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날 밤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김 군은 걸었다. 그 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김 군은 많은 정서적 손상을 입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너무도 깊은 바다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김 군의 집은 판자촌의 생활수준과 맞먹는 수준의 그런 곳이었다. 달동네 비슷한 곳.
경사진 긴 언덕을 가로 질러 올라가게 되면 동네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서 김 군의 집이 있다. 비를 맞으며 올라가는 그날 밤 11시가 넘은 듯 한 시간이었다.
“그리움 속에 나를, 가슴에 남기네.”
어린 소녀의 목소리인지, 소년의 목소리인지. 맑고 깨끗한. “청아하다”라고 해야 되나. 그런 고운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노랫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다르게 그 노랫말은 서정적이고, 절제된 감정이 실린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게서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정.
-다각
김 군의 구두 특유의 소리에 노래는 멈추고, 정적을 이루었다. 김 군도 멈춰서 멍하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정적을 깨뜨리는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군은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계속 노래를 부르도록 김 군은 최대한 구두소리를 내지 않으며 그의 집으로 향해 갔다. 조용히, 그리고 조용히
# Hello?
시간이 흐를수록 김 군은 그 꼬마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매일 일을 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 깊은 밤마다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아이임을 알았다. 매일 슬픈 노래. 비오는 날이면 더욱 슬프게 들린다.
“안녕, 안녕.
아무것도 이젠 소용없어, 내 모습만 초라할 뿐
바라보고, 바라봐도 아플 테니까.
너의 그 접은 날개를 펴,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
안녕, 이젠 안녕”
김 군은 소년의 노래를 엿듣고는 즐거움을 안은 채 돌아갔다. 가슴속의 응어리를 따 떼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정서적 손상은 어느 정도 치유된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정신적 공황상태와 육체적인 고통이 남을 뿐.
정보지를 보고 30여 곳을 찾아가보았다. 하지만 계속 허탕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곳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정곡을 찌르는 듯 한 말이 들려왔다.
“당신 같은 사람은 직원으로 받지 않네!”
‘!’
놀랍기도 하고, 기분도 안 좋아지고, 몹시 짜증났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지저분한 차림의 사람을 보고 직원으로 받겠나.
-퉤!
뒤돌아서 나가는데 그 인간 면상이 눈앞을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길바닥을 향해 냅다 침을 뱉었다.
# happy and sad
비가 내렸다.
벚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움을 시기하듯 봄비는 매서웠다. 아직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벚꽃들마저 무자비하게 생명의 불을 꺼버렸다. 마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황금만능주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후, 젠장”
담배를 휙 던지고 그 빌어먹을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은 왠지 벚꽃이 떨어져 눅눅한 기분도 있고 구두에 벚꽃이 엉겨 붙어서 짜증이 났다. 9시쯤 이었다. 그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의 일부분을 붕대 같은 것으로 감았는데, 수술을 한 것이거나 화상을 입은 것 같다.
사실상 수술보단 화상에 가까울 것 같지만.
“얘 꼬마야”
“네?”
소년은 돌아서 김 군을 주시했다. 김 군은 소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년의 노래처럼 눈도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너도 슬픈 눈을 가졌구나.”
“네…. 네?”
소년은 김 군의 말에 놀라 말끝을 올려 반문했다.
“다른 말은 더 하지 않을게, 내일도 노래를 들려주지 않을래?”
소년은 방긋 웃으며, “네, 그렇게 할게요.” 라고 하곤 돌아가는 나를 배웅했다.
“아저씨, 잘 가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What's the problem?/ bye and forever.
“어, 오셨네요.”
“그래. 꼬마야. 오늘은 어떤 노래일까”
“으음…. 거의 아저씨한테 불러줘서 이젠 아는 노래가 없어요. 어쩌죠?”
“흠…. 그럼 내가 다음에 노래를 하나 들려줄게. 잘 기억해둬. 제목은 Rain of the night이야.”
“네, 꼭 기억할게요!
소년은 내가 가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소년과 친해지면서 그의 속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소년이 얼굴에 그렇게 많은 부분에 화상을 입은 이유는 이러했다. 소년이 4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여느 소년과 같이 소년도 산타가 선물을 줄 거라고 믿으며 연신 기대에 부푼 맘으로 주변 교회에 다녀왔다.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라 소년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주며,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꺄악!!”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무섭기도 했지만, 엄마가 걱정되어서 부리나케 달려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둑이거나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소년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이곳저곳을 유린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끝까지 방어를 하다가 이윽고 소년의 아버지에게 내동댕이쳐지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보자 그의 아버지는 부엌에 끓고 있던 물을 냅다 소년의 얼굴에 부어버렸다. 그리고서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집에서 뛰쳐나갔다.
