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슈퍼영웅의 부활을 기다려왔으나 우리가 보게 된 것은 하나의 거대한 기만이었다. 영웅주의로 도배된 그 영화 속에서 우리는 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차라리 팀버튼의 기괴한 익살이 우리에게 더욱 큰 만족을 줬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영웅’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영원의 공간과 무한의 시간을 헤매다 온 정의의 수호자가 겪는 실존의 문제는 ‘부각되는 영웅성’으로 그 빛을 잃고 만다. 특히나 우리는 추락하는 비행기를 떠받혀서 야구장 한가운데에 내려놓은 후에 관중들의 호응에 장시간 반응하는 슈퍼맨의 모습에 마치 TV에서 자주 접하는 정치인들을 대하는 듯한 감을 느끼게 된다.
슈퍼맨은 ‘소영웅주의’에 빠진 듯 하다. 그는 ‘사회병리현상의 결과 및 사고처리’를 ‘독점’ 하면서 대중들의 독보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렉스 루터가 지적한 대로 그 힘을 인류와 나눌 의지는 없다. 슈퍼맨에 대한 대중의 일방적인 지지는 정치학적으로 엄청난 권력의 창출을 의미한다.
슈퍼맨이 보이는 리얼리티쇼에 시민들이 몰입하게 될 때 빚어질 사회병리현상의 증가는 심각한 것이다. 이는 월드컵 경기에 시민들이 몰입하는 결과로 국내외의 각종 사안에(미군부대확장 / FTA 협정) 무관심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영웅이 등장하는 월드컵 경기 류에 대한 몰입은 그 시기에 처리해야할 시민참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킨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떠들썩한 사건들에만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켜 인기를 구가하고, 사회병리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대중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유도하여 해결할 의지 자체를 없게 만드는 것... 이러한 ‘반동’적인 관점하에 슈퍼맨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슈퍼맨은 단 한번도 ‘왜 세상이 이 모양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정책당국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병리사회를 치유할 고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병리현상을 막을 수 있는 ‘시민주체의 실천’을 강조하거나 좀 더 확장된 관점에서 물질만능주의사회 병패를 지적할 필요도 못 느낀다.
다만 대기권 위에 떠 있다가 가장 사람 많은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의 장소로 내달려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대중의 박수만 받으면 끝이다.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여지가 있는 렉스루터를 잡아들인 슈퍼맨에게 법원에서 증인 출석요구를 했지만 이를 생각지 못하고 한가하게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결국 렉스루터가 풀어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 세계를 위협에 빠트렸던 것은 그 한 예이다.
슈퍼맨은 렉스루터 같은 자들이 수 많은 인류를 희생시키는 것은 지켜 볼 수 있어도 렉스루터를 지구에서 추방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렉스루터와 함께 자신의 존재도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렉스 루터는 진정한 슈퍼맨의 아버지이다.
슈퍼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슈퍼맨이 있어야할 상황이 발생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사회병리현상의 결과]를 먹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슈퍼맨 그의 본성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자들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다.
진정 슈퍼맨이 세계의 정의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그는 [보여지는 현상의 결과와 사고처리]에만 그 힘을 집중하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만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현상의 내면에 빚어지는 제도적이고 병리적인 문제의 근원을 처리하기 위해서 힘써야 했다. 하지만 슈퍼맨은 전혀 그럴 의지가 없다. 이는 그의 아버지 조엘이 그를 보낸 목적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칼, 내 아들아. 인간의 손에서 컸지만, 너는 그들과 다르다. 인간은 위대해지길 꿈꾸며 잠재력이 있다. 인도해 줄 빛이 있다면. 바로 그 선한 인간들을 위해 널 보낸다... 내 하나뿐인 아들을...”
이는 2500년 전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꿈꾸던 1인 독재체제의 완벽한 시적인 묘사이다. 하지만 조엘의 지상명령 하달 내용에는 한술 더 떠서 권력세습의 당위성이 태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내 아들인 너는 전 인류를 다 인도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에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죠엘이 자신의 아들을 지상에 보낸 목적 속에는 그 어디에도 ‘민주주의’와 ‘인간실존의 주체적 실천’ ‘민중주권’에 관련한 대목이 없다. 힘없는 민초들이 끼어들 여지는 하나도 없다. 철저한 ‘선민주의’ ‘독재’에 ‘세습’의 당위론적 세계관만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의적인 도식을 그의 아들인 칼은 현대대중사회의 특성에 맞게 잘 실현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그를 중심에 두고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7월 9일 FTA반대를 위한 장면 - 영화 슈퍼맨리턴즈의 세계상에서는 이들 민중이 끼어들 공간이 전혀 없다.
