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ings go wrong and will not come right, Though you do the best you can, When life looks black as the hour of night- A pint of plain is your man. Flann O’Brien, 1939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인생이 칠흑 같은 어둠처럼 보일 때 한 잔의 플레인(Plain)만이 유일한 벗이라는 브라이언의 시에서 플레인이란 포터(Porter)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포터와 스타우트(Stout)는 풍미가 강한 고급 맥주이지만 1세기 전만 해도 노동자들이 즐겨 마시는 값싼 술이었다. 이번 아일랜드편에서는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상징인 스타우트에 대해 알아본다.
스타우트의 유래
18세기 런던에서 시작된 포터는 페일 몰트와 브라운 몰트로 만든 색이 짙은 맥주였다. 색의 짙은 정도는 다양했는데, 여러 맥주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형태상 폭탄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몰트의 단맛이 강해 호프가 많이 들어갔다.
알코올 강도는 측정된 것이 없지만 대략 부피로 6%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더 강한 버전은 ‘스타우트 포터(Stout porter)’로 알려졌다.
스타우트라는 표현은 18세기 당시 양조장에서 만든 가장 독한 술을 일컫는 말로 색깔과는 무관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포터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쇠퇴하고 ‘가장 강한 포터’만이 남게 되었을 때, 가장 강한 포터를 가리키던 스타우트 (포터)가 당시의 맥주 특성과 함께 하나의 맥주 종류로 굳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쓰는 스타우트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요즘같이 검은 색의 포터가 등장한 것은 19세기였다. 1817년 다니엘 휠러(Daniel Wheeler)가 만든 몰트 건조기 덕분이었다. 새로운 건조기는 커피 볶는 기계의 원리를 이용했고 덕분에 약 210도의 고열로 몰트를 건조할 수 있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 몰트(Dark malt)는 소량만 첨가해도 맥주를 신비하게 변화시켰다. 항상 일정하게 검은 색깔을 내는 것은 물론 전혀 새로운 맛이 추가되었다.
약간의 훈제한 듯한 맛과 함께 쓴 초콜릿과 커피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터나 스타우트를 마실 때 기대하는 맛이었다.
포터가 오늘날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초기 여러 가지 맥주를 섞어 만들어서 색과 맛이 다양했던 포터는 이제 하나의 매쉬(Mash)에서 만든 검은 맥주가 되었다. 또한 섞을 때와는 달리 잘 숙성된 맛을 갖게 되었다.
아일랜드 맥주산업의 발전 : 기네스와 비미쉬
런던에서 만들어진 포터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발트해 연안 나라들로 수출되었고 그 지역에서의 포터 생산을 촉발했다. 특히 아일랜드의 양조산업은 런던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포터를 막으려고 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서 기네스는 1756년 킬데어(Kildare) 카운티에 있는 작은 양조장을 사들였다. 3년 후 그는 더블린으로 가서 버려진 양조장을 임대해서 썼다.
1787년 당시 기네스는 에일과 포터를 모두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1799년 에일 생산을 중단하면서 포터 생산에만 집중한다.
코크(Cork)에는 벨파스트 출신의 윌리엄 비미쉬(William Beamish)와 윌리엄 크로포드(William Crawford)가 있었다. 그들은 쇠고기와 버터를 팔기 위해 코크에 들렀다가 우연히 매년 60,000 배럴에 이르는 영국 포터가 코크항을 통해 수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양조를 하기로 결심했고 1792년 부지를 사들였다. 비미쉬-크로포드와 기네스의 사업은 모두 대성공이었다. 19세기 경에는 두 회사는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내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 비미쉬는 연간 100,000 배럴을 생산했고 기네스는 66,000 배럴을 생산했다.
나폴레옹 전쟁과 아일랜드 대기근(1845-9)에 이은 경기 후퇴는 유럽 경제를 파탄에 몰아 넣었다. 비미쉬와 기네스 역시 거래의 반을 잃어 버렸다. 이때 이후 비미쉬는 과거의 지배적인 위치를 되찾지 못했지만 기네스는 사업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수로(Canal)와 새로 놓인 철도를 이용한 내수 시장 개척과 영국 본토와 식민지로의 공격적인 수출 정책을 능란하게 이용함으로써 가능했다.
드라이 스타우트의 탄생
아서 기네스의 아들, 아서 2세는 아버지의 사업을 확장했고 맥주 레서피(Recipe)를 약간 바꾸었다. 19세기 초에는 세금이 알코올 강도가 아니라 몰트에 부과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런던 정부에 세금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아서 2세 역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몰트로 만들지 않은 곡식과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볶은 보리를 섞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워서 검게 만든 보리의 강한 쓴맛은 맥주에 독특한 볶은 맛과 쓴 과일 맛을 더했다. 드라이 스타우트(Dry stout)로 알려진 스타일은 이렇게 등장했고 곧 이어 다른 아일랜드 양조업자들이 기네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포터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게 되었을 때, 기네스의 더블 스타우트는 영국에서 만든 색이 짙은 맥주에 비해 아주 다른 종류의 맥주로 보였다.
