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본의 <가위손>

이정엽200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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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가위손>


 

 

Director : Matthew Bourne

Edward Scissorhands : Richard Winsor

 

LG Art Center

 

원작에 큰 빚을 지고 있는 리메이크 작품일수록 원작과 차별되는 독창성이 필요한 법이다. 매튜 본의 신작 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다. LG 측이 광고 문구에 올려놓은 '댄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이름처럼 이 작품은 춤과 원작 영화의 서사를 결합시킨 작품이다. 그렇다면 대사없이 원작의 서사를 전달함과 동시에 어떻게 매튜 본만의 독창성이 살아나는가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존재 근거가 될 것이다.

 

'춤'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무용 공연에서 추는 춤은 꼭 일상에서 추는 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몸을 움직이고 형상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말 대신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이미지를 드러내는 상징이 될 수 있다. 규격화 되지 않은 낯선 몸짓이 주는 당황스러움과 그 몸이 안겨주는 경외가 동시에 찾아올 때 그 몸부림은 응시할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댄서는 오직 춤으로만 자신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매튜 본의 에 등장하는 춤들은 일상에서의 춤을 모방, 재현한 경우가 많았다. 에드워드는 신체적인 기이함 때문에 소외당하는 캐릭터라 그의 내면을 춤으로 표현할 소재는 풍부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은 크리스마스 파티의 왈츠와 같은 군무로 대체되면서 에드워드는 그 속에 파묻힌 그저 약간 신기한 인물 정도로 격하된다. 킴과의 듀엣 정도만 예외일까. 나머지 춤들은 그저 매튜 본 배우들의 몸을 드러내는 쑈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원작 팀 버튼의 이 지닌 미덕이 참 많다. 그러나 매튜 본의 작품에서 50년대 미국 시골을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살려낸 팀 버튼의 미적 감각은 희생되었다. 원작의 고딕풍 디자인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보름달과 나무의 실루엣 정도만이 이 작품이 팀 버튼의 것이라는 걸 겨우 증명해 줄 뿐이다.

 

매튜 본은 대중적인 뮤지컬을 만드려고 작정했다는 듯이 배경을 70년대로 옮겨버리고, 팀 버튼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귀여우면서도 불안한 캐릭터들은 거의 다 없애버렸다. 이것 대신 매튜 본은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가져다 놓았는데, 이는 아마도 여러번 등장하는 군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등장 인물이 많아지면서 대부분의 캐릭터는 자신이 왜 무대 위에 나왔는지 그 이유를 잊은 채 전체적인 분위기에 휘말려서 춤만 추다 퇴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품을 단순화시키다 보니 플롯도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공연이 끝날 때쯤 되니 '원작도 이렇게 엉성한 플롯으로 되어 있었나?'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와 같은 작품에서 보았던 춤의 힘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매튜 본의 안무는 지금보다는 훨씬 추상적이었지만, 그 추상성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굳이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몸은 자연스럽게 서사를 구현해냈었다.

 

관객들은 투자한 돈이 아깝다는 듯이 열심히 박수를 쳐대고, 기립도 하고, 고함도 질렀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이 정도의 패밀리 쑈에도 기립할만큼 속물들이 많아진 시장이 되었다. 뮤지컬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춤은 자신의 무기를 다 버리고 "서사"를 향해 발가벗고 구걸은 한다. 이야기가 없다면 관객은 무용을 버린단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춤은 춤이 아니고, 연극은 연극이 아니고, 영화는 영화가 아니고, 모두 섞여서 짬뽕이 된다. 중국집 짬뽕은 맛있기라도 하지! 연이은 장마로 우울한 마음에 손가락 가득 돈다발을 쥔 "달러손"을 보고 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