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드러내는 선천적인 슬픔 조니 뎁은 켄터키에서 태어나 미국 남주의 거의 모든 지역을 떠돌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 조차 그만두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에 고향 켄터키를 떠나 플로리다에 정착해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지우고 스스로의 기억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이혼한 부모의 막내였던 조니 뎁은 매주 아버지의 사무실 에 가서 양육비를 받아와 인디언 피가 섞인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렇게 자라난 조니뎁은 자신을 아이돌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TV 시리즈 '21 점프 스트리트' (1987) 을 자진해서 떠나 기묘한 판타지영화 '가위손'(1990) 으로 옮겨갔다. 스무살쯤으로 추정되는 에드워드는 무에서 생산된 인조인간이기 때문에 오염될 기억조차 없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미완성으로 남아야 하는 에드워드. 조니 뎁은 새하얀 분장으로 뚜렷한 골격을 메우고선 무엇을 바라보는 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동자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만이 나이를 먹는다. 마을에서 쫓겨나 성 안에 유폐된 에드워드는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스무살 언저리 소년처럼 보이지만, 연인을 새겨둔 눈동자는, 너무 오래되어 돌멩이처럼 뭉쳐진 슬픔을 내비친다. 그 때 조니뎁은 스물일곱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볼펜 세일즈맨으로 일했던 흔하고 흔한 고난만으로는 그런 감정을 눈 안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버스터 키튼을 좋아하는 건 비슷한 영혼을 타고난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다르다. 키튼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얼굴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거의 초현실 적이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아도 무한의 표정을 품은 무성영화 배우. 조니 뎁은 '베니와 준' 에서 숭배하는 키튼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가위손'의 팀 버튼과 주고받았던 공명, "사람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규정하는지, 아웃사이더로 자란 느낌, 괴짜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베니와 준'(1993) 의 샘은 배리와 닮은 면이 많은 청년이다. 샘은 그네에 앉아 하늘을 날고, 다리미로 치즈 토스트를 구워내고, 마음을 닫은 소녀를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곡예와 마임을 배운 조니뎁은 버스터 키튼처럼 표정이 없는데도 연민과 이해와 애정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 몸짓. "배우의 연기에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거짓말이다" 라고 믿는 조니 뎁은 소음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악을 써대는 준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극장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대로 뛰어나가는 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행동응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덤에 오른 조니 뎁은 할리우드 힐스 꼭대기에 있는, 안개가 많은 날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을 사서 혼자 살았다. "나는 작은 원 안에 서 있다. 그 안에 들어와도 좋다. 하지만 헛수작을 하려고 한다면 당장 쫓겨날 거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서 조니 뎁은 프랑스 남부에 정착해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작은 원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배우들이 꿈꾸는 아카데미조차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카데미 후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하지 못했을 때 나는 안도하면서 숀 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가 미국을 "내 아이들이 잠깐 살피고 내버리기를 원하는, 고장난 장난감"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세상은 그를 박대하고 그 또한 세상을 박대한다. 조니 뎁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만을 드러냈다면 추방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악마, 라고 부르는 조니 뎁은 연기를 통해 그 악마를 마음 밖으로 내보내왔다. 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12년 조니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걸어온 길, 그리고 새로운 여행 93년 작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 위에서 끝이 난다. 서로를 감싸주고 상처입히며 살아가던 길버트(조니 뎁)와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우린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길을 떠난다. 길은 계속해서 뻗어있는 것이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무한하게 뻗어있는 길 위에 서서 이정표를 찾는 배우들이었다. 사람들은 두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의 앞날에 새로운 세대의 헐리우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조니 뎁은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20여편의 작품들에 출연했고, 디카프리오는 1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길을 걸어갈수록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조니 뎁은 그림자처럼 은둔하며 비범한 재능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가 되었고, 라세할스트롬과 테리 길리엄의 세계에 속한 알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디카프리오는 달랐다. 어린 천재는 재능을 시험해볼 여유도 없이 '타이타닉' 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만났다. 조니 뎁은 작가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에서 자유를 즐기며 점점 미국을 벗어나고 있었고, 디카프리오는 재빨리 할리우드 거리에 손도장을 찍고 2천만달러에 자신을 거래하는 미국의 아이돌이 되었다. 두 사람이 교차할 수 있는 지점이란 (공히 데이트를 즐겼던)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밖에 없었다. 2005년 '길버트 그레이프' 로부터 12년이 흘러서야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조니 뎁은 '네버랜드를 찾아서'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에비에이터'로 동시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한명은 아이처럼 네버랜드의 꿈을 꾸던 '피터팬' 의 작가 J.M. 베리로, 다른 한명은 아이들처럼 비행의 꿈을 꾸던 거부 하워드 휴스가 되었다. 과거 속의 몽가들을 연기하면서 두 사람은 또다시 같은 길 위에 서게 된 것이다. _ 위 내용은 , 영화잡지에서 너무 재밌게 읽고 옮겨 적어 본것입니다 2
달의 뒤편에서 걸어온 피터팬, 조니뎁
눈으로 드러내는 선천적인 슬픔
조니 뎁은 켄터키에서 태어나 미국 남주의
거의 모든 지역을 떠돌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 조차 그만두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에 고향 켄터키를 떠나
플로리다에 정착해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지우고 스스로의 기억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이혼한 부모의 막내였던 조니 뎁은 매주 아버지의 사무실
에 가서
양육비를 받아와 인디언 피가 섞인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렇게 자라난 조니뎁은 자신을 아이돌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TV 시리즈 '21 점프 스트리트' (1987) 을 자진해서 떠나
기묘한 판타지영화 '가위손'(1990) 으로 옮겨갔다.