소년의 화상은 이때부터 입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울면서 된장으로 화상을 입은 부위를 발라나갔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료방법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소년의 화상에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찬물로 마찰을 주어 최대한 피해를 덜 가게 했지만, 어린나이의 여린 피부에는 100℃가 넘는 물의 온도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 후부터 소년은 얼굴에 천 조각을 감싸고 다녔다.
“아저씨 왔다”
“어서 오세요. 아저씨”
“그래, 그동안 밖에 잘 안나가봤겠구나. 저기 들판에 한번 나가볼래?”
소년의 집 앞에서 아래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약간 언덕진 곳이고 잡초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김 군은 소년을 데리고 내려갔다. 들판에 도착하여 언덕진 부분에 드러눕고는 소년에게 물었다.
“넌 무엇 때문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니?”
“으음. 글쎄요?”
“흐흠. 그래? 한번 생각해 보려무. 컥-”
잘 버텨왔지만 김 군의 병은 너무도 악화되었다. 그동안 천식이었지만, 천식도 어느 정도지 의료보험금도 밀려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가질 못해 병세가 악화된 것이었다. 폐렴은 어느 정도 붉은 피를 토해내지만, 김 군의 목에선 검고 붉은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한 5분여간을 피를 토해냈을까. 김 군도 지쳐서인지 주저앉았다.
“아저씨…. 죽지 말아요. 저한테 노래 들려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으으. 그래”
“아저씨. 아저씨!!”
“그래, 노래 제목이 뭐였지. 커헉-!”
“아저씨!! Rain of the night요”
“Rain of the night라고요!!!”
김 군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폐암말기로 보인다. 빠르게 식어가는 김 군의 몸을 부여잡고 소년은 굵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어떻게 보면 김 군이 소년에게 다시 슬픔을 안겨준 것 일지도 모른다.
소년의 슬픔을 아는 것인지. 그날도 비가 내렸다. 김 군과 소년이 처음 만났던 날처럼…….
[단편]Rain of the night
Rain of the night
# Situation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날 밤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김 군은 걸었다. 그 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김 군은 많은 정서적 손상을 입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너무도 깊은 바다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김 군의 집은 판자촌의 생활수준과 맞먹는 수준의 그런 곳이었다. 달동네 비슷한 곳.
경사진 긴 언덕을 가로 질러 올라가게 되면 동네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서 김 군의 집이 있다. 비를 맞으며 올라가는 그날 밤 11시가 넘은 듯 한 시간이었다.
“그리움 속에 나를, 가슴에 남기네.”
어린 소녀의 목소리인지, 소년의 목소리인지. 맑고 깨끗한. “청아하다”라고 해야 되나. 그런 고운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노랫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다르게 그 노랫말은 서정적이고, 절제된 감정이 실린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게서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정.
-다각
김 군의 구두 특유의 소리에 노래는 멈추고, 정적을 이루었다. 김 군도 멈춰서 멍하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정적을 깨뜨리는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군은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계속 노래를 부르도록 김 군은 최대한 구두소리를 내지 않으며 그의 집으로 향해 갔다. 조용히, 그리고 조용히
# Hello?
시간이 흐를수록 김 군은 그 꼬마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매일 일을 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런 깊은 밤마다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아이임을 알았다. 매일 슬픈 노래. 비오는 날이면 더욱 슬프게 들린다.
“안녕, 안녕.
아무것도 이젠 소용없어, 내 모습만 초라할 뿐
바라보고, 바라봐도 아플 테니까.
너의 그 접은 날개를 펴,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
안녕, 이젠 안녕”
김 군은 소년의 노래를 엿듣고는 즐거움을 안은 채 돌아갔다. 가슴속의 응어리를 따 떼어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정서적 손상은 어느 정도 치유된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정신적 공황상태와 육체적인 고통이 남을 뿐.
정보지를 보고 30여 곳을 찾아가보았다. 하지만 계속 허탕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곳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정곡을 찌르는 듯 한 말이 들려왔다.
“당신 같은 사람은 직원으로 받지 않네!”
‘!’
놀랍기도 하고, 기분도 안 좋아지고, 몹시 짜증났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지저분한 차림의 사람을 보고 직원으로 받겠나.
-퉤!
