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 성은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따라서, 개방적 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운동을 기반하지 않고 이야기 될 수 없다. 여성운동과 관련하여 개방적 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성은 원래부터 평등하다. - 여성운동의 기초가 된다.
2. 성차별은 계급의 지배로부터 출발한다. - 대표적 예로, 중세 시대 '초야권'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계급의 지배를 '초야권'을 행사함으로써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결혼한 남자의 여자에 대한 성의 지배권을 영주가 먼저 행사함으로써 영주의 계급적 지배가 우선함을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면 이러한 초야권때문에 봉기를 하는데 초야권과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논리의 일관성은 계급의 지배라는 것에서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조차 완전한 자유를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역사 드라마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완전한 계급지배로부터 자유는 영주의 계급지배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계급역시 포함한다. 영화에서 여자는 여전히 지배구조속에 있다. 영화에서 갈등구조는 쉽게 말해 내걸 니가 왜 뺏어가느냐로부터 출발한다.)
3. 2.에 의해 사회적 계급 지배 양상은 가정 또는 사회전반적으로 남자로부터 여자에게로의 지배 양상으로 확대된다.
4. 이러한 지배구조를 탈피하려는 것이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5. 따라서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으로부터 출발하는 결과이다.
6 5.에 의해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의 지표로 이해할 수는 있으나 개방적 성에 의해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7.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에 의해 계급 지배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계급지배는 남자로부터 여자에게로 확대되어 있다.
8. 7.의 예로써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참여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자의 몫이다. 그리고, 사회참여 비율에 비해 종사하는 직종과 직위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9. 따라서, 현재 양성평등은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으나 여전히 지배구조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구조는 종종 양성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은밀한 방법으로 재생산된다.(국익론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검색해 보라.)
10. 개방적 성은 여성운동을 이야기 할 때 이슈가 되는 소재이다.
11. 10.에 있어 남자들 역시 그러한 개방적 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하는 경우도 많다.
12. 개방적 성에 대한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은 남자이어야 하며, 사회를 이끄는 주체가 남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즉, 개방적 성이라는 지표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양성평등의 입장에는 낮은 수치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13. 그렇다면, 원인이 되는 양성평등과, 결과가 되는 개방적성과의 상관관계의 방향이 왜 반대로 나타나는 것인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자면
여자의 입장에서 개방적 성은 일종의 '따라하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양성평등, 여자의 지위향상, 캐리어우먼 등 여성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있는 여자의 대표적 경우를 케리어우먼이라고 하자.)그리고, 그러한 캐리어우먼과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역할모델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한 캐리어우먼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삷 전체를 캐리어우먼으로 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따라하기'를 선택한다. '따라하기'란 인기 배우의 악세서리 또는 유행을 따라하는 것처럼 선망이 되는 대상과 동일하고 싶은 욕구를 '따라하기'라는 것으로 충족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자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러한 '따라하기'에 의해 개방적 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따라하기'는 원래 따라한다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는 경우이지만, 개방적 성에 대한 경우 따라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개방적 성의 '따라하기'는 자신이 캐리어우먼이라는 근본적 착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방적 성에 대한 이해가 '따라하기'인지 아니면 정말 캐리어우먼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하다. 그 사람의 삶과 그 행동을 지배하는 정신세계가 정말 캐리어우먼이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캐리어우먼으로 살기에는 한국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 결과인 개방적 성은 정말 쉽게 할 수 있다.
너무 긴 얘기가 되는 것 같아 여자의 관점으로 본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자.
그럼 남자들의 입장에서 개방적 성을 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성의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는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의 사고는 개인을 둘러싼 그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전반적인 성에 대한 이해가 개인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구조이며, 이러한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은 사고의 체계를 형성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아직까지 가사노동에 대해서 남자가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지 가사노동 자체가 분담해야 할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대학생1,2,3,4 학년에게 물어봤는데, 남자의 경우 가사노동은 여자가 해야 된다. 돈을 더 벌어서 가정부를 둔다 등 여러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공통점은 가사노동을 자신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회구조가 가부장적 구조라면 그 속에 있는 개인 역시 가부장적 사고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관계에 대한 남자의 이해는 가부장이라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지배구조속에서 계급의 지배로 이해한다. 즉, 남성은 성관계를 소유와 종속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자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했을 때 남자는 종종 '먹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남자가 먹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먹었다'라는 용어 자체가 그러한 지배구조를 표현하는 단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남자는 왜 개방적 성을 옹호하는 입장인가?
글쎄... 먹을거리가 더 많아지기 때문은 아닌가?
물론, 이러한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도 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남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비율은 그렇지 않은 남자들에 비해 턱없이 작을 것이다.
그런지 아닌지 시험을 해보자면 이런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다른 여자가 개방적 성이라고 하면 긍정적이지만, 자기 여동생이 그렇다면 어떤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은 정작 개방적 성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 및 사회참여의 구조, 현실적 양성평등 등등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할 것은 너무 많고 또 어렵다. 반면 개방적 성은 정말 쉽다. 몇 만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많은 여자들이 개방적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서 말한 '따라하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따라하기'를 부추기는 것이 지금의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 역시 사회현상이며 이러한 사회현상은 개인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여성운동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인기 연예인의 '따라하기'를 생각해 보라. 인기연예인이 잘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다만, 사회전반적인 구조를 염두에 두고 여성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운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따라하기'들을 생각해 보라.
태풍이 쳐도 끄덕없는 내면적 강함을 갖춘 가치관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여성운동과 개방적인 성?
