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두발자유 두발규제폐지는 우리 학생이 꼭 철폐해야 하는 악습입니다.

양승재2006.07.21
조회5,368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 청소년입니다.

 

한 네이버 카페에서 저도 손을 못 대고 있던 법까지 인용하셔서

 

모범적으로 두발 규제를 반박하는 글을 올려 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 글을 발췌해 여기에 적으려고 합니다.

 

저작권 등 문제가 있으면 자진 삭제하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돌려주세요

 

이 글은 두발 규제에 대해 적어도 선생님께서 하는 말씀에는

 

대개 반박할 수 있음직한 모범적인 글입니다

 

학생 여러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이제는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다함께 힘을 합쳐 두발규제 폐지합시다

 

자유는 원하는 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적어도 이 글은 다 읽어주시는 정성을 발휘해야 진정으로

 

자기가 두발자유를 원하고 있구나하는 말 할 수 있을것입니다

 

상당히 길지만,

(절대로 반항의 글이 아닙니다)

 

                          ---------------------밑부분부터 발췌-----------------------

 

1. 두발 규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두발 규제는 첫째, 역사적 정당성이 없으며 둘째, 위헌적 성격이 강합니다.

 

 

 

첫째, 두발 규제는 일제시대 단발령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치루면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 하였고, 학교는 예비 군인을 기르는 곳으로 ‘병사형 인간’을 육성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군대식의 규율과 복장, 두발은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두발 규제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 중 ‘신체의 자유’(헌법 제12조 ①항)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나와있는 국민의 기본권은 인권중 반드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것을 가려 법으로 보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헌법 제37조 ②항)

 

 

 

위의 조항에 따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두발 규제는 법률에 그 기준과 시행방식등이 명시되어야만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법률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학생들의 머리는 3cm로 제한한다”는 조항은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되려,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을 뿐입니다.(헌법 제11조 ①항) 이것은 흔히 ‘법앞의 평등’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우리가 ‘학생’이라는 신분에 의해 차별 대우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하도록 규정했으나, 학생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로, 현재 학교의 두발 규제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서 위법, 위헌적 성격이 농후합니다.

 

 

 

 

 

 

 

 

 

2. 완전 자유화인가? 학생회 자율 규제인가?

 

 

 

두발 자유화를 주장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두발 규제를 몇센치 풀어주는 것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혹은 더 괜찮은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자율로 두발 규제를 정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몇 센치 까지 기르게 할 것인가?’로 토론이 변질되고 맙니다. 이러한 토론은 ‘인권의 가치’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인권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타인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신성한 것입니다. 밑엣글을 봅시다.

 

 

 

 

 

 

 

 

 

“ 인류 사회의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존엄성과 평등하고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한다(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머리말,1996년) ”

 

 

 

 

 

 

 

 

 

그런데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토론(“길이만 좀 길게 하자”와 같은..)은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너무나 쉽게 남에게 넘겨 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 인권은 타인에게 넘겨 줄 수 없습니다. 단지, 아주 엄격한 조건하에서 (철저한 검토와 당사자의 동의속에서) 당분간만 ‘위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게 우리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위임’한다는 어떠한 토론도 거친 적이 없습니다. “길이에 대한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이전에, 학교에서의 두발 규제에 동의할 것인가? 에 대해 먼저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길이라도 좀 길어지면 좋겠다’는 것은 마치 깡패에게 자릿세를 뻇기는 힘없는 학생들이 “이제, 힘없이 당하지 말자!!”고 뭉쳤는데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하루에 만원이상 씩은 절대로 줄수 없다!”따위에 지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힘없는 학생들이 모여서 해야 하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돈을 뺐기지 말자! 싸우자!”라는 이야기가 되어야 옳습니다.

 

 

 

 

 

 

 

 

 

또한, 우리는 학교에서도 과학적 진위여부의 문제나 ‘가치’의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수결’로 결정된 ‘현실적인 정책’이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끝까지 지키려는 ‘가치’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도 지켜야할 ‘가치’이지만)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동등한 권리와 인격’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아무리 현명한 사람이 왕으로 있다 하더라도 (영국의 액턴경이 이야기 한 명언,)‘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항상, 모두의 인권을 지켜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다수 민중의 손에 권력을 주고(재민주권의 원칙) 권력의 부패를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 민주주의의 의의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 인권에 대해서도 ‘민주적으로 결정하겠다’면서 다수결로 결정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국민 투표에 의해서 대한민국을, 왕이 다스리는 ‘대한왕국’으로 바꾸는 것은 과연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입니까??”

 

 

 

위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이야기 하신 분들은, 매우 위험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몇번인가 비슷한 경험을 인류는 했습니다. 바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뭇솔리니가 국민들의 동의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독재자’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원한다 할지라도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독재가 됩니다. 그것을 J.S.밀 이라는 철학자 그것을 ‘다수의 횡포’라고 하여 경고하였습니다.

