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기운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아니 어제 날씨가 흐

이창훈200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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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운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아니 어제 날씨가 흐려서 삭신이 쑤신거였나? -_-;; 나 나이먹은거야? 쳇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숨쉬기 힘들정도로 운적이 몇번 있다. 대부분은 이제 흐릿하게 기억하지만 단 한번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사왔었다. 나는 그녀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매일같이 쓰다듬어 주고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올려 놓고 놀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아침엔 삐약거리는 소리로 나를 깨우기도 했고 모이를 먹는 모습은 정말 좋았다. 거기다 그녀석은 부모님의 말과는 달리 1주일 이상 나와 같이 있어주었다. 나는 그녀석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석이 우리 집에 오고 1주일쯤 지나 나는 수영장엘 다녀 왔는데 다녀오고 나서 보니까 그녀석이 무척이나 불쌍해 보였다. 그녀석은 동족은 커녕 부모 형제조차 없이 괴물처럼 보이는 인간들 가운데서 살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녀석에게 모이를 줄 뿐 그 녀석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수 없었다. 나는 미안해졌다. 그래서 여름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 중 하나인 수영을 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그녀석도 좋아할 것이다. 거기다 그녀석은 물갈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발가락 사이에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녀석이 수영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하기엔 근거가 너무나 충분했다.

 

세면대에 물을 받은 나는 그녀석을 물위에 띄웠다. 그리고 열심히 발길질을 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히 기분이 흡족해 졌다. 좋아! 앞으로 매일이라도 수영을 시켜줄께! 나는 그녀석을 위해 그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체력이 무척 좋았고 그 녀석 또한 물론 그러리라 생각하고는 무려 2시간 가까이 물에 올려 놓았다. 물 가로 오면 다시 가운데로 보내고, 다시 가운데로 보내고........

 

다음날 그녀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만져보자 몸이 차가웠다. 아침에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이렇듯 잘 대해 줬는데 어떻게 죽는다는거야? 깊게 잠든걸꺼야. 어제까지만 해도 팔팔했잖아? 수영도 정말 활기차게 잘했다고! 그러나 내가 학교를 파해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그녀석은 아직 그 자세 그대로였다.

 

나는 순간 왜 죽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어제 수영이랍시고 물에 집어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분명하다! 활기찬 발길질은 살기위한 몸부림이었다! 순간 나는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울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굳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표현하자면 그것은 억울함이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단히 억울했다. 그리고 슬펐다.

 

몇시간을 울자 어머님께서 돌아오셨다. 내 눈을 보시고는 왜 우느냐고 하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고 했고 내 방으로 왔다. 어머니는 죽은 병아리 때문이냐고 했고 나는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문 뒤에 숨어서 소리죽여 울어야 했다.

 

나에게 선이었던 수영은 병아리에게 선이 아니었다. 나는 병아리를 충분히 좋아했지만 그녀석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이해가 부족한 나의 사랑은 그녀석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나는 그녀석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에게 있어 그녀석은 나와 동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석과 나는 분명히 다르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억울했다. 나의 단순한 감정만으론 그것이 아무리 호의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받는 개체에겐 악이 될 수가 있다. 나는 차이를 이해해야 하고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억울했다. 왜 좋아하는 것 만으론 안되지?

 

 

중학교 2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꽤 나를 아끼시던 분이셨는데 불과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그날 이후로 다시는 얼굴을, 음성을, 손길을 느낄 수가 없었다. 쉽게 현실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현실은 받아들이길 강요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당시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슬펐는지는 이제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난 당시에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웃지도 않았지만. 웃다가 우는 친척들을 보면서 나는 대단히 의아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울 수 있지?

 

나는 울려고 노력했지만 눈물은 단 한방울이 흘렀을 뿐이다. 왜 나는 울지 못했을까?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분명히 내 기억속에 분명한데, 할아버지의 말씀은 생생한데, 할아버지의 손길은 아직 따뜻한 듯 한데 왜 나는 울지 못했을까? 상실감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슬픔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왜 나는 울지 못했을까?

 

고작 병아리의 죽음에 몇시간을 미안하단 소릴 되뇌이며 울었던 내가 정작 할아버지의 죽음엔 왜 한방울의 눈물 이상은 흘릴 수 없었을까? 나는 그 때 내가 조금 싫어졌다. 그리고 이후로 아주 경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나를 울게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