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함성과 진압경찰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서있는 공간이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분간을 못하는 극도의 혼돈상태를 보여준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 그의 귓등을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듯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준 ‘하얀전쟁’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극중 이경영은 이미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는 잠에서 깨어 있어도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가 겪은 고통은 PTSD로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과거에 체험했던 공포를 지금도 체험하듯 생생하게 느끼면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주요 증상이다.
GP 총기난사 사건 1주기를 맞아 PTSD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PTSD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고통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2차대전부터 전쟁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면서 전쟁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살상무기의 위력 앞에서는 게르만민족의 자부심도, 사회주의 천국을 건설한다는 희망도, 악의축을 무찌른다는 정의감도... 그 무엇도 소용없었다.
GP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 그 고통은 영화 ‘하얀전쟁’을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조그만 큰 소리가 나도 놀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기력감.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등. 이들이 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일 것이다.
PTSD로 고통받는 이들은 군대를 갔다 온 이들만이 아니다.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이들도 그들 못지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겠지만, 그 고통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알게 하고, 고통속에 신음하는 본인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끝나지 않은 악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듯, 내 귓가를 총알이 스치듯 생생한 악몽
시위대의 함성과 진압경찰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서있는 공간이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분간을 못하는 극도의 혼돈상태를 보여준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 그의 귓등을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듯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다. 이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준 ‘하얀전쟁’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극중 이경영은 이미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는 잠에서 깨어 있어도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가 겪은 고통은 PTSD로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과거에 체험했던 공포를 지금도 체험하듯 생생하게 느끼면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주요 증상이다.
GP 총기난사 사건 1주기를 맞아 PTSD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PTSD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고통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2차대전부터 전쟁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면서 전쟁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살상무기의 위력 앞에서는 게르만민족의 자부심도, 사회주의 천국을 건설한다는 희망도, 악의축을 무찌른다는 정의감도... 그 무엇도 소용없었다.
GP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 그 고통은 영화 ‘하얀전쟁’을 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조그만 큰 소리가 나도 놀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기력감.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등. 이들이 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일 것이다.
PTSD로 고통받는 이들은 군대를 갔다 온 이들만이 아니다.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이들도 그들 못지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겠지만, 그 고통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알게 하고, 고통속에 신음하는 본인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