 

 

 

‘다수의 횡포’가 적절하게 견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항상 소수의 피해자가 생깁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사약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최근에는 단순히 성적 취향이 많은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직업을 잃은 홍석천씨가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단지, 민주주의의 원래 취지를 퇴색시키지 않도록 경계하고, 두발 규제에 대한 토론에서도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자는 것입니다.

 

 

 

 

 

 

 

 

 

3. 두발 자유화로 탈선이 많아지는가?

 

 

 

많은 어른들이 두발 자유화로 탈선이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대체로 세 부류의 어른들이 있는 것 같은데 첫 번째는 “두발 자유화 = 탈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어른들입니다.

 

 

 

이런 어른들은 ‘탈선’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는

 

 

 

“학생이 서태지 같은 대걸레 머리를 하고 다닌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아무런 합당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은 일종의 ‘미신’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반박은 아주 간단합니다 “왜 안되는데요?”

 

 

 

 

 

 

 

 

 

두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에서 약간 진화한 형태입니다. 일명 ‘유치한 반영론’이라고 해두죠. 이 분들은 외모가 그대로 정신에 반영된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군대나 학교에서 두발과 용의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군인과 학생의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른들을 ‘유치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른들의 주장이 “염색하지 않은 스포츠 머리와 단발머리만이 제대로 된 정신을 만든다”는 식의 유치한 수준이기 떄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MBC백분 토론에 나오신 김삼랑 교장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로써 소위 ‘날라리’라 불리우는 학생들과 ‘모범생’이라고 불리우는 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잘못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학생이 강도나, 도둑질이나, 성폭행과 같은 일탈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눈에 띄는 염색머리를 하느니 평범한 스포츠 머리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스포츠 머리를 한 학생도 얼마든지 도둑질이나 성폭행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스포츠 머리는 학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거죠.

 

 

 

유치한 반영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날라리’학생들이 ‘날라리’가 된 이유를 그 학생들이 외모가 불량해 마음까지 흐트러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위에서 ‘날라리 같은’ 우등생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교사의 ‘편견’에 의해 학생들의 미래가 좌우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사회학자 고프만이 이야기 하는 ‘낙인’이나 로젠탈과 자콥슨 이 이야기 하는 ‘피그맬리언 효과’, 머턴이 이야기 하는 ‘자기만족적 예언’등이 그런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이런 일들이 ‘편애’라는 모습으로 비일비재 합니다. 가령, 교사 입장에서 ‘똑똑한 애’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면 “음, 역시 대단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멍청한 애’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면 “야, 니가 왠일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복장상태에 있어서도, 소위 ‘불량’하게 하고 다니는 학생이 한번 사고를 치면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라며 불량학생의 낙인을 찍는데 반해 외모가 소위 ‘단정’한 학생이 사고를 치면 “네가 어쩌다가 이랬니?”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교사는 자기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편견대로 학생을 낙인찍고, 자신의 편견대로 학생을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배우는 내용으로, 교사의 편견을 조심하라는 의도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내용에 근거해서 “두발 자유화 보다 ‘긴 염색머리=탈선’ 이라는 교사의 생각이 더 많은 탈선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성인과 구분이 가지 않으면 청소년 유해 업소에 출입하거나 술,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그러한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그 해결책으로 두발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선택입니다.

 

 

 

그러한 분들이 가장 자주 드는 예는 바로 작년 가을에 일어난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입니다.(아! 먼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아직도 부상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계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은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법을 지키지 않은 상인들의 각성을 요구하기는커녕 되려 피해자인 학생들의 두발 규제(인권침해)를 주장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청소년들의 ‘일탈행위’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미 ‘청소년 보호법’에의해 청소년들의 ‘유해업소’출입과 술,담배의 판매는 엄격히 금지되어있습니다. (청소년 보호법 제4조 ②항,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제3조) 또한, 위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술, 담배를 판매한 경우에는 판매 횟수마다 100만원, 청소년 출입 금지를 어긴 사람은 출입허용 횟수마다 300만원의 벌금을 내게 되어있습니다.(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별표8 - 위반행위의 종별에 따른 과징금 부과기준)

 

 

 

술, 담배를 파는 상인들이 위와 같은 법을 준수하기만 했어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위와 같은 법을 어긴 것 때문에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의 ‘라이브 호프집’ 사장인 정성갑씨에게 ‘과실치사상’죄를 적용 6년을 선고했으며, 뇌물을 받고 청소년의 출입을 눈감아준 당시 인천 중부서 형사계장인 이정균씨와 교통지도계장인 이성환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국민일보 2000년 2월 14일 사회면)

 

 

 

이러한 비리에 의한 사건을 ‘두발 규제’의 근거로 드는 것은 화재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에 가깝습니다.

