켜 주었으니까요. 키가 큰 편이고 얼굴은 붉은 편인데. 얼굴 아래쪽은 천으로 가려져…….” 홈즈가 외쳤다. “됐소! 그래 그 남자는 어찌했습니까?” 랜스는 내뱉듯 말했습니다. “그 판국에 그런 사람을 돌볼 겨를이 있습니까? 없어진 걸 보면 집으로 돌아갔겠지요.” “복장은?”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손에 마부용 채찍을 들고 있었을 텐데?” “채찍? 아뇨.” 홈즈가 중얼거렸다. “그럼 놓고 왔군. 그 뒤에 마차를 보았다든가, 마차가 굴러가는 소린 못 들었나요?” “보지도 듣지도 못 했습니다.”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모자를 집어들며 말했다. “이 금화는 술값이나 하시오. 그런데, 랜스 씨, 유감스럽지만 당신은 경찰에서 출세할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 머리는 장식물이 아닌 이상 써먹어야 할 게 아닙니까? 당신은 간밤에 형사부장이 될 뻔 했습니다. 당신이 안아 일으킨 그 남자야말로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이고 우리가 찾는 인물입니다. 그래, 그 남자한테서 술 냄새가 납디까? 와트슨, 우리는 가보세.” 우리는 눈만 끔벅이고 있는 랜스 경관을 남겨둔 채,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를 타고 하숙집으로 향하면서 홈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바보 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좋은 기회를 만나고도 범인을 놓아 보내다니…….”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점이 있네. 그 인물에 대해서 랜스가 이야기한 바로는 자네가 말한 두 번째 남자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일단 도망갔으면 그만이지 왜 일부러 돌아왔을까?” “반지라네. 그 남자는 반지 때문에 돌아온 것이 분명하네. 그 남자는 달리 붙잡지 못한다고 해도 반지로 낚을 수는 있을 것 같네. 아니, 이번 일은 자네에게 감사를 해야겠어.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개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 어느 것보다도 흥미진진한 연구를 할 기회를 놓쳤을 거야. 그래, 이번 사건을 ‘주홍색 연구’라고 부르기로 할까 하네. 인생이라는 무색의 실패에는 살인이라는 주홍색 실이 감겨져 있네. 우리의 일은 그것을 풀어헤치고 가려내어 한 올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업이라네. 와트슨. 자, 그럼 가볍게 식사를 하고 넬다 여사의 연주회나 들어가 갈까? 그녀의 연주는 기가 막히지.”
[코난도일]주홍색 연구-4. 홈즈의 추리.
4. 홈즈의 추리
우리가 로리스턴 가든 3번지의 사건 현장을 떠난 것은 오후 1시경이었다.
홈즈는 나와 함께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상당히 긴 전보를 쳤다.
그리고 나서 마차를 잡아타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가르쳐준 오들리 코트로 가라고 행선지를 말해주었다.
마차 속에서 홈즈가 입을 열었다.
“직접 증언을 들어보는 것이 제일일세.
사실, 나로서는 대체적인 윤곽은 잡았지만 알아둘 일은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홈즈,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인걸.
조금 전에 자넨 두 경감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설명해 주었지만 설마 그렇게 훤히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
“생각나는 대로 떠든 것은 아닐세.
내가 알아낸 것은 보도에 인접해서 두 줄기 마차 바퀴가 나 있다는 것이었네.
지난 1주일동안 계속 날이 좋았다가 어제 저녁에야 비가 뿌리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선명한 바퀴 자국은 어젯밤의 것이 틀림없지.
말발굽의 징 자국도 남아 있었는데,
네 개 중 하나만이 유달리 뚜렷한 것으로 보아, 그쪽 발의 징만이 새 것이라는 걸 알았네.
그 마차가 비가 오기 시작한 뒤에 왔다는 것은 확실하네.