스무살쯤으로 추정되는 에드워드는 무에서 생산된 인조인간이기
때문에 오염될 기억조차 없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미완성으로 남아야 하는 에드워드.
조니 뎁은 새하얀 분장으로 뚜렷한 골격을 메우고선
무엇을 바라보는 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동자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만이 나이를 먹는다.
마을에서 쫓겨나 성 안에 유폐된 에드워드는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스무살 언저리 소년처럼 보이지만,
연인을 새겨둔 눈동자는, 너무 오래되어 돌멩이처럼 뭉쳐진
슬픔을 내비친다.
그 때 조니뎁은 스물일곱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볼펜 세일즈맨으로 일했던 흔하고 흔한
고난만으로는 그런 감정을 눈 안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버스터 키튼을 좋아하는 건
비슷한 영혼을 타고난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다르다.
키튼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얼굴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거의 초현실 적이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아도 무한의 표정을 품은 무성영화 배우.
조니 뎁은 '베니와 준' 에서 숭배하는 키튼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가위손'의 팀 버튼과 주고받았던 공명,
"사람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규정하는지,
아웃사이더로 자란 느낌, 괴짜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베니와 준'(1993) 의 샘은 배리와 닮은 면이 많은 청년이다.
샘은 그네에 앉아 하늘을 날고, 다리미로 치즈 토스트를 구워내고, 마음을 닫은 소녀를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곡예와 마임을 배운 조니뎁은 버스터 키튼처럼 표정이 없는데도 연민과 이해와 애정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 몸짓.
"배우의 연기에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거짓말이다"
라고 믿는 조니 뎁은 소음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악을 써대는 준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극장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대로 뛰어나가는 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행동응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덤에 오른 조니 뎁은 할리우드 힐스 꼭대기에 있는,
안개가 많은 날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을 사서 혼자 살았다.
"나는 작은 원 안에 서 있다. 그 안에 들어와도 좋다.
하지만 헛수작을 하려고 한다면 당장 쫓겨날 거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서 조니 뎁은 프랑스 남부에 정착해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작은 원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배우들이 꿈꾸는 아카데미조차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카데미 후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하지 못했을 때 나는 안도하면서 숀 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가 미국을
"내 아이들이 잠깐 살피고 내버리기를 원하는, 고장난 장난감"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세상은 그를 박대하고 그 또한 세상을 박대한다.
조니 뎁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만을 드러냈다면 추방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악마, 라고 부르는 조니 뎁은
연기를 통해 그 악마를 마음 밖으로 내보내왔다.
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12년
조니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걸어온 길,
그리고 새로운 여행
93년 작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 위에서 끝이 난다.
서로를 감싸주고 상처입히며 살아가던 길버트(조니 뎁)와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우린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길을 떠난다. 길은 계속해서 뻗어있는 것이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무한하게 뻗어있는 길 위에 서서 이정표를 찾는 배우들이었다.
사람들은 두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의 앞날에 새로운 세대의 헐리우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조니 뎁은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20여편의 작품들에 출연했고,
디카프리오는 1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길을 걸어갈수록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조니 뎁은 그림자처럼 은둔하며 비범한 재능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가 되었고,
라세할스트롬과 테리 길리엄의 세계에 속한 알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디카프리오는 달랐다.
어린 천재는 재능을 시험해볼 여유도 없이 '타이타닉' 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만났다.
조니 뎁은 작가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에서 자유를 즐기며 점점 미국을 벗어나고 있었고, 디카프리오는 재빨리 할리우드 거리에 손도장을 찍고 2천만달러에 자신을 거래하는 미국의 아이돌이 되었다.
두 사람이 교차할 수 있는 지점이란 (공히 데이트를 즐겼던)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밖에 없었다.
2005년 '길버트 그레이프' 로부터 12년이 흘러서야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조니 뎁은 '네버랜드를 찾아서'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에비에이터'로
동시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한명은 아이처럼 네버랜드의 꿈을 꾸던 '피터팬' 의 작가 J.M. 베리로, 다른 한명은 아이들처럼 비행의 꿈을 꾸던 거부 하워드 휴스가 되었다.
과거 속의 몽가들을 연기하면서 두 사람은 또다시 같은 길 위에 서게 된 것이다.
_ 위 내용은 ,
영화잡지에서 너무 재밌게 읽고 옮겨 적어 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