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골(Batigoal)~!" 이 별명은 그가 골을 잡으면 해설자가 그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골을 넣는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만큼 슛팅이 강했고, 또 골 결정력도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에서 9년 동안 뛰었다. 1992-1993 시즌 피오렌티나는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흔히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면 주축이 되는 선수들은 1부리그의 다른팀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바티스투타는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명문구단의 러브콜을 뿌리치면서까지...... 피오렌티나를 1년만에 세리에A로 복귀시키면서 복귀한시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의 수호신'으로 아직까지 기억되고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는 우승을 할 수 있을만큼 강팀이 아니였다. 그는 소원이였던 우승컵을 위해 2000년에 AS로마로 이적했다
보통 어떤 팀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선수가 이적을 하면 그 선수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오렌티나팬들은 그를 축복하며 보내주었다. 바티스투타는 이적 문제로 고민하면서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으며, 이적 발표 후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오렌티나를 사랑했고, 팬들은 그것을 알았기때문이다.
바티스투타는 이적후 피오렌티나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상당하길 바란다. 그러면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뛰지 않아도 되니까.
" 이적후 피오렌티나와의 첫 경기,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 바티스투타는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동료였던 루이코스타(현 AC밀란)등과 많은 피오렌티나팬들 앞에서 끝내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의 실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골을 넣어야하는 상황, 또는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가 공을 잡으면 골이 되었다. 그는 세리에 A에서 득점왕을 차지한건 한번 뿐이지만, 그가 AS로마로 이적한 첫 시즌에서 스쿠테토(세리에 A 우승을 의미)를 차지했을 만큼 그는 훌륭한 선수였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는 게르트 뮐러(독일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월드컵 최다골 보유자)의 14골을 깰 유일한 선수로도 평가받았었다.(지금은 호나우도가 거의 근접해 있지만 살이쪄서-_ -) 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94년 미국 월드컵때는 16강에서 만난 루마니아에게 3:2로 무릎을 꿇었고(총 4골 득점, 해트트릭포함), 98년 프랑스 월드컵때는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패했다(총 5골 득점, 두대회 연속 해트트릭).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때는 죽음의 조에서 부진끝에 조별예선탈락, 마지막경기후에 눈물을 흘리며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바티스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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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렌티나 경기 중계를 듣고 있노라면 매 경기마다 나오던 말이 있다.
"바티골(Batigoal)~!" 이 별명은 그가 골을 잡으면 해설자가 그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골을 넣는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만큼 슛팅이 강했고, 또 골 결정력도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에서 9년 동안 뛰었다. 1992-1993 시즌 피오렌티나는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흔히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면 주축이 되는 선수들은 1부리그의 다른팀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바티스투타는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명문구단의 러브콜을 뿌리치면서까지...... 피오렌티나를 1년만에 세리에A로 복귀시키면서 복귀한시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의 수호신'으로 아직까지 기억되고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는 우승을 할 수 있을만큼 강팀이 아니였다. 그는 소원이였던 우승컵을 위해 2000년에 AS로마로 이적했다
보통 어떤 팀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선수가 이적을 하면 그 선수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오렌티나팬들은 그를 축복하며 보내주었다. 바티스투타는 이적 문제로 고민하면서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으며, 이적 발표 후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오렌티나를 사랑했고, 팬들은 그것을 알았기때문이다.
바티스투타는 이적후 피오렌티나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상당하길 바란다. 그러면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뛰지 않아도 되니까.
" 이적후 피오렌티나와의 첫 경기,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 바티스투타는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동료였던 루이코스타(현 AC밀란)등과 많은 피오렌티나팬들 앞에서 끝내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의 실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골을 넣어야하는 상황, 또는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가 공을 잡으면 골이 되었다. 그는 세리에 A에서 득점왕을 차지한건 한번 뿐이지만, 그가 AS로마로 이적한 첫 시즌에서 스쿠테토(세리에 A 우승을 의미)를 차지했을 만큼 그는 훌륭한 선수였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는 게르트 뮐러(독일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월드컵 최다골 보유자)의 14골을 깰 유일한 선수로도 평가받았었다.(지금은 호나우도가 거의 근접해 있지만 살이쪄서-_ -) 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94년 미국 월드컵때는 16강에서 만난 루마니아에게 3:2로 무릎을 꿇었고(총 4골 득점, 해트트릭포함), 98년 프랑스 월드컵때는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패했다(총 5골 득점, 두대회 연속 해트트릭).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때는 죽음의 조에서 부진끝에 조별예선탈락, 마지막경기후에 눈물을 흘리며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바티스투타 - "모든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