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의 역사는, 잘 알려진 대로 래리 뮬랜이 어느날 더블린의 Mount Temple Comprehensive School 게시판에 밴드를 조직하고 싶다는 공고를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래리의 나이 14살이었다. "용돈을 모두 드럼 세트를 사는데 써버렸죠. 그리고 6개월 동안 제 방에서 연습한 후 드디어 스테이지에 오르게 되었어요. Paul Hewson이라는 친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그는 다소 악명이 높았죠. 그리고 아담은 이리로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멋진 기하학무늬의 코트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고 있었죠." -래리 뮬랜 주니어.
당시 16살이었던 Paul Hewson(Bono)은 주유소 점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노래를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게시판의 공고를 보자 곧바로 밴드를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래리 역시 유명한 Paul을 밴드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걸 찬성했다. 래리, 폴, 아담, 데이브 에반스, 딕 에반스. 이렇게 5명이 아담의 집에 모였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기타 파트를 맡길 원했다. 폴이 리드 기타를 맡겠다고 우겼는데,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결국 보노는 리듬 기타를 맡게 되었다. 다른 멤버들은, 보노가 'FeedBack'이라고 이름지어진 그들 밴드의 매니저 역할도 해주기를 바랬다고 하는데, 결국 매니저는 아담이 하게 되었다.
Dick Evans(에지의 형)는 오래지 않아 밴드의 아마추어적인 노래들에 실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FeedBack의 오디션에 왔던 사람들은 보노, 에지, 래리, 아담, 그리고 딕을 제외하고는 래리의 친구인 피터, 피터의 친구인 이반이 전부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1976년 가을, FeedBack은 피터 프램트의 'Show Me The Way'를 연주해서 학교장기자랑 대회에서 1등을 한다. 그리고 Paul Hewson은 스스로를 '보노'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보청기 가게의 이름인 Bono vox에서 따온 것이다. 또 데이브 에반스는 그의 각진 얼굴 때문에 보노에게서 '디 에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윽고 FeedBack은 밴드명을 'The Hype'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데이비드 보위의 백밴드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들은 클래쉬, 섹스피스톨즈, 데이비드 보위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름을 바꾼 것도 그 영향의 한 표현이었다.
The Hype의 첫 공연은 1978년 초 'Mcgonnigals'라는 더블린의 한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Revolver라는 그룹의 오프닝 밴드로 출연해서 클래쉬와 섹스피스톨즈의 곡들을 불렀다. 1978년 3월 17일 The Hype는 아일랜드의 도시 Limerick에서 열린 신인콘테스트에서 우승해 500파운드를 상금으로 받게 된다. 에지의 형인 딕 에반스는 이 시점까지도 밴드와 함께 있었으나 몇 달 후 밴드를 떠나고 만다. 어쨌든 이 대회에서 1등을 함으로써 그들은 짧은 데모 세션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곡이 'Magic Carpet'이었다.
최초의 공식 U2의 음반은 1979년에 발매된 [U2-3]으로 'Out of Control', 'Stories for Boys', 'Boy/Girl'의 3곡이 수록된 LP였다. "밴드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곡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느 순간 노래가 만들어지죠. 그리고 그곡은 레코딩되고, 라디오를 통해 전세계에 방송되고... 가끔은 아주 먼 나라에서 그 곡이 방송되는 것을 들으면.. 그건 정말 특별한 느낌,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기분이지요" -보노.
보노 대신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한 것은 아담이었다. 그는 영국의 음악신문에 "매니저가 멋진 공연을 한 후 사라진 'the Hype'의 소재를 찾습니다. 브라이언에게 연락해주십시오"라는 광고를 냈다. 물론, 브라이언이라는 사람도 없었고, 신문에 낸 전화번호는 아담의 것이엇다. 이 광고는 Paul Macuiness의 관심을 끌었다. 맥기네스는 음악평론가들의 의견을 듣고,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주의 깊게 관람한 후 밴드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밴드는 이 지점에서 또한번 이름을 바꾼다. 아담은 밴드명을 좀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어했고, Steve Averill이라는 사람이 U2를 제안했고, 채택되었다.