그리고 아침이 되고 나서는 한 대도 그 곳에 온 마차가 없었다는 그레그슨 경감의 말로 미루어 마차는 밤사이에 왔고,
그 마차에 두 사람이 타고 왔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그렇게 설명을 하니 알아듣겠군.
그런데 보지도 않은 범인의 키는 어떻게 알았나?”
“사람의 키라는 것은 십중팔구 그 남자의 걸음 폭으로 산출해 낼 수가 있다네.
계산 방법은 극히 단순하지.
이 남자의 걸음 폭은 정원의 흙길과 집안에 쌓인 먼지 위에 찍힌 발자국으로 알아냈네.
또한 그 계산이 정확한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
사람은 벽에 글씨를 쓸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높이 가량에 글씨를 쓰지.
그런데 그 글씨는 바닥에서 180cm가량 되는 곳에 쓰여 있었네.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추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이는?”
“아, 그건 1m 반이나 쉽게 건너뛸 수 있는 남자라면 우선 노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
1m 반이라는 것은 흙길에 괸 물웅덩이의 폭으로서, 그 남자가 그걸 뛰어 넘은 것은 발자국으로 알 수가 있었네.
에나멜가죽 구두 쪽은 물웅덩이를 돌아갔으나,
앞이 네모진 구두는 그것을 뛰어넘었더군. 이건 뭐 이상하거나 신기할 것도 없는 사실 그대로 일세.
나는 그 논문에서 관찰과 추리를 충분히 하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그것을 실제에서 응용한 것뿐일세.
자네는 아직도 미심쩍은 것이 있나?”
“손톱이 길다는 것과 트리치노폴리 담배는?”
“벽의 글씨는 둘째 손가락에 피를 묻혀 쓴 것이었네.
돋보기로 확대해 보니,
그것을 쓸 때 흙벽을 약간 긁은 자국이 있더군. 만일 손톱을 짧게 깎은 손가락이라면, 그런 흔적은 남을 수가 없지.
그리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담뱃재를 조사해 보았네.
그 재는 검고 비늘 같은 형상의 것이었네. 그런 재가 남는 것은 트리치노폴리 잎담배를 피웠을 때만 한정되지.
나는 담뱃재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논문을 쓴 적도 있네.
나로서는 영국에서 나도는 어떤 담배라도 그 재만 보고도 무슨 담배를 피웠는지 알아맞출 수가 있어.
이렇게 사소한 점이, 다른 뛰어난 탐정들이나 그레그슨, 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등과 다른 점이라네.”
“그렇다면 얼굴이 붉은 편이라는 것은?”
“아, 그건 좀 대담한 추리지만, 틀림없을 걸세.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줄 수 없겠나?”
나는 이마에 손을 댔다.
“나는 현기증이 다 나는군.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 투성이인 걸.
두 남자는 무엇 때문에 그 빈집에 갔을까?
그리고 두 사람을 태우고 간 마부는 어찌 되었을까?
또한 어떤 방법으로 한 사나이가 상대에게 독을 마시게 했으며,
피는 누구의 것일까?
도난당한 흔적이 없다면, 살인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여자의 반지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고,
범인은 도망가기 전에 왜 일부러 RACHE라는 말 을 벽에 썼을까?
그것도 독일어로 말일세.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연관지어 해결할 것인지 막막하구먼.”
홈즈가 내 말에 손뼉이라도 칠 듯이 말했다.
“자네는 사건을 간추려 요령 있게 말해 주었네.
나로서는 대충 전망이 섰다고 했지만,
아직 분명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야.
레스트레이드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발견한 핏자국 글씨는 이 살인을 폭력 혁명 단원이나 비밀 단체의 소행으로 생각하게 하여,
경찰의 눈을 속이려는 수단일세.
그건 독일인이 쓴 글씨가 아니야.
자네도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그 A자는 독일식 활자체로 쓰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진짜 독일인이라면 반드시 라틴 활자체를 쓸 걸세.
따라서 그것은 독일인이 쓴 것처럼 위장한 거지.
즉,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책략일세.
어쨌거나 설명은 이 정도로 끝내세.
