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전차남"을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말씀 드리면 "오타쿠"인 주인공이 전철 안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를 술 취한 아저씨의 꼬장? 에서 구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속에 자신의 사연을 올리고 사이버속의 사람들에게서 충고와 조언들을 들으며 전철에서 만난 여자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며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로 사랑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에서 충고의 말만하며 자신들의 내면에 숨겨진 주인공 오타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있던 그들 또한 용기를 내고 자신의 삶을 바로 나아가게 되는 내용입니다.일본에서 "오타쿠"는 애니, 영화, 게임등에 빠진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 일본사회에서는 무시 당하고때론 소외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타쿠인 주인공 또한 어리버리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고 또한 바보스럽게 착하고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영화의 주인공이 사이버상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인간들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해보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어리버리할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한 주인공이 연애을 시작하고 그 속에서 수 많은 실수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삶속에서도 했을법한 연애의 실수들을 떠올리게 하며 다시금 연애의 기술들을 떠올리게 만든다.난 이 땅에서의 사랑은 불안전 사랑이며 절대로 완전한 사랑를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선진국일 수록 결혼에 있어서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지만 그에 반에 이혼율이높아지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할때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 34 ~ 35)고 하신다.물론 예수님은 그분 안에서의 사랑을 말하고 계시며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라면 이 땅에서도완전한 사랑에 이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사랑의 완성은 천국에 있을거라고 난 느껴진다 . "로맨틱(romantic)"이라는 말을 떠올려 봤다. 많은 사람들이 로맨틱한 사랑,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꾼적이 있으며 현재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때론 그런 드라마틱한 사랑을 상상하기도 하니깐..^^ 그런데 이 "로맨틱(romantic)"한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낭만적인"이다 그렇다면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뜻한다고한다.즉 사람이라면 한번 이상은 가졌을 로맨틱한 사랑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며 비현실 적인 것이다.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왜 일까? 그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한1서 4 장 8 절)" 그러므로 그의 형상인 인간들의 내면에는 사랑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난 가끔 남녀간의 로맨틱한 사랑을 그린 영화를 볼때마다위의 생각들을 가지곤 한다.그리고 세상이 그려내는 사랑의 끝 또한 결국에는 현실의 벽을 무시해버리거나 이겨내므로 결국에는그 사랑을 만들어 내며 "진정한 사랑은 아무런 조건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을 내려놓는것"이라는 결론을 그리는것을 보면 인간은 어쩔수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인것이 더욱 느껴진다 하나님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 하셨듯이 말이다. 난 아직 젊다. ^^ 그러하기에 로맨택한 사랑이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사랑을 왠지 포기하기가 힘이든다. 왠지모를 아쉬움이랄까?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안에서 그 로맨택한 사랑을 상상해 본다. 아직 나에게는 세상의 가치관이 너무나 많이 나를 억누루고 있으며 나를 옭아매는 사슬로 나에게 남아 있기에 아직은 십자가 안에서 꿈꾸는 로맨택한 사랑을 이루기가 힘들겠지만 언젠가 내가 십자가의 사랑을 더 바로알고 느끼게 될때 이 땅에서도 로맨택한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대를 가진다.^^하나님 또한 내가 그저그런 만남속에서 현실의 조건이나 환경들을 재면서 만나 사랑하는 것은 바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내가 이 땅에서 그의 사랑앞에서 충분하게 로맨틱한 사랑을 경험함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기를 원하실 것이다. 난 로맨틱한 사랑을 포기 할 수 없다. 그리고 꿈꾼다. 그리고 이루고 싶다.
일본영화
일본영화 "전차남"을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말씀 드리면
"오타쿠"인 주인공이 전철 안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를 술 취한 아저씨의 꼬장? 에서 구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속에
자신의 사연을 올리고 사이버속의 사람들에게서 충고와
조언들을 들으며 전철에서 만난 여자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며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로 사랑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에서 충고의
말만하며 자신들의 내면에 숨겨진 주인공 오타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있던 그들 또한 용기를 내고 자신의 삶을 바로
나아가게 되는 내용입니다.일본에서 "오타쿠"는 애니,
영화, 게임등에 빠진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 일본사회에서는
무시 당하고때론 소외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타쿠인
주인공 또한 어리버리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고 또한 바보스럽게
착하고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영화의 주인공이 사이버상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인간들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해보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어리버리할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한 주인공이
연애을 시작하고 그 속에서 수 많은 실수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삶속에서도
했을법한 연애의 실수들을 떠올리게 하며 다시금 연애의
기술들을 떠올리게 만든다.난 이 땅에서의 사랑은 불안전 사랑이며
절대로 완전한 사랑를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선진국일 수록 결혼에 있어서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지만 그에 반에 이혼율이높아지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할때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 34 ~ 35)고 하신다.물론 예수님은 그분 안에서의
사랑을 말하고 계시며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라면
이 땅에서도완전한 사랑에 이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사랑의 완성은 천국에 있을거라고 난 느껴진다
. "로맨틱(romantic)"이라는 말을 떠올려 봤다.
많은 사람들이 로맨틱한 사랑,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꾼적이
있으며 현재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때론 그런 드라마틱한 사랑을 상상하기도 하니깐..^^
그런데 이 "로맨틱(romantic)"한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낭만적인"이다 그렇다면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뜻한다고한다.즉 사람이라면 한번 이상은 가졌을 로맨틱한
사랑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며 비현실 적인 것이다.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왜 일까? 그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한1서 4 장 8 절)" 그러므로 그의 형상인 인간들의 내면에는 사랑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난 가끔 남녀간의 로맨틱한 사랑을 그린 영화를 볼때마다위의 생각들을 가지곤 한다.그리고 세상이 그려내는 사랑의
끝 또한 결국에는 현실의 벽을 무시해버리거나 이겨내므로
결국에는그 사랑을 만들어 내며 "진정한 사랑은 아무런 조건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을 내려놓는것"이라는 결론을 그리는것을
보면 인간은 어쩔수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인것이 더욱 느껴진다
하나님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 하셨듯이 말이다.
난 아직 젊다. ^^ 그러하기에 로맨택한 사랑이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사랑을 왠지 포기하기가
힘이든다. 왠지모를 아쉬움이랄까?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안에서 그 로맨택한 사랑을 상상해 본다. 아직 나에게는 세상의 가치관이 너무나 많이 나를 억누루고
있으며 나를 옭아매는 사슬로 나에게 남아 있기에 아직은 십자가
안에서 꿈꾸는 로맨택한 사랑을 이루기가 힘들겠지만 언젠가
내가 십자가의 사랑을 더 바로알고 느끼게 될때 이 땅에서도
로맨택한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대를 가진다.^^하나님 또한 내가 그저그런 만남속에서
현실의 조건이나 환경들을 재면서 만나 사랑하는 것은
바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내가
이 땅에서 그의 사랑앞에서 충분하게 로맨틱한 사랑을 경험함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기를 원하실 것이다.
난 로맨틱한 사랑을 포기 할 수 없다. 그리고 꿈꾼다.
그리고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