슈퍼맨의 범죄인 처리 방식 역시 철저한 독재자적 모습이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계도를 통한 범죄 차단 노력은 거의 없고, 범죄가 벌어지고 난 후에 현장에 출동해서 범인들을 잡아서 바로 유치장에 처박는 수준의 철저한 ‘응징’만이 따른다.
물론 슈퍼맨에 의해서 제압당하는 범죄인은 언론에 의해서 당연히 ‘악의 축’으로 이미지화 된다. 이렇게 사회 병리를 재생산하는 ‘응징’위주의 일방적인 힘의 실현에만 집중하는 슈퍼맨의 저의를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특히나 슈퍼맨의 존재가 [세계 평화와는 무관한 것]은 그가 그의 능력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세계의 갈등과 분열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그 원인을 차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내 놓지 않는다.
세계의 갈등과 분열은 ‘한정된 재화와 용역’에 의해서 빚어진다. 즉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부족하다 보니 서로 간에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운다는 것이다. 세상에 물질이 풍부하면 사람들 사이에 거의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 ‘많이 가진 자’들은 그것을 지키고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 치고, ‘적게 가진 자’들은 그로부터 상실감을 얻으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주변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갈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재화와 용역이라는 것은 ‘에너지’와도 등가이다. 그렇담 왜? 슈퍼맨은 자신이 무한의 에너지원을 나눠서 세계의 평화를 기여 하려 하지 않는 것인가?
왜? 그러한 ‘발상’ 마저 을 렉스루터가 하게끔 넘겼냔 말이다. 이러한 ‘인식의 부조화’는 우리가 슈퍼맨에 대한 잘 못된 해석을 한 결과에 의한다. ‘슈퍼맨이 우리편’ 이라고 보이는 대로만 어림짐작한 것이 잘 못된 해석을 낳게한 치명적인 오류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슈퍼맨은 인류의 영웅으로 포장된 인류문명의 파괴자 인지도 모른다. 1차 원정에서 실패한 화성인들이 다시 한번 지구를 침략해서 분쇄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시도일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주입된 신화와 상징과 이미지를 올바로 해석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후반부에 클립톤 운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섬을 바다에서 뽑아 들어우주로 내 던지는 그 장면에서는 우리는 감동이 아닌 야유를 할 심리적인 지반을 갖게 된다.
그 장면은 마치 시지프스신화에서 무거운 바위를 힘겹게 산위로 끌고 가서 굴려야 하는 끝없는 형벌을 신들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에 주체적으로 맞서서 신들에게 무릎꿇지 않는 신화 속 주인공을 묘사하는 듯 하다. 하지만 앞서 봤던 것과 같이 현실을 한 꺼풀만 벗기면 그것은 조작된 환상인 것이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고도의 정치인 슈퍼맨이 자라나는 섬을 뽑아서 우주에 집어던지고 그대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일반 대중이 그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져야할 것인지에 대한 튼실한 도식을 강화시켜 주기 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지지자 조직이 단결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면 막강한 대중적인 동의에 힘입어 그는 명실상부하게 제도권의 권력까지 모두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슈퍼맨이 이를 받아들일리는 없다. 그는 이를 거부하고 더욱 고차원적인 권력을 만끽할 것이다.
이미 세계는 슈퍼맨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권력자의 자리에 앉아 그 권력과 재화를 뺏으려할 필요는 없다. 이미 절대 권력자인 그는 그냥 한가하게 유부녀를 쫓아다니면서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소일꺼리 하면서 초법적인 감시 기능만 하면 된다.
슈퍼맨은 미국이 만들어낸 신화이면서 동시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선적인 자화상이기도다.
또한 작게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 거창하게 포장된 허구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어 그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추악한 힘의 역학을 우리가 바로 직시할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성을 얽어매고 있는 권력 구조가 우리의 주체를 앗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갈 방향을 일괄적으로 제시해주고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내며 ‘선과 악’을 갈라서 그것을 맘대로 ‘응징’하는 무소불휘의 힘을 가진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워진 운명에 우리 각자가 주체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춰야한다.
