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계학생들의 착각

정순제2006.07.27
조회380

 

많은 예능계학생들이 자신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난 예술하는 사람”
난 이렇게 대답한다.
“지랄하네”
순수예술과 상업적인 목적의 공연과 무엇이 틀릴까?
음악회.공연.콘서트.영화.전시회등등...........
순수예술의 목적은 예술가의 주체할수 없는 창조성에 기반을 둔 것에 비해
상업적인 것은 바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순수예술가의 아무런 목적없는 그냥 내생각을 그림에 담고싶다던가 공연에 담고 싶어서 만든 그런 작품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을때 대중들이 공감하고 열광하여 그것이 성황리에
마치는 것이 바로 FM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대학들은 각단체의 후원금과 시.도에서 나오는 문화발전기금등을 타기위해
공연올리기에 급급하다.학생들은 공연하는 춤에 대해 이해하기도 전에 동작부터 외우기 정신이 없다.
예술-창조라는 공식은 깨진지 오래되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올리는 공연............이것은 예술이 될 수없다
그 목적이 돈이나 명예,약속등 어떤것이라도 마찬가지다.
이건 비영리건 영리건 예술이 아닌 보여주기식의 공연인 것이다.
졸업발표회를 위한 준비,창작발표회를 위한 준비,공연을 위한 준비
내가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해야한 하기 때문에 하는 창작활동이 시험준비같은 행동들이 예술활동인가? 그건 그냥 시험준비일 뿐이다.
물론 이런과정에서도 창조력은 발휘되고 능력은 향상된다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처음에 언급했던
“난 예술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정말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창조자체가 좋아서 밤을 새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냥 대학을 가기위해.......
그것이 좋아서 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가장 잘하게된 그래서 그길을 택한..........
결혼을 잘하기 위해.......
화려해 보여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서.........


예술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
맞는 말이다. 예술하는 사람.특히 공예가나 미술가가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예로 도자기공예가를 든다면
공예가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작업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밥도 안먹는다.몇일을 밤을 새어 한 작품을 만든다.
주위에서 “식사좀 하세요/좀쉬면서 하세요”란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도자기밖에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자신의 작품을 남이 평가절하했을때 예술가는 격분한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수시간이고 떠들어 댄다.
즉 자기주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작업과정이 아닌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그런 고집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많은 예능계 학생들은 고쳐야할 자신의 고집스러운 행동들의 변명으로
“예술하는 사람은 고집이 세야돼”란 문장을 인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넌 아무런 목적없이 니 스스로의 창조력을 참을 수없어 밤을 새본적이 있니”라고
물어보면 아무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다시한번 질문한다
“넌 예술하는 사람이니?”
“....................”
참고로 난 예술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목적없이 어떤 창조물을 위해 밤을 세워본적은 있다.

 

방법은 없는가? 교육체계부터가 잘못이다.
후원금과 행사마다 참여해야하는 공연 때문에 정신없어서 스스로하는 창조에는 엄두도 못내는 교육자들과 학생들.....분명 시간은 있다.하지만 공연이 마치 일처럼 되어버렸다
공연없는 기간은 휴식시간처럼 되어 버렸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생각해버린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학생들은 내가 졸업후 무엇을 할 수있을까에 대해 생각해야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접해야한다.

 

 

 

