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의 역사2 - [BOY]와 [OCTOBER]

김욱이200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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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역사2 - [BOY]와 [OCTOBER]

U2의 역사2 - [BOY]와 [OCTOBER]

1980년 봄, U2는 이제 데뷰 앨범을 낼 수 있을만큼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CBS 레코드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Island 레코드는 한번에 채택했다.
"처음 음악을 해서 레코드를 취입하게 되면 주위에서 여러가지 잔소리들을 듣게 됩니다. 19살인가 20살, 그러니까 [Boy]를 레코딩하고 있을 때였죠. 당시에는 아직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밤새도록 작업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3~4시 정도였어요. 그날도 아버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죠. 하지만 아버지는 깨어나셨고 제게 '너 지금 뭐하는거야? 지금 몇시냐?'라고 물으셨어요. 저는 1시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아버지는 '너 도대체 몇 일이나 그일을 하고 있는거냐?'라고 물으셨고, 제가 '1주일'이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그럼 그 레코드는 몇 시간 짜리냐"고 되물으셨어요. 제가 '70분인데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세상에! 그런데도 아직 다 못 만든거냐?'고 하셨어요" -보노

첫 앨범이 발매된 후 첫 3주 동안, U2의 데뷰 앨범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지루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하지만 영국과 유럽으로 짧은 투어를 다녀온 후 앨범은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반응은 특히 미국에서 뜨거웟다. 특히 'I will Follow'가 방송될 때-보노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기분을 이야기하고, 곧이어 에지의 날카로운 기타 소리와 강한 드럼 소리가 울려퍼지고 5초도 되기 전에 사람들은 이들의 음악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1981년 3월 22일, U2가 오레곤주 포트랜드에 있는 'The Foghorn'이라는 클럽에서 공연을 벌인 후 3명의 젊은 여자들이 백스테이지로 찾아왔다. 그리고 30분 후. 그녀들이 돌아갈 때 300불과 다음 앨범을 위해 준비해놓은 가사가 담긴 보노의 가방 역시 함께 사라졌다.
이 사건은 U2에게 매우 큰 위기였다. 그들은 12주 후에 새로운 앨범을 레코딩하기로 되어있었고, 그 가사들은 보노가 1년 동안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노는 [BOY] 앨범의 가사를 쓰는데는 3년이나 걸렸었다고 한다. 모두들 무척 당황했고, 약간의 신경쇠약 증상까지 보였으나, 결국 모두 합심해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U2의 프로듀서였던 Lillywhite가 아주 좋은 충고를 했다. "5분 동안에도 노래 한 곡을 쓸 수 있다. 그러니 징징거리지 말고 어서 일을 해!"라고. 당황하고 침울해있던 보노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가사들을 써내려가야했다.

새 앨범의 노래 중 한 곡은 매니저인 폴 맥기네스가 좋아하는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보노는 친구인 제레미와 고등학교 은사의 도움을 받아서 라틴어 구절들을 완성했다. 'Gloria'는 반은 캐톨릭 미사곡이고, 반은 보노의 우상 중 한 명인 '패티 스미스'와 '반 모리슨'에 바치는 곡이었는데 '패티 스미스'와 '반 모리슨'은 둘 다 'Gloria'라는 제목을 노래를 취입한 적이 있다.'Gloria'는 새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첫 곡이었다. 사실 새 앨범은 [Scarlet]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발매일을 따서 [October]로 개명되었다. 발매일은 1981년 10월 12일이었다.

새 앨범을 발매한 후 U2는 또다시 순회공연을 시작했고, 관중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태세인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리드 싱어가 있는 아일랜드 그룹에 대한 소문이 퍼져감에 따라 관중은 점차 불어났다. 사실 보노는 관중들 틈으로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공연장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 노래를 하기도 하고, 스테이지를 온통 뛰어다니기도 하는 등 정말 공연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어떤 일도 불사할 듯이 보였다. 그 10개월 동안 U2는 엄청나게 많은 공연을 해내면서 틈틈이 그들의 새 앨범을 위한 곡들을 만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