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류정희200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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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9월 10일 : 가을! 가슴 설레는 계절, 두꺼운 옷과 뜨거운 술 의 계절, 그리고 모험의......! 잊을 수 없는 모든 일은 나에게는 가을에 일어났다. 그리고 겨울에 끝났었다. 언제나 추동이 나의 계절이다. 내가 1월생이요, 건조한 냉한 인간이어서인지 나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일은 모두 겨울과 가을에 일어난다. 지루한 하루를, 그러나 정성껏 맺고난 후 매우 강하게 긴장 완화의 욕구를 느낀다. 티없이 모험을 구하는 마음,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너무도 멀다. 가까이 오는 겨울에 나는 빌고 싶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가슴 뛰는 일, 새로운 일이 있을 것을! 9월 16일 : 하루 종일 비, 그리고 춥다. 벌써 방 안에 벽난로라도 있고, 불이 빠작빠작 타는 소리를 듣고 싶다. 9월 17일 : 비오는 밤 11시 반, 갑자기 라디오에서 이 흘러 나온다. 어렸을 때 내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역시 그것은 변함 없는 것 같다. 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무엇인가 뛰어난 것을 나에게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 역시 내 큰 관심이다. 9월 22일 : 토요일은 언제나 나에게는 싫은 날이다. 9월 26일 : 토, 일, 월, 화, 이렇게 액일들만이 장례 대열처럼 내 앞을 지나갔다. 정말로 지독할 만큼 불쾌하고 긴장에 넘친 나날이었다. 박인수 교수님의 호의로 서류만은 내놓아 보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교육 경력 미달, 졸업증서, 또 논문 심사원에 누가 될지) 절대로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안 되면 죽어 버리고 싶다. 귀찮아서. 9월 29일 : 꿈, 웬 남자와(애인이라는) 배를 타고 있다가 물에 빠져서 간신히 헤엄을 쳤다. 중국이었다. 이상한 집들(간판만 큰)과, 절간과, 변소를 보았다. 다방이 즐비해 있었는데 이름이 '꿀', '사탕', '뱀' 등이었다. 10월 2일 : 손금을 보았다. 왈 : 머리가 비상하고 재주가 많다. 마음이 너무 좋고 이해가 많아서 남을 나쁘게 생각할 줄 모른다. 가정 생활에는 안 맞고 직업에 맞는다. 가정 살림은 식모를 두 서넛 두는 환경이어야 한다. 돈이 매우 헤프고 마음 속 말을 잘 해서 손해다. 인덕이 없다. 부모와 멀다. 외국갈 수다. 부부운이 나쁘다.(재취 자리나 재혼이 아니면 남편이 이중 생활한다). 아이는 하나나 둘밖에 없다. 신경질적이다. 명은 90세, 무병 등. 10월 3일 : 이 세상 사람이 다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날이다. 11월 1일 : 무섭게 좋은 계절, 독일의 오월처럼 파란 빛과 금빛이 쏟아지고 춥지도 덥지도 않다. 어젯밤 사의 잡문 때문에 1시경에 자서 매우 피곤하다. 조반도 안 먹었고 매우 '다운'이다. 지금 이대 교수실에 앉아 있다. 손이 떨려서 글이 잘 안 쓰이고 사고도 집중되지 않는다. 11월 4일 : 첫째, 뮌헨의 몽마르트르 둘째, 뮌헨이라는 곳 셋째, 다시 가고 싶은 슈바빙 넷째, 뮌헨의 봄 다섯째, 가을에 생각나는 뮌헨 여섯째, 독일의 추억 일곱째, 독일의 12월 여덟째, 푸른 도나우 강 아홉째, 만년설의 신비경 열번 째, 교외의 추억 열한 번째, 독일 문단 열두 번째, 뮌헨 대학을 찾아 열세 번째, 독일 가정의 여성의 지위 열네 번째, 독일 여성의 가정 생활 열다섯 번째, 헤세의 수채화. - 전혜린. Willy Ronis Fondamente Nuove, Venice,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