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된 영화 는 개봉 전부터 기독교의 집단 반발이라는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내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 안보기 운동’까지 일으키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무엇이 이러한 극한 상황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그건 바로 의 장르적 특성 때문이다. 즉, 영화가 상상하는 허구의 이야기와 종교의 절대적인 진리, 진실 사이에 마찰이 생겨난 것이다. 만약 의 모든 이야기가 작가가 만들어 낸 완벽한 픽션(Fiction)이었더라도 이러한 소란이 발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사실성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 가공된 이야기를 올려 마치 허구가 진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이야기에 관객들이 쉽게 흥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에서도, 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첨가된 장르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무엇인가? 팩션(Faction)이다. 사전적 의미로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라 함은 역사에서의 진실, 사건 등을 다루는 거시사(巨視史)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 개인을 둘러싼 사실을 다루는 미시사(微視史)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팩션은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의 소설들, ‘해신’이나 ‘불멸의 이순신’ 등과 같은 정통사극에서 벗어난 느낌의 TV 드라마에서도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장르 혼합과 장르 변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영화 분야에서 팩션은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팩션이라는 장르 자체의 신선함과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역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력이 하나의 요인이다. 그리고 ‘웬만한 시나리오의 이야기는 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의 소재가 줄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관객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재의 한계가 팩션을 계속해서 만들어 냄과 동시에 팩션은 영화제작 과정의 안정성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본래 장르라는 것은 영화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할리우드 시스템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안전한 영화제작의 수익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한국 영화사들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다. 팩션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인기 품목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충무로는 TV 다큐멘터리 ‘KBS 인간극장’에서 방영되어 이슈를 일으킨 이야기들을 적극 영화화하고 있다. , 등의 영화를 보라. TV를 통해 미리 검증 받았던 소재를 영화화하는 전략인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영화계의 새로운 트랜드가 되고 있는 팩션. 그 팩션을 표방한 한국 블록버스터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한.반.도. 제목 자체만으로도 도발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모든 이야기가 이해되는 듯한 에서 팩션은 영화 그 자체를 말한다. 영화는 100년 전의 역사적 진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이야기를 장장 127분 동안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숨 가쁘게 나열한다. 영화를 판단함에 있어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나 소재, 그 무엇이든 그것 자체를 감독 개인의 고뇌에서 비롯된 창작물로 보는 작가 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는 작가주의가 심하게 반영된 영화다. 지나친 비약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를 보는 내내 느꼈던 하나의 사실에 기인한다. 바로 ‘극일’과 ‘민족주의 고취’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너무 자신 있게 그리고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 전개 방법이 답답하리만치 외골수적이고,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무엇을 위한 볼거리였던가 하는 의문을 주는 등의 거슬림이 있다 할지라도 “한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소신은 200%이상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모든 판단은 관객의 몫이기에 의 평가는 이쯤에서 뒤로 미루면서, 를 통해 살펴본 팩션의 다양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 거시사로서의 팩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팩션의 정의 안에 내포된 역사의 의미는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본으로 하는 ‘거시사(巨視史)’로서의 팩션 영화를 먼저 살펴보면 미시사(微視史)에 비해 대작인 경우가 많다. 96억 원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의 경우 100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진실과 진실처럼 떠돌던 몇 개의 설들을 바탕으로 한 거시사에 2006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 속의 한민족과 극일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가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 진실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비밀로 감춰져 왔던 이야기를 팩션으로 부활시킨 영화들도 있다. 1968년 창설된, 대한민국 정부가 그토록 부인해 온 ‘실미도 684부대’ 북파 공작원에 관한 민감한 소재를 다뤄 1000만 관객의 신화를 만들어 낸 . 1979년 10.26 사태를 소재로 대통령 암살을 둘러싼 이야기를 신랄한 풍자와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로 풀어낸 . 특히 은 법정에서 다큐멘터리 일부분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격렬한 토론까지 이끈 문제작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 발생시킨 장르적 특성으로 인한 진실과 허구 사이의 모호한 문제들은 2005년 이 이미 선례를 남겼던 일들이다. 이처럼 와 두 영화 모두 개봉 당시 큰 이슈를 만들어 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 이 각각 팩션 자체 혹은 역사적 사건의 객관적 제시, 블록버스터적 액션이나 블랙코미디적 사회적 풍자가 가미되었다면, 은 앞의 세 영화에서 발견되는 요소가 두루 포진되어 있다. 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우회적으로 그리면서 날카롭게 풍자해낸다(사회적 고찰의 측면). 대한민국 고대사의 커다란 사건인 ‘황산벌 전투’를 소재로 진실과 상상력을 알맞게 곁들이면서도(팩션장르 자체의 측면) 다양한 볼거리를 빼놓지 않는다. 신라와 백제 두 진영 간의 사투리 대결과 기 싸움, 특히 “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라는 계백의 아내, 김선아의 주옥 같은 대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곧, 은 팩션과 코미디가 결합된, 장르 혼합의 전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미시사로서의 팩션
