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의 새벽 두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22살이다. 동갑내기 B는 엄마가 되어 가정을 돌본다. L은 꿈을 위하여,무단히 공부중이다. S는 사회인이 되었다. '누구의 삶이 옳은것인가.' 라는 대답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없다. 있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 삶의 잣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어느 잣대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난 잘못했다. 난 오늘 다른사람의 삶을 내멋대로 평가하고 우습게 생각했고 버릇없이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내 까짓게 뭐라고. 후회와 함께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가' 생각하는 동시에 삽시간 불안이 밀려왔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인정하는 나보다는 다른사람의 눈에 비추어지는 내가 더 신경이 쓰였고, 더 조심스러웠으며, 그래서 더 치장해댔다. 그렇게 해댄 치장은 얼마 되지않아 지워졌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파우더로 덧칠하듯 지워진곳을 가렸다. 하지만 가리기만 할뿐. 눈속임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앞으로 살아갈 평생을, 길지도 짧지도 모를 소중한 나의 삶을, 이렇게 덧칠만 하며 살아갈것인가. 당장 지워버리자 벗어던지자 당당히 내보이자 자아.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나이니 받아들이자. 나를 나로 살자.
3월 말의 새벽 두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22
3월 말의 새벽 두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22살이다.
동갑내기 B는 엄마가 되어 가정을 돌본다.
L은 꿈을 위하여,무단히 공부중이다.
S는 사회인이 되었다.
'누구의 삶이 옳은것인가.'
라는 대답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없다.
있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
삶의 잣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어느 잣대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난 잘못했다.
난 오늘 다른사람의 삶을 내멋대로 평가하고
우습게 생각했고
버릇없이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내 까짓게 뭐라고.
후회와 함께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가' 생각하는 동시에
삽시간 불안이 밀려왔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인정하는 나보다는
다른사람의 눈에 비추어지는 내가
더 신경이 쓰였고,
더 조심스러웠으며,
그래서 더 치장해댔다.
그렇게 해댄 치장은
얼마 되지않아 지워졌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파우더로 덧칠하듯 지워진곳을 가렸다.
하지만 가리기만 할뿐.
눈속임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앞으로 살아갈 평생을,
길지도 짧지도 모를 소중한 나의 삶을,
이렇게 덧칠만 하며 살아갈것인가.
당장 지워버리자
벗어던지자
당당히 내보이자
자아.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나이니 받아들이자.
나를 나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