뒤돌아서 나가는데 그 인간 면상이 눈앞을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길바닥을 향해 냅다 침을 뱉었다.
# happy and sad
비가 내렸다.
벚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움을 시기하듯 봄비는 매서웠다. 아직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벚꽃들마저 무자비하게 생명의 불을 꺼버렸다. 마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황금만능주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후, 젠장”
담배를 휙 던지고 그 빌어먹을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은 왠지 벚꽃이 떨어져 눅눅한 기분도 있고 구두에 벚꽃이 엉겨 붙어서 짜증이 났다. 9시쯤 이었다. 그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의 일부분을 붕대 같은 것으로 감았는데, 수술을 한 것이거나 화상을 입은 것 같다.
사실상 수술보단 화상에 가까울 것 같지만.
“얘 꼬마야”
“네?”
소년은 돌아서 김 군을 주시했다. 김 군은 소년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년의 노래처럼 눈도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너도 슬픈 눈을 가졌구나.”
“네…. 네?”
소년은 김 군의 말에 놀라 말끝을 올려 반문했다.
“다른 말은 더 하지 않을게, 내일도 노래를 들려주지 않을래?”
소년은 방긋 웃으며, “네, 그렇게 할게요.” 라고 하곤 돌아가는 나를 배웅했다.
“아저씨, 잘 가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What's the problem?/ bye and forever.
“어, 오셨네요.”
“그래. 꼬마야. 오늘은 어떤 노래일까”
“으음…. 거의 아저씨한테 불러줘서 이젠 아는 노래가 없어요. 어쩌죠?”
“흠…. 그럼 내가 다음에 노래를 하나 들려줄게. 잘 기억해둬. 제목은 Rain of the night이야.”
“네, 꼭 기억할게요!
소년은 내가 가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소년과 친해지면서 그의 속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소년이 얼굴에 그렇게 많은 부분에 화상을 입은 이유는 이러했다. 소년이 4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여느 소년과 같이 소년도 산타가 선물을 줄 거라고 믿으며 연신 기대에 부푼 맘으로 주변 교회에 다녀왔다.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라 소년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주며,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꺄악!!”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무섭기도 했지만, 엄마가 걱정되어서 부리나케 달려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둑이거나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소년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의 옷을 갈기갈기 찢고 이곳저곳을 유린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끝까지 방어를 하다가 이윽고 소년의 아버지에게 내동댕이쳐지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보자 그의 아버지는 부엌에 끓고 있던 물을 냅다 소년의 얼굴에 부어버렸다. 그리고서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집에서 뛰쳐나갔다.
소년의 화상은 이때부터 입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울면서 된장으로 화상을 입은 부위를 발라나갔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료방법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소년의 화상에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찬물로 마찰을 주어 최대한 피해를 덜 가게 했지만, 어린나이의 여린 피부에는 100℃가 넘는 물의 온도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 후부터 소년은 얼굴에 천 조각을 감싸고 다녔다.
“아저씨 왔다”
“어서 오세요. 아저씨”
“그래, 그동안 밖에 잘 안나가봤겠구나. 저기 들판에 한번 나가볼래?”
소년의 집 앞에서 아래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약간 언덕진 곳이고 잡초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김 군은 소년을 데리고 내려갔다. 들판에 도착하여 언덕진 부분에 드러눕고는 소년에게 물었다.
“넌 무엇 때문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니?”
“으음. 글쎄요?”
“흐흠. 그래? 한번 생각해 보려무. 컥-”
잘 버텨왔지만 김 군의 병은 너무도 악화되었다. 그동안 천식이었지만, 천식도 어느 정도지 의료보험금도 밀려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가질 못해 병세가 악화된 것이었다. 폐렴은 어느 정도 붉은 피를 토해내지만, 김 군의 목에선 검고 붉은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한 5분여간을 피를 토해냈을까. 김 군도 지쳐서인지 주저앉았다.
“아저씨…. 죽지 말아요. 저한테 노래 들려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으으. 그래”
“아저씨. 아저씨!!”
“그래, 노래 제목이 뭐였지. 커헉-!”
“아저씨!! Rain of the night요”
“Rain of the night라고요!!!”
김 군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폐암말기로 보인다. 빠르게 식어가는 김 군의 몸을 부여잡고 소년은 굵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어떻게 보면 김 군이 소년에게 다시 슬픔을 안겨준 것 일지도 모른다.
소년의 슬픔을 아는 것인지. 그날도 비가 내렸다. 김 군과 소년이 처음 만났던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