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8일 오후. 친구와 서면을 거닐다, 지하철역앞에서 비를맞으며 동냥을 하고계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평소 그런 모습들을 보면 마음아파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터라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할머니 점심드셨어요?" "응~?" 귀가 잘 안들리신다며 크게 좀 말해달라던 할머니. 내가 손에 우산을 들고 허리를숙여 할머니에게 말을걸고있으니, 내가 할머니께 우산을 드려러는지 알셨는지 "아 양산? 양산?" 자꾸 이러셨다. 손을 뻗으시며 우산을 잡으시려는 할머니. 왠지 구걸에 그만큼 이골이났다는듯한 모습인것같아 한층더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할머니, 그게아니라 점심드셨냐구요." 이번엔 좀 더 목소리를 높혀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을해봤다. 내 말을 경청하시던 할머니는 그제서야 제대로 말이 들렸는지, "아 , 밥? 밥 어제 저녁도 라면먹고 아침도 라면먹고왔어." 약 천원정도밖에 담겨있지않은 동전 바구니를 들춰 보여주시며 이정도론 라면밖에 사먹지못한다며 말을 덧붙히셨다. 그 말을 들으니 그 사기사건이있고 얼마안됬을때 정말 쌀이 다 떨어져서 먹을게없었을때.. 그때가 갑자기 생각났다. 솔직히 그때 나에겐 친척이라도 있었다. 그 친척들에게 손이라도 벌려 끼니를 해결할수 있었지만, 지금 늙으신 저 할머니는 어디 살아있는 친척도 자신을 맞이하러올 아들,딸도없이 언젠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꿈속으로 자신을 데려다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신것일테다. 사람의 말이란것에 굶주렸다는듯이 즐겁게 얘기하시는 할머니의 표정밑에 깔린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이 비쳐보였다. 그 슬픈 모습이 눈앞에서 도저히 떠나지않아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서면 쥬디스태화옆에 새로생긴 앙드레안경점옆의 조금한 떡볶이집에서 김밥한줄과 삶은계란 두어개를샀다. 할머니가 혹시 목이맥힐까 비오는데 찢어진 우비만 걸치고 계시는데 감기라도 크게 들지않을까 걱정되서 분식집 아주머니에게 오뎅국물을 한컵과 마실물 한컵을달라그랬는데 그 인심사나운아줌마는 인상을 팍팍쓰면서 아니 뭐 겨우 김밥한줄 사면서 자꾸 그렇게 달라그러냐며 엄청나게 타박을 줬다. 어쩔수없이 결국 마실물은 받지못하고 오뎅국물과 김밥 삶은계란만을 할머니에게 가져다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면서 이것만 먹으면 오늘 저녁은 안먹어도 되겠다면서 허겁저겁 김밥과 삶은계란을 꺼내드셨다. 역시 물이없는게 신경이쓰이길래 근처 구멍가게에서 생수하나를 사다들고 가져다드리니 고맙다며 감사하다며 그 주름진 마른손으로 생수병을 잡아드셨다. 솔직히 그렇게 식사거릴 사드린거 뿌듯하긴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한곳이 안좋은 이유는 역시 우리나란 아직 그런 할머니들이 현대를 살아갈 생활터전이 광복 6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것이다. 현재의 몇개있는 복지정책.. 그중 대표는 아마 생활보호대상자금일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호적상 자신을 도와줄사람이 한사람이라도있으면 신청 조차 좌절되는게 현실이다. 좀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지금 현재 비싼 월급받으며 값비싼 식사와 옷을입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대표, 저 높으신분들은 남의일을 지켜보는것마냥 뒷짐지고 입에만 단 말로 지시만 하고있는게 우리나라의 실정일것이다. 좀더 확실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좀더 확실한 정책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속칭 '물갈이'가 필요한 상황이다. 좀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위의 할머니같은분들이 세상에서 밝고 행복한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는 그러한 정책이 필요하다. 정작 정말로 경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든 사람들은 해택받지못하는 이런 쓰래기같은 정책따위 모두 사라져버려야할때. 그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Le mensonge -
우리나라..
