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걸어가면 된다는 말과 달리 좀처럼 사고(史庫)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마 때문인지 길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다. 상원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문득 이교수는 여기까지 와서 오대산 사고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날 저녁 서울에 약속이 있었던 나는 마음이 급했지만 금방 나온다는 말에 이교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사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을 포기할까 하는 중에, 아! 떡 하니 버티고 선 기와집 두 채.
오대산 사고는 독특했다. 불교사찰처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가톨릭교회 같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잡초가 우거진 뜰 가운데 우뚝 솟은 이층짜리 건물 두 채. 마치 조선선비의 의연함이라고나 할까. 실록을 보관하던 ‘사각(史閣)’과, 바로 그 위쪽에 왕실 의궤와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寶閣)’ 건물은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92년에 복원했다는 이교수의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한 동안 멍하니 처마 밑에 짙게 배어 있는 쓸쓸함을 쳐다보고 있었다.
환수냐 기증이냐
그런데 얼마 전 그 오대산 사고가 신문에 나왔다. 도쿄대가 오대산 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기사와 함께 였다. 솔직히 나는 사진을 보는데 빠져 기사 내용을 자세히 읽지도 못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기사를 둘러싼 논쟁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식당의 옆자리에 앉은 한 분은 도둑맞은 물건을 되찾는 데도 법도가 있는 법인데, 궁지에 몰린 도둑이 훔친 물건을 ‘기증’하겠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야 하겠는가라고 서울대 측을 비판했다. 불법으로 약탈된 문화재는 정식으로 ‘환수’되어야 한다는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의 말이 옳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맞은편에 앉은 분은 반환 방식을 둘러싸고 너무 완고하면 자칫 법적소송에 휘말릴 수 있고, 그러다보면 반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기증’방식이라도 좋으니 우선 국내에 들여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식’과 ‘실리’를 내세운 두 분의 논쟁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은 반환된 이후의 활용방식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도쿄대가 6주 내로 돌려주기로 했으니 7월 중순이면 어차피 국내에 들어올 것이고,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반환방식을 내세워 거부할 수도 없다면, 그 실록을 어떻게 보관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서울대와 월정사 측은 하나 같이 ‘보관’ 문제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서로 자기들이 가져가려고만 할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그 활용방안을 놓고 서로 경쟁하게 한 다음 공론화를 거친 후 문화재청이 최종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록학교의 운영과 ‘행복한 외출’
그러면 돌아오는 실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박물관에서 나와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인터넷으로 실록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드라마 ‘대장금’이나 영화 ‘왕의 남자’ 등에서는 실록이 문화컨텐츠의 원형으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보존시설만을 내세워 돌아오는 세계문화유산을 가두어버리겠다면 그야말로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보관은 잘 하되,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실록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작년부터 나는 ‘실록학교’에서 세종실록과 정조실록을 가지고 수업을 해오고 있다. 원근 각지에서 실록을 공부하겠다고 찾아오는 수강생의 30% 가량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교수‧영화감독‧역사만화가‧소설가 등이 실록 속의 이야기 거리(story telling)를 위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온다. 수강생의 대다수는 궁궐 등 문화현장에서 이미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안내하고 설명하는 분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생산적 소비자(prosumer)'인 셈이다.
세종대왕이나 정조임금의 리더십을 알고 싶어서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다. 때론 현직 장관이나 국회의원, 또는 대기업의 임원이 국왕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서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 앉아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새삼 왕들의 문제해결방식과 그 과정을 잘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곤 한다. 수강생 중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다. 그 중 한 분은 “오늘은 내겐 정말로 화려한 외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50평생을 남편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로 바쁘게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번 실록학교에 나오는 그날은 자신에게 더 없이 행복한 날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행복해지는 길을 마련해주는 데서 실록활용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범국민적 실록읽기 운동을..
차제에 나는 이번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계기로 범국가적인 실록읽기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세종실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방식, 회의를 통해 지혜를 모으는 과정과,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시간과 문자라는 최고의 정보를 내주는 세종의 리더십이 세종실록에는 상세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록 속에 나타난 세종의 ‘일처리 방식’과 ‘말하는 법’은 세계 어느 나라의 리더십 사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정조 역시 탁월한 국왕임에 틀림없다. 특히 신료들과의 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왜 그 시대에 문화가 꽃피었으며, 왕조가 중흥했는지를 알게 된다. 당시 그렇게 해박하고도 비판적이었던 정약용을 매료시킨 정조의 놀라운 지적 수준을 함께 깨닫는 곳도 정조실록이다.
따라서 누구든 쉽게 실록 속의 이야기와 컨텐츠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대상에 따라서 다양화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 즉 교사나 언론인 또는 법조인을 위한 실록학교 또는 청소년을 위한 실록캠프 등을 열어 실록 속의 풍부한 리더십 사례와 지적 상상력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시민교육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제2, 제3의 대장금과 왕의 남자와 같은 ‘한류’를 재생산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국민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뿌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오대산 사고의 옆에다 어린이 실록 캠프를 열고, 거기서 세종대왕과 정조임금의 이야기를 읽는 꿈을 갖고 있다. (끝)
93년만의 귀향: 조선왕조실록 반환과 그 활용방안
조선왕조실록 반환의 의미와 활용방안
박현모(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된다는 말과 달리 좀처럼 사고(史庫)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마 때문인지 길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다. 상원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문득 이교수는 여기까지 와서 오대산 사고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날 저녁 서울에 약속이 있었던 나는 마음이 급했지만 금방 나온다는 말에 이교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사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을 포기할까 하는 중에, 아! 떡 하니 버티고 선 기와집 두 채.