▲ 비미쉬 비미쉬는 기네스와 함께 아일랜드 양조업을 발전시킨 거인이자 한때 대영국제국을 통틀어 가장 큰 양조장이었다. 하지만 대기근과 그에 따른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큰 타격을 입은 후 옛날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했다.
▶기네스 기네스 스타우트는 전세계에 19종 이상이 있지만 기네스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는 가장 탁월한 풍미를 자랑한다. 묵은 스타우트와 갓 만든 스타우트를 섞어 만들며 야생 이스트의 활동으로 젖산의 신맛을 띤다.
스타우트, 아일랜드 독립의 상징으로
아일랜드의 맥주 산업이 포터로 번성하는 동안 영국에서 포터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정적인 타격은 1차 세계대전과 함께 왔다. 전쟁 동안 영국 정부는 맥주 양조를 엄격히 규제했다. 알코올 강도는 낮게 해야 했고 양조업자들은 많이 건조한 다크 몰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코크스와 가스가 군수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의 등장으로 이미 쇠퇴하고 있었던 포터는 자유 낙하 상태의 공처럼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자치 운동(Home Rule)이 본격화하기 직전의 아일랜드에 영국인들은 그러한 가혹한 규제를 부과할 수 없었다. 알코올 강도는 낮아 졌지만 영국에서만큼은 아니었고 보리와 몰트는 계속해서 페일 몰트와 다크 몰트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의 드라이 스타일은 번창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명확한 스타일로 그리고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강력한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기네스 스타우트는 전세계에 19종 이상이 있다. 본토의 맥주가 가장 진하고 독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기네스의 맥주들은 생산지가 본토에서 멀수록 맛과 알코올이 강하다.
그 중에서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Foreign Extra Stout)는 가장 매력적인 스타우트이다. 야생 이스트의 활동으로 젖산의 신맛을 띠는데, 시중에서 만나긴 쉽지 않은 편이다. 보게 되면 마셔보기를 권한다.
아일랜드 독립의 상징 스타우트
독립의 상징 스타우트 [아일랜드]
When things go wrong and will not come right,
Though you do the best you can,
When life looks black as the hour of night-
A pint of plain is your man.
Flann O’Brien, 1939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인생이 칠흑 같은 어둠처럼 보일 때 한 잔의 플레인(Plain)만이 유일한 벗이라는 브라이언의 시에서 플레인이란 포터(Porter)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포터와 스타우트(Stout)는 풍미가 강한 고급 맥주이지만 1세기 전만 해도 노동자들이 즐겨 마시는 값싼 술이었다. 이번 아일랜드편에서는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상징인 스타우트에 대해 알아본다.
스타우트의 유래
18세기 런던에서 시작된 포터는 페일 몰트와 브라운 몰트로 만든 색이 짙은 맥주였다. 색의 짙은 정도는 다양했는데, 여러 맥주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형태상 폭탄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몰트의 단맛이 강해 호프가 많이 들어갔다.
알코올 강도는 측정된 것이 없지만 대략 부피로 6%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더 강한 버전은 ‘스타우트 포터(Stout porter)’로 알려졌다.
스타우트라는 표현은 18세기 당시 양조장에서 만든 가장 독한 술을 일컫는 말로 색깔과는 무관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포터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쇠퇴하고 ‘가장 강한 포터’만이 남게 되었을 때, 가장 강한 포터를 가리키던 스타우트 (포터)가 당시의 맥주 특성과 함께 하나의 맥주 종류로 굳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쓰는 스타우트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요즘같이 검은 색의 포터가 등장한 것은 19세기였다. 1817년 다니엘 휠러(Daniel Wheeler)가 만든 몰트 건조기 덕분이었다. 새로운 건조기는 커피 볶는 기계의 원리를 이용했고 덕분에 약 210도의 고열로 몰트를 건조할 수 있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 몰트(Dark malt)는 소량만 첨가해도 맥주를 신비하게 변화시켰다. 항상 일정하게 검은 색깔을 내는 것은 물론 전혀 새로운 맛이 추가되었다.
약간의 훈제한 듯한 맛과 함께 쓴 초콜릿과 커피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터나 스타우트를 마실 때 기대하는 맛이었다.
포터가 오늘날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초기 여러 가지 맥주를 섞어 만들어서 색과 맛이 다양했던 포터는 이제 하나의 매쉬(Mash)에서 만든 검은 맥주가 되었다. 또한 섞을 때와는 달리 잘 숙성된 맛을 갖게 되었다.