우리에게 슈퍼맨의 귀환은 필요 없었다. 우리 각자가 슈퍼맨이 되어서 세상의 문제에 맞서지 않는 한... 세상은 늘 범죄와 고통...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 될 것임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할 슈퍼영웅
많은 이들이 슈퍼영웅의 부활을 기다려왔으나 우리가 보게 된 것은 하나의 거대한 기만이었다. 영웅주의로 도배된 그 영화 속에서 우리는 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차라리 팀버튼의 기괴한 익살이 우리에게 더욱 큰 만족을 줬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영웅’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영원의 공간과 무한의 시간을 헤매다 온 정의의 수호자가 겪는 실존의 문제는 ‘부각되는 영웅성’으로 그 빛을 잃고 만다. 특히나 우리는 추락하는 비행기를 떠받혀서 야구장 한가운데에 내려놓은 후에 관중들의 호응에 장시간 반응하는 슈퍼맨의 모습에 마치 TV에서 자주 접하는 정치인들을 대하는 듯한 감을 느끼게 된다.
슈퍼맨은 ‘소영웅주의’에 빠진 듯 하다. 그는 ‘사회병리현상의 결과 및 사고처리’를 ‘독점’ 하면서 대중들의 독보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렉스 루터가 지적한 대로 그 힘을 인류와 나눌 의지는 없다. 슈퍼맨에 대한 대중의 일방적인 지지는 정치학적으로 엄청난 권력의 창출을 의미한다.
슈퍼맨이 보이는 리얼리티쇼에 시민들이 몰입하게 될 때 빚어질 사회병리현상의 증가는 심각한 것이다. 이는 월드컵 경기에 시민들이 몰입하는 결과로 국내외의 각종 사안에(미군부대확장 / FTA 협정) 무관심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영웅이 등장하는 월드컵 경기 류에 대한 몰입은 그 시기에 처리해야할 시민참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킨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떠들썩한 사건들에만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켜 인기를 구가하고, 사회병리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대중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유도하여 해결할 의지 자체를 없게 만드는 것... 이러한 ‘반동’적인 관점하에 슈퍼맨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슈퍼맨은 단 한번도 ‘왜 세상이 이 모양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정책당국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병리사회를 치유할 고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병리현상을 막을 수 있는 ‘시민주체의 실천’을 강조하거나 좀 더 확장된 관점에서 물질만능주의사회 병패를 지적할 필요도 못 느낀다.
다만 대기권 위에 떠 있다가 가장 사람 많은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의 장소로 내달려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대중의 박수만 받으면 끝이다.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여지가 있는 렉스루터를 잡아들인 슈퍼맨에게 법원에서 증인 출석요구를 했지만 이를 생각지 못하고 한가하게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결국 렉스루터가 풀어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 세계를 위협에 빠트렸던 것은 그 한 예이다.
슈퍼맨은 렉스루터 같은 자들이 수 많은 인류를 희생시키는 것은 지켜 볼 수 있어도 렉스루터를 지구에서 추방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렉스루터와 함께 자신의 존재도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렉스 루터는 진정한 슈퍼맨의 아버지이다.
슈퍼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슈퍼맨이 있어야할 상황이 발생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사회병리현상의 결과]를 먹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슈퍼맨 그의 본성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자들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다.
진정 슈퍼맨이 세계의 정의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그는 [보여지는 현상의 결과와 사고처리]에만 그 힘을 집중하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만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현상의 내면에 빚어지는 제도적이고 병리적인 문제의 근원을 처리하기 위해서 힘써야 했다. 하지만 슈퍼맨은 전혀 그럴 의지가 없다. 이는 그의 아버지 조엘이 그를 보낸 목적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칼, 내 아들아. 인간의 손에서 컸지만, 너는 그들과 다르다. 인간은 위대해지길 꿈꾸며 잠재력이 있다. 인도해 줄 빛이 있다면. 바로 그 선한 인간들을 위해 널 보낸다... 내 하나뿐인 아들을...”
이는 2500년 전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꿈꾸던 1인 독재체제의 완벽한 시적인 묘사이다. 하지만 조엘의 지상명령 하달 내용에는 한술 더 떠서 권력세습의 당위성이 태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내 아들인 너는 전 인류를 다 인도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상관할 바가 못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에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죠엘이 자신의 아들을 지상에 보낸 목적 속에는 그 어디에도 ‘민주주의’와 ‘인간실존의 주체적 실천’ ‘민중주권’에 관련한 대목이 없다. 힘없는 민초들이 끼어들 여지는 하나도 없다. 철저한 ‘선민주의’ ‘독재’에 ‘세습’의 당위론적 세계관만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의적인 도식을 그의 아들인 칼은 현대대중사회의 특성에 맞게 잘 실현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그를 중심에 두고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7월 9일 FTA반대를 위한 장면 - 영화 슈퍼맨리턴즈의 세계상에서는 이들 민중이 끼어들 공간이 전혀 없다.
