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힘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양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그리고 벌써 많은 조짐이 보인다.
중국과 인도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고 문학, 예술, 과학의 패러다임도 동양으로 그 주도권이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설레이게 하는 이런 예상과는 반대로 동양적인 것은 영원히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들도 많이 한다.
우리 젊은 세대들을 얼듯보면 반은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롱다리를 부러워하고, 성형수술하여 눈을 찢고 코를 높이고, 미백화장품을 발라 황인종을 백인같이 하얀피부색으로 만들어간다.
게다가 선정적 몸짓, 직설적 언어, 찰나적 변심, 역사 단절과 파편화된 의식, 퓨전… 등이 우리나라 젊은이를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은근과 끈기”로 집약되는 전통미와는 반대되는 형상이다.
그러나 외모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은 분명 많은 차이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의식차이를 보여주는 예를 몇가지 보면 :
서양인들은 이름, 성 순서로 성명을 말한다.
서양인들은 주소를 쓸 때 번지,동네,시,나라 순서로 쓰는데 우리는 나라, 시, 동네, 번지 순서로 밝힌다.
서양화를 보면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동양화는 인물이 자연 속에 한 부분으로 묻어있다.
양의학은 병든 국부를 잘라내던지 집중치료를 하는데 한의학은 몸 전체 순환을 좋게 하여 병든 부분이 결국 고쳐지게 한다.
외교술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외교관들은 회의 때 세세하게 조목조목 따지면서 이득을 취하는데 동양외교관들은 평소에 친분을 쌓으며 세월을 허송하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타협점에서 “우호적인 마음”,”우방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하여 더 큰 결과를 손에 쥔다.
이렇듯 서양인은 “개체 중심적” 안목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관계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
지금까지 “과학적”이라는 말은 “합리적””논리적”이라는 의미와 같이 이해되었으며 또 “서양적”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최근 과학기초 전체를 뒤엎는 이론이며 은하계의 운동부터 내부 운동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이 나왔다. 이 이론은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현대 과학의 미스테리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나는 과학적 지식이 없지만 이 이론은 참으로 “동양적”인 과학이론인 것 같다. 종전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은 물질을 “입자”의 개념으로 접근한 데 비해 초끈이론은 물질의 세계를 “끈”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 초끈(Super String)은 보이지 않는 강한 에너지이다. 물질은 그 에너지의 끈에 의해서 연결어 있다 것이다.
마치 서양의 “개체적” 세계관에서 동양의 “관계적”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이 옮겨 간 것과 같이 느껴진다.
이 초끈이론의 약점은 “26차원”을 알아야 이해된다는 것이다. “4차원”도 헷갈리는데 …….
그렇다. 서양인들이 경우를 따지면서 셈을 차곡차곡할 때 내 남편처럼 어리숙하고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다스리며 기다리는 동양인들의 전략은 4차원과 26차원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별로 대단치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 여러분야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곤 한다.
사람들은 남편이 엉성한 폼으로 탁구, 볼링, 당구 등을 연습하는 것을 보고 쉽게 덤볐다가 형편없이 지는 경우도 꽤 많고, 한국식 발음으로 더듬거리는 남편의 영어실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시드니대학생들이 “영어 제일 잘하는 비영어권 교수”로 남편을 뽑으니까 혼동스러워 하는 것도 봤다.
정석을 잘 모르고 두는 남편에게 바둑을 지고나서 “운이 없어 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여러판을 진 후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입자화 되어 있는 기술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혼동하는 장면이다.더 두터운 에너지의 “끈”으로 싸여있는 실력을 못 보는 것이다.
바둑은 우리가 세계 최강국으로 지난 15년 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중심에 “돌부처”(박치문), “은근과 끈기”(이홍렬), 등으로 표현되었던 이창호 9단이 있었다. 이 9단은 월등한 능력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혀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의 진수로 세계를 지배했다는 점이다.
그가 한국에 바둑열풍을 불러온 후 바둑영재교육이 불붙었고 어린이들은 밤낮없이 정석을 반복해 연습하며 바둑두는 기계처럼 채찍질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바둑의 철학적, 예술적 미학은 제쳐놓고 기술의 우세와 승부만을 위해 키워졌다. 그 아이들은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는 바둑로보트로 만들어 진 경우도 있다. 그들은 으시시한 어둠 속에서 무자비하게 대결하는 터미네이터의 사이보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최철한9단 박영훈9단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너무 매료되었다.
최철한은 주위를 두터운 영향권으로 만들어 가다가 그 안에 들어온 적을 두터운 에너지 층을 통해 폐부 깊게, 지속적으로 파고들며 정복한다는 것이다.
박영훈은 부드럽고 태도로 전체적 균형을 잡으며 전판을 지배해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끝내기에 보면 그 부드러움은 빈틈없이 짜여진 계산된 망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서양인의 외모를 모방하고 입자처럼 개인주의에 젖어들고 우리 문화를 잊어간다는 탄식을 불식시켜 준다. 그들은 관계적인 우리 문화의 정수를 붙잡았고 세계를 지배해 나간다.
보이지 않지만 물질세계를 강하게 연결하고 있는 초끈 처럼 우리의 문화와 영혼은 이창호 9단을 내었고 그를 이어가는 최철한9단 박영훈9단에게 연결되어 한국바둑의 에너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초끈(Super String), 보이지 않는 에너지
초끈(Super String), 보이지 않는 에너지
(이창호에서 최철한, 박영훈으로 이어지는 동양적 바둑)
21세기에는 힘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양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그리고 벌써 많은 조짐이 보인다.
