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부고를 낸 집만 찾아다니며 미망인을 속여 비싼 값에 성경을 팔아먹는 일로 살아가는 사기꾼 모세 (라이언 오닐). 그는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본의 아니게 그 여자가 남긴 아홉 살 난 어린 여자애, 에디(테이텀 오닐)를 엉겹결에 떠맡게 된다. 모세는 어떡하든 에디를 이모집에 보내려고 하지만 모세를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한 에디가 한사코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결국 둘은 함께 전국을 떠돌며 사기행각을 벌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더불어 한 때 영화신동으로 불려졌던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1973년에 만든 흑백영화 <페이퍼 문 (Paper Moon)>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을 배경으로 어느 사기꾼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은 채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미망인들에게 사기나 치면서 살아가는 모세. 그러던 그가 생각지도 않게 어린애를 떠맡게 됐으니 난감할 노릇이다. 어떻게든 혹을 떼버리려고 애써보지만 자기가 받을 돈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해대는 이 당돌한 꼬마숙녀(!)에게 꼼짝없이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함께 길을 떠난다. 어린 딸이 옆에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지만 배운 게 남의 등 쳐먹는 일밖에 없는 지라 모세는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미망인들에게 계속 사기를 치며 푼돈을 모은다. 어라,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세는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히는 상황에 처한다. 벌레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이 순진해 보이는 아홉 살 난 꼬마애가 사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피는 못 속이는 걸까. 심지어 딸애는 가난한 미망인에게는 성경을 공짜로 주고 대신 부잣집 미망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는 등 나름대로의 사기철학(!)까지 모세한테 전수하는 게 아닌가. 엄지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성냥에 불을 붙여 담배까지 피우는 이 영악한 딸애에게 모세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동업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페이퍼 문>은 '로드무비'의 성격을 띄고 있다. 모세와 에디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들의 사기행각들을 보여주는데 그 시선은 따뜻하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잔돈 바꾸기 수법으로 어리숙한 상점주인들을 골탕먹이고, 밀매업자의 술을 빼돌려 시침 뚝 떼고 되파는 등 가는 곳마다 사기를 치는 이 부녀 사기단(!)의 행각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어쩐지 밉지가 않다. 고단한 시절 (누군가는 이 영화가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는데...)을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세와 에디에게서 연민을 느끼기 때문일까. 로드무비는 보통 '성장영화'로서의 성격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페이퍼 문>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아홉 살짜리 꼬마애는 (당사자는 극구 부인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나 도중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세상에 눈뜨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페이퍼 문>에서 성장하는 건 에디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온갖 사기 기술로 남의 뒤통수를 치는 모세는 웬만한 어른보다 더 영악한 에디를 만나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보며 비로소 본다. 즉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모세는 에디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래서 <페이퍼 문>은 에디의 성장영화이면서 동시에 모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중간,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에디의 간청을 무시해버리는 모세. 결국 에디는 혼자서 종이로 만든 커다란 달 모형(Paper Moon)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에디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은 모세는 이모집을 나와 다시 자신을 찾아온 에디와 함께 또 다른 길을 떠난다. 이제 페이퍼 문 위에는 더 이상 에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주절주절】
이 영화의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20대에 이미 6천 편이 넘는 영화를 봤고, 존 포드, 오손 웰즈, 알프레드 히치콕을 인터뷰 한 뒤 이들의 전기를 펴내 당시에 '신동(wonder boy)'이라 불리며 영화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보그다노비치 본인 역시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제2의 오손 웰즈"라고 말했다 한다. 그는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 <'Last Picture Show'>를 발표해 평단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 그의 재능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며 같은 세대의 스필버그나 코폴라보다 한 발 앞서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후 그의 행로는 하락세를 보이며 조금씩 잊혀져갔다. 지금에서야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한 때 그의 재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보그다노비치가 1973년에 만든 흑백영화 <페이퍼 문>은 그가 남긴 수작 중 한 편이다.