와트슨, 알다시피 마술사는 자기의 트릭을 전부 공개했다가는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되거든. 내 수사 방법도 지나치게 알려 주었다가는, ‘그저 그런 사람에 불과하군.’ 하고 신비로움이 없어질 게 아닌가!”
“아니, 나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자네의 탐정 수사는 극히 과학적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
홈즈는 이 말을 듣고 기쁜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알아줘서 고맙네. 한 가지만 더 알려주지.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와 끝이 네모진 구두를 신은 남자는 같은 마차를 타고 와서,
사이좋게 마당을 걸어 들어갔네.
아마 팔짱이라도 낄 정도였을 걸세.
그러나 집 안에 들어가자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네.
정확히 말하면,
에나멜 구두를 신은 피살자는 끝이 네모진 구두를 신은 범인이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한 곳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지.
이런 일은 모두 바닥의 먼지에 찍힌 발자국이 말해주고 있지.
한편, 발자국으로 보아 네모진 구두의 사나이가 차차 흥분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네.
걸음 폭이 점점 넓어졌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
그는 서성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대다가, 마침내는 언성이 높아지고 울컥 흥분이 극도에 달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네.
이상으로, 지금까지 안 사실은 모두 자네에게 이야기한 셈이고,
나머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네.
조사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단서는 그런대로 갖추어진 걸세.
그런데 나는 오늘 명 바이올리니스트 넬다 여사의 독주를 들으러 갈 생각이니까.
서둘러 일을 끝내야겠어.”
우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도 마차는 계속 지저분한 거리를 달리고 있었는데,
유별나게 더러운 골목이 보이는 곳에서 마부가 마차를 세우고는,
벽돌집 사이로 뚫린 골목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이 오들리 코트입니다. 마차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돌을 깐 네모진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에 허름한 집들이 추녀를 맞대고 늘어서 있었다.
그 중의 한 집에 46번지라는 숫자와 랜스라는 구리 문패가 걸려 있었다.
문간에 나와 있던 랜스의 부인으로 짐작되는 여자에게
“랜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자,
“남편은 자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셔야 되겠어요.”
잠시 뒤, 단잠을 설치게 해서 그런지 부루퉁한 표정의 남자가 나타났다. 랜스일 것이다.
“그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서에 보고했는데요.”
홈즈는 주머니에서 10실링짜리 금화를 하나 꺼내더니 무심한 척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보고서보다는 직접 현장을 목격한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그만둘까요?”
“아니, 알고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말씀드리지요.”
랜스 경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선 당신이 본 대로만 이야기하십시오.”
랜스는 금화에 구미가 당긴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지요. 내 근무 시간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였습니다.
밤 11시경 화이트 하트 술집에서 한바탕 싸움질이 있었을 뿐 순찰 구역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밤 1시경에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아마도 2시가 지났을 겁니다만,
다시 한 바퀴 돌고 브릭스턴로 쪽에는 이상이 없을까 해서 그리로 갔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꽤나 으스스한 밤이었지요.
도중에서 마차를 두 대 만났을 뿐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우리들끼리의 이야기입니다만, 그런 밤에는 뜨겁게 데운 진을 서너 잔 마시면, 몸이 풀리겠다고 생각하며 걸어가니, 바로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글너데 로리스턴 로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장티푸스로 죽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지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관까지 갔는데…….”
홈즈가 끼어들었다.
“현관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지요. 왜 그랬나요, 그때?”
랜스는 움찔 놀라면서 홈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되돌아 나왔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실은, 현관까지 가보니 쥐죽은듯 집 안이 조용해서 기분이 나빴던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함께 들어가 볼 사람을 찾으러 길가로 다시 나왔던 거지요.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어떤 자든 겁날게 없지만,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의 유령이라면 상대가 곤란하거든요.”
“그래, 길에는 아무도 없습디까?”
“사람은커녕 강아지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나는 다시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인기척은 없더군요.