 

 

 

청소년들의 유해업소 출입과 음주, 흡연은 상인들이 ‘신분증’검사만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해결될 것입니다. 많은 어른들은 ‘머리를 기르면 성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되려 어른들이 얼마나 법을 하찮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상인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고자 한다면 ‘외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주민등록증상 나와있는 연령’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상인들에게 이러한 의무를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은, 한마디로 ‘상인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자녀들을 규제하는’ 꼴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인들의 편의와 학생들의 신체의 자유.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 인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마치 범죄자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선량한 시민 모두를 감옥안에 가둬놓고 보호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4.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가?

 

 

 

두발이 자유화 되면,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학생은 오직 공부를 하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는 점과 학교 또한 공부를 위한 학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소망’입니다.현실적으로 중고등학교는 오로지 명문대를 가기 위해 다니는 곳입니다만, ‘올바른 교육’을 이야기 하는 분들은 ‘학교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교사와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곳’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만약, 학교가 진짜로 이래야 한다면(꿈 같은 이야기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괜히 학생의 머리를 자르고, 또 그것 때문에 교사와 학생이 갈등을 일으켜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즉,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실제로 학습 능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발’보다는 학교 시설이나 학습 방법,내용이라는 겁니다. 실례로 서울 과학고등학교에서는 짧은 머리로 규제하지 않지만, 학습 능률은 스포츠로 규제하는 학교보다 월등합니다. 학생들의 성적이나, 학습 능률은 두발과 같은 ‘사소한 것’보다는 “어떠한 시설에서, 어떠한 내용을, 어떠한 방법으로” 배우느냐에 따라 달렸습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선풍기 4대에 의존해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머리를 기르면 학습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만큼 어처구니 없는 일도 없습니다.

 

 

 

 

 

 

 

 

 

5. 학교에는 어느 정도 규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떤 공동체, 조직이나 나름의 규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율이 있어야만 공동체,조직은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규율은 ‘정당한’ 규율이어야만 합니다.

 

 

 

조직 폭력배나 소위 ‘일진’들에게도 나름의 규율은 있습니다.

 

 

 

‘선배가 하늘이다.’라거나, ‘배신자는 반드시 복수한다’라는 식의 규율이 그런 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율을 보고 아무도 정당하다거나 윤리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며, 그러한 규율들은 오로지 ‘강한조직’을 만들기 위한 목적에 의해 인권을 철저히 짓밟고, 동의 없이 정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교의 규율은 어떻습니까? 교육부가 ‘교육법 시행령’을 통해 학칙의 모델을 제시하고, 교장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들이 뚝딱 만들어낸 학칙이 과연 정당한 걸까요?

 

 

 

소수가 뚝딱 만들어낸 학칙에는 어떠한 ‘윤리적 근거’도 ‘토론에 기반한 동의’도 없습니다.

 

 

 

그저 ‘명령’과 ‘처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마치 조직폭력배가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 처럼 교장을 비롯한 소수 선생님들은 ‘명문 학교’로 발돋움하기 위해 그러한 학칙을 내릴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학교는 비윤리적이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정당한 규율은 구성원들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상호간의 배려에 바탕해야합니다.

 

 

 

 

 

 

 

 

 

혹시나, 우리의 주장이 학교의 모든 규율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봐 몇마디 더 붙이겟습니다. 학교에는 당연히 규율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령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타인의 수업권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되어도 타당할 겁니다. 다른 학생의 돈을 뺏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엄연한 인권침해이기 떄문에 처벌을 받거나 퇴학을 당해도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학교에 타당한 규율’을 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두발 규제는 학교에 반드시 있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6.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은 없겠는가?

 

 

 

사려깊은 어른 분들은, 두발 자유화에 따른 학생들의 위화감을 걱정합니다.

 

 

 

새빨갛게 염색을 하거나, 비싼 퍼머를 한 학생들과 다른 학생들 사이에 문화적, 꼉제적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 거냐는 것이죠.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 어떤 경우에는 ‘위화감’이 형성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까요?

 

 

 

우선 문화적 위화감을 봅시다. 우리 나라는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개개인이 각자 신체의 자유와 표현, 양심 사상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지나가다 보면 빨간 머리를 한 대학생도 있고, 한복을 곱게 입은 할머니도 있습니다.

 

 

 

이 둘이 길에서 마주쳤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 빨간머리 대학생은 속으로 “으이구, 저 구린 한복을 입고 어떻게 길에 다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할머니는 “저게 무슨 난리야? 미국놈 닮을려고 애를 쓰는 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의 얼굴 앞에서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겁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조금 더 성숙된 의식을 갖고 있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여유롭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관용’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관용’의 태도는 다원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필수적인 덕목이 되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관용의 태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 사회는 허구한날 싸움과 폭력으로 바람잘 날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