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키스와 장정일, 그리고 지금-여기

이정현200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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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키스와 장정일, 그리고 지금-여기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돈을 모아서 산 뭉크의 화집. 그 화집 속의 그림들은 나의 대학생활 내내 화두로 작용했다.

 

 사춘기. 절규. 질투. 키스. 병든 소녀...

 

 아마 장정일의 소설 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던가.

 

 " 나이 열 아홉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 소년은 결국 그 세 가지를 모두 얻는다. 처절한 댓가를 치루고.

 타자기는 대학의 등록금과 맞바꾸었고, 뭉크의 화집은 나이 많은 화가에게 몸을 팔아서 얻었으며, 밤의 어둠 속을 흐느적거리면서, 천천히 청춘을 상실해 가면서 음악을 얻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세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타자기는 개인 전용의 노트북으로 대치되고, 뭉크의 화집은 나의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샀으며, 음악은 언제나 곁에 있다. 굳이 워크맨이나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음악은 컴퓨터와, 술집의 스피커를 통해 늘 곁에 존재한다.

 

 내가 그것들을 얻기 위한 물리적인 대가를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스무살에 구입한 뭉크 화집의 낡아버린 표지를 보며, 글을 쓰고자 했으나 허망하게 먼지가 쌓인 노트북을 보며, 음악들에 담긴 숨겨진 의미와 그것을 작곡, 작사한 인간의 심정이 여과없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정신적인 대가를 치루고 있다. 청춘이 가버렸다는 것. 그리고 적어도 내 나이의 평균적인 경험이나 앎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알고 느꼈다는 사실.

 

 그 지나침은 독이 될까, 아니면 서른 이후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줄까. 뭉크의 키스. 저런 몸짓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키스를 퍼붇고 싶다, 아니다, 뭉크의 저 키스는 지독하게 절망적이지 않은가. 절망적으로라도 누군가를 붙잡고 '절규' 하듯이 '독백' 하고 싶다. '사춘기'의 '병든 소녀' 처럼.