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만난 친구 대학시절 ,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었지요. 망미동 2층 주택은, 왜 그런 거 있잖아요. 7-80년대 얄개시리즈에 나오는 전형적인 부잣집. 오랫동안 잘 가꾸어진 게 틀림없는 나무들과 동글동글한 자갈로 이어진 정원 사잇길, 반지르르한 목재로 된 내부벽체와 2층으로 연결된 계단까지, 그 때 난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이런 집의 고명딸... 참 복도 많구나... J는, 식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내가 부러움의 눈길로 쫒아보곤 하던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구형 그랜저(소위, 각그랜저)로 운전연수를 받고 프랑스로 유학간 셋째 오빠를 둔 잘 나가는 사업가의 고명딸이었습니다. J는, 유복하게 모자람없이 자란 아이답게 베풀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영문과 보다는 학보과 일이 더 바빴던 임정심에게 J는 늘 수업대출과 리포트와 시험범위 복사를 도맡아 해주는, 지금 생각해보면 임정심 졸업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의 운명론적 또는 비주체적 여성상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비판했지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두고 길어올리는 인간, 즉 남편에 의해 이리 기뚱 저리 기뚱 하는 한낱 뒤웅박이라고 표현해서야 어디 말이나 됩니까?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성에 대한 비판의 광풍이 좀 잦아졌는지, 아니면 내가 잊고 지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거나.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유복하고 정많았던 그래서 부러웠던 친구 J를 통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과 아이를 낳는 평범한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J의 삶은 마치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비상식적인 시댁식구들과 사랑이 없는 남편, 심한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과 아들, 잘 나가던 친정의 몰락, 여러 스트레스의 총체인 듯 이른 나이에 찾아온 자궁암까지. 아직도 마음고생은 끝이 아니어서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친정 식구들은 J만 바라보고 있답니다. J를, 4년만에 만났습니다. 함께 쇼핑을 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J는 집에 갔습니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마음이 왜 이럴까요. 한 나절 J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은 안타까움입니다. 십여 년의 세월은 너그럽던 J를 강퍅하게 변모시켰더군요. J는 친구들의 일상이나 좋은 일에 대해선 길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나를 강조하더군요. 급기야 쉬고 있는-엄밀히 일이 없는-나를 두고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너도 어쩔 수 없네.' 라며 고소한 듯 씨니컬하게 웃더군요. 사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나나 또다른 친구를 두고 '하기는 결국 다 돈 때문이지 뭐' '서울이나 경기도는 영어 선생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 영주권자니 뭐니 해서 아이들이 선생보다 더 잘하는데 뭐' 자격지심에서 유독 마음에 와 박혔겠지만 쇼핑내내 가격에 대해 투덜거리며 구매를 망설이던 J의 모습과 겹쳐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랬겠지요, 굴곡없이 사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그간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나는 J가 의도적으로 생채기를 낼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걸 압니다. 대게 곱게 자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다테마에, 즉 사회적 멘트에 능숙하지 못한 경향이 있지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또는 포장해서 숨기는 방법에 미숙하달까요. 뭐 어떻든 좋습니다. 작은 생채기 정도로 J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나는, J가 더이상 불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4년만에 만난 친구 대학시절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
4년만에 만난 친구
대학시절 ,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었지요.
망미동 2층 주택은, 왜 그런 거 있잖아요.
7-80년대 얄개시리즈에 나오는 전형적인 부잣집.
오랫동안 잘 가꾸어진 게 틀림없는 나무들과
동글동글한 자갈로 이어진 정원 사잇길,
반지르르한 목재로 된 내부벽체와 2층으로 연결된 계단까지,
그 때 난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이런 집의 고명딸... 참 복도 많구나...
J는,
식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내가 부러움의 눈길로 쫒아보곤 하던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구형 그랜저(소위, 각그랜저)로 운전연수를 받고
프랑스로 유학간 셋째 오빠를 둔
잘 나가는 사업가의 고명딸이었습니다.
J는,
유복하게 모자람없이 자란 아이답게
베풀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영문과 보다는 학보과 일이 더 바빴던 임정심에게
J는 늘 수업대출과 리포트와 시험범위 복사를
도맡아 해주는, 지금 생각해보면
임정심 졸업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의 운명론적 또는
비주체적 여성상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비판했지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두고 길어올리는 인간, 즉 남편에 의해
이리 기뚱 저리 기뚱 하는 한낱 뒤웅박이라고 표현해서야
어디 말이나 됩니까?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성에 대한 비판의 광풍이
좀 잦아졌는지, 아니면 내가 잊고 지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거나.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유복하고 정많았던 그래서 부러웠던 친구 J를 통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과 아이를 낳는 평범한 십여 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J의 삶은 마치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비상식적인 시댁식구들과 사랑이 없는 남편,
심한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과 아들, 잘 나가던 친정의 몰락,
여러 스트레스의 총체인 듯 이른 나이에 찾아온 자궁암까지.
아직도 마음고생은 끝이 아니어서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친정 식구들은 J만 바라보고 있답니다.
J를,
4년만에 만났습니다.
함께 쇼핑을 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J는 집에 갔습니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마음이 왜 이럴까요.
한 나절 J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은 안타까움입니다.
십여 년의 세월은 너그럽던 J를 강퍅하게 변모시켰더군요.
J는 친구들의 일상이나 좋은 일에 대해선 길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나를 강조하더군요.
급기야 쉬고 있는-엄밀히 일이 없는-나를 두고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너도 어쩔 수 없네.'
라며 고소한 듯 씨니컬하게 웃더군요.
사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나나 또다른 친구를 두고
'하기는 결국 다 돈 때문이지 뭐'
'서울이나 경기도는 영어 선생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
영주권자니 뭐니 해서 아이들이 선생보다 더 잘하는데 뭐'
자격지심에서 유독 마음에 와 박혔겠지만
쇼핑내내 가격에 대해 투덜거리며 구매를 망설이던
J의 모습과 겹쳐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랬겠지요, 굴곡없이 사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그간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나는 J가 의도적으로 생채기를 낼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걸 압니다.
대게 곱게 자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다테마에, 즉 사회적 멘트에 능숙하지 못한 경향이 있지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또는 포장해서 숨기는 방법에 미숙하달까요.
뭐 어떻든 좋습니다.
작은 생채기 정도로 J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나는,
J가 더이상 불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