개인의 작은 역사이자 개인을 둘러싼 주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미시사(微視史)에 작가의 허구적 내용이 녹아 든 영화들도 거시사로서의 팩션 영화 못지 않게 많이 있다. 거시사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대작이나 블록버스터를 추구하는 것에 반해 미시사에 초점을 맞춘 팩션 영화들은 규모가 작거나 내용 자체가 광범위하지 않다. 또한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디테일한 묘사를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존 인물들의 전기적 이야기를 다룬 이나 같은 스포츠와 격투기 소재의 영화들은 한류 바람에 힘입어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여 국제 협력의 한 형태로써 제작된 본보기이기도 하다.
앞서 영화 제작의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팩션을 선호하는 추세를 언급하며 ‘KBS 인간극장’에 소개된 개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시청자들에게 검증 받은 프로그램의 실제 인물들을 내세워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 , , 등이 있다. 영화의 내용이나 특징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생략하고, 네 영화를 다시 세분화하면 감동과 유머 두 개의 코드로 나눠진다. 과 는 미시사 감동 팩션, 그리고 과 는 미시사 유머 팩션. 물론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의 결말은 매우 감동적일 수 있고, 의 경우 장애라는 소재가 만들어내는 비일상적인 상황이나 대사가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이 말인즉슨 위와 같은 분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며, 아울러 카테고리화의 유동성이 상대적임을 밝히는 것이다.
- 거시사 + 미시사로서의 팩션
지금까지 살펴본 영화들이 뚜렷한 특징으로 묶였던 것에 비해 와 은 분류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다. , 모두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본 모티브로 하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시사적 팩션 영화로 구분된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영화 속 개인의 이야기가 크게 확장되어 역사적 진실과 사회적 진실로 내용을 전개해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거시사적 팩션 영화의 경향에 속한다. 이러한 두 개의 관점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와 을 거시사와 미시사를 합친 팩션으로 보고자 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宥罪)”. 한국 사회의 숨겨진 병폐를 촌철살인 같은 이 한마디로 꼬집어내 화제가 되었고, 비지스의 음악 ‘홀리데이’를 국민 음악으로 만들어내기도 한 지강헌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창조해낸 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한국 영화의 배급, 상영의 문제점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영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거대 배급 라인과 상영 극장을 가진 업체끼리의 싸움에 관객들만 피해를 보았던 사건이었고, 결국 는 영화 자체의 이슈보다는 영화 외적인 볼거리와 뉴스거리를 제공한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봉 전부터 친일 논란에 휘말렸던 도 영화 자체보다는 곁가지에서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영화 속 개인의 이야기가 영화 바깥에서는 엉뚱하게도 친일 논란만을 가열시켰고, 주인공의 내면적 성숙 과정, 인종 차별에 대한 극복과 도전 의식 등은 부각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의 소재가 무한정하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슈가 된 소재들은 한번쯤 영화화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수 천년 동안 역사 안에 잠들어 있던 그 많은 이야기의 소재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팩션의 강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해외 언론의 기자들이 특파원으로서 제일 가보고 싶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조용해질 여유조차 없이 매번 다른 사건들로 나라가 들썩인다는 소리일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격변기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그 동안 억눌림에 말하지 못했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사건들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뉴스 일면이나 자투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희노애락의 사건들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진실이라는 바탕 아래 영화화된다면 대한민국의 영화인들은 다양한 소재로 인해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우려의 말을 덧붙이자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팩션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역사적 사실에 조금의 상상력만 가미해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팩트와 픽션의 장점인 역사적 사실성과 대중적 오락성을 함께 추구, 구현해 팩션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다면 플러스의 반향이 되겠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팩션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슈 파이팅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역사적 진실이 왜곡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신뢰의 시나리오와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이 모인다면 팩션 장르는 영원할 것이며, 팩션 자체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들이 이들을 뒷받침해준다면 팩션 소재 영화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1세기 다이내믹 코리아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영화인들의 역동적인 팩션 소재의 영화들을 간절히 기대해본다.
