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함경도에서는 소주를 '아랭이', '아래기', '아래이', '아랑주'라 한다. 이 모두 몽골말 '아라키주'에서 비롯되었다. 징기스칸의 서역 원정 때 페르시아 소주인 알렉, 아랍 소주인 아라크, 터기 소주인 라크가 몽고에 도입돼 아라키주가 되었고, 이 말은 영어로 주정을 뜻하는 알코올의 어원이기도 하다.
소주 하면 예로부터 개성 소주와 안동 소주를 꼽았다. 온 세계를 휩쓸었던 몽고군이 우리나라를 발판으로 하여 일본으로 쳐들어가려 했을 때 전초 기지로 삼은 곳이 안동과 개성이었기로 많은 몽고병이 이 두 고을에 득실거렸다.
몽고병들은 추위를 막고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자극제로서 아락주를 가죽 술병에 담아 허리에 차고 다니며 수시로 마셨다.
이 외인부대에 아락주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한국 소주의 뿌리라고 하다. 그래선지 개성 지방에서는 근대까지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불렀다.
문헌으로 보아 고려 말기에는 소주가 여염에 번져 있었던 것같다. 고려 말에 무신 김진이 원수가 되어 왜구를 막는다고 경상도에 와 있었는데, 왜적 막을 생각은 않고 매일같이 명기들을 갈아가며 참모들과 소주를 마시고 밤낮으로 취해 지내는 바람에, 부하나 백성들이 '소주도'라고 비꼬았다는 말이 고려사 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때마침 합포에 왜적이 들어와 불을 지르고 노략질을 하자 병사들이 "소주도를 시켜 칠 일이지 우리야..." 하고 방과하는 바람에 소주도들이 앞서서 달아났다 한다.
조선 문정의 빈소를 지키느라 탈진한 나이 어린 단종에게 조금씩 먹여 정신차리게 했다는 기록 등으로 미루어 조선조 전반에는 주로 약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소주가, 선조 이후 상류 사회나 관료 사회에 은밀히 나도는 사치스런 술이 되어 자주 규탄받았다.
지방에 따라 특색 있는 맛을 내는 소주가 적지 않았다. 육회를 안주 삼아 따끈한 밥주발 뚜껑으로 마셔야 제맛이 난다는 안동 소주, 황해도 선비들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선비 아낙들이 빚어 팔기 시작했다는 공덕리 소주, 배와 생강즙을 곁들인 전주의 이강고, 남도 대나무 고지에서 나는 죽력고, 관서 명주인 감홍로, 귀양 선비의 한을 풀어 주었다는 진도 홍로 등.
또 소주를 대통 속에 묵혀 두었던 죽통로, 살아 있는 소나무 밑동을 파고 그 속에서 묵혔던 와송로 등 개성 있는 소주가 많았다. 이처럼 맛과 질이 다른 소주가 많아, 찾아 마시는 이의 기호에 따라 무척 사랑받았다고 한다.
한 번 내린(증류) 술을 소주 또는 노주, 홍로라 불렀고, 두 번 내린 술을 환소주 또는 감홍로라 불렀다는 순조 때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소주의 질도 꽤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탁주, 청주와 더불어 소주는 우리의 3대 토속주가 돼 내렸왔던 것이다.
지금 많이들 마시고 있는 소주는 전통적 증류주가 아닌 주정에 물을 탄 희석주이기에 토주가 아닌 유사 소주에 불과한 것이다.
소주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