2006년 7월 18일 오후.
친구와 서면을 거닐다, 지하철역앞에서
비를맞으며 동냥을 하고계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평소 그런 모습들을 보면 마음아파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터라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할머니 점심드셨어요?"
"응~?"
귀가 잘 안들리신다며 크게 좀 말해달라던 할머니.
내가 손에 우산을 들고 허리를숙여 할머니에게 말을걸고있으니,
내가 할머니께 우산을 드려러는지 알셨는지
"아 양산? 양산?"
자꾸 이러셨다.
손을 뻗으시며 우산을 잡으시려는 할머니.
왠지 구걸에 그만큼 이골이났다는듯한 모습인것같아
한층더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할머니, 그게아니라 점심드셨냐구요."
이번엔 좀 더 목소리를 높혀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을해봤다.
내 말을 경청하시던 할머니는 그제서야 제대로 말이 들렸는지,
"아 , 밥? 밥 어제 저녁도 라면먹고 아침도 라면먹고왔어."
약 천원정도밖에 담겨있지않은 동전 바구니를 들춰 보여주시며
이정도론 라면밖에 사먹지못한다며 말을 덧붙히셨다.
그 말을 들으니 그 사기사건이있고 얼마안됬을때 정말 쌀이
다 떨어져서 먹을게없었을때.. 그때가 갑자기 생각났다.
솔직히 그때 나에겐 친척이라도 있었다.
그 친척들에게 손이라도 벌려 끼니를 해결할수 있었지만,
지금 늙으신 저 할머니는 어디 살아있는 친척도
자신을 맞이하러올 아들,딸도없이
언젠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꿈속으로
자신을 데려다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신것일테다.
사람의 말이란것에 굶주렸다는듯이 즐겁게
얘기하시는 할머니의 표정밑에 깔린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이 비쳐보였다.
그 슬픈 모습이 눈앞에서 도저히 떠나지않아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서면 쥬디스태화옆에 새로생긴 앙드레안경점옆의
조금한 떡볶이집에서 김밥한줄과 삶은계란 두어개를샀다.
할머니가 혹시 목이맥힐까 비오는데 찢어진 우비만 걸치고
계시는데 감기라도 크게 들지않을까 걱정되서
분식집 아주머니에게 오뎅국물을 한컵과 마실물 한컵을달라그랬는데 그 인심사나운아줌마는 인상을 팍팍쓰면서
아니 뭐 겨우 김밥한줄 사면서 자꾸 그렇게 달라그러냐며
엄청나게 타박을 줬다.
어쩔수없이 결국 마실물은 받지못하고
오뎅국물과 김밥 삶은계란만을 할머니에게 가져다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면서 이것만 먹으면 오늘 저녁은 안먹어도
되겠다면서 허겁저겁 김밥과 삶은계란을 꺼내드셨다.
역시 물이없는게 신경이쓰이길래
근처 구멍가게에서 생수하나를 사다들고 가져다드리니
고맙다며 감사하다며
그 주름진 마른손으로 생수병을 잡아드셨다.
솔직히 그렇게 식사거릴 사드린거 뿌듯하긴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한곳이 안좋은 이유는
역시 우리나란 아직 그런 할머니들이 현대를 살아갈 생활터전이
광복 6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것이다.
현재의 몇개있는 복지정책..
그중 대표는 아마 생활보호대상자금일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호적상 자신을 도와줄사람이 한사람이라도있으면
신청 조차 좌절되는게 현실이다.
좀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지금
현재 비싼 월급받으며 값비싼 식사와 옷을입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대표, 저 높으신분들은
남의일을 지켜보는것마냥 뒷짐지고
입에만 단 말로 지시만 하고있는게
우리나라의 실정일것이다.
좀더 확실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좀더 확실한 정책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속칭 '물갈이'가 필요한 상황이다.
좀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위의 할머니같은분들이 세상에서 밝고 행복한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는
그러한 정책이 필요하다.
정작 정말로 경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든 사람들은
해택받지못하는 이런 쓰래기같은 정책따위
모두 사라져버려야할때.
그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Le menson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