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ry Carlton - Live In Blue Note (Tokyo'93) Jazz Fusion Concert중

김동휘200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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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제임스 (Bob James) - 피아노
래리 칼튼 (Larry Carlton) - 기타
네이던 이스트 (Nathan East) - 베이스
하비 메이슨 (Harvey Mason) - 드럼

의 현역최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4인조 퓨전 재즈그룹

 

래리 칼튼은 뮤지션 중의 뮤지션 기타리스중의 기타리스트라고 불리 우는 최고의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이다. 1970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칼튼 스틸리 댄,조니 밋첼,마이클잭슨,새미데미비슨 주니어,허브앨퍼트,퀸시존스,보비 블랜드,돌리 파튼,린다 론스타츠 등의 많은 뮤지션 및 그룹들과 함께 작업했다. 전설적 퓨전 밴드 '크루세이더(Crusaders)'의 기타리스트, 연간 500장 이상의 앨범에 참여한 초특급 세션맨, , 라는 히트 곡을 보유한 솔로 기타리스트, 컨탬포러리 재즈밴드 '포플레이(Fourplay)'의 기타리스트...... 래리 칼튼은 그가 참여한 세션 작업만큼이나 화려하고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지난 세기, 그리고 현재까지 최고의 기량과 명성을 자랑하는 위대한 뮤지션이다.

래리 칼튼은 1948년 3월 2일 캘리포니아주 토렌스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부터 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한 그의 첫 프로페셔널 무대는 1962년 L.A에 있는 한 클럽에서 이루어진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조 패스'의 음악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재즈와 블루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웨스 몽고메리', '바니 케셀', 'B.B.King'등의 뮤지션들의 스타일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면서 음악적 스타일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지방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롱비치 주립대학을 일년만 다닌 뒤, 1968년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스튜디오 세션을 시작했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그의 실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당시 최고의 팝 가수였던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 '패트리지 패밀리(Patridge Family)' 등의 앨범에 참가하였다. 1974년 초 래리 칼튼은 '크루세이더'가 스스로 재즈밴드가 아님을 표방한 직후에-실제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크루세이더'는 소울 펑키(soul funky)나 컨탬포러리(contemporary) 밴드로 분류하는 게 옳다.-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게 되는데, 음악계에 이름을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1983년 밴드가 해산하기까지 래리는 '크루세이더'의 기타리스트 이외에도 연간 500건이 넘는 세션 참여를 하여 초특급 세션맨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특히 그는 hill Street Blues로 1981년 그래미 베스트 팝 인스트루멘탈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그래미 수상이었다. 이후 꾸준히 세션 작업과 함께 솔로 음반을 발표하며 1987년 앨범 discovery로 다시 한 번 그래미를 수상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89년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앨범 를 녹음하던 중에 방 밖에서 미성년자들의 총격 난사에 목을 관통 당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사고의 여파로 심각한 신경 장애를 겪기도 하였으나 집중적인 치료와 본인의 재활 의지는 그를 곧 회복시켰고, 앨범도 무사히 마무리하게 된다. 최근 10여년 동안 래리 칼튼의 이력에는 두 번의 프로젝트성 활동이 포함되어 있는데, 1998년 그룹 '토토(To To)' 출신의 록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와 의 협연과, 재즈 피아니스트 '밥 제임스(Bob James)'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컨탬포러리 재즈밴드 '포플레이(Fourplay)'에 참가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에 발표한 앨범 는 2001년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