<한반도>를 통해 살펴본 팩션의 스펙트럼 잘 키운 팩션 하나, 열 영화 안 부럽다!
를 통해 살펴본 팩션의 스펙트럼 잘 키운 팩션 하나, 열 영화 안 부럽다!
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첨가된 장르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무엇인가? 팩션(Faction)이다. 사전적 의미로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라 함은 역사에서의 진실, 사건 등을 다루는 거시사(巨視史)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 개인을 둘러싼 사실을 다루는 미시사(微視史)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팩션은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의 소설들, ‘해신’이나 ‘불멸의 이순신’ 등과 같은 정통사극에서 벗어난 느낌의 TV 드라마에서도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장르 혼합과 장르 변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영화 분야에서 팩션은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팩션이라는 장르 자체의 신선함과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역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력이 하나의 요인이다. 그리고 ‘웬만한 시나리오의 이야기는 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의 소재가 줄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관객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재의 한계가 팩션을 계속해서 만들어 냄과 동시에 팩션은 영화제작 과정의 안정성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본래 장르라는 것은 영화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할리우드 시스템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안전한 영화제작의 수익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한국 영화사들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다. 팩션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인기 품목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충무로는 TV 다큐멘터리 ‘KBS 인간극장’에서 방영되어 이슈를 일으킨 이야기들을 적극 영화화하고 있다. , 등의 영화를 보라. TV를 통해 미리 검증 받았던 소재를 영화화하는 전략인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영화계의 새로운 트랜드가 되고 있는 팩션. 그 팩션을 표방한 한국 블록버스터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한.반.도. 제목 자체만으로도 도발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모든 이야기가 이해되는 듯한 에서 팩션은 영화 그 자체를 말한다. 영화는 100년 전의 역사적 진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이야기를 장장 127분 동안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숨 가쁘게 나열한다. 영화를 판단함에 있어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나 소재, 그 무엇이든 그것 자체를 감독 개인의 고뇌에서 비롯된 창작물로 보는 작가 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는 작가주의가 심하게 반영된 영화다. 지나친 비약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를 보는 내내 느꼈던 하나의 사실에 기인한다. 바로 ‘극일’과 ‘민족주의 고취’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너무 자신 있게 그리고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 전개 방법이 답답하리만치 외골수적이고,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무엇을 위한 볼거리였던가 하는 의문을 주는 등의 거슬림이 있다 할지라도 “한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소신은 200%이상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모든 판단은 관객의 몫이기에 의 평가는 이쯤에서 뒤로 미루면서, 를 통해 살펴본 팩션의 다양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팩션의 정의 안에 내포된 역사의 의미는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본으로 하는 ‘거시사(巨視史)’로서의 팩션 영화를 먼저 살펴보면 미시사(微視史)에 비해 대작인 경우가 많다. 96억 원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의 경우 100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진실과 진실처럼 떠돌던 몇 개의 설들을 바탕으로 한 거시사에 2006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 속의 한민족과 극일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가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 진실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비밀로 감춰져 왔던 이야기를 팩션으로 부활시킨 영화들도 있다. 1968년 창설된, 대한민국 정부가 그토록 부인해 온 ‘실미도 684부대’ 북파 공작원에 관한 민감한 소재를 다뤄 1000만 관객의 신화를 만들어 낸 . 1979년 10.26 사태를 소재로 대통령 암살을 둘러싼 이야기를 신랄한 풍자와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로 풀어낸 . 특히 은 법정에서 다큐멘터리 일부분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격렬한 토론까지 이끈 문제작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 발생시킨 장르적 특성으로 인한 진실과 허구 사이의 모호한 문제들은 2005년 이 이미 선례를 남겼던 일들이다. 이처럼 와 두 영화 모두 개봉 당시 큰 이슈를 만들어 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 이 각각 팩션 자체 혹은 역사적 사건의 객관적 제시, 블록버스터적 액션이나 블랙코미디적 사회적 풍자가 가미되었다면, 은 앞의 세 영화에서 발견되는 요소가 두루 포진되어 있다. 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우회적으로 그리면서 날카롭게 풍자해낸다(사회적 고찰의 측면). 