중국과 인도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고 문학, 예술, 과학의 패러다임도 동양으로 그 주도권이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설레이게 하는 이런 예상과는 반대로 동양적인 것은 영원히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들도 많이 한다.
우리 젊은 세대들을 얼듯보면 반은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롱다리를 부러워하고, 성형수술하여 눈을 찢고 코를 높이고, 미백화장품을 발라 황인종을 백인같이 하얀피부색으로 만들어간다.
게다가 선정적 몸짓, 직설적 언어, 찰나적 변심, 역사 단절과 파편화된 의식, 퓨전… 등이 우리나라 젊은이를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은근과 끈기”로 집약되는 전통미와는 반대되는 형상이다.
그러나 외모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은 분명 많은 차이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의식차이를 보여주는 예를 몇가지 보면 :
서양인들은 이름, 성 순서로 성명을 말한다.
서양인들은 주소를 쓸 때 번지,동네,시,나라 순서로 쓰는데 우리는 나라, 시, 동네, 번지 순서로 밝힌다.
서양화를 보면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동양화는 인물이 자연 속에 한 부분으로 묻어있다.
양의학은 병든 국부를 잘라내던지 집중치료를 하는데 한의학은 몸 전체 순환을 좋게 하여 병든 부분이 결국 고쳐지게 한다.
외교술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외교관들은 회의 때 세세하게 조목조목 따지면서 이득을 취하는데 동양외교관들은 평소에 친분을 쌓으며 세월을 허송하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타협점에서 “우호적인 마음”,”우방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하여 더 큰 결과를 손에 쥔다.
이렇듯 서양인은 “개체 중심적” 안목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관계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
지금까지 “과학적”이라는 말은 “합리적””논리적”이라는 의미와 같이 이해되었으며 또 “서양적”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최근 과학기초 전체를 뒤엎는 이론이며 은하계의 운동부터 내부 운동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이 나왔다. 이 이론은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현대 과학의 미스테리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나는 과학적 지식이 없지만 이 이론은 참으로 “동양적”인 과학이론인 것 같다. 종전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은 물질을 “입자”의 개념으로 접근한 데 비해 초끈이론은 물질의 세계를 “끈”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 초끈(Super String)은 보이지 않는 강한 에너지이다. 물질은 그 에너지의 끈에 의해서 연결어 있다 것이다.
마치 서양의 “개체적” 세계관에서 동양의 “관계적”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이 옮겨 간 것과 같이 느껴진다.
이 초끈이론의 약점은 “26차원”을 알아야 이해된다는 것이다. “4차원”도 헷갈리는데 …….
그렇다. 서양인들이 경우를 따지면서 셈을 차곡차곡할 때 내 남편처럼 어리숙하고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다스리며 기다리는 동양인들의 전략은 4차원과 26차원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별로 대단치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 여러분야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곤 한다.
사람들은 남편이 엉성한 폼으로 탁구, 볼링, 당구 등을 연습하는 것을 보고 쉽게 덤볐다가 형편없이 지는 경우도 꽤 많고, 한국식 발음으로 더듬거리는 남편의 영어실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시드니대학생들이 “영어 제일 잘하는 비영어권 교수”로 남편을 뽑으니까 혼동스러워 하는 것도 봤다.
정석을 잘 모르고 두는 남편에게 바둑을 지고나서 “운이 없어 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여러판을 진 후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입자화 되어 있는 기술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혼동하는 장면이다.더 두터운 에너지의 “끈”으로 싸여있는 실력을 못 보는 것이다.
바둑은 우리가 세계 최강국으로 지난 15년 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중심에 “돌부처”(박치문), “은근과 끈기”(이홍렬), 등으로 표현되었던 이창호 9단이 있었다. 이 9단은 월등한 능력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혀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의 진수로 세계를 지배했다는 점이다.
그가 한국에 바둑열풍을 불러온 후 바둑영재교육이 불붙었고 어린이들은 밤낮없이 정석을 반복해 연습하며 바둑두는 기계처럼 채찍질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바둑의 철학적, 예술적 미학은 제쳐놓고 기술의 우세와 승부만을 위해 키워졌다. 그 아이들은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는 바둑로보트로 만들어 진 경우도 있다. 그들은 으시시한 어둠 속에서 무자비하게 대결하는 터미네이터의 사이보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최철한9단 박영훈9단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너무 매료되었다.
최철한은 주위를 두터운 영향권으로 만들어 가다가 그 안에 들어온 적을 두터운 에너지 층을 통해 폐부 깊게, 지속적으로 파고들며 정복한다는 것이다.
박영훈은 부드럽고 태도로 전체적 균형을 잡으며 전판을 지배해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끝내기에 보면 그 부드러움은 빈틈없이 짜여진 계산된 망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서양인의 외모를 모방하고 입자처럼 개인주의에 젖어들고 우리 문화를 잊어간다는 탄식을 불식시켜 준다. 그들은 관계적인 우리 문화의 정수를 붙잡았고 세계를 지배해 나간다.
보이지 않지만 물질세계를 강하게 연결하고 있는 초끈 처럼 우리의 문화와 영혼은 이창호 9단을 내었고 그를 이어가는 최철한9단 박영훈9단에게 연결되어 한국바둑의 에너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첨부파일 : 초끈.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