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애국적인'' 교사에 관하여...

박성수200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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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애국적인'' 교사에 관하여...

 [일장기와 태극기 설명] : 한쪽 나라의 국기가 깃대에 높이 올라가면 덩달아 다른 국기도 높이 올라가는 특성을 가진 양국의 깃발.  전체주의적인 획일성을 강요하는 '국가주의'는 나라의 번영와 안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전쟁을 유도할 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이들은 이 상징을 먼저 없애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애국적'인 교사 관련하여...

 

많은 장점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것을 방해하는 고질적인 병패 중 하나는 감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실질보다는 형식을 중요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식틀에 의해서 직원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하는 '비애국적' 교사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않는 것 하고 '애국심'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의 형식에의 복종능력이 애국심과 비례하는지를 우리는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타인을 배려하고 인간을 존중하고 환경을 사랑하며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이유를 주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앞서 해야한다. 그리고 그 반한 노력이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의 거부는 휴지를 버리는 것과 같은 미미한 수준의 타인에 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도 아니다.


그렇담 왜? 많은 이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은 교사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고, 나라가 무너진 것 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인가? 

아마 그것은 자신들이 '진실'로 믿어서 스스로의 내면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국가주의에 대한 신념'이 무너짐으로 혼란이 느껴지고, 집단주의와 대중심리에 매몰된 '비주체적인 자아'가 그러한 '집단성'과 '대중성'을 깨려는 움직임에 대한 과민반응을 불러 일으켜 이에 대해서 비합리적으로 반응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한다. 그들이 과연 자신이 믿고 있던 [국가주의에 대한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의 인간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인 헌신을 할 수 있는지를...

'국기에 대한 경례'는 '애국심'과는 전혀 무관한 독립적인 문제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것 조차 판단하지 못하여 교사가 국기의 경례를 하지 않은 문제를 '애국과 비애국'의 문제로 갈라 놓게된 역사적인 경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 독재개발시대 때 부터 떨궈지는 먹이를 통해 국가의 강요를 내면에 [조건강화]시킨 한국인은 판단능력을 상실한 듯 하다. 파블로프의 개와 같이 종(국기에 대한 경례)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애국심이 넘쳐나는) 특성을 주입당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사분란한 도식에 맞게 애국심을 뿜어내지 않는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한 그 교사'가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단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허고헌날 아이들 조회 때마저도 국민의례를 하며 애국심이 넘쳐나는 이 나라가 - 
왜? 아시아 중진국 중 가장 타락한 나라라는 통계가 나오고, 아시아 청소년 준법정신 최하위이고, 세계 최고의 수출효자상품이 '고아'이며, 허고헌날 정치인, 공무원 비리가 발생하며, 벼라별 국책 사기극과 사고가 나는 데에다가, 아이들 먹는 과자로부터 노인들 돌아가실 때 입히는 수의에 이르기까지 사기꾼들이 바글바글 대는 것을 그들은 설명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애국자'들이 실질보다는 형식을 중요시 해서 [국가주의에 대한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의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헌신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병패가 한국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 류의 - 개인의 주체를 무시하고 전체주의적인 틀 속에서 민중의 자율성을 강제하는 형식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시야를 좁히고 인류가 하나된 공동체로서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게 만들어 내게끔하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러한 '제도'자체를 깨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명확히 드러난다.
일본의 모 고등학생들은 졸업식날 국민의례를 강요하자, 그 '똑똑한 학생들'은 '학생자율헌장'을 선포하고 졸업식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들은 '신사참배' 역시 거부하면서 그러한 군국주의적인 발상에 대해서 일침을 가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아시아 지배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는) 일본의 보수세력은 보수신문의 지면을 빌어 크나큰 우려와 함께 '교육의 기반이 망가졌다'며 한탄한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러한 '똑똑한 일본의 학생들'이 있어야 일본이 바로 설 수 있고, 그것이 아시아의 화합과 세계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가족주의와 혈통주의, 국가주의로 눈이 흐려져서 현실을 분별할 여력이 없는 이들이 편협한 자아를 탈피해서 한발만 더 떨어져서 보면, 그 교사의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 시도야 말로 인류의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후손들의 미래를 기약하는 위대한 실천의 노력인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적인 획일성을 강요하는 '국가주의'는 나라의 번영와 안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전쟁을 유도할 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이 장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  

구시대의 야만적이고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침을 뱉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