U2의 역사1 - 시작에서 첫앨범전까지
U2의 역사1 - 시작에서 첫앨범전까지
U2의 역사는, 잘 알려진 대로 래리 뮬랜이 어느날 더블린의 Mount Temple Comprehensive School 게시판에 밴드를 조직하고 싶다는 공고를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래리의 나이 14살이었다. "용돈을 모두 드럼 세트를 사는데 써버렸죠. 그리고 6개월 동안 제 방에서 연습한 후 드디어 스테이지에 오르게 되었어요. Paul Hewson이라는 친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그는 다소 악명이 높았죠. 그리고 아담은 이리로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멋진 기하학무늬의 코트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고 있었죠." -래리 뮬랜 주니어.
당시 16살이었던 Paul Hewson(Bono)은 주유소 점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노래를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게시판의 공고를 보자 곧바로 밴드를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래리 역시 유명한 Paul을 밴드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걸 찬성했다.
래리, 폴, 아담, 데이브 에반스, 딕 에반스. 이렇게 5명이 아담의 집에 모였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기타 파트를 맡길 원했다. 폴이 리드 기타를 맡겠다고 우겼는데,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결국 보노는 리듬 기타를 맡게 되었다. 다른 멤버들은, 보노가 'FeedBack'이라고 이름지어진 그들 밴드의 매니저 역할도 해주기를 바랬다고 하는데, 결국 매니저는 아담이 하게 되었다.
Dick Evans(에지의 형)는 오래지 않아 밴드의 아마추어적인 노래들에 실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FeedBack의 오디션에 왔던 사람들은 보노, 에지, 래리, 아담, 그리고 딕을 제외하고는 래리의 친구인 피터, 피터의 친구인 이반이 전부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1976년 가을, FeedBack은 피터 프램트의 'Show Me The Way'를 연주해서 학교장기자랑 대회에서 1등을 한다. 그리고 Paul Hewson은 스스로를 '보노'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보청기 가게의 이름인 Bono vox에서 따온 것이다. 또 데이브 에반스는 그의 각진 얼굴 때문에 보노에게서 '디 에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윽고 FeedBack은 밴드명을 'The Hype'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는 데이비드 보위의 백밴드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들은 클래쉬, 섹스피스톨즈, 데이비드 보위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름을 바꾼 것도 그 영향의 한 표현이었다.
The Hype의 첫 공연은 1978년 초 'Mcgonnigals'라는 더블린의 한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Revolver라는 그룹의 오프닝 밴드로 출연해서 클래쉬와 섹스피스톨즈의 곡들을 불렀다. 1978년 3월 17일 The Hype는 아일랜드의 도시 Limerick에서 열린 신인콘테스트에서 우승해 500파운드를 상금으로 받게 된다. 에지의 형인 딕 에반스는 이 시점까지도 밴드와 함께 있었으나 몇 달 후 밴드를 떠나고 만다. 어쨌든 이 대회에서 1등을 함으로써 그들은 짧은 데모 세션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곡이 'Magic Carpet'이었다.
최초의 공식 U2의 음반은 1979년에 발매된 [U2-3]으로 'Out of Control', 'Stories for Boys', 'Boy/Girl'의 3곡이 수록된 LP였다. "밴드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곡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느 순간 노래가 만들어지죠. 그리고 그곡은 레코딩되고, 라디오를 통해 전세계에 방송되고... 가끔은 아주 먼 나라에서 그 곡이 방송되는 것을 들으면.. 그건 정말 특별한 느낌,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기분이지요" -보노.
보노 대신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한 것은 아담이었다. 그는 영국의 음악신문에 "매니저가 멋진 공연을 한 후 사라진 'the Hype'의 소재를 찾습니다. 브라이언에게 연락해주십시오"라는 광고를 냈다. 물론, 브라이언이라는 사람도 없었고, 신문에 낸 전화번호는 아담의 것이엇다. 이 광고는 Paul Macuiness의 관심을 끌었다. 맥기네스는 음악평론가들의 의견을 듣고,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주의 깊게 관람한 후 밴드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밴드는 이 지점에서 또한번 이름을 바꾼다. 아담은 밴드명을 좀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어했고, Steve Averill이라는 사람이 U2를 제안했고,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