대한민국 고대사의 커다란 사건인 ‘황산벌 전투’를 소재로 진실과 상상력을 알맞게 곁들이면서도(팩션장르 자체의 측면) 다양한 볼거리를 빼놓지 않는다. 신라와 백제 두 진영 간의 사투리 대결과 기 싸움, 특히 “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라는 계백의 아내, 김선아의 주옥 같은 대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곧, 은 팩션과 코미디가 결합된, 장르 혼합의 전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작은 역사이자 개인을 둘러싼 주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미시사(微視史)에 작가의 허구적 내용이 녹아 든 영화들도 거시사로서의 팩션 영화 못지 않게 많이 있다. 거시사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대작이나 블록버스터를 추구하는 것에 반해 미시사에 초점을 맞춘 팩션 영화들은 규모가 작거나 내용 자체가 광범위하지 않다. 또한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디테일한 묘사를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존 인물들의 전기적 이야기를 다룬 이나 같은 스포츠와 격투기 소재의 영화들은 한류 바람에 힘입어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여 국제 협력의 한 형태로써 제작된 본보기이기도 하다.
앞서 영화 제작의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팩션을 선호하는 추세를 언급하며 ‘KBS 인간극장’에 소개된 개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시청자들에게 검증 받은 프로그램의 실제 인물들을 내세워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 , , 등이 있다. 영화의 내용이나 특징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생략하고, 네 영화를 다시 세분화하면 감동과 유머 두 개의 코드로 나눠진다. 과 는 미시사 감동 팩션, 그리고 과 는 미시사 유머 팩션. 물론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의 결말은 매우 감동적일 수 있고, 의 경우 장애라는 소재가 만들어내는 비일상적인 상황이나 대사가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이 말인즉슨 위와 같은 분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며, 아울러 카테고리화의 유동성이 상대적임을 밝히는 것이다.
- 거시사 + 미시사로서의 팩션
지금까지 살펴본 영화들이 뚜렷한 특징으로 묶였던 것에 비해 와 은 분류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다. , 모두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본 모티브로 하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시사적 팩션 영화로 구분된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영화 속 개인의 이야기가 크게 확장되어 역사적 진실과 사회적 진실로 내용을 전개해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거시사적 팩션 영화의 경향에 속한다. 이러한 두 개의 관점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와 을 거시사와 미시사를 합친 팩션으로 보고자 한다.
개봉 전부터 친일 논란에 휘말렸던 도 영화 자체보다는 곁가지에서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영화 속 개인의 이야기가 영화 바깥에서는 엉뚱하게도 친일 논란만을 가열시켰고, 주인공의 내면적 성숙 과정, 인종 차별에 대한 극복과 도전 의식 등은 부각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의 소재가 무한정하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슈가 된 소재들은 한번쯤 영화화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수 천년 동안 역사 안에 잠들어 있던 그 많은 이야기의 소재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팩션의 강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해외 언론의 기자들이 특파원으로서 제일 가보고 싶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조용해질 여유조차 없이 매번 다른 사건들로 나라가 들썩인다는 소리일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격변기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그 동안 억눌림에 말하지 못했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사건들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뉴스 일면이나 자투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희노애락의 사건들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진실이라는 바탕 아래 영화화된다면 대한민국의 영화인들은 다양한 소재로 인해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우려의 말을 덧붙이자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팩션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역사적 사실에 조금의 상상력만 가미해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팩트와 픽션의 장점인 역사적 사실성과 대중적 오락성을 함께 추구, 구현해 팩션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다면 플러스의 반향이 되겠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팩션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슈 파이팅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역사적 진실이 왜곡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신뢰의 시나리오와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이 모인다면 팩션 장르는 영원할 것이며, 팩션 자체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들이 이들을 뒷받침해준다면 팩션 소재 영화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1세기 다이내믹 코리아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영화인들의 역동적인 팩션 소재의 영화들을 간절히 기대해본다.
이루 ji@cine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