무용계에 있어서 말해본다면...
예를 들어 안정적인 말과 사나운 말의 행동의 표현을 나타내보기라던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무용으로써 표현한다는 것 이렇게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어떤 한 대상에
대한 창작의 차이점을 무용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실로 무용의 전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다분히 현대무용적인 내용이지만....발레와 한국무용에서 전시대의 것과 완전 다른 모습의 창작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예술에 정해진 규칙이 어디있던가?
시대를 주름잡았던 예술가들은 대부분 전시대의 보편적인 법칙에 새로운 변화나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창작적인 측면이 국내의 지금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부족한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많지는 않지만 여러 발표회와 정기공연을 보아왔다.
여기서 무용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용이란 자신의 내면세계와 감정,사상등을 행위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 아니던가?
사상이나 감정을 중시하면 극무용이되고 정서를 강조하면 순수무용이 된다고 알고 있다.
발표회때 학생들의 나타낸 행위에 과연 자신의 감정과 동작의 의미성이 과연있을까?
 아쉽게도 많은 무용전공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지금껏 여러 전시대의 작품을 보면서 보아왔던 한국.현대무용의 작품들을 배우면서(난 배우면서라기 보단 따라하기라고 생각된다) 익혔던 한국무용의 동작과 현대무용의 동작을 조합한 .........즉 자신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동작의 되풀이라고 보여진다. 그들중 한명을 붙잡아
“너 중간에 팔을 위로 올려서 옆으로 펼치던데 그 동작의 의미가 뭐니?”
라고 물었을때 시원하게 대답하는 학생이 몇 명일까?
철학자 이리스토텔레스의 무용이란 신체적형태의 리듬으로 성격과 정서와 행위를 모방하는것이다라고 말했듯 학문의 정점은 예술로 승화된다. 학문을 공부하다가 마지막엔 예술로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이다.이 말에는 나 또한 동의한다.
여기서 미학이란 단어를 무용에 대입시키지 않을수가 없는데......대상을 보고 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워낙 개별성이 강하여 특정한 룰을 적용시키기 힘들지만 이런 개별성에서도 보편성은 분명 존재한다.
즉.이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 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보편성을 지닌 미의 형태는 통일.균형.반복.대비.연속등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무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술.음악.건축.디자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술가 그리고 무용수는 이런 보편적인 미의 가치안에서 자신의 창조적욕구에 필요없는 것은 제거하고 필요한 것을 받아들여 만족스러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어야한다. 무대에서의 공간활용이나 한국무용에서 보여지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멈춤과 균형의 춤사위등이 모두 이 미의 가치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창작은 모방이라는 기본적인 과정후에 나타나는것이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모방을 통해서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만들기 보다는 학생들이 만족하는 것은 모방대상의 가치와 세계에 대한 배움이 아닌 자신의 모방과 모방된 대상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춤을 배웠다면 그 춤이 가지고 있는 내포성까지 자신이 소화함은 물론 배운춤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행위나 동작등을 수렴하여 자신만이 아름다운 또는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야하는데 그냥 정확하게 따라하는 것으로 마치....... 모든것을 배운 듯 생각하는 학생들과 그것으로 그 춤을 소화했다고 인정하는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최근엔 자유표현의 상징이어야 할  현대무용마져도 마치 발레처럼 다분히 현대무용처럼 보이기 위해서 현대무용적인 동작들의 짜집기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난 대부분의 공연에서 볼수 있는 공연안내 카달로그에 작품의 암시하는 글들...이것을 과연 안무와 정말 연관있게 적은것인지 아니면 작품 모두 짜고 연습 다 한다음에 분위기에 맞게 적어내는것인지...과연 어느쪽일까?
 99.9%는 후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학생들은 무용작품을 짜는 방법중 크게 2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하나는 전체적인 스토리와 안무를 구상한후 그 작품의 성격에 맞게 음악을 만드는 법
또하나는 음악을 먼저 준비한후 그에 맞게 안무를 만드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후자쪽을 택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짜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대부분의 자신들을 예술하는 사람들이라 자처하는 학생들은 무용의 근본도 모르고 있다.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한다가 아니라 음악에 맞게 몸을 흔든다이다.
이것이 무용인가? 이건 바로 뮤직비디오이다.
지금 당장 각학교의 창작발표회에 가보라
과연 그 동작들에서 의미성을 찾아 볼수 있는가?
아까 말했든 그냥 자신들이 지금껏 배워왔던 동작들의 짜깁기일 뿐이다.
실예로..한 대학교의 정기발표회에서의 발레공연.......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서 한 청년과 여인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카달로그에는 적혀있는데.....과연 그럴까? 카달로그를 보지 않고 공연을 보았다면 100명중 몇 명이 이것이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보겠는가? 한눈에 딱봐도 진00라는 남자무용수의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으로 밖에 안보인다. 어디서 퍼왔는지 아주 잘못 퍼와도 제대로 잘못 퍼왔다.
훌륭한 작품이란 처음보는 사람이 보아도 훌륭하고 전문가가 보아도 훌륭해야 한다.
물론 소수의 전문가들의 눈에는 매우 뛰어난 공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전문적이고 무용적인 미의 시각을 가진 무용전문가가 아닌 각계층과 나이의 일반적인 미의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어내야만 가장 중요한 흥행에도 전문가들에 대한 비평에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실로 흥행만 어느정도 된다면 비평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글의 일관성을 해치는 내용이지만 그 공연은 정말 알 수없는 일종의 국민체조였다.
 mary joyce의 무용교육에 대한 내용은 정말 국내의 무용교육계가 받아들여야할 중요한 방안이라 생각된다.
자본주의 이치인 노력에 따른 보상이 보장되지 않은 예술 분야이고.....
국내 교육이 입시위주이며 아직은 많은 공연의 실관객수가 적은 국내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어느 신문칼럼에서 20대 여성매니아층이 없으면 공연 못올린다는 제작자들의 글을 읽은적도 있다) 아직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국내 상황이지만.......
이런 선진국의 교육방식과 무용에 대한 접근은 조금은 소극적이고 점진적이더라고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보니 학생들에 대한 교육자들의 대가성요구 또한 심각하다: 자신이 많은 돈을 들여 배운 무용이 별다른 사회적인 보상과 경제성이 없자 학생들로부터 그에 따른 보상을 받기 위해 일부사립대 또는 고등학교 졸업발표시에 어처구니 없는 안무비용을 부담시킴으로서 선생과 그 측근들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그런 전통아닌 전통들.....물론 좋은게 좋은거라고 사회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국내의 예능계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것 또한 타분야 사람들이 예능계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정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