이 영화에서 모세 역은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으로 유명한 라이언 오닐이 맡았고, 에디 역은 테이텀 오닐이 맡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테이텀 오닐은 라이언 오닐의 딸이다. 영화에서의 부녀(父女) 사이를 실제 부녀가 맡은 것이다. 테이텀 오닐은 아빠가 보러 촬영장에 놀러왔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피는 못 속이는지 테이텀 오닐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열 살. 그 다음 기록은 <피아노>의 안나 파킨으로 열 한 살...) 라이언 오닐과 테이텀 오닐 부녀는 3년 후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다시 호흡을 맞춰 <5센트 극장 (Nickelodeon)>을 만드는데, 5센트만 내면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초창기 영화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역시 보그다노비치의 필모그라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적은 없는데 저번에 우연히 유선방송에서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비록 앞 부분은 보지 못했지만.
이 테이텀 오닐이라는 여배우는 정말이지 깜찍하고 귀여운데다 연기도 너무 잘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배우인데 성인이 되고 나선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해 무척 아쉽다. ' 트의 악동' 라 불렸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존 맥켄로와의 세기의 결혼 이 후 그녀는 영화계를 떠나다시피 했었다. <바스키아>에서 잠깐 얼굴을 본 게 그나마 최근 모습인데 요즘은 뭘 하는지. <5센트 극장>에서 동그란 안경을 쓴 테이텀 오닐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촬영은 라즐로 코박스. 잭 니컬슨 주연의 <'Five Easy Pieces'>, 마틴 스콜세즈의 <'New York, New York'>, 그리고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영화들을 촬영했다. <페이퍼 문>은 흑백으로 촬영된 유려한 화면으로 보는 이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미치스틱 맨>이 개봉되었을 때 <페이퍼 문>이 자주 언급되었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설정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퍼 문>은 작년 하반기에 DVD로 출시가 되었다. 예전부터 이 영화를 무척 보고싶어했던 터라 살까말까 망설이다 마침 지난 달에 EBS에서 방영을 해 줘 공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DVD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코멘터리가 실려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DVD로도 한 번 볼 생각이다.
영화 ''페이퍼문'' 의 명작성.
<페이퍼 문 (Paper Moon)>
신문에 부고를 낸 집만 찾아다니며 미망인을 속여 비싼 값에 성경을 팔아먹는 일로 살아가는 사기꾼 모세 (라이언 오닐). 그는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본의 아니게 그 여자가 남긴 아홉 살 난 어린 여자애, 에디(테이텀 오닐)를 엉겹결에 떠맡게 된다.
모세는 어떡하든 에디를 이모집에 보내려고 하지만 모세를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한 에디가 한사코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결국 둘은 함께 전국을 떠돌며 사기행각을 벌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더불어 한 때 영화신동으로 불려졌던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1973년에 만든 흑백영화 <페이퍼 문 (Paper Moon)>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을 배경으로 어느 사기꾼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은 채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미망인들에게 사기나 치면서 살아가는 모세. 그러던 그가 생각지도 않게 어린애를 떠맡게 됐으니 난감할 노릇이다. 어떻게든 혹을 떼버리려고 애써보지만 자기가 받을 돈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해대는 이 당돌한 꼬마숙녀(!)에게 꼼짝없이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이 함께 길을 떠난다. 어린 딸이 옆에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지만 배운 게 남의 등 쳐먹는 일밖에 없는 지라 모세는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미망인들에게 계속 사기를 치며 푼돈을 모은다.
어라,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세는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히는 상황에 처한다. 벌레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이 순진해 보이는 아홉 살 난 꼬마애가 사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피는 못 속이는 걸까. 심지어 딸애는 가난한 미망인에게는 성경을 공짜로 주고 대신 부잣집 미망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는 등 나름대로의 사기철학(!)까지 모세한테 전수하는 게 아닌가. 엄지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성냥에 불을 붙여 담배까지 피우는 이 영악한 딸애에게 모세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동업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페이퍼 문>은 '로드무비'의 성격을 띄고 있다.
