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글로브의 3가지 공헌

서동민200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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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글로브의 기업 경영에서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호함(decisiveness)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젊은 날 조국 헝가리를 탈출해서 사선을 넘었던 삶의 역정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1936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탈출하여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수많은 정치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CEO보다도 살아남는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펴낸 기업인으로서의 역정을 그린 자전적 엣세이 집의 이름인 는 것이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드러내고 남음이 있다. 그는 지금도 4.5평 규모로 일반 직원과 거의 구분이 없는 사무실을 사용할 정도로 가식이 없고, 지금도 '머무는 순간 망한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원칙을 대단히 중시하면서 임직원들 역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실리콘 밸리의 일반적인 분위기인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기업 경영 원칙에 동의할 수 없는 인물은 인텔을 떠나야 한다. 그는 임직원들 개개인이 강력한 목표관리를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인물이다. 인텔의 목표관리 기법은 흔히 임보스(IMBOS)라고 불리우며, 직원들은 일상 대화에서 자주 '나는 이번 분기에 임보스의 80%를 달성하였다'는 식으로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그가 직원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는 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된다. "안된 일이지만, 아무도 당신에게 직장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당신은 그 임무의 유일한 지휘자인 동시에 유일한 고용인인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직업, 기술, 그리고 선택 등을 책임질 수 밖 에 없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실패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을 경영하는 일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몫이다." 그의 기업 경영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결정적인 사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텔의 주력상품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도시바, 히타치, NEC 등에 의해 수성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렸을 때가 1985년 무렵이다.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전 앞에서 인텔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심정으로 메모리 분야에서 전략적 퇴각을 결정하게 된다. 동시에 마이크로프로세스와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으로 자원을 재배치하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인텔은 반도체 회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스 회사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완벽한 재기와 함께 승자의 자리를 굳히는데 성공하게 된다. 지나고 나면 '잘 했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것은 기업에게나 CEO에게나 운명을 거는 일이다. 이런 시기를 두고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언젠가 무언가 크게 변화하는 시기, 무언가 달라지는 시기,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온통 정신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때를 두고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다. 결국 전략적 변곡점을 제대로 포착해서 방향 전환에 성공하면 기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에 실패하면 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는 전략적 변곡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실패하는 것과 알고 있을 때 조차 두려움이나 안일함 때문에 너무 늦게, 너무 약한 조치를 취하는 나쁜 습관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정신 착란증에 걸린 자처럼 초긴장 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이긴다"라는 말로서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는 삶의 철학을 표현한 적이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어느 누구도 부품에 브랜드를 붙이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였을 때 인텔의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브랜드야말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 될 것임을 미리 내다보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텔은 판매량 증가, 주식 수익률 향상 그리고 시장 자본의 확대를 통해 괄목한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잘 나가고 있었는가 하면 1989년 12억달러에 불과했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매출액은 2000년에 330억달러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기업에 돈이 차고 넘칠 정도로 초호황이었다. 이럴 때 방심하지 않고 여유 자금을 또 한번의 신화를 만드는데 투자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인텔 인사이드'라는 브랜드이다. 인텔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에서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인텔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의 성공을 이끌었던 인물은 1990년대에 인텔의 마케팅 전문가였던 테디느 카터의 뛰어난 통찰력 덕본이다. 그러나 첨단산업에서 브랜드 폴트폴리오 전략을 통해서 상품 가치를 현저하게 올리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가를 깨우치고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앤드류 글로브의 통찰력이 큰 힘을 발휘하였다.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1991년 봄,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인 1억 달러를 투입하여 '인텔 인사이드'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도 첨단산업에서 그것도 부품에 해당하는 상품에 대해서 그처럼 큰 액수를 투자하는데 내부적으로 강력한 반발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차라리 그 돈을 연구개발 비용에 사용하는 편이 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텔인사이드라는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컴퓨터 제조회사들 사이에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성공함과 아울러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부착하는 PC의 경우 판매가격에서 약 10% 정도의 프리미엄을 창출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세 번째 사건은 1994년 펜티업 칩이 나온지 1년이 되던 해에 일어난 기술상의 오류에 대해 신속히 대응한 점을 들 수 있다. 브랜드나 명성은 만들어 내는데는 수 십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이다. 펜티업 칩의 결함이 발생하게 되는데 90억 번의 연산마다 나누기 오류가 발생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모두들 당황한 상황에서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특유의 단호함으로 정면으로 위기를 돌파하게 된다. 신속하게 이사회를 통해서 회사가 4억 7천5백만달러를 부담해서 모든 프로세스를 교환해 주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 금액은 해당 분기 회사 이익의 50퍼센트에 해당할 정도의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 위기를 통해서 인텔과 경쟁사들의 재무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텔은 단기적인 손실에도 불구하고 신뢰라는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