슈퍼맨의 범죄인 처리 방식 역시 철저한 독재자적 모습이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계도를 통한 범죄 차단 노력은 거의 없고, 범죄가 벌어지고 난 후에 현장에 출동해서 범인들을 잡아서 바로 유치장에 처박는 수준의 철저한 ‘응징’만이 따른다.
물론 슈퍼맨에 의해서 제압당하는 범죄인은 언론에 의해서 당연히 ‘악의 축’으로 이미지화 된다. 이렇게 사회 병리를 재생산하는 ‘응징’위주의 일방적인 힘의 실현에만 집중하는 슈퍼맨의 저의를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특히나 슈퍼맨의 존재가 [세계 평화와는 무관한 것]은 그가 그의 능력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세계의 갈등과 분열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그 원인을 차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내 놓지 않는다.
세계의 갈등과 분열은 ‘한정된 재화와 용역’에 의해서 빚어진다. 즉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부족하다 보니 서로 간에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운다는 것이다. 세상에 물질이 풍부하면 사람들 사이에 거의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세상에서 ‘많이 가진 자’들은 그것을 지키고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 치고, ‘적게 가진 자’들은 그로부터 상실감을 얻으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주변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갈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재화와 용역이라는 것은 ‘에너지’와도 등가이다. 그렇담 왜? 슈퍼맨은 자신이 무한의 에너지원을 나눠서 세계의 평화를 기여 하려 하지 않는 것인가?
왜? 그러한 ‘발상’ 마저 을 렉스루터가 하게끔 넘겼냔 말이다. 이러한 ‘인식의 부조화’는 우리가 슈퍼맨에 대한 잘 못된 해석을 한 결과에 의한다. ‘슈퍼맨이 우리편’ 이라고 보이는 대로만 어림짐작한 것이 잘 못된 해석을 낳게한 치명적인 오류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슈퍼맨은 인류의 영웅으로 포장된 인류문명의 파괴자 인지도 모른다. 1차 원정에서 실패한 화성인들이 다시 한번 지구를 침략해서 분쇄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시도일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주입된 신화와 상징과 이미지를 올바로 해석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후반부에 클립톤 운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섬을 바다에서 뽑아 들어우주로 내 던지는 그 장면에서는 우리는 감동이 아닌 야유를 할 심리적인 지반을 갖게 된다.
그 장면은 마치 시지프스신화에서 무거운 바위를 힘겹게 산위로 끌고 가서 굴려야 하는 끝없는 형벌을 신들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에 주체적으로 맞서서 신들에게 무릎꿇지 않는 신화 속 주인공을 묘사하는 듯 하다. 하지만 앞서 봤던 것과 같이 현실을 한 꺼풀만 벗기면 그것은 조작된 환상인 것이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고도의 정치인 슈퍼맨이 자라나는 섬을 뽑아서 우주에 집어던지고 그대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일반 대중이 그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져야할 것인지에 대한 튼실한 도식을 강화시켜 주기 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지지자 조직이 단결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면 막강한 대중적인 동의에 힘입어 그는 명실상부하게 제도권의 권력까지 모두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슈퍼맨이 이를 받아들일리는 없다. 그는 이를 거부하고 더욱 고차원적인 권력을 만끽할 것이다.
이미 세계는 슈퍼맨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권력자의 자리에 앉아 그 권력과 재화를 뺏으려할 필요는 없다. 이미 절대 권력자인 그는 그냥 한가하게 유부녀를 쫓아다니면서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소일꺼리 하면서 초법적인 감시 기능만 하면 된다.
슈퍼맨은 미국이 만들어낸 신화이면서 동시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선적인 자화상이기도다.
또한 작게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 거창하게 포장된 허구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어 그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추악한 힘의 역학을 우리가 바로 직시할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성을 얽어매고 있는 권력 구조가 우리의 주체를 앗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갈 방향을 일괄적으로 제시해주고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내며 ‘선과 악’을 갈라서 그것을 맘대로 ‘응징’하는 무소불휘의 힘을 가진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워진 운명에 우리 각자가 주체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춰야한다.
우리에게 슈퍼맨의 귀환은 필요 없었다. 우리 각자가 슈퍼맨이 되어서 세상의 문제에 맞서지 않는 한... 세상은 늘 범죄와 고통...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 될 것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