모세와 에디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들의 사기행각들을 보여주는데 그 시선은 따뜻하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잔돈 바꾸기 수법으로 어리숙한 상점주인들을 골탕먹이고, 밀매업자의 술을 빼돌려 시침 뚝 떼고 되파는 등 가는 곳마다 사기를 치는 이 부녀 사기단(!)의 행각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어쩐지 밉지가 않다. 고단한 시절 (누군가는 이 영화가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는데...)을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세와 에디에게서 연민을 느끼기 때문일까.
로드무비는 보통 '성장영화'로서의 성격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페이퍼 문>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아홉 살짜리 꼬마애는 (당사자는 극구 부인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나 도중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세상에 눈뜨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페이퍼 문>에서 성장하는 건 에디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온갖 사기 기술로 남의 뒤통수를 치는 모세는 웬만한 어른보다 더 영악한 에디를 만나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보며 비로소 본다. 즉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모세는 에디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래서 <페이퍼 문>은 에디의 성장영화이면서 동시에 모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중간,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에디의 간청을 무시해버리는 모세. 결국 에디는 혼자서 종이로 만든 커다란 달 모형(Paper Moon)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에디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은 모세는 이모집을 나와 다시 자신을 찾아온 에디와 함께 또 다른 길을 떠난다. 이제 페이퍼 문 위에는 더 이상 에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주절주절】
이 영화의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20대에 이미 6천 편이 넘는 영화를 봤고, 존 포드, 오손 웰즈, 알프레드 히치콕을 인터뷰 한 뒤 이들의 전기를 펴내 당시에 '신동(wonder boy)'이라 불리며 영화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보그다노비치 본인 역시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제2의 오손 웰즈"라고 말했다 한다.
그는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 <'Last Picture Show'>를 발표해 평단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 그의 재능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며 같은 세대의 스필버그나 코폴라보다 한 발 앞서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후 그의 행로는 하락세를 보이며 조금씩 잊혀져갔다. 지금에서야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한 때 그의 재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보그다노비치가 1973년에 만든 흑백영화 <페이퍼 문>은 그가 남긴 수작 중 한 편이다.
이 영화에서 모세 역은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으로 유명한 라이언 오닐이 맡았고, 에디 역은 테이텀 오닐이 맡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테이텀 오닐은 라이언 오닐의 딸이다. 영화에서의 부녀(父女) 사이를 실제 부녀가 맡은 것이다. 테이텀 오닐은 아빠가 보러 촬영장에 놀러왔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피는 못 속이는지 테이텀 오닐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열 살. 그 다음 기록은 <피아노>의 안나 파킨으로 열 한 살...)
라이언 오닐과 테이텀 오닐 부녀는 3년 후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다시 호흡을 맞춰 <5센트 극장 (Nickelodeon)>을 만드는데, 5센트만 내면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초창기 영화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역시 보그다노비치의 필모그라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적은 없는데 저번에 우연히 유선방송에서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비록 앞 부분은 보지 못했지만.
이 테이텀 오닐이라는 여배우는 정말이지 깜찍하고 귀여운데다 연기도 너무 잘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배우인데 성인이 되고 나선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해 무척 아쉽다. ' 트의 악동' 라 불렸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존 맥켄로와의 세기의 결혼 이 후 그녀는 영화계를 떠나다시피 했었다. <바스키아>에서 잠깐 얼굴을 본 게 그나마 최근 모습인데 요즘은 뭘 하는지. <5센트 극장>에서 동그란 안경을 쓴 테이텀 오닐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촬영은 라즐로 코박스.
잭 니컬슨 주연의 <'Five Easy Pieces'>, 마틴 스콜세즈의 <'New York, New York'>, 그리고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영화들을 촬영했다. <페이퍼 문>은 흑백으로 촬영된 유려한 화면으로 보는 이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미치스틱 맨>이 개봉되었을 때 <페이퍼 문>이 자주 언급되었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설정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퍼 문>은 작년 하반기에 DVD로 출시가 되었다. 예전부터 이 영화를 무척 보고싶어했던 터라 살까말까 망설이다 마침 지난 달에 EBS에서 방영을 해 줘 공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DVD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코멘터리가 실려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DVD로도 한 번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