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과 은호가 서로를 찾아가던 도넛 가게

박형진2006.07.16
조회41

“거기에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잘 지내?”
“좋은 남자 찾았어?”
만나면 늘 그런 식의 인사를 했다. 센터거리 던킨도넛 안쪽의 2인용 테이블에 앉아 바나나머핀을 앞에 놓고 서로 근황을 보고하는 관계. 물론 용건은 그녀가 부탁한 책이 들어왔으니 전달해준다는 거였지만 무의식중에 서로가 만날 구실을 찾았다. - 노자와 히사시

드라마 의 원작소설 한 대목이다. 이혼 후에도 서로의 곁을 맴돌며 연애 시절의 밀고 당기기 같은 관계를 이어가는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이 왜 하필이면 그 도넛 가게에서 계속 마주쳐야만 했냐는 데 대한 답은 여기에 있다. PPL보다 원작의 힘이 먼저 작용했던 드문 케이스인 것이다.

사랑했지만 아이가 사산되고 난 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해 이혼한 은호와 동진은 출근길, 혹은 퇴근 후에 습관처럼 같은 도넛 가게에 들른다. 상대가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창 밖에서 기웃거리기도 하고, 어쩌다 마주치지 못하는 날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기다린다. 얼굴만 맞대면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은호는 감기에 걸린 동진에게 커피 대신 핫초코를 권하고, 가게를 나와 헤어질 때 동진은 하나뿐인 우산을 은호에게 던져주고 뛰어가버린다.

은호와 동진의 이혼 후 연애사 대부분이 담겨 있는 이 공간의 실제 촬영지는 분당의 한 도넛 매장. 제작 당시에는 영업시간 중에도 촬영을 하느라 손님을 받지 못한 적도 있지만 드라마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아직도 종종 있다고. 이 작품을 연출한 한지승 감독은 “가게 내부가 넓지 않은 편이라 그 안에서 다양한 앵글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최대한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16회가 방송되는 동안 15차례 가량 등장한 이 장소는, 동진이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받은 것을 목격한 은호가 일부러 등을 돌려 앉거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 있다는 걸 눈치챈 두 사람이 어색하게 마주앉는 식으로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살려내며 제 몫을 했다.

이제 그만 만나자고 다짐했다가도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하자며 서로를 놓지 못하는 동진과 은호에게 이 도넛 가게는 감정의 마지노선이다. 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 직장 동료들이 권하는 도넛을 무심히 거절하고, 은호가 도시락을 먹으며 “도넛은 질렸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이별 선고인 셈이다.

은호가 말했듯,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별의 기억과 계속 마주하면서도 우리가 어떤 장소를 떠나지 못해 돌아가는 것은, 비록 슬픔이나 아픔일지라도 기억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의 마지막에 동진과 은호가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짧은 마주침을 위해 기대하고 노력했던 날들에 대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찾아가는 길 지하철 분당선 정자역 3번 출구로 나와 10분가량 걷다가 기업은행 파크뷰 지점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30미터 내려가면 은호가 동진과 헤어질 때마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던 가게 앞에 도착한다.



첨부파일 : K0000020_dunkin2(1659)_0400x0215.sw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