그래서 불빛이 보이는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습니다.
벽난로 모서리 위에 놓인 촛불이 흔들리고 바닥에…….”
“그만, 당신이 본 것은 우리도 보았습니다.
당신은 방 안으로 급히 걸어 들어가 시체 옆에 가서 살펴보고는, 방에서 나와 부엌 쪽의 문이 열리는지 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은 어디에 숨어 모두 지켜보고 이러는군! 그렇지 않으면…….”
홈즈는 웃으면서 랜스에게 명함을 던져 주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나는 사냥개이지 늑대가 아닙니다.
그 점은 레스트레이드나 그레그슨 경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래, 그 다음엔 어떻게 했지요?”
랜스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곧 두 명의 동료가 달려왔지요.”
“그때에도 길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까?”
“예, 아무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랜스 경관이 싱긋 웃었다.
“나도 지금껏 몇 번이고 술에 취해 보았습니다만,
그렇게 곯아떨어진 주정뱅이는 처음 봤습니다.
내가 호루라기를 불고 나갔을 때,
그자는 나무 울타리에 기대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흐느적거리는 품이, 도저히 도움을 청할만할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던가요?”
랜스는 별 쓸데없는 것도 다 물어본다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여간 형편없는 주정뱅이였다니까요. 그때 그런 일만 없었다면 유치장에 처박았을 겁니다.”
홈즈가 갑갑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얼굴이나 복장은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그야 안 볼 수 없었지요. 달려온 동료와 함께 안아 일으켜 주었으니까요. 키가 큰 편이고 얼굴은 붉은 편인데. 얼굴 아래쪽은 천으로 가려져…….”
홈즈가 외쳤다.
“됐소! 그래 그 남자는 어찌했습니까?”
랜스는 내뱉듯 말했습니다.
“그 판국에 그런 사람을 돌볼 겨를이 있습니까? 없어진 걸 보면 집으로 돌아갔겠지요.”
“복장은?”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손에 마부용 채찍을 들고 있었을 텐데?”
“채찍? 아뇨.”
홈즈가 중얼거렸다.
“그럼 놓고 왔군.
그 뒤에 마차를 보았다든가, 마차가 굴러가는 소린 못 들었나요?”
“보지도 듣지도 못 했습니다.”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모자를 집어들며 말했다.
“이 금화는 술값이나 하시오.
그런데, 랜스 씨, 유감스럽지만 당신은 경찰에서 출세할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 머리는 장식물이 아닌 이상 써먹어야 할 게 아닙니까?
당신은 간밤에 형사부장이 될 뻔 했습니다.
당신이 안아 일으킨 그 남자야말로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이고 우리가 찾는 인물입니다.
그래, 그 남자한테서 술 냄새가 납디까?
와트슨, 우리는 가보세.”
우리는 눈만 끔벅이고 있는 랜스 경관을 남겨둔 채,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를 타고 하숙집으로 향하면서 홈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바보 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좋은 기회를 만나고도 범인을 놓아 보내다니…….”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점이 있네.
그 인물에 대해서 랜스가 이야기한 바로는 자네가 말한 두 번째 남자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일단 도망갔으면 그만이지 왜 일부러 돌아왔을까?”
“반지라네.
그 남자는 반지 때문에 돌아온 것이 분명하네.
그 남자는 달리 붙잡지 못한다고 해도 반지로 낚을 수는 있을 것 같네.
아니, 이번 일은 자네에게 감사를 해야겠어.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개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 어느 것보다도 흥미진진한 연구를 할 기회를 놓쳤을 거야.
그래, 이번 사건을 ‘주홍색 연구’라고 부르기로 할까 하네. 인생이라는 무색의 실패에는 살인이라는 주홍색 실이 감겨져 있네.
우리의 일은 그것을 풀어헤치고 가려내어 한 올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업이라네.
와트슨. 자, 그럼 가볍게 식사를 하고 넬다 여사의 연주회나 들어가 갈까?
그녀의 연주는 기가 막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