오대산 사고는 독특했다. 불교사찰처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가톨릭교회 같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잡초가 우거진 뜰 가운데 우뚝 솟은 이층짜리 건물 두 채. 마치 조선선비의 의연함이라고나 할까. 실록을 보관하던 ‘사각(史閣)’과, 바로 그 위쪽에 왕실 의궤와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寶閣)’ 건물은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92년에 복원했다는 이교수의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한 동안 멍하니 처마 밑에 짙게 배어 있는 쓸쓸함을 쳐다보고 있었다.
환수냐 기증이냐
그런데 얼마 전 그 오대산 사고가 신문에 나왔다. 도쿄대가 오대산 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기사와 함께 였다. 솔직히 나는 사진을 보는데 빠져 기사 내용을 자세히 읽지도 못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기사를 둘러싼 논쟁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식당의 옆자리에 앉은 한 분은 도둑맞은 물건을 되찾는 데도 법도가 있는 법인데, 궁지에 몰린 도둑이 훔친 물건을 ‘기증’하겠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야 하겠는가라고 서울대 측을 비판했다. 불법으로 약탈된 문화재는 정식으로 ‘환수’되어야 한다는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의 말이 옳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맞은편에 앉은 분은 반환 방식을 둘러싸고 너무 완고하면 자칫 법적소송에 휘말릴 수 있고, 그러다보면 반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기증’방식이라도 좋으니 우선 국내에 들여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식’과 ‘실리’를 내세운 두 분의 논쟁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은 반환된 이후의 활용방식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도쿄대가 6주 내로 돌려주기로 했으니 7월 중순이면 어차피 국내에 들어올 것이고,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반환방식을 내세워 거부할 수도 없다면, 그 실록을 어떻게 보관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서울대와 월정사 측은 하나 같이 ‘보관’ 문제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서로 자기들이 가져가려고만 할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그 활용방안을 놓고 서로 경쟁하게 한 다음 공론화를 거친 후 문화재청이 최종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록학교의 운영과 ‘행복한 외출’
그러면 돌아오는 실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박물관에서 나와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인터넷으로 실록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드라마 ‘대장금’이나 영화 ‘왕의 남자’ 등에서는 실록이 문화컨텐츠의 원형으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보존시설만을 내세워 돌아오는 세계문화유산을 가두어버리겠다면 그야말로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보관은 잘 하되,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실록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작년부터 나는 ‘실록학교’에서 세종실록과 정조실록을 가지고 수업을 해오고 있다. 원근 각지에서 실록을 공부하겠다고 찾아오는 수강생의 30% 가량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교수‧영화감독‧역사만화가‧소설가 등이 실록 속의 이야기 거리(story telling)를 위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온다. 수강생의 대다수는 궁궐 등 문화현장에서 이미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안내하고 설명하는 분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생산적 소비자(prosumer)'인 셈이다.
세종대왕이나 정조임금의 리더십을 알고 싶어서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다. 때론 현직 장관이나 국회의원, 또는 대기업의 임원이 국왕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서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 앉아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새삼 왕들의 문제해결방식과 그 과정을 잘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곤 한다. 수강생 중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다. 그 중 한 분은 “오늘은 내겐 정말로 화려한 외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50평생을 남편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로 바쁘게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번 실록학교에 나오는 그날은 자신에게 더 없이 행복한 날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행복해지는 길을 마련해주는 데서 실록활용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범국민적 실록읽기 운동을..
차제에 나는 이번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계기로 범국가적인 실록읽기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세종실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방식, 회의를 통해 지혜를 모으는 과정과,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시간과 문자라는 최고의 정보를 내주는 세종의 리더십이 세종실록에는 상세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록 속에 나타난 세종의 ‘일처리 방식’과 ‘말하는 법’은 세계 어느 나라의 리더십 사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정조 역시 탁월한 국왕임에 틀림없다. 특히 신료들과의 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왜 그 시대에 문화가 꽃피었으며, 왕조가 중흥했는지를 알게 된다. 당시 그렇게 해박하고도 비판적이었던 정약용을 매료시킨 정조의 놀라운 지적 수준을 함께 깨닫는 곳도 정조실록이다.
따라서 누구든 쉽게 실록 속의 이야기와 컨텐츠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대상에 따라서 다양화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 즉 교사나 언론인 또는 법조인을 위한 실록학교 또는 청소년을 위한 실록캠프 등을 열어 실록 속의 풍부한 리더십 사례와 지적 상상력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시민교육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제2, 제3의 대장금과 왕의 남자와 같은 ‘한류’를 재생산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국민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뿌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오대산 사고의 옆에다 어린이 실록 캠프를 열고, 거기서 세종대왕과 정조임금의 이야기를 읽는 꿈을 갖고 있다. (끝)
-《출판저널》 368호 (2006년 7월호), 6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