개방적 성은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따라서, 개방적 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운동을 기반하지 않고 이야기 될 수 없다. 여성운동과 관련하여 개방적 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성은 원래부터 평등하다. - 여성운동의 기초가 된다.
2. 성차별은 계급의 지배로부터 출발한다. - 대표적 예로, 중세 시대 '초야권'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계급의 지배를 '초야권'을 행사함으로써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결혼한 남자의 여자에 대한 성의 지배권을 영주가 먼저 행사함으로써 영주의 계급적 지배가 우선함을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면 이러한 초야권때문에 봉기를 하는데 초야권과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논리의 일관성은 계급의 지배라는 것에서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조차 완전한 자유를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역사 드라마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완전한 계급지배로부터 자유는 영주의 계급지배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계급역시 포함한다. 영화에서 여자는 여전히 지배구조속에 있다. 영화에서 갈등구조는 쉽게 말해 내걸 니가 왜 뺏어가느냐로부터 출발한다.)
3. 2.에 의해 사회적 계급 지배 양상은 가정 또는 사회전반적으로 남자로부터 여자에게로의 지배 양상으로 확대된다.
4. 이러한 지배구조를 탈피하려는 것이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5. 따라서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으로부터 출발하는 결과이다.
6 5.에 의해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의 지표로 이해할 수는 있으나 개방적 성에 의해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7.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에 의해 계급 지배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계급지배는 남자로부터 여자에게로 확대되어 있다.
8. 7.의 예로써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참여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자의 몫이다. 그리고, 사회참여 비율에 비해 종사하는 직종과 직위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9. 따라서, 현재 양성평등은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으나 여전히 지배구조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구조는 종종 양성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은밀한 방법으로 재생산된다.(국익론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검색해 보라.)
10. 개방적 성은 여성운동을 이야기 할 때 이슈가 되는 소재이다.
11. 10.에 있어 남자들 역시 그러한 개방적 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하는 경우도 많다.
12. 개방적 성에 대한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은 남자이어야 하며, 사회를 이끄는 주체가 남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즉, 개방적 성이라는 지표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양성평등의 입장에는 낮은 수치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13. 그렇다면, 원인이 되는 양성평등과, 결과가 되는 개방적성과의 상관관계의 방향이 왜 반대로 나타나는 것인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자면
여자의 입장에서 개방적 성은 일종의 '따라하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양성평등, 여자의 지위향상, 캐리어우먼 등 여성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있는 여자의 대표적 경우를 케리어우먼이라고 하자.)그리고, 그러한 캐리어우먼과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역할모델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한 캐리어우먼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삷 전체를 캐리어우먼으로 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은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따라하기'를 선택한다. '따라하기'란 인기 배우의 악세서리 또는 유행을 따라하는 것처럼 선망이 되는 대상과 동일하고 싶은 욕구를 '따라하기'라는 것으로 충족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자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러한 '따라하기'에 의해 개방적 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따라하기'는 원래 따라한다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는 경우이지만, 개방적 성에 대한 경우 따라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개방적 성의 '따라하기'는 자신이 캐리어우먼이라는 근본적 착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방적 성에 대한 이해가 '따라하기'인지 아니면 정말 캐리어우먼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하다. 그 사람의 삶과 그 행동을 지배하는 정신세계가 정말 캐리어우먼이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캐리어우먼으로 살기에는 한국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 결과인 개방적 성은 정말 쉽게 할 수 있다.
너무 긴 얘기가 되는 것 같아 여자의 관점으로 본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자.
그럼 남자들의 입장에서 개방적 성을 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성의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는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의 사고는 개인을 둘러싼 그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전반적인 성에 대한 이해가 개인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구조이며, 이러한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은 사고의 체계를 형성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아직까지 가사노동에 대해서 남자가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지 가사노동 자체가 분담해야 할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대학생1,2,3,4 학년에게 물어봤는데, 남자의 경우 가사노동은 여자가 해야 된다. 돈을 더 벌어서 가정부를 둔다 등 여러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공통점은 가사노동을 자신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회구조가 가부장적 구조라면 그 속에 있는 개인 역시 가부장적 사고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관계에 대한 남자의 이해는 가부장이라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지배구조속에서 계급의 지배로 이해한다. 즉, 남성은 성관계를 소유와 종속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자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했을 때 남자는 종종 '먹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남자가 먹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먹었다'라는 용어 자체가 그러한 지배구조를 표현하는 단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남자는 왜 개방적 성을 옹호하는 입장인가?
글쎄... 먹을거리가 더 많아지기 때문은 아닌가?
물론, 이러한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도 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남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비율은 그렇지 않은 남자들에 비해 턱없이 작을 것이다.
그런지 아닌지 시험을 해보자면 이런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다른 여자가 개방적 성이라고 하면 긍정적이지만, 자기 여동생이 그렇다면 어떤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방적 성은 양성평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은 정작 개방적 성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 및 사회참여의 구조, 현실적 양성평등 등등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할 것은 너무 많고 또 어렵다. 반면 개방적 성은 정말 쉽다. 몇 만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많은 여자들이 개방적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서 말한 '따라하기'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따라하기'를 부추기는 것이 지금의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동 역시 사회현상이며 이러한 사회현상은 개인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여성운동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인기 연예인의 '따라하기'를 생각해 보라. 인기연예인이 잘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다만, 사회전반적인 구조를 염두에 두고 여성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운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따라하기'들을 생각해 보라.
태풍이 쳐도 끄덕없는 내면적 강함을 갖춘 가치관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