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세기 피카소

이영상200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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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세기 피카소


위대한 화가 피카소.

미술사에서는 그를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말까라는 천재로 부른다.

비록 그가 생존해 있어서 직접적으로 그와의 만남을 통해

천재성을 느낄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서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눈을 뜨는것과 같은 신비함을 느낄수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천재라고 불리게되는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은 반복을 거치지 않으면 쉽게 기억의 언덕 저 편으로

사라진다고 했던가. 그래서 더는 늦게 전에 미술에 대한 나의 지적호기심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의해서만 살아있다'

 피카소는 몇가지 유명한 어록을 남겼는데 나에게는 다른 어떤말보다 이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어찌보면 누구나가 공감하고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작품이 창작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 점을 쉽게 간과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너무 객관식 시험과 같은 정답에만 의존해서 일까 관람중에도 몇 몇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작품의 해설이 맞다며 친구에게 자랑하는 이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이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와 닿은것은 평소 내가

예술작품을 대하면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피카소가 재확인시켜주었다는데 의미가있다. 12000원이라는 관람비가 그림 몇 장보고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위대한 작품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심미적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눈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영상들. 그러한 영상들을 통해서 가지게 되는 일면의 새로운 생각들. 그 새로운 생각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나의 가치관에 티끌의 변화라도 초래하게 되었다면 그 12000원은 순수한 화폐 이상으로 이미 수천배의 가치를 발하고 있는것이다. 아마 그러한 점들이 비가 마구 쏟아지는 날씨에도 피카소를 보기위한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위해 평생을 바쳤다"

위에 나와있는 어록 다음으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두번째 어록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느낀 피카소의 숨결을 이야기 할 차례인데 흔히들 피카소의 그림을 미친사람이 그렸다는 것으로 비하시키거나 혹은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이해가 안되는 도무지 소장가치가 없는 천박한 그림이라는 말들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말들이 그의 천재성을 돋보이는 역설적인 말로 들렸고 그것은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숨죽이고 쳐다보고 있노라면 혹은 나레이터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경청한다면 쉽게 오해가 풀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피카소를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가능한한 가장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그림을 그리려 했다는 것인데 그는 이전에 미술사에 즐비하고 있었던 원근법이라는 미술적 기법들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모든것을 하나의 평면에 보이는데로 나타내고자 하는 대담한시도를 하였다. 더구나 그가 이전의 기법들을 소화하지 못한채 그런 시도를 하였다면 실력도 없는자의 항변일수도 있겠으나 누구보다도 그는 이전에 유행했던 기법들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있노라면 마치 인간이 갖는 다양한 추상적 관념을 시각화하였고 그것을 하나의 평면속에 전부 담아내려고 하는 마음에 나로 하여금 착시효과를 일으키게 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바로 그러한 착시효과로 인해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미친사람의 그림으로 오인하게 만드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런 미술적 기법도 배우지 않은채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데로 표현하고자 했던 욕심을 담아낸 것 같기도 하였고 혹은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있는것을 그대로 토해내고자 하는 일종의 신념을 보여주고자 하는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전시되어있던 여러 작품들 가운데 우리가 여러 매스컴이나 서적을 통해 접했던 그림도 많았지만 나에게는 '이집트의 여인'이라는 그림과 '앉아있는 여인'그리고 에칭기법을 사용한 미노타우르스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깊게 느껴졌다.

우선 '이집트의 여인'이라는 작품은 인간이 볼 수 있는 모든 시각에 따라 상반된 개인은 감정이 잘 묘사되어있었고, '앉아있는 여인'은 철판조각 오려내기 기법을 사용하여 조각의 삼차원적인 요소를 통해 명암의 깊이와 대비를 잘 표현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미노타우르스라는 작품은 이른바 무질서속의 질서라고 표현하고 싶을만큼 언뜻보면 그냥 쉬는시간 잠깐 앉아 표현한 스케치 같은데 자세히 보면그것이 하나의 질서를 담아내고 있는 듯 하였다.

 

주체와 객체사이의 관계는 회화를 구성하는 본질의 문제이자

화가들이 꾸임없이 해결해야 하는 끝없는 물음의 관계이기 하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면서 보았던 그의 마지막 어록이다.

물런 이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테마를 구성해서 다양한 그림을 남겼지만 여기서는 자세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관람하는 사람들이 몫으로 남기고 내가 이 글을 보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다.

피카소는 주체와 객체사이의 관계를 작품과 화가에 관계로 한정지었지만 저 말은 바꿔 말하면 관객에게 권유하는 말이나 심지어는 작품을 대하는 우리에게 의무감을 지어주는 말로서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데,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물론 의사소통상의 문제로 한정짓자면 단순히 너와 나의 대화가 되겠지만 대화로써 그 모든것이 끝나버린다면 그건 말그대로 언어라는 것이 도구적 의미로써만 존재할 뿐 그 이상의 어떤것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환언하건데, 누군가가 그림이나 다른 모든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눈으로 스쳐 지나가게 만드는 것과 동일시 되는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12000원이라는 관람료와 거기에 투자한 시간은 말그대로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매몰비용(sunk cost)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것이다. 화가가 자신의 생각이나 시각들을 하나의 평면에 표현하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 처럼 우리에게도 지금 이순간 간절하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전에  종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열린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다음 전시장에 들어가서  피카소와 함께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게 된다면 미친 사람의 그림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이제는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귀중한 도구로 자리매김 하면서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층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짧지 않은 감상평을 남기며 개인적으로 누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더는 늦기전에 유럽의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녀야만

볼 수 있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꼭 한번 관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