아일랜드 맥주산업의 발전 : 기네스와 비미쉬
런던에서 만들어진 포터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발트해 연안 나라들로 수출되었고 그 지역에서의 포터 생산을 촉발했다. 특히 아일랜드의 양조산업은 런던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포터를 막으려고 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서 기네스는 1756년 킬데어(Kildare) 카운티에 있는 작은 양조장을 사들였다. 3년 후 그는 더블린으로 가서 버려진 양조장을 임대해서 썼다.
1787년 당시 기네스는 에일과 포터를 모두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1799년 에일 생산을 중단하면서 포터 생산에만 집중한다.
코크(Cork)에는 벨파스트 출신의 윌리엄 비미쉬(William Beamish)와 윌리엄 크로포드(William Crawford)가 있었다. 그들은 쇠고기와 버터를 팔기 위해 코크에 들렀다가 우연히 매년 60,000 배럴에 이르는 영국 포터가 코크항을 통해 수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양조를 하기로 결심했고 1792년 부지를 사들였다. 비미쉬-크로포드와 기네스의 사업은 모두 대성공이었다. 19세기 경에는 두 회사는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내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 비미쉬는 연간 100,000 배럴을 생산했고 기네스는 66,000 배럴을 생산했다.
나폴레옹 전쟁과 아일랜드 대기근(1845-9)에 이은 경기 후퇴는 유럽 경제를 파탄에 몰아 넣었다. 비미쉬와 기네스 역시 거래의 반을 잃어 버렸다. 이때 이후 비미쉬는 과거의 지배적인 위치를 되찾지 못했지만 기네스는 사업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수로(Canal)와 새로 놓인 철도를 이용한 내수 시장 개척과 영국 본토와 식민지로의 공격적인 수출 정책을 능란하게 이용함으로써 가능했다.
드라이 스타우트의 탄생
아서 기네스의 아들, 아서 2세는 아버지의 사업을 확장했고 맥주 레서피(Recipe)를 약간 바꾸었다. 19세기 초에는 세금이 알코올 강도가 아니라 몰트에 부과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런던 정부에 세금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아서 2세 역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몰트로 만들지 않은 곡식과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볶은 보리를 섞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워서 검게 만든 보리의 강한 쓴맛은 맥주에 독특한 볶은 맛과 쓴 과일 맛을 더했다. 드라이 스타우트(Dry stout)로 알려진 스타일은 이렇게 등장했고 곧 이어 다른 아일랜드 양조업자들이 기네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포터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게 되었을 때, 기네스의 더블 스타우트는 영국에서 만든 색이 짙은 맥주에 비해 아주 다른 종류의 맥주로 보였다.
▲ 비미쉬
비미쉬는 기네스와 함께 아일랜드 양조업을 발전시킨 거인이자 한때 대영국제국을
통틀어 가장 큰 양조장이었다. 하지만 대기근과 그에 따른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큰 타격을 입은 후 옛날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했다.
▶기네스
기네스 스타우트는 전세계에 19종 이상이 있지만 기네스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는
가장 탁월한 풍미를 자랑한다. 묵은 스타우트와 갓 만든 스타우트를 섞어 만들며
야생 이스트의 활동으로 젖산의 신맛을 띤다.
스타우트, 아일랜드 독립의 상징으로
아일랜드의 맥주 산업이 포터로 번성하는 동안 영국에서 포터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정적인 타격은 1차 세계대전과 함께 왔다. 전쟁 동안 영국 정부는 맥주 양조를 엄격히 규제했다. 알코올 강도는 낮게 해야 했고 양조업자들은 많이 건조한 다크 몰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코크스와 가스가 군수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의 등장으로 이미 쇠퇴하고 있었던 포터는 자유 낙하 상태의 공처럼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자치 운동(Home Rule)이 본격화하기 직전의 아일랜드에 영국인들은 그러한 가혹한 규제를 부과할 수 없었다. 알코올 강도는 낮아 졌지만 영국에서만큼은 아니었고 보리와 몰트는 계속해서 페일 몰트와 다크 몰트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의 드라이 스타일은 번창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명확한 스타일로 그리고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강력한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기네스 스타우트는 전세계에 19종 이상이 있다. 본토의 맥주가 가장 진하고 독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기네스의 맥주들은 생산지가 본토에서 멀수록 맛과 알코올이 강하다.
그 중에서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Foreign Extra Stout)는 가장 매력적인 스타우트이다. 야생 이스트의 활동으로 젖산의 신맛을 띠는데, 시중에서 만나긴 쉽지 않은 편이다. 보게 되면 마셔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