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조차 얼

유혜림200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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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조차 얼마나 커다란 오해에 입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동물의 의인화다. 애완용 사자를 비행기에 태운 사람이 사자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여러 개의 깃털베개를 넣어 줬는데 사자는 베개를 먹어치우다 목이 막혀 죽어 버렸다.

 

동물은 고통에 둔감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은 고통을 숨긴다. 저자는 거세를 당한 수소가 사육장에 혼자 있을 땐 땅바닥에 드러누워 신음하다 사람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야생에서는 어떤 동물이든 부상을 하면 포식자에게 당하게 되므로 동물은 아파도 전혀 아프지 않은 듯 행동하는 태도로 진화한 것이다. 특히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양이나 염소 영양 같은 동물은 극도의 고통을 참아 낸다.

 

저자는 동물에게 고통보다 더 나쁜 것은 공포라고 지적한다. 자폐아들처럼 동물도 고통보다 공포에 더 민감하다. 검은 모자처럼 아주 사소한 것도 동물에게 엄청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가장 겁이 많은 동물이 동시에 가장 호기심이 많아서 곧잘 위험에 빠진다. 

 

 야생 동물이 아닌 가축이 겪는 또 하나의 수난은 사람이 동물에게 원하는 한두 가지 속성만을 얻어 내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육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단 하나의 육체적 특성만 바꾸려는 시도는 동물에게 만만치 않은 정서적 행동장애를 초래한다. 가슴살이 더 많은 닭을 얻으려고 품종을 개량한 결과 암탉을 마구 겁탈하고 죽이는 수탉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저자는 동물을 덜 고통스럽게 죽이는 도축 시스템을 개발했고, 어지러움을 견디기 어려워 채식을 포기했다. 저자는 “육식동물의 습성을 버릴 수 없는 인류가 동물을 이용하려고 사육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가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간이 동물을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자비로운 죽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동물이 우리 생활에서 그저 목적물이나 애완용이 아니라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지만 개도 사람을 진화시켰다. 개를 통해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이 동물에게 빚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시 한때는 동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원제 ‘Animals in Translation’(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